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農民)일기 <1> 유기농 오미자 농사 ⓵ 유기농업이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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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틀리지 않고, 이제 80이 코앞이니 듣고 보기만 하고 말은 하지 말자고 산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벌써 13년째다. 한데, 되돌아보니 농업경영학을 전공하고, 농가와 농업농촌 연구에 몰두했던 연구자(한국농촌경제연구원)로서, 또 농업 후계인력양성에 매달렸던 교수(국립한국농수산대학교)로서, 그리고 이제는 농촌에서 농민들과 함께 살면서(흥부마을영농조합법인 대표), 농사를 짓는 농민으로서 배우고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을 꺼내놓지 않고, 그대로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비록 하찮은 것일지라도, 함께 나누면 좋을 것 같아 내 경험과 생각들을 ‘농민일기’라는 제목으로 그때그때 정리해보고자 한다. |
지난 2012년 봄 귀농하면서 한 가지 굳게 결심한 것이 있었다. 무엇을 하든지 유기농업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침 2006년 여름에 귀농을 위해서 마련한 땅이 해발 550m의 산을 개간한 경사진 밭으로, 비료나 농약을 써서 농사를 지어온 땅이 아니어서 유기농업을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독일의 가장 엄격한 유기농산물 브랜드인 데메터(Demeter) 회원농장으로, 북부 독일 최대규모인 400ha에 이르는 생물적-생태적(biologisch-dynamisch) 농업을 하는 바우크 농장(Bauckhof)에서 1년 반 동안 함께 살면서 실습을 했을 때 얻은 자신감이 있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와 자연을 망가뜨리지 않고, 자자손손 깨끗하고 좋은 상태로 이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먹거리’에 앞서서,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해 나 한 사람이라도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이다. 아는 자가 앞장을 서야하지 않겠는가!
지난 2006년 확보한 개간지가 북사(北斜)면이라서 적절한 작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주변과 지인들의 권유로 오미자를 심기로 했다. 오미자는 본래가 야생이었던 것을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전북 장수군의 한 독농가가 인공재배에 성공한 특용작물이라서 귀농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인기도 있었다.
2012년 1월에 농식품부의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고, 3천여평이 조금 넘는 밭 중에서 우선 2천평 정도에 오미자 두둑을 만들고, 오미자 넝쿨이 감고 올라갈 덕과 그물망을 설치하고, 문경에서 사온 오미자 묘목을 심었다. 비료는 인근의 흑염소농장에서 염소똥을 사오고(염소는 순초식동물이라서 다른 가축분 퇴비보다 유기농업에 더 적합함), 지리산골의 인월 5일장 생선가게에 가서 버린 생선 찌꺼기를 얻어다가 액비를 만들어 썼다. 얻어온 생선찌꺼기를 큰 통에 넣고, 밭 옆의 산에서 긁어모은 부엽토를 섞어서 놓아두면 그 부엽토 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토양미생물들이 생선찌꺼기를 분해하여 액비가 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상품성이 없는 오미자 열매도 액비로 만들어서 비료로 썼는데, 야생의 오미자 거름으로는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병충해 방제 역시 유기농 방법으로 만들어 썼다. 언젠가 ‘자연을 닮은 사람들’에서 개최한 워크샆에서 배운 자닮유황과 자닮오일을 만들고, 여기에 이웃집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과 낙엽을 5시간 넘게 삶은 물과 돼지감자 삶은 물, 그리고 뿌리까지 캐서 말린 할미꽃(백두옹)을 삶은 물을 만들어서 살균살충제로 썼다. 이러한 친환경 약제들은, 실은 해충을 죽인다기보다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기피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무기합성농약보다는 훨씬 자주 쳐줘야 했다.
이런 노력 끝에, 오미자를 심고 3년째인 2015년에 첫 열매를 얻을 수 있었고, ‘무농약인증’을 신청하여 ‘유기농인증’을 받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고, 4년째인 2016년부터 제대로 된 수확을 할 수 있었다. 또 무농약 5년만인 2021년엔 유기농인증을 받았는데 그해 8월의 태풍 오마이스가 지나가면서 오미자 덕을 모두 넘어뜨렸다. 오미자가 넝쿨성이라서 그의 지주인 덕을 오미자 상처 없이 바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로부터 2024년 오늘까지, 실질적인 휴경상태에 머물러 있다.
<오미자 열매>
다만 유기농 인증은 매년 신청하여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오미자를 다시 재배할지, 아니면 다른 작목으로 바꿀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지만, 유기농업은 계속하고 싶고, 만일 중단했다가는 무농약인증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작물로 오미자를 선택해서 10년 넘게 유기농업을 해오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지만, 결론은 오미자 농사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오미자는 2년생 새 가지에서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고, 바람이나 곤충 등의 도움으로 수정되는데, 잔뿌리가 얇게 뻗는 천근성이라서 제초제를 사용하면 오미자도 죽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특히 박멸(撲滅)효과가 큰 무기합성농약 대신에 기피(忌避)효과에 그치는 천연농약은 훨씬 더 자주 쳐야 하고, 잡초를 뽑아 없애는 제초작업이나 풀을 죽이는 제초제 대신에 풀을 베어 눕히는 초생(草生)재배나 차광망을 덮어서 풀이 덜 자라게 하는 등의 작업은 몸을 훨씬 더 써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배기술은 경력이 쌓이면서 웬만큼 터득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문제는 농산물을 잘 키우기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잘 파는 기술도 필요한데 아직도 미숙하고 자신이 없다. 다음 두 번째 <농민일기>에서는 농산물 판매에 따른 몇 가지 에피소드와 소회들을 엮어보려 한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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