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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으로 가는 길: 중소·중견 기업 지원정책의 전환방안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5년01월03일 17시12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01일 15시24분

작성자

  • 김민호
  •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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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글로벌 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의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매출액과 생산성 등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승자선정의 위험’에 기인한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소·중견 기업의 성장 도약을 지원하는 정책의 유인구조를 개편하여, 기존의 단순한 보조금 지원에서 벗어나 기업이 직면한 과제를 민간투자, 컨설팅, 네트워크를 활용해 함께 해결하는 비스포크(bespoke)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책의 책임성과 효과성 제고를 위해 지원 내역과 성과정보를 통합관리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Ⅰ. 문제의 제기

 

전 세계적으로 ‘산업정책’이 귀환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이 발생하였고, 미·중을 비롯한 선진국 간의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었다. 이에 반도체, 인공지능, 탄소중립 산업 등 전략적 분야에서 자국의 경제와 기술을 우선시 하며 적극적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뉴 워싱턴 컨센서스’가 새로운 국제 경제 질서로 부상하였다.

 

산업정책은 국가의 산업경쟁력 강화 및 경제성장이라는 목표하에서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고 기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시도되는 일련의 정부 정책을 의미한다. 산업정책에 는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보편적인 기업환경 개선에 목적을 두는 ‘수평적(horizontal)’ 산업정책과 특정 대상을 선별하여 지원하는 ‘선별적(targeted)’ 산업정책이 있다. 선진국들은 수평적 산업정책이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선별적 산업정책을 통해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선별적 산업정책의 주요 전형 중 하나에 해당하는 ‘국가 챔피언(National champion) 기업 육성정책’은 정부가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선정하여 재정 및 기술개발 지원,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을 돕는 산업정책에 해당한다.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은 성공할 경우 해당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기업으로 발전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분야에서 경제안보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은 기술, 에너지, 방위 등 국가 이익에 중요한 전략적 분야에서 합작사 설립(예: 일본의 르네사스, 라피더스 등)을 지원하거나, 특정 산업의 대기업을 육성(예: 유럽의 Airbus, 한국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행되고 있다.3) 하지만 국내외 연구에서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의 효과성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며, 각국의 다양한 사례나 효과적인 정책에 대한 논의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본 연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유망 기업을 선별하여 글로벌 수준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기업 성장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모색한다. 대표적으로 ‘월드클래스300’ 사업은 세계적 수준의 기업 육성을 통해 성장동력과 질 좋은 일자리를 확충하는 것을 목표로, 2011년부터 매년 5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소수의 기업을 선별하여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 외에도 ‘글로벌 강소기업 1,000+’, ‘강소기업 100+’, ‘그린뉴딜 유망기업육성 100’ 등 다수 정책이 유사하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한편,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2025년 신규 사업으로 ‘도약(Jump-up)’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유망 기업에 대해 컨설팅과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 중 하나인 월드클래스300 사업의 시행 방식과 효과를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 지원 방식의 실효성을 논의하고, 지원방식 전환을 통해 정책의 효과성을 제고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의 수단을 단기적인 보조금 지원에서 벗어나 성장 병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실질적’ 지원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가진 기업들이 직면한 성장 병목 현상은 해당 기업의 특수한 문제로서 단순한 보조금 지원만으로는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적용된 사례를 참고하여 기업의 개별적인 수요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른바 ‘비스포크(bespoke)’ 방식의 새로운 지원 모델을 제안한다.

 

Ⅱ. 월드클래스 300 사업의 특성

 

본 연구의 분석대상인 월드클래스300(이하 WC300) 사업은 중견기업 육성정책의 주요 사업으로 2011년부터 시행되었다. 본 사업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혁신경제 분야 핵심과제인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 대책에 포함되었다(기획재정부, 2014. 3. 5). 사업명처럼 300여 개 기업을 월드클래스 기업으로 도약하게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R&D 자금(기업당 연간 15억원 이내 3~5년간 지원), 인력, 금융, 컨설팅 등의 지원시책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8,374억원의 정부출연금으로 매년 30~56개 기업을 선별하여 지원하였다. 2021년부터는 월드클래스300플러스 사업으로 변경되어 시행 중이다. 본 사업에는 연 매출액 4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인 기업 중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이 15% 이상이거나 최근 3년간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이 평균 2% 이상인 기업들이 지원할 수 있다. 규모가 상당히 큰 동시에 성장성 또는 연구개발 비중이 높은 기업을 지원대상으로 설정한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부터는 직간접 수출 비중 20% 이상인 기업이라는 지원 조건을 추가하며 상당 수준의 수출 역량을 갖춘 기업을 대상으로 하였다. WC300은 성장의지와 잠재력을 갖춘 중소 · 중견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도록 소수의 유망 기업에 자원을 집중 지원한다는 점에서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에 해당하며 폭넓은 범위의 중소 · 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여타 사업과 차별화된다.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은 4개 분야(수출확대, 기술확보, 투자, 경영혁신 및 고용)에 대한 성장전략서를 제출한다. 이후 평가위원회에서 기술확보, 수출확대, 히든챔피언 달성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지원대상을 선정한다. WC300 기업의 선정 및 평가, 사업 운영은 모두 정부의 전담기관을 통해 정부 주도로 진행된다. 지원 역시 해당 기업에 대한 민간의 투자가 아닌 정부의 보조금으로 기술개발 및 글로벌화 추진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여 이루어진다.

WC300 사업의 연도별 선정 건수와 지정취소 건수, R&D 과제 정부지원 금액을 <표 1>에 나타냈다. 2011년부터 2018년 사이에 313개 기업이 선정되고 그중 42개 기업이 자진철회, 자격미달 등의 이유로 지정 취소되어 271개 기업에 R&D 과제 한 건당 평균 31.5억원이 지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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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300 사업의 지원을 받은 기업의 성과를 분석하기에 앞서, WC300의 신청 자격조건 중 매출액 성장률 기준(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 15% 이상)을 충족한 기업의 비율을 살펴보자. [그림 1]에 사업 시행 기간의 해당 기업 비율 추이를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구분하여 나타냈다. 서비스업의 경우 그 비율이 낮아졌으나 감소폭이 크지 않다. 하지만 제조업의 경우 2011년에는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이 8.5%였으나, 2015년부터는 그 비율이 3%로 감소하였다. 제조업에서 경제 역동성이 크게 감소하였고 WC300 지원 대상 기업이 대부분 제조업 기업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WC300 지원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을 찾기 어려워졌다. 지원조건을 만족하는 기업이 줄어들면 지원의 효과성이 높은 기업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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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월드클래스300 사업의 효과성 분석

 

WC300 사업의 지원을 받은 기업의 성과를 살펴보자. 계량 모형을 적용하여 WC300 지원기업의 지원 전 특성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기업을 대조군으로 삼고 성과 비교를 통해 WC300 사업의 효과성을 분석하였다. 본 분석 결과는 WC300 지원기업의 평균적인 성과가 아니라, 보다 엄밀한 기준으로 선별된 비교 기업 대비 상대적인 성과를 의미한다. 분석기간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로, 연도별 대조군 선정시 WC300 사업 신청 자격조건(매출액 규모를 충족하면서 매출액 성장률 또는 R&D 투자비율 기준 충족)에 부합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였다.

 

WC300 지원기업들의 성과를 기업 특성이 유사한 미지원기업들과 비교 · 분석한 결과, 매출액과 부가가치에서 지원사업의 효과가 유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표 2). WC300을 포함하여 기업 성장 지원정책은, 정부 지원이 필요한 기업에 지원이 되었다면, 성과가 기업의 매출액 증가로 나타나야 한다. <표 2>에서 매출액에 대한 효과 추정치 0.07은 지원기업이 미지원기업 대비 지원 후 3년간 매출이 7%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결과는 소수 기업의 매출 증가에 기인한 결과로, 지원기업 중 상당수가 지원 이후 오히려 낮은 매출 증가율을 보였기 때문에 정책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 기업을 선별하여 집중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성장 도약을 달성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생산성 향상이나 성장촉진을 위한 투자에 자금이 절실히 필요한 기업보다, 성장 잠재력이 낮거나 자금 필요성이 크지 않은 기업에 보조금이 지원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지원기업의 유형자산이 미지원기업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조금이 투자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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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측면에서 WC300 사업의 영향을 분석했을 때, 종사자 수, 연구개발비, 특허권 수, 수출에서 유의한 성과를 보였다. 연구개발비 지원을 통해 WC300 사업이 기업의 기술자산 증가에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의 비율로 측정되는 연구개발 집중도는 유의하게 높아지지 않았다. 이미 연구개발 집중도가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개발비 지원이 기존 연구개발비 지출을 대체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종사자 수와 수출이 각각 지원 이후 3년간 연평균 4%, 9.3% 증가한 결과는 일자리 창출과 글로벌한 성장을 지원한다는 WC300의 사업 목적에 부합하는 성과로 볼 수 있다. 수출이 유의하게 증가하였어도 매출 및 부가가치가 유의하게 증가하지 않은 결과는 수출이 국내 매출을 대체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수출 과정의 물류비, 원자재 비용으로 인해 수출 상승이 부가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매출액에서 수출을 제외한 국내 매출의 경우, 유의하진 않지만 평균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성 지표와 인당 노동비용은 유의하진 않지만 오히려 감소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생산성 지표와 인당 노동비용은 각각 기업의 경쟁력과 일자리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주요한 지표이다. WC300 사업이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조직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WC300 사업은 선정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 없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하기 어렵다. 또한 기업이 해외 관계회사에 투자하는 금액도 증가하지 않아 적극적인 투자를 통한 해외 진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WC300 사업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중소 · 중견 기업을 국제시장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도약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을 통한 지원이 기업의 성장 도약 혹은 경쟁력 향상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분석 결과는 기업 선별과 지원 방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Ⅳ. 정책 지원 방식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은 중소 · 중견 기업의 혁신 역량 강화와 수출 증대를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자리 및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양극화를 완화하는 데에도 기여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기업을 선별하여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시행할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지원대상 기업을 선별하는 정부에 가용한 정보가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의 효과성은 정부가 올바른 대상을 선별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하지만 대상 기업의 혁신 및 성장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정부가 민간 투자기업보다 잘 알기는 어렵다. 둘째, 기업은 지원 수혜를 위해 생산적인 활동보다는 로비와 지대추구에 집중할 유인이 있다. 현재 정부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관련된 사업계획서 등을 작성해 주고 지원 수혜 시 그 금액의 일정 비율을 가져가는 컨설팅 회사가 존재할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원이 낭비되고 정책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대상이 선별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선별적 지원으로 소수 기업만 혜택을 받게 되어 시장경쟁을 왜곡할 수 있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을 지원하면 오히려 지원정책이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초래하여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포괄하여 선별적 산업정책이 내포한 ‘승자 선정의 위험(The risk of picking winners)’이라 우리나라는 중소·중견 기업의 혁신 및 수출 촉진을 통한 성장동력과 일자리 확충을 주요 목적으로 국가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선별적 지원으로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에 자원이 집중될 경우 경제의 효율성이 저해될 수 있으며,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

 

OECD(2013)는 성장 잠재력이 높고 조직 변화를 겪고 있는 기업의 경우, 보조금과 같은 ‘거래적 지원’보다 사업 멘토링과 전략적 조언 등의 ‘관계적 지원’이 성장에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해당 연구는 성장 잠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기업이 직접적인 재정지원 방식을 선호한다는 점도 발견했다. 따라서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이 보조금 지원과 같은 재정적 수단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승자 선정의 위험이 커지고 정책이 의도한 대상에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더해, 보조금을 R&D 활동에만 한정하여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차원의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OECD(2021)는 기업 성장에 있어 R&D뿐만 아니라 경영 및 조직 혁신, 무형자본 투자, 디지털 전환, 해외 진출 및 협력 등 다차원적인 요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이 반드시 집중적인 R&D 활동을 통해서만 성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 가지 차원에만 집중하는 지원은 기업 성장에 효과적이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정책은 성장 과정의 다차원적 특성을 반영하고 개별 기업의 요구 사항에 맞춘 지원을 제공할 때 효과적이다(그림 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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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해외 정책 운영 사례

 

이러한 배경에서 OECD(2013)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의 성장 도약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스코틀랜드의 ‘Companies of Scale’ 프로그램의 주요 특징으로, 기업에 매우 맞춤화된 지원을 제공하며 ‘고정된’ 지원방식을 따르지 않는 점을 강조하였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지원의 주요 수단은 혁신을 위한 거래적 지원보다는 경영 및 조직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 영국의 혁신기관인 Innovate UK는 대표적인 기업 지원 프로그램인 ‘Scaleup programme’을 비스포크(Bespoke) 수행 모델로 설계하였다. 해당 프로그램은 산업 혁신 및 글로벌 진출 가능성 그리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지원한다. 지원방식은 1:1 맞춤형으로 기업의 특정 요구사항을 함께 해결하는 방식이다. 스케일업 경험이 있는 기업가로 구성된 스케일업 디렉터가 현장을 방문하여 지원이 필요한 기업을 평가하고, 직접 작성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업을 선별한다. 스케일업 디렉터는 기업을 전담하여 주요 과제를 식별하고 금융, M&A, IP, 공급망, 인재관리 등 필요한 부분에 전문가 및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해당 프로그램 시행 2년 이후 독립적인 중간 평가 결과, 지원된 79개 기업이 총 773개 일자리와 4,670만파운드의 수익을 창출하여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1:25.6(공공투자 1파운드당 25.6파운드 창출)으로 나타나 기업을 지원하는 다른 프로그램 대비 매우 높은 성과가 나타난 정책으로 평가되었다.

 

최근 주요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의 또 다른 특징은, 기업의 고유한 니즈를 지원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민간 서비스를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는 점이다. 유럽혁신위원회(EIC)의 ‘Scaling Club’은 EU에서 딥테크 기업을 선별하여 맞춤형 코칭, 관련 비즈니스 파트너 및 투자자와의 연결을 통해 기업 가치를 연평균 40% 이상 성장시키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유럽혁신위원회의 역할은 기업, 투자자, 비즈니스 파트너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투자자 중심의 민간 커뮤니티인 Tech Tour와 혁신 기업 액셀러레이팅 커뮤니티인 Hello Tomorrow를 파트너로 선정하여 민간 투자자와 전문가를 연결하고 있다. 이들은 테크 생태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클럽(Scaling Club)에 포함될 기업을 선별하고 평가하는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정부가 지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반면, EU에서는 기업 선별과 자금 지원을 민간이 주도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 · 운영한다는 점이 차별적이다.

 

Ⅵ. 정책 제언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의 주요 운영방식 및 지원수단을 기업이 직면한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비스포크 수행 모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비스포크 수행 모델은 개별 기업의 성장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 내 기능이 해당 성장전략에 적합한지 평가하며, 이를 실행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지원방식의 전환은 기업으로 하여금 실제 성장 전환점을 맞이하게 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를 가진 경영진 혹은 기업이 지원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 일시적 보조금 지급은 성장 잠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기업이 신청할 유인이 높은 방식이므로, 이러한 지원방식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비스포크 수행 모델로의 전환은 지원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에 해당하며, 정책 담당자와 지원기관의 업무방식이 기업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재구성 및 전문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선별방식, 지원수단 등 사업 운영 전반을 민간 투자 및 전문성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민간투자는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 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맞춤형 수행 모델은 네트워크, 경영 자문, 기술 지원 등을 통해 기업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월드클래스300플러스 사업 등 우리나라의 국가 챔피언 기업 육성정책 중 대표 정책을 선정하여 비스포크 수행 모델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으며, 운영방식은 [그림 3]을 참고하여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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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선별) 스케일업 경험이나 전문 지식이 풍부한 디렉터가 중심이 되어 현장 방문을 통해 상세한 평가서를 직접 작성하여 지원의 효과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디렉터는 기업을 전담하여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되므로 기업 선별을 통해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다. 민간투자를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는데, 민간투자가 선행된 기업 중에서 선별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지원계획 수립 및 수행) 디렉터가 각 기업에 배정되어 정해진 기간 동안 1:1 맞춤형 자문 및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디렉터는 영국의 ‘Scaleup programme’처럼 재무, 인수합병(M&A), 국제시장, 지식재산권, 공급망, 리더십, 인재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업 스케일업 경험이 있는 전문가 풀을 공개적으로 구성 및 운영할 수 있다. 단기간에 구성이 어려운 경우 민간의 전문 컨설팅 회사를 주요 파트너로 지정하여 협력할 수 있다.

 

(성장과 네트워크) 지원사업의 주요 기능은 네트워크 조직을 구성하는 데 있다. 이 네트워크는 지원기관이 액셀러레이터, 투자사, 컨설팅 및 전문서비스 기업, 대학 등을 협력사로 선정하여 운영할 수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 투자자와 액셀러레이터를 연결하여 자금과 컨설팅을 제공하고, 기업의 수요에 맞춰 IP, 기술개발, 해외 진출 등과 관련된 민간 컨설팅 서비스를 활용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

 

비스포크 수행 모델은 기업이 직면한 과제에 중점을 두고, 정책의 지원수단을 민간이 주도하여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려는 기업보다 실제로 혁신 기술을 개발/상업화하기 위해 민간 자금이 필요한 동시에 스케일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프로그램에 지원하도록 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성장사다리 구축 방안의 주요 사업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신설한 ‘2025년 도약(Jump-up) 프로그램’은 비스포크 수행 모델을 참고하여 설계되었다. 본 프로그램 이외에도, 기존 정책 중 성장 잠재력이 높은 유망 기업을 선별하여 지원하는 사업의 운영방식을 비스포크 수행 모델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기존 지원사업의 지원방식 전환과 함께, 지원사업 전반의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는 정부 지원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모든 기업의 지원정보를 통합 관리하고, 개별 기업에 대한 지원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지원사업의 책임성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효과성 분석을 통해 지원 사업 및 기업 선별방식을 개선할 수 있다.18) 현재 중소기업 지원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 통합관리시스템(SIMS)을 통해 관리되고 있으나 자금지원 내역이 기업 단위에서 공개되지 않아 책임성이 저하되고 특정 기업으로의 지원 쏠림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usaspending.gov와 같이 모든 지원사업을 대상으로 국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플랫폼을 구축 · 운영함으로써 정보를 공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그림 4 참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지원 내역 공개 관련 법 개정 및 표준화된 데 이터 보고 관리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국가재정법」에 정부 지원금에 대한 각 부처 및 기관의 집행 내역을 개별 수혜자 단위까지 관리하고 공개하도록 명시할 수 있다.

 

정부지원 공개와 함께 지원사업의 평가방식 또한 개선되어야 한다. 정부지원사업은 성과가 저조한 것으로 평가되어도 사업을 적극적으로 구조조정하거나 폐지할 유인이 낮다. 민간기업이라면 어떤 사업이 성과를 보이지 않는 경우 훨씬 빠르게 구조조정을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평가는 효과적인 정책 거버넌스의 핵심이다. 독립평가 조직 운영을 통해 사업의 설계, 기업 선별 및 운영 과정, 성과 전반에 대해 평가하고 개선 사항을 권고하도록 할 수 있으며, 사업의 담당 부서는 이러한 권고를 바탕으로 사업을 개선하며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제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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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신규 정책 시행 시 파일럿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하여 시행착오로 인한 비용을 줄이고 사업의 효과성을 제고할 수 있다. 영국의 ‘Innovate UK Scaleup’ 사업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29개 기업을 지원하였고, 파일럿 프로그램 운영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실제 스케일업 경험이 있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스케일업 디렉터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사회 구조의 지원방식을 설계하였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비스포크 방식으로 설계된 도약(Jump-up)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신규 사업의 초기 지원기업을 대상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지원 이후 기업 인터뷰 및 면밀한 성과평가를 적극 반영하여 정책 효과성을 제고할 수 있다.<K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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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KDI  FOCUS](2024.12.19)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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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5년01월03일 17시12분
  • 최종수정 2025년01월01일 15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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