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젊은이 광장> 짠 빛과 밝은 소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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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8월22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8월22일 17시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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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인간문명의 시작이고, 전기는 현대문명의 시작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빛을 통해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시공간적으로 넓혀주었다는 것이다.

 Salary(봉급)의 어원은 Salt(소금)이고, 과거 많은 부호들은 소금의 매매를 통해 돈을 벌었다. 소금은 늘 제 역할을 했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빛과 소금은 인류의 시작과 가치를 만드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예수께서도 다음과 같은 말을 제자들에게 남겼다. 마테복음 5장 13~16절에 나오는 말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 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종교는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그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견이 있고 이에 대한 토론이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으나 그 영향력이 인류사를 견인한 원동력이 되었음에는 양측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다. 

 원숭이와 다를 것이 없는 야만의 시대에서 시작된 인류가 가상의 무언가를 믿고 이를 경배하며 양심에 따라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같은 사상을 믿는 사람들이 함께 자연 현상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이 과학의 시초가 되었다. 

 특히 정치와 사회 규범이 확립되지 못하였을 때 대규모 인원을 규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인간이 도시를 세우거나 역사적인 건축물을 만드는 등의 동물의 집단 활동 이상의 군중활동을 이뤄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불완전한 정치를 보완하던 종교는 정치가 정교해질수록 정치에 의해 변질되어 갔다. 기독교의 사례들을 예시로 들자면 교회의 위세를 세우고자 면죄부를 발행했고, 힘을 표출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으며, 식민 통치를 할 때 같은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간을 인간으로서 취급 하지 않았다.

 이들 활동의 공통점은 맹목성으로 인해 잘못된 점을 외면했다는 점이다. 오로지 신을 위한다는 이유로 그 권세를 떠받치기 위한 농민들의 땀을, 힘의 표출에서 함께 튀어나오는 사람들의 피를, 그리고 인간을 위한다는 그 본질을 잊어버린 것이다.

 최근의 광화문 집회는 종교와 정치가 엮였을 때 발생하는 맹목성의 가장 큰 위험을 보여줬다. 집회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수단이 다수의 시민과 신도들에게 위험이 될 수 있다면 다른 수단으로 대체되었어야 했다. 목숨을 건 순교는 과거 종교 탄압으로 인해 목숨이 바람 앞에 등잔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는 있지만, 총칼보다는 대화가 앞설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무고한 희생이 될 뿐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회가 옳지 않다는 역사적 교훈을 수없이 얻었음에도, 같은 실수는 반복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 이후 전 국민의 수개월 동안의 노력과 고통이 있었다. 소상공인들은 버티던 중 이제야 겨우 기지개를 펴보려고 하고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들은 합격의 기쁨을 누릴 캠퍼스를 밟아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이해해주고 있었다. 직장인들은 회식이라는 발언조차 조심히 하게 되었고, 은퇴 후 여유 있던 삶을 꿈꾸던 이들 중 갑작스런 질병에 친구를 잃거나 일상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한 번 더 외면되어도 되는 그렇게 가벼운 일이었을까.

 약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청빈한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들은 고요하다. 그래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평온과 집회의 열광 중 무엇이 더 본질에 가까운 것일까.

 소금이 짜지 않으면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듯이, 사람이 인성을 갖추지 못하면 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해내기 어려운 노릇이다. 날마다 급변하는 불안정한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마음의 등불로써 참된 사람을 양성하고 이들을 이끌어나가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소금은 짜야하고 빛은 모든 곳을 밝게 비추어야 한다. 하지만, 짠 빛과 밝은 소금이 가득한 세상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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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8월22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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