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포비아’ 부추기는 사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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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혐오의 광풍이 한국 사회에 불고 있다.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한 단어로 ‘공포’이다. ‘에이즈 여중생’, ‘부산 에이즈 성매매’와 같은 최근 사건들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리면서, 에이즈 환자들에게 무차별적인 혐오와 분노가 쏟아졌다. 언론은 ‘충격과 공포, 관리 체계 구멍, 돈을 주고 죽음을 샀다’ 등의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사용해 대중의 공포를 부추겼다. 대중과 언론이 에이즈를 사회 근간을 무너뜨리는 ‘더러운 바이러스’로 규정하는 공포의 소용돌이 속에서 HIV 감염인/에이즈 환자의 신음은 깊어지고 있다.
에이즈에 대한 대중의 무지와 공포
에이즈는 더 이상 ‘죽음의 병’이 아니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수는 최근 10년 사이 절반에 가까운 수치로 감소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에이즈 환자 사망률도 2007년 20%를 기록한 이래 2014년 11.8%로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의 원인이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이긴 하지만, HIV에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관리와 치료 아래 에이즈의 발병을 막을 수 있다. 탁월한 치료제가 많이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감염인들은 꾸준한 복용과 관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즉, 현 시점에서 에이즈는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만성 질환’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에게 에이즈는 극복 불가능한 불치병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2013년 이병관 한양대교수에 의해 진행된 ‘일반인 대상 에이즈에 대한 지식, 신념, 태도 및 행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5%는 에이즈를 ‘죽음, 사망, 불치병’의 이미지로 인식한다. HIV 감염인/에이즈 환자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여전히 에이즈를 ‘죽음의 병’으로 생각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에이즈가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특정 사람들이 감염되는 질병’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앞의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는 에이즈와 관련하여 동성애, 성관계, 문란한 성생활, 성매매 등의 단어를 연상했다. 응답자의 99.2%가 본인 주변에서 에이즈 환자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한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때, 일반 대중에게 에이즈는 본인과 접점이 전혀 없는 무서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문란하지 않고, ‘이성애’적인 성관계만 맺을 경우 본인이 HIV에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HIV 감염의 99%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성관계를 통해 일어난다. 즉, HIV 감염은 성적 문란함이 아닌 콘돔의 사용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 에이즈에 대해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는 ‘성적 문란함’으로 에이즈에 대한 색안경을 씌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 원인인 ‘콘돔 사용 여부’에 집중해야 한다.
앞의 연구에 따르면, 고정적인 성관계 파트너가 있는 응답자의 73%, 비고정적인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는 응답자의 32.8%가 콘돔을 거의 혹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더욱 충격적인 점은 한국 남성 중 콘돔을 항상 사용하는 비율이 11.5%에 그친 다는 점이다. 일반 대중들은 콘돔 사용에 대해 별다른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콘돔 사용이 일상화되지 않은 문화에 대한 성찰 없이 에이즈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따라서 에이즈를 ‘문란하지 않은’ 본인과 무관한 질병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콘돔의 착용여부에 따라 항상 우리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질병으로 인식해야 한다. 에이즈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오해함으로써 이를 특정 인물군이 걸리는 질병으로 치부해버릴 때 HIV 감염인/에이즈 환자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발생한다. 대중에게 에이즈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무지를 없애고, 내 삶과 유리되지 않은 질병이라는 인식을 심어 공포를 해소해야 한다.
사회적 낙인을 조장하는 언론과 정치인
대부분의 대중은 실제 생활에서 에이즈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 제공된 정보를 통해 에이즈 환자의 이미지를 추론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이 정확한 정보 제공이나 충분한 고민 없이 자극적인 단어사용과 사건위주의 보도에 치중한다면 편견과 차별을 심화시킬 수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질병관리본부는 2006년 “언론인을 위한 에이즈 길라잡이 책자”에서 언론에게 “충분한 예민성과 책임감”을 갖고 보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이 권고 기준은 잘 지켜졌을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도한 언론은 에이즈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며, 자극적인 기사들을 양산하는 행태를 보였다. ‘부산 에이즈 사건’이 났을 때, 언론은 부산을 ‘에이즈 지옥’으로 묘사하면서, 당사자 여성을 ‘에이즈녀’로 낙인 찍었다. 기사 내용만 보면, 그 여성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악마와 다름 없다. 장애인이자 성매매 여성인 그녀가 어째서 국가의 보호 밖에 방치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은 채,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잘못된 편견만 퍼져나갔다.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책임감을 가지자는 권고 기준은 한낱 종잇장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인 또한 감염인/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부추겨 공포를 조장하고, 사회적 낙인을 재생산한다. 10월 13일 열린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의 성일종, 윤종필 의원은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며, 근거 없는 편견을 조장하는 언사를 지속했다. 성일종 의원은 ‘소수자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에이즈가 방치되었다’며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본부 측에서 이성과 동성간 성 접촉 모두 발병원인이라고 반박하자, 성 의원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에이즈는 어마어마하게 위험한 질병”이라고 받아 치며 동성 간 성접촉이 에이즈의 근본 원인임을 우회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 날 국정감사 자리에 등장한 참고인은 “HIV 감염인이 창녀촌을 돌아다니며 에이즈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는 식의 근거 없는 혐오 발언을 일삼기도 했다. 이는 정치권에서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부추기는 예시를 명백히 보여준다. 언론과 마찬가지로 일부 정치인들은 에이즈에 대해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권위를 사용하여 그릇된 정보를 ‘정확한 정보’로 포장함으로써 사회적 낙인을 재생산한다.
대중의 평균적인 인식과 다르지 않게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감염인/환자는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 특별 관리가 필요한 ‘사회악’이다. 또한 보통의 사람들처럼 따뜻한 온기와 오장육부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적으로 타락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존재이다. 그들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 책임감을 고려해 볼 때, 대중의 공포감을 부추기는 행태는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확산을 막고 있다.
에이즈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을 멈추자
지난 10월 9일,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HIV 감염인이 차별 없이 치료를 받고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감염인/환자에 대한 근거 없는 정보, 편견과 공포가 만연한 상황에서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치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본인의 감염 사실을 숨기거나, 병원으로부터 진료를 거부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에이즈 환자와 닿기만 해도 전염되는 것이라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들을 더욱 사지로 몰고 있지는 않은가.
에이즈를 일부 특수한 사람들의 끔찍한 병 정도로 치부하는 무지가 공포를 만들고, 이로 인해 생긴 사회적 낙인은 HIV 감염인의 삶을 억누르는 기제로 작용한다.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그들에게 오히려 배제와 억압을 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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