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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 Watch] 일본의 무역보복을 기회로 삼아서 제조기반을 강화할 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7월31일 17시00분

작성자

  • 이지평
  •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

메타정보

본문

소재, 부품, 기계류 국산화의 필요성과 어려움

 

일본의 무역보복 정책의 영향이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가동률의 추가 하락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지난주에 있었던 WTO(세계무역기구) 일반이사회에서도 한국에 대한 무역규제의 합리적인 근거를 명백히 제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관련 분야의 재고 확충, 수입선 다변화에 주력하는 한편 대일의존도가 높은 소재, 부품, 기계류의 국산화가 중장기적인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소재, 부품, 기계류의 국산화에 주력했으며, 이에 따라 대일의존도도 추세적으로 하락해 왔다. 사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에서도 소재, 부품, 기계류 등의 생산재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면서 국산화에 주력할 경우 시간은 소요되겠지만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이 무역보복 대상으로 삼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관련 3개 품목이나 백색국가 리스트 제외로 영향을 받게 될 기타 첨단제품의 경우 일본기업의 점유율이 높고 각종 진입 장벽이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본이 경쟁력을 상실한 분야에서 국산화의 성과를 보여 왔지만 일본이 아직까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품목들은 아날로그적인 요소도 강해 기술이나 노하우의 확보가 쉽지 않다. 이번에 초점이 된 불화수소의 세계 최대 기업인 스텔라케미화라는 기업의 경우 100년이 넘는 기업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장근로자의 노하우가 축적된 고기술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강한 기능성 소재나 첨단기계, 산업용 로봇은 고객의 요구에 맞게 제조장치 등을 개선해 세밀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현장 근로자의 노하우와 함께 창의와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한 양산 기술과 차원이 다른 제조 기반 노하우가 필요하며, 이러한 노하우의 이전이 쉽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야에서 선행한 일본기업의 경우 기존 고객과의 유대관계가 강하며, 기존 고객 기업으로서는 제조 라인을 이미 일본기업의 재료 및 기계를 전제로 구축했기 때문에 신규기업이 좋은 품질로 진출해도 설비투자 부담을 고려하면 쉽게 재료와 생산라인을 바꾸기가 어렵다. 또한 일본기업은 오랜 경험과 생산으로 설비의 감가상각이 상당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신규기업이 진출해 올 때 가격을 크게 내리고 신규기업을 고사시키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게다가 일본기업이 강점을 가진 첨단소재 등의 분야는 그 자체의 시장 규모가 작다. 예를 들면 일본의 불화수소 연간수출액을 보면 2018년에 급증했지만 그 금액은 83.9억엔에 불과하며,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이 연간 1,000억 달러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규모이다. 

 

이와 같이 일본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는 기술적 추격이 어렵고 애써 제품화해도 고객 개척이 어렵고 시장규모도 왜소한 틈새 분야이기 때문에 신규투자 수익률도 크게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일본기업의 남아 있는 강점은 이러한 틈새시장이지만 그 제품이 없으면 세계의 첨단산업 기업도 군수산업 기업도 생산이 멈출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 기업들은 일본과의 협력을 선택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신중하고 전략적 접근이 중요

      

이상과 같은 국산화의 어려움도 고려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적 효율을 고려한 국산화 전략이 중요할 것이며, 모노즈쿠리 전략에 매진해 왔던 일본의 정책 사례도 참고가 될 수 있다. 일본정부는 장기불황으로 산업경쟁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2000년대에 들어서 현장 기술자의 강점에 입각한 첨단 소재, 부품, 기계류 산업을 강화하는 소위 모노즈쿠리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왔다. 

 

일본정부는 1999년 3월에 '모노즈쿠리 기반기술진흥기본법(모노즈쿠리법)'을 공포한 이후 현재까지도 이 법률에 근거하면서 모노즈쿠리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이지평, 모노즈쿠리 & 코토즈쿠리, 산업 정체 타개를 위한 일본의 선택, LG경제연구원, 2017.10.24.). 이 모노즈쿠리법에서는 모노즈쿠리 기반기술을 공업제품의 설계, 제조 및 수리와 관련된 기술 중 범용성을 가지고 제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구체적으로는 제조업, 기계 수리업과 함께 소프트웨어, 디자인, 기계설계 등을 포함하였다. 일본정부는 조립형 대기업 등에게 소재, 부품, 디자인, 소프트웨어, 설계 등을 공급하는 중소형 기반기업을 강화하여 시대나 주력산업이 변해도 필요로 하는 기반 제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기술의 기반이 되는 모노즈쿠리 근로자의 양성과 스킬 향상에 주력하겠다는 것이 주요한 정책 목표로 채택되고 있다.

 

모노즈쿠리법은 구체적으로 일본정부가 모노즈쿠리 기반기술 발전계획을 세우고 종합적, 계획적으로 추진해 그 시책의 성과물로서 일본정부는 매년 방대한 분량의 모노즈쿠리 백서를 발간하고 있다. 주요한 시책으로서는 △ 모노즈쿠리 기반 기술의 연구개발 실시, 기술의 지도, 기술자연수, 특허권 지도 △ 모노즈쿠리 사업자와 대학과의 연계 추진 △ 모노즈쿠리 근로자의 확보 △ 고령기술자의 기술 전수 등 숙련 모노즈쿠리 근로자의 활용 △ 산업클러스터 추진 △ 중소기업의 설비 선진화 등 경영기반 강화 △ 초중 고등학교에서의 모노즈쿠리 교육, 기술교육 △ 국제협력 등이 있다.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중소기업이 보다 부가가치가 높고 납품 단가를 높게 받을 수 있도록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장비 등의 측면에서 일본정부가 재정적, 기술적, 인력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경제산업성은 설계, 제조, 가공 등 각 분야의 중요 기술 전략인 ‘기술전략 맵’을 작성해 정규적으로 검토하면서 다양한 전문가, 기업의 의견을 듣고 기술 발전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의 모노즈쿠리 기술이 전략 방향에 맞게 산업전체적으로 발전하도록 유도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와 같이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금 제공은 WTO 규범상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있는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는 한편, 소재, 부품, 기계 등의 산업과 관련한 연구기반을 지원하면서 관련 전문가, 인력의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강하고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은 분야가 존재하며, 이들과 소재 및 부품, 기계 산업의 협력이 중요하며 국산화 전략이 일정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보조금 비판을 피하면서 관련 연구개발 인프라의 강화, 연구 및 기술 인력의 확충 정책이 중요할 것이다. 일본기업이 기존에 강점을 구축한 분야보다 신규개발에서 정부의 연구지원 등을 활용하면서 차세대 제품에서 오히려 경쟁력을 확보하는 프로젝트 등을 성사시키면서 국산화 비율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경쟁강도가 높고 기대수익이 높지 않는 분야도 많기 때문에 획기적으로 제조비용을 낮추는 등 신제품이지만 비용 경쟁력을 원천적으로 확보하는 전략도 중요할 것이다. 부품, 소재, 기계의 공동 개발과 함께 새로운 저비용 공법 등을 기반으로 한 제조라인의 구축 및 투자 사업을 패키지로 실시하고 지원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국산화 후에 판로가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기업 등의 설비투자와 연계되는 형태로 국산화 전략을 추진하고 사업을 초기에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국산화 초기에는 일본기업의 가격공세가 있을 수 있고 품질도 상대적으로 불안정한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기업이 협력회사로부터 국산화 제품을 조달하는 것이 부당한 내부거래라든지, 일반 주주의 이익을 훼손한다는 등의 비판과 규제를 막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폐해는 단기에 그쳐야 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품목을 국사화한다기 보다 전략적으로 목표를 설정해서 국제 분업의 효율을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또한 소재, 부품, 기계 등의 기반 산업과 각종 조립 산업을 연계하는 산업 차원의 스마트 공장 연계 전략을 통해 고객 대응 스피드의 제고, 내구성 및 경량성 등의 측면에서 새로운 품질 경쟁력의 확보, AI를 활용한 신제품 개발 경쟁력 제고 등 디지털화를 통한 새로운 산업경쟁력의 확보에도 주력할 필요가 있다. <ifsPOST> 

  • 기사입력 2019년07월31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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