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가 유린한 수학능력시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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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 다양해진 길
‘… 이미 이 시험은 유희가 아니다……. 진작도 나는 그렇게 말해 왔지만, 이제야말로 이 시험은 내가 이 삶을 이어가려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며, 뛰어넘어야 할 운명의 장벽이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중에서)’
어느 덧 수능일이 다가왔다.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기다렸을 것이며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피하고 싶기도 한 바로 그 날이 왔다. 한기 서린 새벽 공기가 행여 그들의 가슴에 스며들어 더더욱 긴장을 할 까 걱정되는 날이다.
1954년 대학입학 연합고사와 대학별 본고사라는 제도가 생긴 이래, 대학에 가기 위한 ‘자격시험’은 그 모습을 달리해왔다. 1973년도에 내신 성적이 반영되기 시작했고, 1981년도에는 본고사가 폐지되었다. 이후에 1994년도부터 대학의 학생선발 자율권이 주어지기 시작하며, 다양한 제도들이 등장하였다. 이 해에는 수능이 도입된 때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방법들이 생겨났다.
이토록 다양한 제도들이 생겨난 이유로는 학생들의 각양각색의 특징을 반영하여 선발하려는 교육기관들의 바람 및 공교육의 입지를 굳히려는 정부의 노력이 있다. 입학 정원에 한하여 특정과목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학생들을 뽑기 위한 특기자 전형(각 대학별로 전형명칭은 다를 수 있다.), 외국에 살다가 와서 한국에 적응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인재들을 위한 재외국민 전형 등이 교육기관들의 예시다. EBS 교육방송의 교재 연계율을 책정하여 저렴한 교재로도 공부의 기회를 나누려는 일은 정부 노력의 예다.
과거시험과 부정입학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은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당시에 전 세계적으로 시험을 통해서 관료를 뽑는 제도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시험을 보면, 신분이 천민이 아닌 이상 누구나 관료가 될 수 있었다. 방식은 지금의 논술과 비슷하다.
시험문제가 특정 위치에 한 장 붙기 때문에 ‘좋은 자리’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그래서 돈이 좀 있는 가문에서는 이러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인력을 고용하기도 했다. 고반이라는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베끼는 행위라던가, 심지어 대리 시험까지 존재했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특정 가문이 ‘입시 비리’로 주요 관직을 독점하는 사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 때문에 유능한 인재들은 등용에서 제외되었고, 조선은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
현 시대에 이르러서도 부정입학은 번번이 뉴스에 등장했다. 돈을 주고 예비합격자 번호를 앞으로 당겨주었던 일이나 점수를 조작해주는 일 등이 그 예다. 이번에 말을 타던 A대학의 어떤 여학생 사건의 전말이 공개되자 사태의 심각성이 보인다.
대학교 입시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입시조차 부정행위를 통해 입학했다는 것은 더 큰 충격을 가져다주고 있다. 다양한 제도를 통해 교육과 경쟁의 기회 평등을 제공하려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물거품처럼 느껴졌다.
한필에 수억 원 하는 말을 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박탈감을 가져다주었을까. 수험생이 아닌 사람에게도 이러한 기분을 들게 하는데, 수험생들의 입장에선 이번 사건들이 어떠했을까. 조선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망국의 길을 걷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다.
말을 살 필요가 없는 나라
2016년은 어느 해보다 수능에 관한 뉴스, 소식들이 들리지 않은 해인 것 같다. 나라 안팎으로 혼란스러워진 탓에 수험생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 속에 시험을 치렀다. 내가 수능을 볼 때에는 정말 많은 응원과 관심을 받았다.
신종플루가 유행했던 시기여서 수험생들의 건강을 신경써주고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혹 수험생들이 조금이라도 소외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싶다.
인간은 역사를 반복해왔다. 부정과 비리도 어느 나라에나 있었던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더 나아지려는’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물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통제할 수 없겠지만, 본보기들이 많이 있으니 방향은 올바르게 잡아갈 수 있다.
부정입학에 관한 이번 사태들이 완전하게 뿌리째 척결되어야한다. 소수의 특권을 위해 각 기관들과 정부의 예전부터 만들어온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은 막아야한다.
뉴스 보도 당시에, 식당에서 주변의 4, 50대 부모님 세대의 탄식을 들었다.
“○○아, 말 한필 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웃음기 섞인 탄식이었고, 함께 자리하고 있던 아이들도 웃고는 있었지만 얼굴 한편에는 씁쓸한 미소가 있었다. 더 이상 미안한 부모가 생기지 않도록, 말을 살 필요가 없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그 초석을 까는 일에 부정입학 및 국정을 어지럽힌 사건들이 낱낱이 파헤쳐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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