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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고령사회에서 존엄사 논의의 필요성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 추세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7%인 고령화사회는 2000년에, 14%에 이르는 고령사회는 2017년에 이르렀으며, 2025년 현재는 이미 20%를 초과하여 초고령사회에 도달하였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의 기대수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여성 91세, 남성 84세로 남녀 모두 세계 최장수국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90세 장벽은 복지제도와 의학 발전 덕분에 깨지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65세 이상 노년층 중 1인 가구가 급격한 증가, 노인들이 겪는 소외나 차별, 사회적 배제와 노인 빈곤 등과 같은 문제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사회변화과정에서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죽음에 관한 낯선 문화와 윤리적 쟁점이 제기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도 돌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더불어 존엄사 논쟁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체계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존엄사의 개념과 법제화 관련 경향
의료기술의 발전이 생명연장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고통이나 죽음과정의 연장인가? 의사의 소명이 생명을 살리는 것인가? 아니면 환자가 원하는 죽음을 돕는 것인가? 죽음의 과정에서 자기결정권을 유지하고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안락사·존엄사는 의학, 법, 윤리, 철학 등이 얽힌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로, 국민 모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제다.
존엄사를 세계 최초로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는 네덜란드이다. 존엄사가 법제화된 국가는 네덜란드를 비롯해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콜롬비아, 뉴질랜드 등으로 많지 않지만, 점진적인 증가추세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말기상황에서 회복가망이 없는 환자, 정신적 질병, 치매 포함, 그리고 미성년자까지 대상이 확대되는 추세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스위스에선 '조력 사망'이 인정되어 죽음을 찾아 스위스로 떠나는 외국인들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요청했으나, 의료진과 가족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였던 2017년 목동이대병원 사건이 존엄사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8년에는 연명의료결정법, 2019년에는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을 발표해 시행 중이며, 2022년 존엄사 법안 제출, 2024년 조력존엄사법(안)이 재발의되면서 사회적 토론과 공론화 과정이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82%가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조력 존엄사는 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위 연구에서 조력존엄사 동의 이유는 ‘무의미한 치료 불필요, 죽음 자기결정권, 죽음고통의 감소“라는 이유를 들었다. 또한 연명의료에 대해 91.9%가 중단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중단을 원하는 이유는 ”의미없는 삶, 가족에게 부담, 고통 없는 죽음“ 때문이라고 응답하였다.
3. 존엄사 관련 윤리적 쟁점
균형 있는 사회적 토론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 존엄사 관련한 윤리적 쟁점 3가지를 살펴보려 한다.
첫째,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가? 먼저 존엄사는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기본권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고통을 줄이고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선택은 인간의 존엄성 관점에서 당연한 권리일 수 있다. 하나의 선택안으로 존엄사가 존재한다면 말기 환자나 극심한 고통을 겪는 환자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중증 환자와 가족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고,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은 통증없는 죽음으로 인식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온전한 개인의 자기결정이 가능한가는 의문이다. 환자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보호자쪽으로 결정권이 넘어가고, 환자의 치료 경과나 예후에 대해서도 당사자보다는 보호자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둘째, 의사가 존엄사에 개입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의사의 역할, 의료진의 개인적 신념과 직업적 의무등 의료진의 직업적 윤리에 대한 문제가 야기된다. 의료진의 전문성은 복잡한 윤리적, 법적 문제에서 존엄사가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선택인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환자의 상태와 질병의 평가하고 적절한 치료나 대안에 관한 전문 지식은 의료진만이 가지고 있고 환자의 상태와 가능성을 기반으로 윤리적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의료인의 사명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었고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경우 의료진 역할에 대한 딜레마적 상황에 대한 부담뿐 아니라 형사적 책임까지 제기될 수 있다.
셋째, 경제적,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접근성이 존엄사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촉진되면, 죽음과 관련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보다 성찰적인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존엄사의 법제화는 생명이 연장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효율적인 치료를 줄이고, 의료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사회적 여건에 따라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치료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존엄사에 필요한 의료적 지원이나 치료의 비용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 즉 존엄사 제도가 오용되어, 죽음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에 내몰린 사회적 압력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취약계층은 치료중단 압박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존엄한 마무리를 준비하는 사회로
초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우리사회는 ‘어떻게 살 것인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여 존엄한 마무리를 준비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존엄사는 개인의 선택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독거노인의 경우 스스로 정해놓은 죽음의 방식이 있더라도 이를 실현하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따라서, 법제화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논의가 필요하며,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존엄사 법제화는 초고령사회에서 여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윤리적, 사회적 부작용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물론 사회적 논의과정에서 존엄한 죽음을 뒷받침할 시설과 제도, 즉 의료비 지원과 간병지원 체계마련, 호스피스 완화의료 확층 등 실질적인 제도적 확충을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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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5년03월23일 16시40분
- 최종수정 2025년03월22일 11시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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