감수성이 사라진 대한민국 : 오글거림의 미학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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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2월 31일 <SBS 연기대상>에서의 유아인의 수상소감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판에 박혀있던 수상 소감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당면해왔던 고뇌와 기쁨 그리고 일련의 감정들을 솔직하고 진정성있게 전달하며 이를 지켜보던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느끼하다’ ‘허세부린다’와 같은 부정적 반응이 일었는데, 배우 유아인 특유의 표정과 제스쳐 그리고 다소 감성적인 언어들이 보는이들로 하여금 ‘오글거리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오글거림을 나쁘다고 말하는 게 나쁘다.
유아인의 수상소감에 대한 가치판단은 대중의 몫에 차치해두고, 우리는 오글거린다는 표현을 다시금 되돌아봐야 한다. 왜 페이스북 등의 SNS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글을 작성하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오글거린다’는 댓글을 달게 되었을까?
그 글에 대한 개인적 평가와는 별개로, 과연 그 댓글을 작성한 사람은 해당 게시글을 작성한 사람이 어떠한 생각으로 글을 써내려갔는지, 그리고 자신만의 표현을 수면 위로 올리기 위하여 얼마나 고민했는지에 대해 한 번 쯤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그 댓글이 타인의 솔직한 감정에 결례를 범한다는 것을, 또한 타인의 세계에 돌을 던지는 행위라는 것을,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오글거리다’는 어디서 온 표현인가.
아래 첨부된 사진은 ‘눈물 셀카’로 유명한 채연의 과거 싸이월드 글이다. 당시 채연의 글은 사람들에게 공감아닌 공감을 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의 감성적인 글은 ‘허세글’로 비춰지며 희화화되었다. 그의 글은 네티즌들과 예능 프로에 의하여 수 많은 패러디를 양산하였으며, ‘오글거린다’는 비웃음을 받았다.
채연은 지난 1월 7일 tvN ‘현장토크쇼 택시’에 출연하여 눈물 셀카를 올릴 당시에는 진지한 마음으로 글을 작성하였다고 답하며, 그 때는 정말 힘들었던 때라 공감받고 싶은 마음에 쓴 글이라 사람들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할 줄 꿈에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오글거리다’라는 표현이 도래한 이래로 채연의 싸이월드 글과 같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감을 받던 생각들은 더 이상 이해받지 못하고 타인에 의해 검열된다. 글쓴이가 어떠한 상황에서 무슨 감정으로 글을 써내려갔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글이 냉소적이며 담백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감수성이 드러나는 글에 대해 오그라든다며 얼굴을 찌푸린다. 필자는 편견 없이 받아들여지던 사람들의 감정이 왜 부정적으로 인식되게 되었는지, 사람들이 생각을 표현하는 글에 어떠한 이유로 이토록 인색해지게 되었는지 살펴보려한다.
우선, ‘오글거리다’라는 단어는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사람들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공동체보단 개인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지난 8월 25일에 일어난 택시기사 심장마비 사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의 단적인 면을 보여준다.
대전에서 승객 2명을 태우고 택시를 몰던 기사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하지만 승객들은 바로 눈 앞에서 기사가 쓰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공항 버스에 탑승해야한다는 이유만으로 신고도 하지 않고 떠났다. 택시기사는 다른 시민들의 신고로 뒤늦게 골든 타임을 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일각에서는 개인의 사례를 공동체 의식의 부재와 개인주의로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명백한 위험 상황에서 태연하게 자신의 짐을 챙겨 떠나버린 이기적인 행동은 우리 사회가 처한 어두운 현실을 보여준다.
‘내 것만 챙기고 남의 것은 신경쓰지 않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상황을 고려해야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타인의 감성을 함부로 평가하고 심지어는 검열하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는 더 나아가 이 과정에서 순수한 감성은 배제되고 냉철한 이성만이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매사에 이성적으로 임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행동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의 표현은 오글거리는 것이며, 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은 경쟁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당한다.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 사업은 이성을 중시하는 사회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복지부에서는 서울시의 청년 수당에 대하여 전형적인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직권 취소를 명령했고, 서울시는 반발하며 대법원에 직권취소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였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청년정책을 두고 ‘포퓰리즘, 악마의 속삭임’이라 보도를 하였으며, 여러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인기영합용 무상복지’라고 주장하였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던 청년들에게 청년수당은 한 줄기의 빛이었다. 특히, 과거의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지나 7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 희망, 꿈)을 맞이하게 된 청년들에게 이 사업은 어려운 형편에서 꿈을 키워가게 도와주는 하나의 희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청년들의 절박한 외침을 무시하고, 냉철한 이성을 앞세워 청년 수당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는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들은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청년들의 문제,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감수성을 져버렸다.
더 나아가, 이성을 우선시하는 사회에서 힘든 감정을 털어놓는 청년들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사회상의 변화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겁 많은 청년들 또한 ‘오글거리다’라는 표현의 탄생에 일조하였다. 예전과 달리 오늘 날의 청년들은 보다 직설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들은 이러한 직설적인 면모를 ‘쿨’하다고 느끼고, 특수한 감수성을 표현하는 것을 ‘오글거린다’라고 정의하였다. 하지만 실상 쿨함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은 감정표현에 서툴고, 타인에게 평가받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감정을 뒤로 숨기고마는 겁쟁이다.
채연은 2014년 ‘tvN SNL 코리아’에 출연하여 과거 미니홈피에 올렸던 ‘눈물 셀카’를 패러디하였다. 힘든 시기에 공감을 받고자 작성한 글은 변해버린 사회에서 자학적인 패러디의 소재로 쓰였으며, 그녀는 오로지 쿨함을 추구하는 냉철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감수성을 지켜내지 못하였다.
청년들은 채연의 예와 같이 자신을 ‘오글거리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무서워 자신의 감정을 살피지 않는다. 그러나 모순인 점은 그들이 타인의 감정에 대하여 ‘오글거림’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 평가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의 감정을,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조금만 더 보듬을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할텐데 말이다.
오글거림의 미학이란
아무리 이 사회에 냉철함이 만연해도 개인의 생각을 ‘오글거린다’고 치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억압할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감정의 배설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며 인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물론 다른 사람의 표현에 의무적으로 침묵하거나 긍정적 반응을 보일 이유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타인의 사고를 오글거린다는 표현으로 비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관념을 드러내는 것은 ‘자아 성찰’의 한 부분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며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며 인격적으로 감성적으로 성숙해지는데, 우리 사회가 사유하는 것을 오글거림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사람들은 건강한 가치관을 확립해나갈 수 없다.
나만의 고뇌가 한심한 생각으로 전략해버린다면 그 누가 진지한 사유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분위기가 심화될 수록 사람들은 오글거린다는 평가가 두려워 자신의 생각과 속마음을 자기검열하고, 계속해서 자신만의 사고를 스스로 제한하게 될 것이다.
“다시는 오글거림을 욕보이지 말라!”
말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가장 먼저 한글 사용을 금지했듯이, 말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고 종속시킨다. 그러니 ‘오글거린다’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을 권유한다.
그렇지 않아도 감성적인 성숙이 무시당하는 이 시대에 오글거린다는 말은 사람들의 감정의 표현은 물론이고 진지한 사유를 하는 것을 더욱 억압한다. 내가 쓰는 단어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한다면, 우리는 이 단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을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오글거린다’는 평가가 무서워 자신의 감수성을 매장시켜버린 사람들에게 고한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라도 좋다. 감정의 표현은 자신만의 건강한 가치관을 확립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이끌어주는 하나의 좋은 글을 낳는다. 오글거린다는 말 속에 사유하는 것을 멈춘다면 사회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작은 씨앗은 평생 꽃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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