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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정치 탈출과 지식인의 역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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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1월07일 17시23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08일 11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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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으로 새해를 맞​아

 

혼돈으로 새해를 맞았다. 장관, 감사원장, 방송통신위원장, 검사 등에 대한 탄핵이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단행되었고, 이는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대통령의 탄핵 의결과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 탄핵으로까지 나아갔다.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결정될 것이다. 국회에서 다수당으로서 탄핵과 각종 입법을 주도하고 있는 야당 대표는 여러 재판의 판결로 자신과 당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앞으로의 사법 일정에 정부와 당의 정치적 운명이 정해지게 된 것이다. 다만 그 시기가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놓고 극한 대립과 전략이 남발하고 있다. 

이러한 국회와 정부 간의 극한 대립은 우리 역사에 전례가 없을 정도 지극히 비정상이다. 더더욱 비정상인 것은 이런 정치권의 대립과정에 더해진 국민 간의 극한 분열 상황이다. 5년 전 ‘조국 사태’에서 보여 준 진영 간 대립상황보다 더욱 심각해졌다. 우리 역사에서 이만큼 국민 간의 대립이 심했고 또 대외에 노출된 적이 없었을 정도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타나듯이 대한민국 정치와 사회 모든 부문은 지금 비정상의 극에 달해 있고 분열과 대립으로 비정상 팬데믹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두 가지 역사적 장면​


국론이 분열되고 대립하던 역사적 장면으로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의 장면은 병자호란(1636년)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해 있는 동안이었다. 청을 인정하고 협상을 하자는 주화파인 최명길과 끝까지 싸우자는 척화파인 김상헌 간의 논쟁이 그 중심이었다. 청의 침략에 맞서 명과 황제에 대한 사대의 명분을 지킬 것인지, 백성의 안위를 앞세우며 나라부터 살리고 볼 것인지 실리 싸움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의 격돌이 가슴 아팠던 역사였다. 그리고 두 번째 장면은 나라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풍전등화에 처해있던 19세기 말 상황이다. 일본, 러시아, 중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고종의 행보에서 수많이 군신들이 보여 준 분열과 대립은 결국 망국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역사적 장면은 정치싸움으로 결국 나라가 굴복하고 국권이 침탈되는 치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국민 간의 분열과 대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작금의 극단적인 정치대립은 국민과 사회의 극한 분열과 대립으로 증폭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우려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섯 가지 갈등

그동안 우리는 지역, 계층, 이념, 세대, 젠더 간 갈등이라는 다섯 가지 갈등으로 오랜 기간 시달려왔다. 지역갈등은 남과 북이 갈라진 한반도에서 우리 국민을 가장 오랫동안 분열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지역갈등은 정치적인 이유로 조장되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되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직도 영호남의 정치적 선호도는 극명하게 대립하면서 선거 때마다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지역갈등이 정치적 근원에서 시작되었음에도,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기보다는 많은 정치인이 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충족시키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두 번째 갈등인 계층 간 갈등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노와 사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반목을 근거로 한다. 이 또한 정치적으로 조장되어 온 측면이 강하다. 선거 때마다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을 의식해 가진 자와 대기업을 혼내 주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표를 얻는 후보가 많아지고 있다. 세 번째는 진보와 보수, 그리고 좌와 우 간에 벌어지는 ‘이념 갈등’이다. 그런데 사실 이념과는 관계없는 이슈에 대해서도 진영 간 대립 구도를 형성한 채 극렬하게 갈등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이슈가 제기되면 진영 간에 입장을 서로 다르게 표명하면서 대립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세대 갈등’이다. 세대 간 갈등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연결되면 더욱 심화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세대 간 갈등을 이용하여 표몰이를 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젠더갈등’이다. 그동안 경제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여성의 차별을 해소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이제는 양성 간 대립 양상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2022년 대선 과정에서는 ‘이대남 이대녀’라는 용어가 나타났을 정도로 젠더갈등이 정치적으로도 이용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동안의 젠더갈등에 상대적으로 침묵을 지키던 20대 남성을 정치적으로 대변하겠다는 특정 정당과 이에 반발하는 정당 간 선거 과정에서의 대립이 젠더갈등을 한층 더 심화시켰다. 이제는 이러한 젠더갈등이 세계 최저 출산율의 원인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다섯 가지 갈등 구조는 오늘날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댓글 문화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대립하고 갈등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사이버 공간에서는 갈등 구도로 나타나면서 갈등이 생활화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기능을 갖추지도 못하고, 또 그런 노력을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늘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고질적인 갈등 구조의 문제가 포퓰리즘이 더해지면서 더욱 심화하고 장기화하고 있다.

 

팬덤 정치·사회가 되어

심각한 문제는 지역, 계층, 이념, 세대, 젠더 등에 더해서 이제는 진영 간 대립 양상으로 치닫는 팬덤 정치·사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팬덤 정치가 정치 양극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기도 했다.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팬덤이 이제 정치와 사회적 현상이 됨으로써 극성 지지자들의 입김과 이득이 비정상적으로 정치에 반영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동안도 팬덤은 우리 정치와 사회에 조금씩 나타나던 현상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정치의 주된 현상이 되거나 또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커진 적은 없었다. SNS와 유튜브 등이 기존 레거시 언론을 주도하는 상황이 생기고 각종 포털도 알고리즘에 의해 독자들이 보던 것들을 더욱 보도록 만드는 쏠림현상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팬덤과 양극화가 심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만큼 정치적 이익을 위한 프로파겐더와 대중조작이 쉬워지기도 한다. 자신이 속한 팬덤 사회에서의 심리에 동화되며 사실을 무시하고 전문가의 지식을 인정하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극단적 분열을 극복하는 방안​


팬덤 정치 혹은 정치 양극화와 같은 극단적 분열을 극복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한 최근의 책으로 피터 콜먼(Peter Coleman)의 『분열의 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혐오와 갈등을 증폭하는 정치적 양극화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콜먼이 책에서 소개한 인디언 체로키 부족의 오래된 이야기가 흥미롭다. 체로키 부족의 장로가 손자에게 두려움, 분노, 시기, 탐욕, 오만이라는 한 마리의 늑대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관대, 믿음이라는 다른 한 마리의 늑대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이를 들은 손자가 어느 늑대가 이길 것인지 묻는데, 인디언 장로는 손자에게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다”라고 대답한다. 콜먼은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현대를 사는 우리도 스스로 분노하고 두려워하면서 분노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끊임없이 상대를 경멸하면서 자신은 옳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이를 주변까지 점점 물들인다. 이처럼 우리 내부에서 폭력적인 늑대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희망의 늑대는 결코 나타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같이 복잡한 분열과 갈등에서는 소통과 교류가 자칫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오히려 갈등의 지형 자체를 바꿀 것을 주문한다. 친절한 늑대를 살려내자는 것이다. 더 정의롭고 관대한 곳으로 향하는 것에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자고 주장한다. 정치 양극화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시민의식과 양심을 화두로 사회를 정상화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우리에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기존의 분열과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팬덤 정치가 덧붙여짐으로써 더욱 해결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정치가 가지고 있던 후진성과 편협성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는 점도 우리가 처한 심각한 현실이다. 진영에 갇혀 어떤 정치·사회적 규범이든 자신에게는 유리하게, 상대에게는 불리하게 해석하고 비판하는 풍토에서는 서로를 이해하는 시도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콜먼의 해법과 같이 정의와 관용에 관심을 키워 정치 양극화라는 분열에 관한 관심이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양심’이 시민의식 운동, 나아가 사회운동의 주요한 화두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실을 말하고 행하는 양심을 되찾자​


분명한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진실의 우수함과 편함을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고 행하는 양심을 되찾자는 것이다. 노정태는 『불량정치』에서 철학자로서 그동안 우리 정치를 목격하면서 우리 정치가 얼마나 불량해졌나를 설명했다. “거짓말쟁이를 추궁하면 계속 거짓말을 한다. 그래도 끝까지 물어보면 나중에 의심당하는 자신이 불쌍하다는 것으로 피해자 행세를 하거나 되레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중략)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진실’이다. 설령 그 진실이 아프고 ‘우리 편’에게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거짓이 아닌 진실을 택해야 한다. ” 노정태의 주장처럼 사후에라도 거짓이 거짓임을 반드시 밝혀내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거짓을 사후적으로 판별해서 책임을 묻는 과정이 생략되거나 관심이 없어지면 많은 사람이 거짓에 대해 거리낌이 없어진다. 나아가 진실을 말하고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저하게 된다. 자신의 진실이 거짓을 일삼는 다수에 의해 손해를 보게 된다는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다. 거짓에 대한 대가가 분명할 때 비로소 진실이 움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야 진실을 말하고 행하고자 하는 양심이 작동하게 된다.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라는 용어가 있다. 밀러와 에프론(Miller and Effron)은 이를 “한때 자신의 자존감과 명성을 위해 선한 행동을 했던 사람이 이와는 모순되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면서 마치 이렇게 행동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강준만은 『강남 좌파 2』에서 팬덤 형 정의파들의 ‘내 멋대로 정의’를 설명하면서 이러한 도덕적 면허 현상은 정의를 빙자한 악성 댓글과 같이 사이버 공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고 윌리엄 맥어스킬(William MacAskill)이 『냉정한 이타주의자: 세상을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에서 지적한 것을 인용했다. “도덕적 면허 효과는 사람들이 실제로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착해 보이는 것, 착한 행동을 했다고 인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처럼 거짓을 말하고 행하며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도덕적 면허 의식을 가진 자들이 많을수록 우리 정치 양극화는 치유되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양심 정치를 오래전부터 주창해 온 윤홍식의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홍식은 『양심 정치: 양심이 승리하는 세상』에서 정치란 결국 국민의 양심을 만족하게 하는 것일 수밖에 없음을 일깨운다. 그는 국민의 양심적 집단지성은, 정확한 정보만 주어지고 특정 정치 집단의 세뇌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식인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할 때​


그래서 이러한 양심 사회의 복원을 위해서는 지식인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전 국가와 사회가 위기에 처하거나 혼란에 빠져서 국민이 불안해하고 화가 나 있을 때는 어김없이 나타나 국민이 진정하고 귀를 기울여 듣던 그런 지식인의 목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지식인에 대한 신뢰와 상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이라는 지식인의 대체 상품 출현, 이 두 가지로 지식인이 정말 필요한 상황에서도 지식인을 찾는 노력조차 못 하는 실정이다. 지식인으로서 나서고 싶어도 불신과 비난을 무서워하며 그냥 조용히 있자고 주저앉는 사례도 많다. 자칫 나섰다가 SNS상 뭇매를 맞을까 두려워하는 지식인도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냉정해져서 지식인을 찾아내고 이들이 다시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위선·가식에 휘둘리지 말고 지식인을 눈을 부릅뜨고 찾아내서 그들이 국민과 함께 나서도록 해야 한다. 

 

이제 팬덤 정치를 극복하고 사실에 근거하여 미래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국민운동이 절실하다. 그 어떤 이유에서도 계엄과 같은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듯이, 그 어떤 상황 논리로서도 위법 사실과 이 위법을 밝혀내려는 법적 과정을 방해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어서도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팬덤 정치에 의존하는 정치 양극화 상황에서, 팬덤의 양쪽 리더들이 설 땅이 없어지도록 양심 세력의 중간지대가 형성되도록 지식인과 국민이 뭉쳐야 한다. 이러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의 모든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이 글은 필자의 아래 책 4부의 일부분에서 발췌한 내용을 포함하였음. 

안종범, 『G3 대한민국: K 국부론에서 길을 찾다』, PERI 정책 시리즈 #3, 렛츠북, 2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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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1월07일 17시23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08일 11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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