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신기고 싶은 그만을 위한 ‘프라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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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의 프라다> 지난 2016년 10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사 앞. 수개월을 조각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존재했던 최순실이라는 작자가 국민의 눈앞에 드디어 나타났다. 한 기자의 블로그에 묘사된 당시 현장감을 빌려 표현하면 "기자들이 각자의 순서와 위치를 다 정해놨는데 그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져버렸다"고. 최 씨는 울먹이며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했고 신데렐라처럼 프라다 신발을 남기고 입을 손으로 감싼 채 울며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래도 프라다 신발을 잃어버려서 운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근데 얼마지, 저 신발?’
<정유라의 패딩> 2017년 새해 첫 인사는 덴마크에서 불법체류를 하다 체포된 최순실의 딸 정유라였다. 수척한 듯 보였던 정유라는 그간 들려왔던 숱한 목격담들을 뒤로한 채 적극적으로 ‘모성애’를 어필했다. 아이가 보고 싶을 뿐이라고. 내 어머니인 최순실과는 너무 심하게 싸워 연을 거의 끊었다고. 어떤 정보에 대해서는 강력부인하면서도 어떤 사실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설명하는 일관되지 않은 모습에 우린 눈살을 찌푸렸다. 털 달린 패딩 모자를 푹 쓰고 얼굴을 완전히 가린,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고 권력을 악용했던 이 어린 스무 살의 존재에 그런데 우리들은 ‘저 패딩 뭐지? 어디 꺼지?’
<이재용 립밤> 드디어 1차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렸고 삼성의 후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을 보지 않고 고개를 살짝 45도로 내리고 겸손한 듯 하게 정장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등장한 그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삼성家 수장이 될 사람이 정유라에게 말(馬) 을 지원하는 등 최순실 일가에 명목상의 돈을 줌으로써 삼성물산 합병 당시 지분 확보에 도움을 받았는지 등 소상히 설명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르겠습니다 의원님. 정말 들은 적 없습니다 의원님”으로 일관. 이 부회장은 최종적으로 “재벌도 공범이다, 이재용 부회장,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냐”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도 “의원님, 이번 불미스러운 일로...”라고 즉답을 회피했다. 그런 뒤 검색어엔 ‘이재용 립밤 어디 꺼?’
<특검보 이규철의 패션> 이규철 특검보는 지금까지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 정례 브리핑을 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등 하루도 빠짐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청와대 압수수색 불허에 유감’, ‘이재용 부회장 영장 기각 결정에 유감’ 등을 표명했고, 최순실씨가 이경재 변호사를 통해 특검의 강요와 강압적인 수사를 주장하자 “절대 아닐뿐더러 앞으로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짧고 굵은 한 마디를 날카로운 눈총을 더하며 각인시켰다. 중요한 사안을 듣고 우리는 ‘근데, 이 아저씨 옷 스타일 댄디(중년 남성 이상의 멋쟁이)의 정석? 머플러, 안경, 코트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지적인 매력을 갖추면서도 센스 있는 남자)인데’
우리가 주목한 것은 네 프라다가 아닌, ‘나’
청년들은 지금 중요한 과제 중이다. 국정농단의 규명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과정에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고 어떻게 나아갈 것이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좀 더 큰 그림에서 내 인생 향방을 계획할 수도 있고 국내외적 위기 속에서 전화위복하여 올바른 길을 개척할 수도 있다. 그 주인공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현실이다. 먼 미래를 바라보는 건 이뤄지기 전까지는 공상에 불과하다. 특히 정의라는 근간이 무너진 현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지 청년들은 건강한 영역에서가 아닌 괜히 엄한 곳에 궁금함을 갖고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것이 최순실의 신발이었고 정유라의 패딩이었고, 이재용의 립밤, 그리고 이규철의 머플러였다. 그와 동시에 모든 걸 망쳐버린 그들 앞에 뭔가 모를 우울함과 자괴감에도 깊이 빠져들었다.
이는 ‘나’를 중시하는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한국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욕구이고 시대적 흐름이다. 한 교수는 대중의 입장에서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라는 파악을 옷차림에서 한다고 한다. 그럴 때 한국 사람은 특이하게도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건 범죄자건 유명하면 ‘특별함’을 부여해 자신과 비교를 한다. 원하면 따라 하기까지 하며 유명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판단되는 자신을 굳이 얹힌다.
‘나’에 집중하자고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신을 ‘프라다’는 무엇인가. 아니면 이미 신고 있는 ‘프라다’보다 더 값진 것들을 놓치고 있는 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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