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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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여당의원 한 사람이 최재형 감사원장을 대상으로 질의를 하면서 감사원장의 부친인 9순(旬)의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의 인터뷰 내용까지 들먹이며 질타해 눈총을 받았다. 그런데 질의의 내용을 떠나 6.25 전쟁에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운 9순의 노병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부친은 부친이고 아들은 아들이기에 그런 질문은 그 자체가 부적절하다.
최영섭 대령은 6.25 참전 외에도 우리나라 정치사에 남은 중요한 이벤트와도 관련이 있다. 5.16 후 최영섭 당시 해군 소령은 국가재건최고위원회에 해군 몫으로 파견됐다. 5.16 후 군정기간 동안 박정희 최고위 의장은 해군 호위구축함(DE)을 타고 울릉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것은 큰 사건이었다.
권력기반이 확립되지도 않은 군사정부의 수장이 수도를 오래 비우고 울릉도를 방문한 것인데, 울릉도는 과거 조선시대 왕이든, 그 후 대통령이든 정부의 수반이 방문한 적이 없었던 곳이다. 그 시절은 낙도에도 인구가 많아서 울릉도에 상륙하는 박정희 의장을 구경하려고 주민들이 언덕 위로 새까맣게 올라가 있었다.
그 호위구축함에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파견되어 있던 최영섭 해군소령과 이만섭 동아일보 기자가 타고 있었다. 이만섭 기자는 훗날 정치에 투신해 국회의장을 지냈다.
2000톤급 군함이 울릉도에 접안할 수 없어서 보트에 옮겨 타고 부두로 가서 내리려는데 박정희 의장이 내리다가 헛집어서 물에 빠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기골이 장대한 최영섭 소령이 얼른 내려서 박 의장을 등에 업고 육지로 올라 간 것이다.
울릉도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보면 당시 박정희 의장이 입은 코트가 조금 후줄근한데, 바닷물에 젖었었기 때문이다. 울릉도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에 감동한 이만섭 기자는 박정희 의장 같이 민초를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고, 박 의장이 같이 하자는 권유를 받아들여서 기자직을 버리고 공화당 국회의원이 됐다.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 의장이 윤보선 전 대통령을 상대로 아주 근소한 표차로 승리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낙도 지역에서 몰표가 박 의장한테 갔기 때문인데, 울릉도 방문의 효과라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박 의장의 울릉도 방문은 최고회의 군정 기간 중 큰 의미를 갖는다.
최고위에 참여했던 이른바 혁명주체 세력들은 최영섭 소령에게 전역하고 정부를 같이 이끌어가자고 강력히 권유했는데, 최 소령은 “자신은 혁명 주체가 아닐 뿐더러 해군에 남겠다.”면서 그 권유를 뿌리치고 원대 복귀했다고 한다. 군인의 길을 택한 것이다.
나는 최 대령님을 2012년 여름에 자택에서 잠시 뵌 적이 있다. 대령님은 울릉도 방문 당시를 회고하면서, 박정희 의장을 등에 업었는데 가뿐했다고 한다. 울릉도 방문을 마치고 보트로 호위구축함 옆으로 돌아온 박 의장은 밧줄 계단을 붙잡고 올라가다가 바람이 세게 분 탓에 발을 헛디뎌서 하마터면 깊은 바다 물에 빠질 뻔 했다. 여하튼 이런 행보는 윤보선 전 대통령 같은 '귀족' 출신으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963년 대선을 앞두고 동아일보가 박 의장을 상대로 과거 경력을 들어서 사상검증 공격을 했고, 윤보선 후보가 이것을 받아서 유세에서 공개적으로 거론해서 파문이 일었다. 국회의장을 지내고 은퇴한 정치원로 이만섭은 회고록에서 박정희를 이렇게 좌익으로 비난한 것을 "보수기득권 세력들의 악랄한 사상논쟁"이라고 지칭했다. (이만섭, <5.16과 10.26> 머리말.) 그렇게 수모를 당한 박정희였지만 3공화국 초대 총리로 동아일보 사장을 하던 최두선 씨를 임명했다.
세상은 이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정권 5년 그것은 하찮은 세월이다.
그걸 마치 대단한 전리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대통령마다 실패하는 것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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