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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농민(農民)일기 (6) 흥부마을 영농조합 ③ 들기름; 세계일류상품을 넘본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3월04일 16시31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04일 15시30분

작성자

  • 이영석
  •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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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업 흥부마을 영농조합법인은, 지난 2월의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백두대간 고랭지 산골마을에서 생산한 들깨를 원료로 생들기름과 들기름으로 짜서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들깨의 생산-가공-판매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들깨 1되(1.3kg)를 바로 팔면 13,500원이고, 이를 들기름으로 짜면 0.5리터 정도가 나와서 43,750원을 받을 수 있다.

 마을기업에서 들기름을 짜면서부터, 마을의 들깨 재배면적은 조금씩 늘었다. 마을기업에서는 5일장의 수집상들이 사들이는 가격에 10%를 더하여 되당 15,500원, 그러니까 2,000원 정도를 더 주고 사들인다. 마을기업 운영 5년만인 2020년부터는 마을에서 생산된 들깨가 모자라 이웃 마을에서도 사들였으나, 2023~24년의 불경기를 거치면서, 판매가 부진했던 탓에 2024년에는 들깨를 일체 사들이지 못해 마을 주민들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다.

 

 들기름 판매는 우체국 쇼핑몰을 통한 인터넷 판매와 명절 선물세트, 그리고 매월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구독판매를 하고 있다. 또한 들기름은 오메가3 불포화지방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햇빛과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쉽게 산패가 되기 때문에, 흥부마을에서는 선(先)주문-후(後)착유, 즉 주문을 받은 뒤에 기름을 짜서 택배로 보내주고 있다. 참기름은 오랫동안 실온에 두고 먹어도 괜찮지만, 들기름은 불포화지방산이 많아서 냉장보관을 해야 하고, 한 달 이상 두고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서 흥부마을에서는 매월 일정량씩 보내주는 구독소비를 적극 권장하고 있고, 한 달 이상 두고 먹지 않도록 포장단위도 가장 큰 포장이 270ml이고, 갈색 유리병을 고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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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기름과 짝이 되는 구색상품이 참기름인데, 우리 마을은 고랭지라서 참깨 수확량이 신통치 않아 애로가 있었다. 그러나 구색을 갖추려면 참기름 생산이 불가피했는데, 다행히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한 내 제자가 전남 해남에서 참깨를 생산하여 매년 상당량을 공급해줘 참기름 생산도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참깨는 중국 등지에서도 재배할 수 있어서 ‘수입참깨’를 원료로 한 참기름이 많고, 가격도 더 싸기 때문에 수익을 많이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만 우리에게 참기름은 들기름과 짝을 이루는 구색상품인 까닭에 손해만 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생산과 판매를 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참기름의 원료인 참깨와 들기름의 원료인 들깨의 족보를 따져보면 같은 “깨”가 아니라 전혀 다른 작물이라는 점이다. 참깨의 학명은 Sesamum indicum이고 호마(胡麻)·지마(芝麻)·향마(香麻)라고도 불리며, 원산지가 인도와 아프리카 열대지방이고, 들깨의 학명은 Perilla frutescens var. japonica  Hara로 꿀풀과에 속하며, 임자(荏子) 또는 수임자(水荏子)로 불리고, 원산지는 인도의 고지대와 중국 동남부지방이며,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재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들기름을 짜는 방법은 압착식과 추출식이 있는데, 압착식은 물리적으로 눌러서 짜는 전통적 방식으로, 기름을 짜고 난 깻묵에도 기름 성분이 상당량 남아 있어서 수율(收率)은 낮지만 고유의 구성성분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친(親) 영양적이다. 반면, 추출식은 헥산과 같은 휘발성 용매로 녹여낸 다음에 원심분리기 등으로 용매와 기름을 분리해낸 다음에 정제과정을 거치는 방식인데, 수율(收率)이 높고 대량생산에 유리하기 때문에, 친(親)기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흥부마을은 전통압착식으로 두 가지 들기름을 짜는데, 씻어서 말린 들깨를 70℃ 이하로 볶아서 짠 ‘생들기름’과 170℃에서 볶은 들깨로 짠 ‘들기름’이다. 생들기름은 색깔이 노란 황금색이고, 들기름은 우리에게 익숙한 암갈색이다. 

 

우리가 오래전부터 전통적으로 먹어오던 것은 들기름으로, 들깨를 170℃ 이상의 고온에서 볶아 기름을 짜면 비린 맛이 없어지고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다만 이 경우 기름 성분이 고열과 접하면서 생기는 벤조피렌과 같은 유해물질이 생성될 염려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들깨를 70℃ 이하로 볶아 생들기름을 짜낸 것이다. 생들기름은 고열로 인한 유해물질이 생성되지 않고, 영양소의 손실도 줄인 것으로 젊은층들이 좋아한다. 어떤 이는 일체 볶지 않고 기름을 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기름 수율(收率)이 낮고 비린 맛이 더하여 일반화 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들깨엔 오메가-3 계열의 지방산인 알파-리놀렌산 함유량이 60%로 식물성 기름 가운데 가장 많고, 알파-리놀렌산은 몸속에서 DHA와 EPA 로 변해 혈관 벽에 붙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전 생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알파-리놀레산은 치매 유발 단백질인 ‘아밀로이드-베타’의 활동을 저해하는 효과가 있어서 치매 유발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전 세계 식물 중 들깨에 가장 많은 식물성 오메가-3(리놀렌산)가 함유돼있는데 들깨에는 60%, 아마씨에는 58%, 콩에는 8.2% 정도의 식물성 오메가-3가 들어있다고 한다. 다만 들깨를 볶아서 짜낸 들기름에서는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등이 나올 수 있어 들깨를 볶지 않고 짠 생들기름이 영양 손실은 작은 편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들기름의 판매시장이다. 사실 5~6년 전까지만 해도 들깨로 짠 들기름과 들깻잎을 쌈으로 먹어온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10여년 전부터 해외시장개척에 나선 결과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14~15년 경부터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 생들기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일본 뿐만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특히 10여년 전 일본의 한 TV에서 생들기름의 효능을 방송한 바가 있고, 일본은 노령인구가 많아서 치매예방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아 들기름에 대한 호기심도 대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식품박람회에 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지원으로 국내산 생들기름이 진열되어 수출상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일본에서도 생들기름을 상복(常服)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일본의 약국 체인업체에 기능성 식품으로 입점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경북 영주시를 기반으로 설립돼 들기름 참기름 등을 생산판매하는 자연팜영농조합법인은 지난 2019년 전통식품인증을 받고 미국 FDA 등록까지 마치고 수출확대를 도모하고 있고, 참기름 및 들기름 등의 정유성분을 활용한 식품사업을 벌이는 농업회사법인인 경북 영천시의 동방제유는 전통과 환경친화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친환경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해 '숲작'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하여 K뷰티 시장 진입을 위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들깨를 바탕으로 한 상품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그 시장이 얼마나 커질 것인지는 당장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생들기름 수출에 뛰어든 업체들도 많아지고 있다. 예컨대 충북 음성의 <코메가>, 포천의 (주)한식품, 영주의 자연팜(영), 영천의 동방제유(주), 칠곡의 (주)농부플러스, 해남의 이웅식품(유), 직산농협의 <천안엔> 등이 수출에 앞장서고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도 가공특성이 우수한 들깨 품종으로 다유, 수연, 들샘 등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고, ‘밀양74호’, ‘밀양80호’ 등은 육종을 마치고 농가보급을 준비하고 있어 기대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들기름의 장점을 어떻게 홍보해 세계적인 상품으로 키워나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올리브유와 카놀라유가 세계적인 식용기름이 되지 않았는가! 들기름이라고 이런 식용유를 못 따라갈 이유가 없지 않는가? 다만 무조건 몸에 좋다고 홍보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제품의 품질향상은 물론 수출시장개척을 위한 체계적인 전략과 추진에 대한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로 제품 다양화와 건전경쟁을 통한 질서 있는 수출질서의 확립이 필요하다. 우선 지금 걱정되는 것은 수출업체들 간의 ‘과당경쟁’이다. 비슷한 제품으로 같은 시장에 몰려 경쟁하는 현재의 상황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당국이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경쟁은 하되 서로 다른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다양한 가격으로 판매에 나서고, 서로를 자극하여 건전하고 발전적인 경쟁이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같은 들기름이라고 해도, 소비자들의 선호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나라)은 140℃ 이하로 볶으면 벤조피렌과 같은 독성물질도 생기지 않고, 고소한 맛은 더 나니까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나라)은 40℃ 이하에서 볶은 들깨는 다시 싹이 나올 정도로 고유한 성분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품의 위생적인 기준은 엄격히 하되, 다양성이 제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들깨나 들기름을 단순히 하나의 상품으로 보지 말고, 들깨 산업이라는 큰 틀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들깨 품종의 육종으로부터, 재배, 가공(식용, 미용, 의약품 등), 유통에 이르기까지를 하나로 보고 접근하는 전략을 짜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수출업체의 규모화와 이를 위한 조직화이다. 세계시장을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도록 하되, 이 과정에서 가장 기초가 되고, 시장경제체제 아래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농가들의 몫이 챙겨지도록 잘 조직화해야 한다. 들깨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가공업체 설립에 참여하여, 원료공급을 보장하고, 또 판로를 보장받고, 출자배당도 받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규모의 된장공장, 고추장공장, 식용유공장, 두유공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원료농산물을 국제시장에서 싼 값으로 사들임으로써, 국내 농업생산에 도움은커녕 견제와 위축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농민들은 물론 정책당국에도 결코 바람직한 결과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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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는​ 귀농 13년차로 농업경영학을 전공하고, 농업과 농촌 연구에 몰두했던 연구자(한국농촌경제연구원)로서, 또 농업후계인력 양성에 매달렸던 교수(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로서 경력을 쌓았고, 이제는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 ‘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맡아 농촌 농업 진흥에 앞장서고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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