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폭풍전야 2025년 중동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12월24일 14시37분
  • 최종수정 2024년12월24일 13시41분

작성자

  • 성일광
  • 서강대학교 유로메나 연구소

메타정보

  • 2

본문

 

작년 10월 7일 하마스가 알아크사 홍수작전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중동정세는 거대한 격변을 겪고 있다. 20세기 중동 분쟁이 아랍-이스라엘 분쟁이었다면 20세기 말 1979년 이후부터 21세기는 이란-이스라엘 분쟁의 시대이다. 20세기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 분쟁이었다면 21세기는 이스라엘과 이란 그리고 이란의 연대조직 간의 분쟁이다. 20세기가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압박하기 위한 전쟁이었다면 21세기는 이스라엘의 절멸을 추구하는 전쟁이었다. 그 정점에 작년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작전이 있다.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시작된 분쟁은 역내로 확전되었다. 하마스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참전한 조직은 레바논의 헤즈볼라이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란이 레바논의 시아파 조직을 규합해 만든 단체이다. 헤즈볼라의 주 목표는 레바논에 이란과 같은 신정정치 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이에 앞서 역내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줄이고 퇴출시키는 과업에 먼저 집중해왔다.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헤즈볼라의 뒤를 이어 예멘의 후티 세력이 하마스와 연대를 표하며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후티는 이란의 12이맘파 시아파와 다른 자이디 시아파이다. 후티는 이란의 지원으로 발전된 드론과 미사일 무기체계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다. 후티는 홍해를 지나는 이스라엘 선박과 서방 선박 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어 물류와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전쟁 중 시리아 이란 영사관을 공습해 이란혁명수비대 알고도스 소속 장성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를 암살했다. 이에 대응해 이란은 4월 14일 최초로 이스라엘 본토를 350여기의 탄도미사일, 순항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공격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와 요르단은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과 드론 60%를 요격해 이스라엘을 도왔다. 미국은 항공모함을 걸프지역으로 급파해 이스라엘을 돕고 확전을 차단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 방공망은 2020년 이스라엘과 UAE와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해 관계 정상화한 이후 미국이 추진한 중동방공망(MEAD)이다. 사우디아리비아와 UAE는 이란의 동향 정보를 제공하며 이스라엘을 도왔다. 가자 지구 전쟁은 이미 역내 전쟁으로 확전되었다. 미국과 이란이 충돌할 가능성은 낮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해 온 반면 이란은 연대조직 헤즈볼라, 하마스와 후티를 뒤에서 지원해왔다.

 

주지하듯 가자전쟁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아니다. 가자전쟁을 넓은 시각으로 보면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이다. 하마스는 오랜 기간 이란의 무기와 재정 지원을 받아왔다. 헤즈볼라와 후티 역시 이란이 지원해 온 조직으로 이란의 연대조직으로 볼 수 있다.

 

이란이 반이스라엘 반미국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이다. 혁명 이전 이란은 대표적인 친미국가였으나 혁명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이란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억압하는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것을 국시로 정하고 역내에 연대조직을 조성했다. 이런 연대조직으로 ‘저항의 축’을 만들고 이스라엘을 에워싸는 ‘하나의 전선’을 구축해 ‘불의 고리’를 만들어 온 게 이란의 전략이었다. 작년 가자 지구 전쟁 이후 이 저항의 축이 불의 고리를 만들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다.

 

존스 홉킨스 대학 이란 전문가 발리 나스르 교수는 이미 2000년대 초반 시아파의 부활(The Shia Revival)이란 저서를 통해 시아파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다. 20세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동은 순니파 주도의 세계였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미 19세기에 논의되기 시작한 아랍 민족주주의가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전까지 아랍과 이슬람 세계의 주 담론이었다. 1950년대 이후 아랍세계를 구가한 사상은 누가 뭐라 해도 아랍민족주의였다. 1952년 이집트 자유장교단의 혁명 이후 가말 압둘 나세르는 이집트는 물론 아랍세계를 통합하기 위해 아랍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아랍민족주의 담론이 시들기 시작한 것은 3차 중동전쟁에서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의 기습공격에 무너진 이후부터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6일만에 전쟁에 패하자 아랍시민들은 일제히 아랍민족주의에 실망하고 허탈감에 빠졌다. 이들을 달래줄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이슬람주의자들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세속 이데올로기 아랍 민족주의가 아니라 이슬람이 이슬람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1928년 이집트에서 창설되고 아랍지역 전역으로 퍼져나간 무슬림 형제단과 역내 이슬람주의 운동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아프간 순니 이슬람 저항조직 무자헤딘 창설을 불러왔고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도 역내 불어닥친 이슬람 물결 탓이었다. 미국과 친하고 부패한 팔레비 국왕 때문에 망가진 이란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슬람 법학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에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 1981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이슬람주의자의 총탄에 쓰러졌고 1982년 이란은 레바논에 헤즈볼라를 창설한다. 1987년 가자 지구의 무슬림 형제단 지부는 하마스로 개명하고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을 개시한다.

 

미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 원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이란을 포함한 걸프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이란은 혁명 이후 반미로 돌아섰다,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사우디아라비아, UAE(아랍에미리트), 이집트와 쿠웨이트 등 순니파 국가들과 연대하며 중동정책을 추진해왔다. 반면 중요한 정치 세력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시아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역내 시아파들은 소수파라는 이유로 권력 배분에서 소외되기 일쑤였고 정치 경제적 차별을 받아왔다. 이라크, 레바논, 파키스탄과 예멘의 시아파들은 오랜 기간 집권세력의 천대를 받아왔으며 경제와 사회적 차별 탓에 참담한 삶을 살아왔다. 이라크의 시아파는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점차 차별을 받기 시작하면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레바논의 시아파는 순니파와 기독교인들의 등살에 밀려 최악의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예멘의 또 다른 시아파인 자이디파로 알려진 후티세력은 순니파 집권세력의 차별을 받아오다가 점차 세력을 넓혀 강력한 무장조직으로 거듭났다. 2000년 이후 휴전을 위해 예멘 정부와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최종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2014년 쿠데타로 수도 사나를 장악했다. 사회·경제적 차별을 받아온 시아파는 이란을 중심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란은 1982년 레바논에서 구박받는 시아파를 규합하여 헤즈볼라를 창설하였고 예멘의 후티세력이 사우디와 UAE의 공격에 곤경에 처하자 군사물자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것은 이란에 축복이었다. 미국이 8년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을 괴롭혀온 후세인을 사형에 처하자 이란은 역내 유일한 맹주가 되었다. 역내 순니 정권의 맹주인 이라크가 무너지면서 팽팽한 균형에 균열이 가고 힘의 균형은 이란으로 기울게 된다. 이라크 인구의 절반이 시아파이고 이란의 민병대가 이라크의 ISIS 퇴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이란의 대이라크 영향력은 더 커졌다. 현재 이란을 빼고 이라크의 정세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란의 역할이 크다.

 

이란의 헤게모니는 위에서 논한 연대조직에 그치지 않는다. 이란의 재래식 무기 특히 탄도미사일과 드론은 주변 순니 아랍 국가에 큰 위협이 된다. 실제 2019년 예멘의 후티와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 정유회사 아람코의 탈황시설 두 곳을 타격하자 사우디의 일일 원유생산량이 반토막났다. 국제유가를 결정짓는 세계 최고의 정유회사가 드론과 순항미사일 공격에 타격을 입자 사우디는 즉각 미국의 조치를 원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 역시 이란을 자극해 역내에 큰 무력충돌을 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년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가 일으킨 전쟁은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역내 지각변동을 불러오고 있다. 이스라엘과 사생결단 전면전에서 헤즈볼라는 큰 타격을 입었다. 많은 지도부가 암살당하며 막대한 타격을 입은 헤즈볼라는 재건에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레바논 주민은 가장 먼저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겠지만 헤즈볼라의 무모한 도발도 문제 삼고 있다. 헤즈볼라의 약화는 이란에 큰 전략적 손실이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할 시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공격을 위해 조성한 조직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거의 1년에 가까운 전면전에서 시리아 내 헤즈볼라 세력을 제거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두 차례 전면전에서 이란의 방공망과 탄도미사일과 드론 제조 시설을 파괴했다. 이란의 국방력에 큰 타격을 준 것이다. 이런 정세 변화는 더 중요한 지정학적 변화를 불러왔다. 시리아 독재 정권이 무너진 것이다. 시리아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고 내전으로 번졌다. 이슬람주의 반군과 알카에다 조직이 아사드 정권에 저항해서 싸웠지만 2015년 러시아와 이란의 도움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헤즈볼라는 존립의 위협을 받고 있고 이란은 경제 제재로 경제가 파탄지경이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리아를 도울 여력이 없다. 1954년 시리아에 군림했던 아사드 독재 정권이 무너진 것은 반가운 일이나 반군은 한때 알카에다와 연계했던 조직인 만큼 시리아와 시리아 주변국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혼돈이 이어질 수도 있다.

 

요컨대 가자 지구에서 촉발된 분쟁은 1980년 이후 최근까지 역내를 호령했던 이란의 시아파 연대조직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하마스, 헤즈볼라와 시리아 즉 이란의 ‘저항의 축’ 세 개가 거의 무너진 것이다. 가히 21세기 역내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변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이란이 헤즈볼라 지원을 위해서 반드시 지나야 하는 통로가 무너진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성한 헤즈볼라의 붕괴도 이란에 크나큰 전략적 손실이다. 이제 이란에 남은 저항의 축은 예멘의 후티 세력과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이다.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 이란의 안보 전략 중 두 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첫째는 대리조직을 통해 정적이 이란 본토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전방 전략이 무너졌다. 둘째는 취약한 공군력을 극복하기 위해 탄도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한 전략무기 전략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란에 남은 마지막 안보 전략은 핵무기 개발이다. 이전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 상황에서 이란의 선택지는 역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백악관에 입성하는 내년 1월 20일까지 역내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는데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헤즈볼라와 휴전할지 불투명했는데 트럼프의 발언 이후 실제 휴전에 돌입했다. 휴전이 아직은 불안하지만 잘 유지된다면 일단 급한 불 하나는 껐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리타니강 남부에 헤즈볼라 병력이 주둔할 수 없고 만약 이를 어길 시 자국군이 자유롭게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조항을 관철시켰다. 궁지에 몰린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조건을 다 수용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가자 지구 재통치를 막는 것이 목표인 만큼 끝까지 군을 주둔시켜 하마스의 재건을 막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인질을 석방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하마스에 경고하고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협상을 조속히 끝낼 것을 조언했다는 보도 이후 휴전협상에 진전을 보인다. 남은 마지막 중동 문제는 이란의 핵개발 문제이다. 이란은 마음만 먹으면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핵문턱 국가이다. 2018년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이란핵협정을 탈퇴하면서 불거진 문제임으로 결자해지해야 한다.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란은 핵협상을 원하고 있지만 만약 미국이 탄도미사일 개발제한이나 역내 대리조직 지원 중단이라는 다른 조건을 요구한다면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

 

트럼프의 외교와 국방팀 진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백악관 부비서실장으로 유대계 스티븐 밀러가 임명되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마이클 왈츠, 중동 특사로 유대계 부동산업자 스티븐 위트코프가 주이스라엘 미국대사로 마이크 허커비가 지명되었다. 친이스라엘 마르크 루비오 상원의원이 국무장관에 지명되기도 했다. 친이스라엘과 강경 성향 일색이다. 친이스라엘 성향과 강성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는 물론 이란 핵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의 대중동 정책은 자국 셰일가스 산업 육성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을 가능성이 크다. ‘드릴 베이비 드릴’이란 구호로 대변되는 원유와 가스 최대 생산 정책은 유가 하락을 불러올 것이며 걸프 아랍국가의 재정에 피해를 줄 수 있다. 더 중요한 정책은 중국의 대이란 원유수출을 중단시킨다면 이란의 국가재정은 파탄에 이를 수 있어 이란을 자극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이란 대신 걸프 국가의 원유를 도입할 수 있어 걸프국 재정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실제 이란의 대중국 원유수출 중단이 이란 핵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명예를 중시하는 이란을 자극해 협상이 난항에 빠질 수 있다.

 

2025년 중동정세를 가를 가장 중요한 이슈는 시리아의 미래와 이란핵 문제 해결이다. 시리아 안정화는 미국의 개입이 필요해 보이고 이란 핵협상은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수사로 이란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가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해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ifsPOST>

 ※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한 [정세전망 2025-특집호-제9호]​​(2024.12.24)에 게재된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  

2
  • 기사입력 2024년12월24일 14시37분
  • 최종수정 2024년12월24일 13시41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