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 완벽히 숨기고 싶다면 흘리지 마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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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함께 보낸 시간과 대비해 가족만큼 나를 모르는 사람도 없다. 가끔 TV프로그램에 일반 가정이 나오면 엄마, 아빠는 자식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학교나 직장에서는 얼마나 잘 웃는지, 얼마나 똑똑한지, 유머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타인에게 늘 배려심 있는 사람인지 말이다.
부모·자식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상을 살다가 가장 못난 자식 취급하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을 때면 한 두 번 억울했던 게 아니다. 우리 각자는 더 이상 코를 훌쩍거리는 애 같은 행동을 할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항상 섣불러서 더 억울하게 들리는 부모의 잔소리는 오해가 아닌 정확한 사실인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면 꽤나 근거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손가락을 빨고 아무 물건이나 입에 집어넣을 때부터, 갖고 싶은 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손에 넣고야 마는 성질을 가진 것이 얼마나 배려 없고 부끄러운 일인지 모를 때부터 부모는 나를 키웠고, 가르쳤고, 음식을 먹이며 내 말에 응답해 여기까지 왔다.
더 이상 더 총체적이고 종합적일 수 없는 우리의 습관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정황에 섣부른 잔소리를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내가 그 잔소리로 제재 당한 그 행동을 결국 했을 때 부모로부터 “하나를 보면 열을 알어”라는 책망을 듣고야 만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계속 ‘우리 각자’를 흘린다. 대기업의 ‘내부거래의혹’이라고 불리는 사건들이 대표적인 ‘흘린 정황’으로 인해 의심 받고, 직접 제재가 가해지는 경우다. 내부거래는 금융감독원이 제공하는 공시를 통해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 기업의 총 매출 중 특수관계로 불리는 가족기업(계열 회사)을 통해 번 돈의 비중을 보면 ‘내부거래율’을 알 수 있다.
내부거래를 한다고 해서 모두 부당 내부거래가 되는 건 아니다. 계열사와 동종의 타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했다거나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공정치 못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 등의 경우 부당 내부거래로 치부된다. 이유 없이 비계열 회사와의 거래를 거절하는 등의 행위도 마찬가지다. 이는 대기업의 폭력적인 행태이며 해당 분야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상생을 방해한다.
부당 내부거래로 기업의 진짜 이미지가 보이고 총수의 성격까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이 흘린 정황으로 알 수 있는 의혹만 셀 수 없이 많다. 기업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쥔 대기업이 정치와 연합해 바른 길을 등지고 부당함의 길을 걸어가고 있고 그것이 의례가 돼버렸다.
각종 조사와 검증이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 청문회에는 기업 총수들의 ‘모르쇠’가 판을 쳤 다. 마치 집에서 부모가 평소 부주의한 아이가 유리컵 근처에 다가가자 “그러다 깨먹는다”고 섣부른 잔소리를 하고, 결국 아이가 유리컵을 깬 뒤에 무조건 아니라고 잡아떼는 모습과 다를 것 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봐도 그대인데 말이다.
유리컵을 깬 아이보다 총수들의 태도가 국민의 어깨를 더욱 쳐지게 한 이유는 어른이기 때문에 이미 계산돼져 나온 복잡·미묘한 단어선택과 일부러 자신을 낮추는 자세 때문이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의 큰 논란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 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이 흘린 정황의 덫에 걸려 위증을 했다는 정황이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 청문회’에서는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출연에 대해 몰랐다고 답했다. 정황은 박근혜 대통령 독대 이후 삼성은 두 재단에 200억 원을 출연했다. 이 정황을 그는 몰랐다고 청문회에서 증언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11일 검찰이 기업총수들의 진술조서를 공개했고 그 자료에는 위의 이 부회장의 증언이 위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또 다른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 2015년 7월, 박 대통령이 기업 총수 17명을 초대해 창조경제 간담회를 한 장면. 이 행사가 끝나고 재단 모금 이야기가 나왔다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이 화면엔 이 부회장이 참석해 있다.
완벽히 숨길 수 없다면, 병적으로 더욱 올곧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냐”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물음에 그 짧은 대답 “네”를 하지 못하고 교묘하게 자성하겠다며 빠져나간 이 부회장. 자신이 흘린 정황에 ‘모른다’ 이외에 어떤 도덕적이고 윤리적 대응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보니 희망이란 단어가 무색하게 탄핵으로 시작한 2017년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비단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국민의 힘으로 일군 기업의 총수들의 이야기다.
완벽히 숨기고 싶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흘리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불가능이다. 손짓과 시선, 옷차림에서도 우리는 우리를 흘릴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흘린 정황들을 덮을 만큼의 병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중립적 심지가 필요하다.
나와 생각이 맞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비록 나의 생각과는 반대이지만 믿어주는 태도 말이다. 또 다른 정황이 나왔을 때 극단적인 사상과 이념에 혹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숱하게 흐트러진 정황의 퍼즐을 맞추어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는 국민 개개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외교적, 경제적 국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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