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또 하나의 이름 ‘외교 전쟁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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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이 유네스코(UNESCO)를 탈퇴했다. 유네스코는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후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유엔의 설립과 동시에 발생한 교육·문화 부문 산하 기구다. 유네스코는 △교육△자연과학△인문사회과학△문화△정보커뮤니케이션 등을 주요사업으로 세계적 유산 보존을 도모한다.
유네스코는 저개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교육권과 가치를 지닌 문화 혹은 자연 유산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보호하고자 노력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세계유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제사회 전체의 의무라는 점이다. 특정 종교나 문화에 편향되지 않은 채, 해당 국가의 주권에 대한 존중과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행해지는 국제적인 노력이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콩고, 이라크 등과 같은 ‘분쟁 지역’에 위치한 유산의 보호를 위한 기술적 지원 활동도 펼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유네스코는 작년 이스라엘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과 유대교 공동성지 관리 문제에서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7월엔 요르단 강 서안 헤브론 구시가지를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유산으로 등록했다. 미국이 탈퇴 선언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중 팔레스타인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보인 유네스코가 형평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 UNESCO가 팔레스타인의 유산으로 등록한 헤브론 구시가지
인류 평화 증진과 보편가치 제고라는 목표와 달리 유네스코는 최근 몇 년간 각국이 상반된 역사 해석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치열한 싸움을 벌이며 반목을 거듭해온 외교의 '전쟁터'였다. 국가 간 이견이 적은 자연유산과는 달리, 역사와 종교의 색을 입은 문화유산은 잦은 갈등을 빚어왔다.
서로 다른 기억, 엇갈리는 해석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위해서 해당 유산은 인류 전반에 통용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각국이 경험한 역사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이 보편가치에 대한 해석은 첨예하게 엇갈린다.
그것은 ‘기억’에 의존한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우리가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집단 나아가 국가에게도 적용된다. 개인기억과 집단기억은 사회적 구성물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개인기억은 사회의 지배담론을 반영하기도 하고 그 지배담론을 강화하기도 한다.
사회의 지배담론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목적을 실현하고자 하는 엘리트들의 창작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억은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나아가 자신의 해석을 지지해달라고 나선다. 이러한 갈등은 기억 전쟁과 역사 전쟁과 같은 갈등을 낳고, 이는 정권의 성격과 정치 문화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갈팡질팡한 유네스코의 현 주소
유네스코의 아랍 회원국들은 그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인 결의안을 제출해 왔다. 지난 5월에는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의 '점령자'로 표현해 이스라엘이 격분한 바 있다. 중동 문제 외에도 '군함도'와 ‘위안부’ 등 조선인 강제노역과 관련한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한·일 간의 입장이 뚜렷하게 갈렸다. 한국은 당시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에 반대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지만,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오히려 일본은 위안부 기록물에 대한 유산 등재를 저지하기 위해 유네스코를 상대로 분담금 감축이란 압박을 넣고 있다.
각국은 시대적 상황과 집권 세력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유네스코의 탈퇴와 재가입을 반복해왔다. 미국 역시 탈퇴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범세계적인 목적으로 문화와 역사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색깔은 변질된 지 오래다.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판치는 ‘외교의 전쟁터’로 전락한 것이다. ‘유네스코가 선정한’이라는 수식어가 남발하며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되는 유네스코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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