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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경제 실험의 한 해’ - 2018년을 되돌아본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12월30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1월02일 13시50분

작성자

  • 조장옥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메타정보

본문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편하다는 국민보다 그렇지 않다는 국민이 많다고 한다. 경제가 문제다. 2018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운동권 경제실험의 한 해였다고 밖에 달리 평가하기가 어렵다. 경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운동권 인사들이 운동권 식으로 경제를 실험한 해였다. 그 폐해는 물론 오롯이 국민에게 귀착되었다. 실험에 참가한 인사와 기관은 대통령, 청와대의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경제수석, 노동부장관, 원자력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민주노총 등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다. 

 

 어디 숨어 있다가 이렇게 많은 인사와 조직들이 이제 나와서 머릿속에서 정리되지도 않은 정책들을 쏟아낸 것인지 묻고 싶다. 이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추진한 정책이 원전축소·폐기, 급격한 최저임금인상, 비정규직의 졸속 정규직화, 무리한 노동시간 단축, 무모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대기업 목조르기, 불법 노조활동의 용인 등이다. 이렇게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정책들을 한꺼번에 꺼내서, 국민들께 돌아갈 비용과 편익은 계산도 해보지 않고 실험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소득주도성장은 매우 인기영합적 조어(造語)로 인과관계 ‘거꾸로’…소득은 성장의 종속변수

 

이 모든 운동권 경제실험의 근저에는 소득주도성장이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매우 인기영합적인 조어(造語)라고 할 수 있다. 소득이 성장을 주도할 수는 없으며 소득은 경제성장에 따라 증가하는 종속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소득주도성장에는 인과관계가 거꾸로 되어 있다. 소득은 화수분이 아니다. 당연히 소득이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은 소득재분배가 단기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의 출발점은 1930년대 발생한 대공황이다. 1930년대에 발생한 대공황은 미국을 포함한 여러 선진국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이 깊은 불황이었다. 1920년대 미국은 대체로 경기가 호황이었다. 그러나 1929년 8월 정점을 찍은 이후 미국 경제는 2개월 후에 주식시장의 폭락을 경험하였고 곧 이어 1930년부터 대공황으로 진입하였다.

 

 1933년 대공황의 절정에서 미국의 실질 GDP는 1929년에 비하여 26.7% 감소했고, 실업률은 25.2%로 1929년에 비하여 22% 포인트나 증가했다. 대공황은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지만 특히 크게 영향을 받은 분야는 금융, 농업, 기업고정투자와 주택투자 및 국제무역이었다. 미국의 주식가격은 1929년 정점을 찍은 이후 1933년에는 1929년의 10%로 떨어졌으며 예금인출사태(bank run)가 일어나고 많은 은행이 파산했다. 곡물가격 하락과 미국 중서부에 닥친 장기간의 가뭄으로 수많은 농부들이 다른 지방으로 이주했다. 기업고정투자와 주택투자는 급감했고 무역전쟁 때문에 국제무역은 정지된 상태였다. 

 

<※참고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이 1939년 발표한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1940년 존 포드 감독의 연출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연은 대배우 헨리 폰다였다. 스타인벡은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노벨상위원회가 주목한 것이 분노의 포도였다. 분노의 포도는 불황이 가난한 계층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는 실험하듯이 운영할 수 없는 것이다. 실패의 결과는 오롯이 사회적 약자에게 귀착되기 때문에. 지금 문 정부 인사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해결 위해 태어난 케인즈의 거시경제학…핵심은 소비함수론

 

이때 태어난 것이 거시경제학이다. 거시경제학은 케인즈(John M. Keynes, 1983-1946)에 의해 처음 등장한 경제학의 분야이다. 케인즈는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하여 정부지출을 통해 유효수요를 증가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사람이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이다.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케인즈의 권고에 따라 방대한 토목사업이 시행되었으며 금융, 복지, 사회안전망 또한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다. 금융의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해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연방예금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FDIC)」와 「증권거래위원회(Security Exchange Commission)」를 설립한 것도 이때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은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하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범으로 알려져 있다. 

 

케인즈 이론의 핵심은 소비함수론이다. 그의 유명한 승수이론이나 소득주도성장 모두 케인즈의 소비함수론에 기초하고 있다. 케인즈의 이론에 따르면 소득에서 차지하는 소비의 비율을 소비성향(평균소비성향)이라고 하는데 소득이 증가할수록 낮아진다. 예를 들어 연소득 5,000만 원을 버는 가계의 소비성향이 80%라면 1억 원을 버는 가계의 소비성향은 50%라는 것이다. 이때 만일 ‘1억 가계’의 소득 1,000만 원을 5,000만 원 가계에 이전하면 1억 가계의 소비는 500만 원 감소하지만 5,000만 원 가계의 소비는 800만 원 증가한다. 따라서 경제 전체의 소비가 300만 원 증가한다. 

이와 같이 부자들 소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면 소비가 증가하고 경기가 나아진다는 것이 소득주도성장 이론이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 이론은 소득재분배가 나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포장하기 위한 분식이다. 잘 구성된 소득재분배를 그 누가 반대하나? 참으로 치졸한 조어를 통해 나라를, 더욱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여기서 케인즈의 이론에 바탕을 둔 뉴딜 정책이 과연 미국경제가 대공황으로부터 탈출하는데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한 논쟁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적지 않은 정부지출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미국의 실업률은 1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1937-38년 다시 찾아온 불황 때는 다시 20%까지 치솟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뉴딜 정책이 대공황을 보다 일찍 끝냈다는 우리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한다. 즉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과 비교하여 뉴딜 기간 동안 오히려 고용이 감소하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정부고용을 포함하여 성인의 전체 노동시간은 1930-32년 사이 1929년에 비해 18% 감소했다. 그런데 뉴딜 기간(1933-39)에는 오히려 1929년에 비해 평균 29%나 낮았다. 같은 기간 1인당 소비도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당시 1인당 소비는 추세보다 25% 아래 있었으며 1인당 기업고정투자는 추세보다 물경 60%나 아래 있었다. 다시 말해 미국 경제는 뉴딜 정책 기간 동안 대공황으로부터 크게 나아진 것이 없었다. 

 

<※ 케인즈의 이론은 대공황이 절정을 지난 이후 1936년 발간된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에 집대성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로는 당연히 케인즈와 미국의 세 경제학자 어빙 피셔(Irving Fisher, 1867–1947),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Jr., 1937-현재) 네 사람을 꼽는다. 모두 거시경제학자이다. 케인즈와 피셔는 노벨경제학상이 제정되기 이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못 받았지만 프리드먼과 루카스는 당연히 수상하였다. 1997년 미국 뉴욕에 간 적이 있다. 당시는 한 세기가 끝나가는 때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뉴욕시립도서관에서 20세기를 빛낸 도서들이 기획 전시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포함하여 쟁쟁한 책들이 많았는데 경제학으로는 케인즈의 「일반이론」과 프리드먼의 「소비함수론(The Theory of Consumption)」 두 권이 전시되고 있었다. >

 

 美 뉴딜 정책, 대공황 탈출에 도움 안 돼…반시장적인 조치들이 회복능력 질식시킨 탓

 

그렇다면 당시 대규모 정부지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이나 지출이 나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긍정적인 조치 및 제도개혁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 뉴딜 정책은 경쟁을 제한하고 여러 부문에서 임금과 가격을 정상적인 수준보다 높게 책정하는 등 가장 기초적인 경제 원리에도 반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1930년대 중반이면 경제를 잠재산출량 수준으로 되돌렸을 것으로 생각되는 거시경제의 강력한 회복능력을 이와 같은 반시장적인 조치들이 질식시킨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결정적인 것이 반트러스트 법(antitrust acts)을 방기하고 여러 산업에서 담합해서 가격을 올리는 것을 허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담합을 허용받기 위해서는 임금을 생산성보다 상당 수준 높게 설정하여 담합에 따른 지대를 노동자와 나누어야만 했다. 이와 같은 행위가 허용된 것은 1933년에 제정된 「국가산업회복법(the National Industry Recovery Act, NIRA)」을 통해서이다.

 

 이와 같은 조치는 대공황이 지나친 경쟁 때문에 초래되었다는 루즈벨트의 믿음 때문이었다. NIRA에 포함된 산업은 자동차, 철강으로부터 여성용 속옷, 양계에 이르기까지 500개가 넘었으며, 각 산업은 생산자가 할 수 있는 행위와 그렇지 못한 행위를 규정하는 「공정경쟁규칙(code of fair competition)」을 제정하여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만 하였다. 당시 제조업의 임금은 NIRA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와 비교하여 25% 가량 더 높았다. 이는 산업생산과 고용을 심각하게 제약하였음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정책은 1935년 NIRA가 위헌판결을 받은 다음에도 지속되었다. 1935년 이후에도 가격담합과 생산제한은 여전히 횡행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1935년에는 「국가노동관계법(the National Labor Relations Act of 1935)」을 통해 노동조합에 상당한 협상력을 부여하였다. 연방법에는 노조의 공장점령파업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대부분의 주정부는 공장점령과 조업방해를 용인하였다. 

 

1930년대 말 미국 경기회복은 ‘독점금지법’ 집행과 ‘공장점거 파업은 불법’ 판결이 계기

 

노조는 이와 같은 분위기에 편승하여 1937년 GM과 같은 주요 고용주와의 투쟁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단적으로 말해 1937-38년의 불황은 그 바로 전에 이루어진 큰 폭의 임금인상 때문이었다. 특히 제조업에서 고용감소가 두드러졌다. 그리고 이때의 고용감소와 불황은 루즈벨트가 뉴딜 정책을 거뒀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뉴딜 정책을 강화하여 임금을 시장균형수준보다 높게 유지했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다. 뉴딜 정책은 대공황을 끝내기보다는 7년 이상 장기화하였던 것이다. 

 

1930년대가 끝나갈 무렵 뉴딜 정책은 진로를 수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그와 같은 계기는 1938년 루즈벨트의 연설이었다. 그는 미국 경제가 유럽과 마찬가지로 폐쇄된 카르텔 시스템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루즈벨트의 연설이 있은 다음 미국 법무성은 반트러스트 법을 집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공장점거파업이 불법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은 다음 노동조합의 협상력도 상당부분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또 2차 대전 중에는 「국가전시노동위원회(the National War Labor Board, NWLB)」에 의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NWLB는 노동조합의 인금인상을 생계비 증가만큼만 인정하였다. 

 

대공황이 완전히 해결된 것은 2차 대전 중 엄청난 재정지출을 통해서이다. 1940년 15%이던 실업률이 1945년 2%까지 떨어졌다. 5년 사이 미국의 1인당 실질GDP는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다. 그 가운데 1940년 미국의 GDP대비 국가채무가 40% 정도이던 것이 1945년에는 105%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뉴딜 정책의 시장 친화적인 방향전환과 전쟁 중의 막대한 재정지출을 통해 미국이 대공황으로부터 빠져 나오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을 빠르게 인상하기, 강제적 노동시간 단축, 민주노총 불법 활동 눈감아주기, 대기업 목조르기, 무작정 정규직화 하기,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하기, 무분별한 세금 퍼주기”

 

이런 사정 때문에 뉴딜 정책의 효율성에 대한 회의론이 존재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읽으면서 기시감(旣視感)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지금 정부는 뉴딜 정책에서 잘못된 것들만 가져다 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틀어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생산성 이상으로 빠르게 인상하기, 강제적인 노동시간 단축, 민주노총의 불법 활동 눈감아주기, 대기업 목조르기, 무작정 정규직화 하기,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하기, 무분별한 세금 퍼주기 등과 같은 정책을 참으로 과감하게 들이대는 것을 보면서 2019년도 무사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경제를 모르는 대통령은 “90%가 최저임금인상으로 득을 보고 있다”, “물들어올 때 노 저어라”, “거시경제는 견실한데 일자리가 문제다” 등 시장 참가자들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말씀을 하시고 참모라는 사람들은 ‘소득주도성장 2.0과 강화’ 등 헛소리를 하니 국민이 바라볼 것은 하늘 밖에 없지 않은가. 

정부는 2019년 20조 이상의 일자리 예산을 책정하였으니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경제규모가 얼마인데 그 정도 예산으로 지금의 난맥을 봉합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난 20년 간 일본의 재정정책을 한 번 연구해 보라고 권고하고 싶다. 여기 저기 정부 산하기관에 단기 일자리라도 늘리라고 압력을 넣는다는 속삭임을 듣는다. 그게 무슨 일자리 정부가 할 짓이라는 말인가. 도대체 일자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다니 맨 정신으로 보기 어렵다. 

2018년 운동권 경제실험에 힘들었던 이들께 위로를 보낸다. 문제의 본질을 모르니 경제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2019도 나을 것이 없을 것으로 보이니, 아니 더 어려워질 것이니 단단히 준비하시라는 송구한 당부 말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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