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틀림은 다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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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그려진 모습을 생각해보자, 여러분들은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가? 같은‘+’의 모습을 보고서도, 사람들마다 덧셈, 십자가, 사거리, 배꼽 등이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
아마도, 모두가 다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이것들 모두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늘 이해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즉 타인과 사회의 틀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에 남들이 정해 놓은 가치를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틀 안에 너무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유년시절,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중·고등학교를 지나오면서 이러한 사회적 틀이 형성되고 강화되는 경향이 매우 높다. 학교와 더불어 가정의 모습까지도 우리사회 구성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그들에게‘틀’을 만들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국어시험을 봤을 때 있었던 일화가 있다. 각 단어와 어울리는 단어를 연결하는 문제를 푸는 시간이었다. 문제로는‘토끼’와 어울리는 단어를 고르는 문제였다. 주어진 답은‘깡충깡충’이었으나, 나는‘사뿐사뿐’과 연결해서 그 문제를 틀렸다. 나는 나름 “토끼가 뛰는 모습이 내게는‘사뿐사뿐’과도 같다”라고 항변했으나 오히려 친구들에게 놀림과 선생님의 구박을 받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동요‘산토끼’의 노래로부터 토끼에 대한 관념을 형성한 우리들에게는‘토끼’와‘깡충깡충’의 결합이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토끼가 뛰어가는 모습에 대한 느낌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토끼에게는‘깡충깡충’이외에도 여러 속성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단어와 결합시킬 수 있다.
감히 생각해 보건데,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공인된 생각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타당성을 따져 보고, 자신의 견해에 들어 있는 오류를 수정해 감으로써 인식과 사고의 수준을 계속해서 상승시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그런 능력을 길러줄 여유는 대부분 찾아보지 못했다. 깊게 들어가 보면 우리는‘차이’를 받아들이는데 인색한 것 같다. 누군가가 나와 생각이 다를 때 ‘생각이 틀려’라고 말한다. 이 때‘틀리다’는‘잘못됐다’가 아니라‘다르다’란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우리의 생각을 하나의 생각으로 합치되는 것을 기준으로 자연스레 인식하고 있다 보니, ‘다름’이 ‘틀림’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입시에 얽매인 중·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에서는 생각의‘다름’이 존중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요즘 우리들의 상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학 교육이 전문대학원이나 자격시험의 준비 성격을 띠게 되면서, 평균적인 벽돌 찍기 식의 교육이 대학까지 침범하고 있다. 물론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과 준비를 해 나아가는 청년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오히려 그들은 대부분 한량으로 취급받기 일쑤이다.
현재 우리사회의 가장 필요한 것은 남과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상호간 인식의 상대성을 깨닫고, 자신의 고유한 사고를 체계화시키는 교육과 사회적 인식 등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필요성과 이해도에 비해서‘틀림’이 아닌‘다름’에 대한 공감은 생각만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창조경제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다양성의 존중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은 이미 다양한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라는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안의 자리 잡은 경직된 사고의 대문을 열지 않는다면 익숙하지 않은 것을 계속해서 배척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토끼는 어떠한 단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깡충깡충’인가? ‘사뿐사뿐’인가?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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