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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정치인,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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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11월18일 22시10분
  • 최종수정 2016년11월21일 02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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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정치인,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95세를 멋지게 살고도 이런 익살스러운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아일랜드 출신 노벨상 수상 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자신의 묘비명에 쓴 말이다. (오역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기자는 오역이 아니었으면 싶을 만큼 저 문구에서 오는 교훈을 거부할 수 없었다.)

 

 ‘우물쭈물’은 행동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자꾸 망설이며 일을 지체시키는 모양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결국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 죽음이라는 최후를 맞이해버린 자신에 대한 자조 섞인 비웃음이다. 

 

민생 앞에 ‘우물쭈물’했던 기득권 정치의 최후

 

 요즘 ‘우물쭈물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그렇다.

 

 역사적으로 크게 기록될 두 사건엔 공통점이 있다. 국민의 ‘반(反) 기득권·반 엘리트 정서’가 기저에 깔린 것. 기득권에 취해 정작 돌봐야 할 민생 앞에서 우물쭈물했던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다.

 

 이 분노는 두 선거 과정에서 매우 유사하게 나타났다. 선거 전, ‘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은 ‘국수주의자’로 비판을 받았고 여론 조사에서는 ‘EU 잔류’와 ‘힐러리 클린턴’이 늘 우세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최종 여론 조사에서 파악되지 않은 ‘Shy Voter(숨은 투표자·자신이 누구를 찍었는지를 밝히기 꺼리는 투표자)’가 당락을 좌우한 것이다.

 

‘Shy Voter’는 민심이었다

 

 기득권 정치인과 소셜테이너(사회적 발언을 하는 대중문화예술인), 폴리페서(정치에 참여하는 교수)의 기막힌 말솜씨도 숨은 투표자의 의지는 막을 수 없었다.

 

 브렉시트를 찬성한 영국민들은 대거 넘어온 이민자들 때문에 일자리를 위협 받고 임금이 삭감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세력 확장으로 범죄와 테러까지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EU 탈퇴를 원했다. 하지만 다수의 기득권 정치인이 포함된 EU 잔류 진영은 세계화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목을 들며 국민을 설득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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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브렉시트를 찬성한 숨은 투표자들은 브렉시트의 위험을 설명하는 기득권자이자 엘리트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당시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10명 중 9명의 영국인이 브렉시트에 관해 EU 잔류를 지지한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반 기득권·반 엘리트 정서는 그대로 미국에 바통 터치됐다. 미국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트럼프의 막말을 듣고 삶에 대한 희망이 돋아서가 아니다. 기득권 정치인의 표상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강한 반감의 발로다.

 

 힐러리를 뽑지 않은 미국 국민은 트럼프의 성희롱 발언보다 억지로 잠깐 인간적인 ‘척’을 해야만 국민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득권 정치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문외인 트럼프를 뽑으면 모든 것이 불확실할지라도 워싱턴 기득권 정치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란 유권자의 의지가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2017년 대한민국 대선, 정답은 이미 나왔다

 

 이제 대한민국으로 바통 터치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목격한 우리 국민은 내년 19대 대선에서 더 신중하게 투표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판 트럼프가 실현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난 4·13총선 때 국민이 만들어 준 ‘여소야대’가 그 전조다. 이미 기득권 정치인들에게 변화를 요구했다. 협력통치를 기대했고 민생 우선의 상생 정치 행보를 바랐다. 하지만 국민이 다 차려준 ‘협치’란 밥상에서 지금까지도 여야는 야속한 싸움을 진행 중이다.

 

 ‘국정농단’ 사태로 나라가 뒤집어진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누구 하나 살신성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없다. 지도자 부재로 흔들리는 외교와 경제를 지켜줄 사람 한 명이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내년 대선의 시기를 재고 따지며 ‘하야하라’, ‘퇴진하라’ 우왕좌왕이다.

 

 나라를 생각하는 움직임은 오직 국민에게만 있었다. 지난 주말, 광화문에서 100만 명이든, 26만 명이든 많은 국민이 모여 ‘평화시위’를 했다. 촛불을 들고 애통한 마음으로 간절한 발걸음을 옮겼다.

 

내년 대선에서 숨은 투표자의 마음을 얻을 방법은 우물쭈물하지 말고 ‘지금’ 나서는 것이다. 국민이 묵묵히 옮긴 발소리를 듣는 것이다. ‘대통령 하야’에 머무르지 말고 기득권 정치인 전체가 자성하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폭풍같이 몰아친 두 선거 결과를 목도하고도 내년 대선 때 뚜렷한 ‘민생 정치’의 목표 없이 포퓰리즘 정책에 그친다면, 숨은 유권자들이 내릴 정치적 최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자조의 한탄을 내뱉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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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11월21일 02시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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