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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제의 경쟁력을 염려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4월08일 17시28분
  • 최종수정 2018년04월10일 10시53분

작성자

  • 김상겸
  •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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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조세저항 

최근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감세와 일자리를 위한 법률(tax cuts and jobs act, 2017)’을 통해 파격적으로 법인세부담을 낮추었다. 미국의 기존 법인세 최고한계 세율은 G7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35%였으나, 이를 절반에 가까운 21%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행 법인세 최고세율이 22%임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미국의 그것보다 더 높아진 셈이다.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한 미국정부가 법인세 감세 등의 세제개편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목표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에 있다. 세금을 대폭 깎아주면 기업들의 투자여력도 살아날테고, 일자리와 소득도 전보다 더 늘 것이니 소비 및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계산한 것이다. 이번 개편에서는 법인세율 인하는 물론, 세부담이 적은 기업들에게 부과되던 대체최저한세(alternative minimum tax) 제도도 폐지하였다.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경기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세금을 파격적으로 깎아준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잘사는 미국에서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법인세제의 개편동향은 어떠한가? 정부와 집권여당은 그동안 법인세를 포함한 증세방침을 밝힌 바 있다. 아직은 세제개편에 포함될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올 여름 발표될 세제개편안에는 법인세는 물론, 몇몇 세목들을 통한 증세방안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집권 당시부터 일자리 창출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으나, 그 성과가 뚜렷하지 않은지 최근에는 추경까지 동원하여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일에 매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에는 반드시 재정지출이 수반된다. 즉, 정부가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가 쓰는 돈은 가계와 기업들로부터 걷는 세금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결국 정부가 일을 벌인다는 것은 그만큼 세금을 더 걷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금을 더 거두어서 그 만큼의 효과를 얻는다면 증세가 부정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증세가 사실상 어렵다는 데에 있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내 돈을 정부가 전보다 더 많이 거두어 가는 상황, 즉 증세정책을 반기지 않는다. 이를 ‘조세저항’이라고 한다.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대개 투표권을 갖기 때문에, 납세자들이 싫어하는 정책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증세는 좋지만 그 저항은 싫은, 일종의 trade off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몇몇 세목들의 경우에는 증세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것으로 인식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이 법인세와 재산세이다. 특히 법인세는, 사실상 증세에 따른 조세저항이 가장 작은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납세자들은 세금이 외형적으로 누구에게 부과되는지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나 아닌 다른 이가 내는 법인세 인상에는 매우 너그럽고 관대한 것이다. 특히 법인세는 개인보다 부자인 기업들, 특히 큰돈을 벌어들이는 대기업들에게 부과되는 것이니,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나와 상관없는 세금’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따라서 법인세 인상에는 조세저항이 별로 없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기업의 오너와 그 일가에게 세부담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법인세 인상은, 부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정의로운’ 정책이라 인식하여 이를 적극 찬성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세의 형평성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최종적인 세금부담이 실제로 누구한테 돌아가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금부담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전가가 가능한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세부담이 전가되는 경우에는 최초의 세금부과대상, 즉 법적 납세의무자나 외형적인 세 부담자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법인세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은 아마도,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면, (당연히) 기업이 세금을 낸다’일 것이지만, 예상과는 달리, 실제 법인세 부담은 일반 국민들에게 고루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 그러한가?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면, 기업은 이를 비용으로 인식하여 공급을 이전보다 줄이게 된다. 이는 가격인상을 가져오게 되며 이 과정에서 세부담의 일부는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세상을 음모론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이들은 이러한 전가현상을 두고 ‘기업이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해서’라고 주장하겠지만, 사실 이는 시장의 본질, 즉 시장의 작동원리(working mechanism)에 따른 것이므로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법인세 부담의 일부는 1차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소비자와 나누고 남은 법인세 부담은 이제, 기업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생산요소, 즉 노동공급자와 자본공급자에게 전가된다. 노동공급자는 누구를 의미하는가? 직장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 근로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협력업체 등 생산활동범위가 큰 기업일수록 법인세의 전가효과도 넓어진다. 결국 법인세부담은 우리가 매일 만나는 봉급생활자들에게도 전가되는 것이다. 자본공급자는 어떠한가? 흔히 자본공급자라 하면 기업의 오너나 돈을 대는 큰 부자들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현대국가에서 기업의 자본공급자들은 이 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기업의 자본공급자는 주주와 다름 아니며, 대개 대기업의 주주는 오너 및 일가, 기관투자가, 소액주주 등으로 구성된다. 법인세 부담은 이들에게도 전가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법인세 부담은 소비자들에게 17%가량, 노동자들에게 9%가량, 그 나머지는 자본공급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우철, 김승래, 2016) 

 

혹자는 이를 두고 ‘기업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자본가들에 가장 많은 세금이 부과되니,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오너의 지분은 작으며, 소위 기관투자가들의 자본참여 비중이 높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기관투자자들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공공부분의 기금 등도 포함된다. 예컨대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이 중요한 기관투자가들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과 같은 공공부문의 투자자금은 누구의 것인가? 바로 연금과 사회보험의 가입자들, 바로 일반 국민들인 것이다. 주주의 또 다른 한축을 구성하는 소액주주들은 누구인가? 소위 개미군단이라고 불리우는 보통사람들이다. 결국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부문에 귀착되는 법인세부담 역시, 실질적으로는 대다수 일반국민들이 함께 부담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건 그렇지 않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경제는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법인세 부담을 높이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세금을 높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더 높은 세율을 부과하고, 비중있는 기업에 더 많은 세금을 부담시키면 조세 형평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일반국민들의 세금부담이 더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조세전문가들이 형평성 제고를 위한 법인세 증세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법인세 증세가 바람직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세계적인 흐름과 상당히 동떨어져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법인세 개편의 세계적인 동향은 ‘법인세 부담의 완화’로 뚜렷이 귀결된다. 기업에 세금을 낮추어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 소득 및 소비 개선, 경제활력 강화 등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세계각국은 경쟁적으로 법인세 부담을 인하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은 최근 파격에 가까운 세율인하와 과세구간 통합을 단행하였다. 최근수년간 일본, 영국, 프랑스 등 굵직한 경제대국들 모두 법인세율 인하경쟁에 동참하였다. 법인세율을 낮추지 않은 국가들은 캐나다(15%)와 독일(15.83%)처럼 법인세율 자체가 충분히 낮아 인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국가들이거나, 아니면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러 전반적 증세에 나설 수밖에 없는 그리스 등 몇몇 국가들로 국한되어 있다.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함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 때문이겠지만, 정책모순은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서도 관찰되어왔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을 가장 상위의 정책목표로 두고 있는 정부에서, 법인세 증세를 추진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긍정적이라 평가하기 어렵다. 구직자들이 원하는 실속 있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활동에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더 많은 일자리를 도모한다는 것은 누가보아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세계각국 보다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함으로써, 즉, 다른 나라들보다 선제적으로 세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법인세제의 경쟁력을 확보해왔던 것으로 평가된다. 심지어 기업에 대해 그리 호의롭지 않았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도 법인세율은 인하는 단행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부자감세 등 여론의 반대에 부딪쳐 주춤했던 사이에, OECD국가들이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추었으며, 조만간 우리나라의 세율이 OECD 평균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공언대로 법인세율이 인상된다면, 우리나라의 법인세제는 그 경쟁력을 대폭 상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세제개편의 화두가 ‘일자리 창출’에 있다면, 법인세제 개편 역시 이에 보조를 맞춤이 타당해 보인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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