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의 주유천하> 전세(傳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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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오막집’이란 양대창 구이집이 있다. 서울 역삼동에도 있다. 역삼동 오막집은 1980년대부터 있던 집이다. 부산의 오막집은 대신동이 원조인데 해운대가 뜨면서 고급스럽게 건물을 지어 이사 왔단다. 해운대 양대창 집 옆에는 오발탄이란 음식점이 있다. 물론 양대창 전문점이다. 이 두 곳만 알던 나에게 친구가 남천동 ‘청송 양곱창’ 집을 소개했다. 친구는 이 집이 오막집보다 낫단다. 오막집은 1인분에 3만3천원인데 청송은 3만원이다. 가격 차이는 별로 없다. 먹어보니 나는 반대다. 입맛도 서로 다른가 보다.
비오는 날은 양대창에 소주 먹기 좋은 날이다. 부산은 대선(大鮮)이 지역 소주이다. 맥주는 요새 테라가 대세란다. 소주에 맥주를 섞어 주욱 마신다. 세 잔 연거푸 마시니 알딸딸하다. 친구는 술이 한 잔 돌자 임대차보호법을 욕한다. 재건축 예정 아파트에 2년간 실거주를 하지 않으면 입주권을 주지 않는다는 법을 침을 튀기며 욕했다. 그는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근데 이 법 때문에 집주소를 서울로 옮겼다는 것이다. 물론 세입자는 울면서 나간단다. 전세 6억에 있었는데 10억을 줘야 비슷한 조건의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에서 보던 얘기를 양대창집에서 직접 듣게 되었다.
비슷한 일은 또 있다. 서울 동부이촌동에 아파트를 두고 직장 땜에 일산으로 이사 간 친구도 다시 이사를 들어온단다. 물론 임대차법 때문은 아니라고 변명을 한다. 세입자가 계약을 한 번 더 연장해서 4년 까지 살 수 있는 임대차보호법 말이다. 명색이 출판인이고 지식인인데 대놓고 이 법을 욕하진 않았지만 이 친구 역시 다시 자기 집으로 이사를 오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 한 모양이다. 출판단지가 파주에 있어 일산이 출퇴근이 편했는데 말이다. 벌써 내 주변에 이런 일이 두 건이나 있는데 전국적으로 본다면 부지기수일 것이다. 전세 값이 62주째 상승이란 뉴스가 가짜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혼 초기 서대문구 봉원동에 보증금 3백만 원, 월세 5만 원에 세 들어 산 적이 있다. 35년 전 일이다. 그 집은 방 두 칸, 부엌 하나, 연탄을 때는 초라한 슬래브 집이었다. 그 후 돈을 모아 5천만 원을 주고 둔촌동의 2층 양옥집에 세 들어 살았었다. 지인의 집이라 시세 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었다. 나는 전세살이의 설움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지만 내 주변 친구들은 1~2년에 한 번 씩 수십 번의 이사를 한 친구들도 많다. 지금은 대부분 자기 소유의 번듯한 집에 잘 살고들 있다. 아파트를 분양받고 그 집은 전세 주고 본인은 다시 남의 집 전세살이를 하며 돈을 모으고 아파트로 재산을 불렸다.
아파트 두 채가 있어 하나는 실거주 하고 다른 하나는 전세 놓고 있다가 아들에게 물려준다거나 팔아서 노후 자금으로 쓰겠다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나도 그렇게 노후 대비를 하고 싶지만 형편이 못돼 못할 뿐이다. 요즘은 이유야 어떻든 아파트 두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이 부도덕한 죄인 취급을 당한다. 정부는 가진 자 세금으로 조진다, 뭐 아파트 두 채 가지면 모두 도둑들인가? 인간의 욕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말한다. 그것을 무시한 체제나 국가는 망한다. 사람 있고 정의 있지 정의 있고 사람이 있지는 않다.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려고 만든 법이 임대 임차인 모두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법과 제도가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는 쪽으로 가면 성공하기 어렵다. 한 쪽 편만의 정의는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듯이 정의도 그래야 한다.
집, 전세, 월세와 관련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전세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란다.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해서 유별나고 나쁜 제도라는 말인가? 전세가 우리나라에만 있으니 우리도 점점 월세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전세 대출이자가 요즘 2~3%다. 은행 융자를 통해 전세 자금을 마련하는 편이 월세보다 훨씬 저렴하다. 예컨대 합정동 10평 원룸 아파트가 전세 3억이라면 이자는 월 50만~60만원이다. 전월세는 보증금 5천에 월세 100만~120만원을 내야한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어느 편이 유리한가. 당연히 전세다. 전세건 월세건 간에 교통 좋고 환경 좋은 집에서 좀 값 싸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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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金鎭亥)는 누구?
1993년 영화 '49일의 남자'로 데뷔한 영화감독이자 현재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예술종합대학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뉴욕테크대학원 (MA)을 졸업하고, 미주 중앙일보 기자·오로라픽쳐스 대표이사·홍익대학교 조형대학 우대겸임교수 등을 거쳤다. ‘디지털 시네마’ ‘시나리오의 이해’ ‘메가폰을 잡아라’ '문화는 정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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