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shington Watch] 美 옐런 장관 “채무 상한 우회용 ‘1조 달러 코인’ 발행 반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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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하원에서 다수당 지위를 탈환한 공화당이 바이든 행정부의 채무 상한(debt-ceiling)을 인상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의회 일부에서 현재 협의가 교착된 상황을 우회하는 방안으로 ‘1조 달러 플래티넘 코인(platinum coin)’을 발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흥미를 끈다. 그러나, 정작 현행 법령 상 코인 발행에 대한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옐런(Janet Yellen) 재무장관은 이런 방안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조 달러 코인(trillion-dollar coin)’이란 이론 상의 개념으로, 정부가 실물인 플래티넘 코인을 주조해서 이를 국가 채무 상환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구상이다. 이런 개념은 2011년 채무 상한을 인상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처음 제시됐다. 이후 여러 유력 인사들이 지지했으나 결국 2013년에 재무부 및 연준(FRB) 관리들이 최종 거부했었다. 그러나, 금년 들어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게 되자 정부의 채무 상한 인상을 둘러싸고 정치적인 공방이 첨예하게 벌어졌고 이런 상황에서 미 정가에 ‘1조 달러 코인’ 발행 문제가 다시 국가적인 논쟁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은 지폐(paper currency)인 통화의 발행에 대해서는 회계 및 수량에 법령상 제한이 있으나, 플래티넘을 포함한 코인 주조(minting)는 연방 규정(USC 5136 및 PL 104-52)에 따라 USMPEF(United States Mint Public Enterprise Fund) 형태로 운용되게 되어 있어 이런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의 현행 법령 상 ‘플래티넘 코인’ 발행은 재무장관 산하 연방조폐국(United States Mint)이 액면 금액, 디자인, 수량 등 제반 스펙을 선택하게 된다. 이처럼, 이론 상으로 USM은 임의로 정한 액면의 플래티넘 코인을 무제한으로 발행할 수도 있다. 만일, 재무부가 플래티넘 1조 달러 코인을 실제로 주조해서 연방은행(Federal Reserve Bank)의 재무부 계좌에 예치하면 그 대전은 재무부가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재무부는 연방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 채무를 늘리지 않고도 예산 외로 1조 달러의 통화주조차익(seigniorage) 형태의 가용 재원을 추가로 얻을 수 있게 된다.
아래에 최근 옐런 재무장관이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가진 관련 인터뷰 내용을 전하는 해외 미디어들의 보도 내용과,미 Brookings 연구소, 日 노무라 연구소(NRI, 木內登英) 등 전문 연구기관들이 발표한 이에 대한 최신 보고서 및 논설을 중심으로 지금 워싱턴 정가에 뜨거운 논쟁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흥미로운 주제인 ‘1조 달러 플래티넘 코인’ 발행 문제의 대강에 대해 간략하게 파악해 본다.
▷ ‘1조 달러 코인(trillion-dollar coin)’ 발행 구상이 등장한 배경
우선, 플래티넘 코인(Platinum Coin)이란, 플래티넘 금속을 사용한 코인으로, 국제 통화 심벌 ISO 4217로 ‘XPT’ 기호가 부여되어 있다. 이런 형태의 코인은 18세기 스페인이 당시 식민지였던 미국 영토 내에서 처음 발행했고, 이후 19세기에 러시아 제국도 발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비록 통화 형태를 가지고는 있으나, 플래티넘이 이와 유사한 값싼 금속과 구분하기가 어려워서 통화로 유통되기에는 실용적이지 못했다. 또한, 연성이어서 쉽게 주조할 수 있는 금, 은 등 다른 금속과 달리 주조 공정이 아주 어려운 것도 문제다. 그럼에도 1978년부터 소액면의 기념 주화 형태로 발행되기도 해서 이것들은 코인 수집가들 사이에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2011년 정부 채무 상한 위기 당시에 연방 의회가 정부의 차입 한도 인상을 회피하기 위해 지극히 높은 액면의 플래티넘 코인, 예를 들면, ‘1조 달러 플래티넘 코인(Trillion-dollar coin)’을 주조하는 방안이 논의된 적이 있다. 이런 아이디어는 2012년 후반까지 이어졌던 연방 정부 재정 예산을 둘러싼 벼랑 끝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으나, 결국, 2013년 1월에 협상이 타결됐고 ‘1조 달러 코인’ 주조 방안은 연준 및 재무부에 의해 최종적으로 거부됐다.
이후, 2020년 3월 Covid-19 대유행 사태를 맞아 개인 소비 지출 촉진 방안으로 1인당 $2,000씩 지원할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Rashida Tlaib 의원이 입법안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금년 들어, 공화당 소속 매카시(Kevin McCarthy) 하원의장이 다른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연방 예산 감축 협상 도구로 이를 연계해서 압박하고 나서자 ‘1조 달러 코인’ 발행 방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렇게, ‘1조 달러 코인’은 연방 정부 채무 감축을 위한 이론적인 전략의 하나일 뿐이고 주로 의회에서 채무 상한 논의가 교착 상황에 빠지는 경우에 도입 논의가 불거지곤 한다. 이는 법률 상의 허점(loopholes)에 근거한 것이나 실제로 발행된 적은 없다. 이번에 공화당이 다수당을 장악하고 있는 하원에서 정부의 채무 상한 인상 합의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또 다시 의회를 중심으로 논의가 불거진 것이다.
앞에 소개한 것처럼, 2011년 의회가 연방 채무 상한 인상 방안을 둘러싸고 대치하던 상황에서 ‘1조 달러 코인’ 아이디어가 광범한 지지를 받았으나, 당시에는 채무 상한이 약간 인상되고 논쟁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이듬해 채무 상한이 다시 차오르자 논쟁이 재연됐다. 이때 저명 언론 및 경제학자들이 옹호하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Paul Krugman 교수는 NYT 논설을 통해 ‘1조 달러 코인’을 발행하면 경제적으로 아무런 해(害)가 없이 채무 상한 논쟁을 해소할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런 해법은 국가 부도 사태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무부 및 연준 관료들이 국가 채무를 ‘1조 달러 코인’을 발행을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을 최종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관련된 논쟁은 일단락되고 말았다.
▷ “합법적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 이어져”
이렇게 재무부가 거대 액면의 코인을 발행해서 연방은행에 예치하고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으로 국가 채무를 상환한다는 구상은 1992년 Populist Party 대선 후보가 처음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플래티넘 코인(platinum bullion coins)’ 구상에 대해서는 일부 의원들을 포함한 상당 수 인사들이 옹호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비록 합법적이라고 해도, 국가 권력의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 인플레이션을 가속할 리스크, 연준 독립성을 훼손할 위험 등, 예견되는 부정적 결과 등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고액 액면의 코인을 발행해서 경제 내에 광범하게 유통시키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옹호자들은 1조 달러 코인이 단지 연방은행과만 거래된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연방은행이 이 코인 금액을 다시 재무부 구좌에 예치해서 이를 재원으로 국가 채무를 감축하면 연방 정부의 채무 상한을 인상할 필요성을 줄이거나 연기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많은 경제학자들이나 애널리스트들은 의회에서 정부 채무 상한 인상을 반대해서 국가 부도 사태로 몰고 가는 의원들의 위협에 대항하는 방안으로 이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Krugman 교수는 “코인 발행은 품위가 떨어지는 일이나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고 주장한다. 아울러, 경제에 해(害)를 주는 일도 아니고, 경제에 미치는 재앙적 타격을 회피할 수 있고, 정부가 의회의 위협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조 달러 코인 찬반 논쟁은 금세기 최대 논쟁이라고 말한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비록 행정부가 코인을 발행해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집행한다는 개념이 의회가 부여한 권한 범위 이내여서 엄격하게 보면 합법적이라고 해도, 이는 미국 정부 구조의 기본인 ‘견제와 균형’ 제도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논박한다. 즉, 코인 발행으로 야당의 방해를 막아낼 수 있다 해도, 이는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손상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야당이 채무 상한 인상을 방해하는 것도, 대통령이 ‘1조 달러 코인’ 발행으로 이를 우회하는 것도, 모두 미국 정치 제도의 기본인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이다.
이처럼, 의회가 행정부의 예산과 관련해서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는 미국의 국가 제도 하에서, 의회의 견제를 받지 않고 행정부의 독단적 결정으로 대규모 통화를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대세인 것은 틀림없다. 특히, 거액 액면의 코인 발행으로 사실상 대규모 통화 팽창으로 인플레이션을 가속할 위험성이 우려된다. 연준이 재무부가 발행하는 코인을 매입하는 것은 사실상 유가증권 매입 조작과 마찬가지로 본원통화 증가에 따른 통화의 양적완화(QE) 수단이 되는 것이다. 즉, 재무부가 코인 매각 대전으로 상업은행들이 보유한 국채를 상환하면 은행들은 이를 원자로 대출을 실행하고 통화 팽창이 일어나, 경제는 과열되고 안플레이션 및 기대 인플레이션은 가속된다.
이에 더해,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할 위험성을 지적하는 견해도 많다. 미 연준은 이미 2012년에 정부 보증 MBS 등 유가증권 매입 조작(操作)을 통해 대차대조표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통화공급 확대를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에 이는 분명히 통화 정책 측면보다는 재정적 목적으로 실행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이는 중앙은행인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1조 달러 코인’ 발행 방안이 제안되는 것은 지금처럼 의회 예산 논의가 답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방안이 정부의 채무 상한 인상(혹은 철폐)보다 열등한 방책이기는 해도, 그나마 국가 ‘부도(default)’ 사태에 빠지거나 그런 방향으로 몰려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 “美 정부, 의회의 채무 상한 관련 합의 지연으로 부도 위기에 몰려”
최근 미국 내에서 ‘1조 달러 플래티넘 코인(platinum bullion coins)’ 발행이라는 묘책이 논의 대상으로 부상하는 배경은 의회에서 정부 채무 상한 인상과 관련해서 민주, 공화 양당 간 협의가 교착 상황에 빠져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정부가 채무 불이행에 빠질 위험에 처할 경우를 상정해서 비상 대책으로 이런 방안이 논의되는 것이다. 과거에도 채무 상한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플래티넘 코인 발행’ 방안이 거론되곤 했으나, 그럴 때마다 재무부는 연준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해 왔다. 연준도 마찬가지로 의회의 예산 논의 과정에 중앙은행이 관여할 것은 아니라는 논리로 원천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편, 미 의회는 2021년 12월에 정부의 법정 채무 상한을 약 31조4,000억달러로 인상했으나,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정부 채무는 이 상한까지 차오른 것이다. 옐런 재무장관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1월 19일 공화당 소속 McCarthy 하원의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서 정부 채무가 이미 법정 상한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통보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곧바로 정부 디폴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 재무부는 이와 동시에 13일 자로 공무원 퇴직, 장애자 기금 운용을 변경하는 등, 특별 조치를 발동해서 6월 5일까지 디폴트를 막아 놓았다. 그러나, 의회에서 민주, 공화 양당이 채무 상한 인상 혹은 채무 상한 적용 유보에 합의하지 않는 한, 궁극적으로 정부 디폴트는 어쩔 수 없이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금년 들어서 2011-2013년 당시 상황과 흡사하게 행정부 및 의회 내의 심각한 당파적 분단으로 연방 채무 상한 인상 논의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1조 달러 코인’ 논쟁이 또 다시 재연되고 있다. 이렇게 채무 상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커다란 정치 문제가 되어 국가 부도 위기로 몰리는 상황은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여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을 유지했으나,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장악한 것이 원인이다. 의회의 이런 ‘비틀린 구도’에서, 공화당은 채무 상한 인상을 받아들이는 대신 바이든 정권에 ‘Medicare(고령자를 위한 의료보험)’ 감축을 포함한 세출 예산을 삭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옐런 재무장관, ‘연준이 수용하지 않을 것’, 거부 의사 분명히 해”
일부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현상을 타개하고 사태의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1조 달러 코인’ 발행이 가용한 유일의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런 방안은 여전히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 옐런 재무장관은 이런 ‘1조 달러 코인’ 해법은 궁극적으로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장래에 국가의 채무 상환 능력을 의심받을 수 있는 ‘꼼수(gimmick)’가 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한편, 미국이 국채 상환 불능 상황이 되어 부도(default) 사태에 빠지면,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 분명하다. 우선, 경제 전반에 급격한 충격을 가져올 것이고, 이에 따라 개인 소비 신뢰가 급냉하고 주가가 급락할 것이다. 또한 국채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고 궁극적으로 글로벌 경제에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해외 투자도 위축될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행정부가 사회보장 급여에서 국방 조달에 이르기까지 핵심 기능도 수행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상황을 상정해서, 일부 바이든 행정부 관료 및 의회 의원들도 잠재적인 디폴트 위험에 대비해서 재무부가 법규 상 플래티넘 코인을 발행할 수 있을지를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까지 논의에서는 재무부가 액면 1조 달러 코인을 발행해서 연준에 예치한 뒤, 이 자금을 인출, 연방 채무 지급에 충당한다는 구상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해, 재무장관 취임 전에 연준 의장을 역임하면서 현 파월(Jerome Powell) 의장과 같이 일했던 옐런 장관은 연준은 이런 방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동 장관은 WSJ과 회견에서 “연준은 어떤 경우에도 그런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상황을 우회하는 술책(術策)으로 동원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연준은 그런 것을 수용하도록 되어 있지 않고, 전적으로 그들의 판단에 달린 것 (It truly is by any means to be taken that the Fed would do it, and I think especially with something that’s a gimmick. The Fed is not required to accept it (a $1 trillion platinum coin) to save the US from economic catastrophe. There is no requirement on their part of the Fed. It’s up to them what to do.)” 이라고 말했다.
지금 미 의회에서는 31.4조달러에 도달한 정부 채무 한도 인상을 둘러싸고 양당 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민주당을 향해 채무 상한을 상향하는 대가로 불특정 지출을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신,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그런 제안을 거부하면서, 의회가 채무 상한을 인상하거나 아예 채무 상한 적용 자체를 유예(suspend)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백악관도 ‘1조 달러 코인’ 방안에 반대하는 옐런 재무장관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Karine Jean-Pierre 대변인은 “우리는 의회를 우회하는 어떤 방안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 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지금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 및 일부 의원들은 행정부에 대해 ‘1조 달러 코인’ 발행 방안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 “연준 통화정책 방향에도 큰 영향, 국채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에 채무 상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매번 종국에는 해결되곤 했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미 정부가 실제로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 경제 및 금융시장에 예상치 못할 정도의 타격을 줄 것은 분명하다. 당장, 재무부가 연명 조치를 취한 시한인 6월 5일 이후 정부의 자금 흐름이 엄중한 상태에 빠지면 재정 여력을 국채 이자 지급에 우선적으로 충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다른 세출 집행은 거의 중단될 것이다. 일부 정부 기관 폐쇄를 포함해서 비상 상황이 돌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는 연준(FRB)도 현재 진행 중인 유가증권 보유 잔액을 축소하는 소위 ‘대차대조표 삭감’ 절차를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거꾸로 시장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만큼의 국채를 어쩔 수 없이 다시 매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렇게 연준의 금융정책에 큰 혼란을 가져올 요인이 될 것이 충분히 예견되는 만큼 미국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지난 2011년 채무 상한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의회가 채무 상한 인상에 합의한 이후에도 금융시장에는 혼란이 지속됐었다. 당시에도 공화당이 민주당 오바마 정권과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의회는 디폴트 시한이 다가오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겨우 채무 상한 협상에 결착을 봤고 실제로 채무상한법(Budget Control Act 0f 2011)이 성립된 것은 바로 디폴트 시한 날짜였다. 당시 S&P는 미국이 재정 적자 삭감을 위한 대응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장기 국채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세계에서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미 국채 신용등급이 강등되자 주가는 폭락했고, 소비자 심리도 급격히 약화되어 경제를 타격했다. 이처럼 현 채무 상한 문제가 조기에 결착되지 못하고 디폴트 위험이 고조되면 국채 신용등급이 또 강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그러면 국채 매도 사태가 일어날 수 있고, 장기금리가 상승, 시장 혼란은 더욱 심각해질 위험도 있다.
미 싱크탱크 Brookings 연구소는 최근, 채무 상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에 대해 만일 채무 상한이 차서 재무부가 채무 상환 이행 능력을 잃게 되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급속히 확산되고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동 연구소는 현 채무 상한 문제는 현 정부의 신규 지출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의회가 과거에 결의했던 세출 법안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했다. 만일, 의회가 재무부의 비상 조치 시한인 6월 초까지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면 연방 정부는 채무 상환을 위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고 이런 전례 없는 사태가 미국 경제에 미칠 엄청난 충격, 불확실성 및 속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동 연구소는 미국은 국채의 높은 안정성 및 풍부한 시장 유동성 등을 배경으로 다른 나라 국채에 비해 평균 25bp 낮은 금리를 부담해 오고 있고, 이로 인해 연간 600억달러, 10년 간 약 8,000억달러에 달하는 이자 부담을 절약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따라서, 만일, 디폴트 사태로 이런 이득 중 일부라도 손실을 입게 되면 미국 납세자들은 엄청난 규모의 추가 세(稅) 부담을 지는 셈이 되는 것이다.
지난 2011년 채무 상한 위기 당시에는 재무부 및 연준이 의회가 채무 상한 인상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서 모든 가용 재원을 국채 상환에 우선 충당하고 다른 채권 지불을 연기하는 비상책을 검토한 적이 있다. 옐런 장관은,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이처럼 우선 순위를 정해서 잠재적 디폴트 가능성을 줄이는 대안을 제안하는 것에 대해 “재무부 시스템은 어느 채권에 우선해서 다른 채권을 지불하는 등 순서를 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고, 이자 지급을 우선하는 방안도 경제적, 재무적 혼란을 피하는 데 실패할 염려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고 밝혔다.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이 의회는 벼랑 끝 협상을 연출할 때마다 미 국채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주었고 궁극적으로 더 많은 이자 지불을 부담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궁여지책으로 ‘1조 달러 코인’ 발행이라는 대안이 채무 상한 협상이 교착된 상황과 연관되어 테이블 위에 고려 대상으로 남아있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회에서 벌어지는 당파적 정치 게임이 정부의 재정 및 금융정책에 골칫거리로 가로막혀 있는 점은 여기나 저기나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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