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과 2025년 러시아 정세 전망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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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2기 행정부와 미-러관계
트럼프의 재선 관련해 가장 크게 주목받는 대외 관계는 단연 미-러관계일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 미국은 나토(NATO) 무용론이나 북대서양 조약 제5조 집단방위조항의 조건적 적용 가능성 제기하면서 주독 미군 감축을 시도한 바가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강제 병합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친밀감 표시 등은 대서양 관계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런 트럼프는 재선 캠페인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당선이 되면 전쟁을 끝내기 위해 푸틴과 빠르게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왔다. 무엇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대폭 줄일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미국의 러-우전쟁에 대한 소극적 태도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공약이 내포하는 국내 정치 우선성은 국제 문제에서 미국의 개입과 영향력을 축소시킬 가능성 있다.
이런 맥락 아래에서 그의 당선과 함께 특히 러-우전쟁의 종전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전망들이 제기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본인이 당선될 경우 이 전쟁을 빠르게 종전시킬 것임을 수 차례 강조하였다. 트럼프는 그 첫 임기 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강조하며 해외 군사적 개입을 줄이는 데 대외정책의 초점을 맞추었고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시도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러시아와의 협상을 통해 “전쟁 종식”이라는 성과를 내세우려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전망은 실리적 거래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및 경제 지원을 축소할 가능성이 높으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협상 압박을 더 강하게 받게 될 것이고,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간의 종전 협상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를 추동할 수 있다는 추론으로 힘을 받는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러시아에 대해 전면적 제재보다는 협상과 거래를 선호했음을 보건대 이런 전망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며 종전 프로세스의 출발에 대한 희망적 기대로 연결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오가며 전쟁 종결 문제를 전담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특사로, 키스 켈로그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명되었는데, 이는 러-우전쟁을 조기 종결하겠다는 트럼프의 구상과 관련해 큰 주목을 받았다. 켈로그 특사는 전선을 현재 위치에서 동결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는 협상에서 제외하는 조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해법 모색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켈로그를 특사로 지명하자 협상 무대에 나갈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시작과 함께 러-우전쟁에 대한 종전 협상도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는 더욱 커가고 있다.
물론 트럼프 측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양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감소나 영토 양보 추구는 푸틴의 공격적인 정책을 강화할 수 있으며 나토의 결속력과 신뢰성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또한 이런 양보는 러시아가 재무장하여 다시 공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러시아로서도 어정쩡한 휴전은 우크라이나의 재무장의 기회가 되어 새로운 전쟁의 빌미가 될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러-우 간 내지 러-유럽 간 작용하게 될 강력한 안보딜레마를 극복하는 것도 큰 과제이다. 이런 과제와 관련하여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축소라는 강력한 채찍과 함께 미국이 부담하지 않는, 따라서 유럽이 주로 부담하게 되는 우크라이나 재건 정책을 당근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시에 러시아의 목표가 달성되는 전쟁의 종결이라는 당근에 못지않게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는 채찍을 지렛대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마 ‘제재’가 트럼프의 대러시아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러-우전쟁 과정에서 나타난 것처럼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서방의 단합을 통해 이루어진 다자간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은, 비록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정책으로 그 효과가 반감되기는 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실행하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의 가장 큰 취약점을 공략하는 조치로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하고 있다. 또한 서방은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막기 위한 다양한 조치도 취하고 있다. 특히 금융기관 관리와 더불어 러시아의 군사 작전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자재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기 위해 전례 없는 제재와 수출 통제를 지속하고 있다. 그렇지만 제재는 채찍인 동시에 그 해제는 큰 당근이 될 수 있다. 미국 내 법적 장치로 인해 대통령이 단독으로 제재를 해제할 수는 없다. 특히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제정된 ‘제재를 통한 적대국에 제어조치’(CAATSA: Countering America’s Adversaries Through Sanctions Act)는 대통령이 제재를 완화하거나 해제할 때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법적 장치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쉽게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의회에서도 우위를 점한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할 가능성은 그 전보다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 미-러관계는 그 변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하게 될지 주목받고 있으며, 그 초점은 역시 러-우전쟁의 해법을 둘러싼 양국 간 입장 차를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지에 모여지고 있다.
| 러-우전쟁 관련 이해 당사국들의 입장과 휴전/종전 전망
과연 세계가 기대하는 바 러-우전쟁이 조속한 마무리 수순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2025년 러시아 관련 정세의 초점은 단연 러-우전쟁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조율이 얼마나 가능한가에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당사자들 입장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이 전쟁을 시작한 초기의 목적을 고수하고 있다. 켈로그 특사 지명과 관련해 크렘린궁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러시아 전·현직 관리 5명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최전선을 따라 '분쟁 동결'에 폭넓게 동의할 수 있다는 로이터 통신의 보도가 있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해야 하며, 현재 러시아의 점령지를 대거 양보하는 조건은 배제한다는 조건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협상 시작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의 포기라 할 것이다. 러시아는 “특별군사작전”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고수하면 어떤 형태의 협상도 시작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에 비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전쟁의 뜨거운 국면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가 통제하는 영토가 나토의 우산 아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나토 가입만 되면 영토를 수복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문제가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다소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나토 이슈가 여전히 걸려 있다.
한편 켈로그 특사는 지난 봄에 출간한 저서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계속 지원하는 건 값비싼 선행의 과시일 뿐이라며 휴전을 촉구하면서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모두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시각을 피력한 바 있으며, 푸틴 대통령이 평화 협상에 참여하게 만들려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보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겔로그 특사의 시각은 종전 협상을 추진하는 미국의 입장에 반영될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유럽연합(EU)의 입장도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이다. 신임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 안토니우 코스타는 취임사에서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면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는 국제법에 따라야 한다며 영토 탈환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대한 안전판으로 세우기 위한 조건으로 보는 이런 유럽 입장은 미국의 입장과 다른 유럽의 안보적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이런 유럽의 입장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양보를 바탕으로 하는 종전/휴전을 추진한다고 하더라고 유럽이 독자적으로라도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지지하는 정책을 지속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한다. 다만 유럽의 악화되는 경제 상황과 유럽 내 러-우전쟁에 대한 분열된 입장 때문에 확대된 지원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런 기본 입장들을 바탕으로 향후 전쟁의 전개와 관련된 시나리오를 구상해 본다면, [표1]과 같은 선택지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는 반러시아적 미국I-우크라이나I-유럽I 간 연합(입장 D)이 대(對)우크라이나 지원을 저지하면서 전쟁을 지속해 온 러시아I의 입장과 충돌하면서 지난 수년간 러-우전쟁은 열전(熱戰)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2025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막대한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러시아 국력의 소모를 꾀하던 바이든 행정부 시기의 미국 정책은 지속되지 못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서방의 지원을 계속 확보하면서 종전 협상에 나서기를 원하는 우크라이나I의 입장(B)은 앞으로 현실적 선택지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트럼프 2기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며 종전 협상을 진행하려는 미국II와 러시아II 입장의 선택지(A)에서 수렴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다만 유럽의 안보 우려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제한적 규모라도 지원을 이어 갈 경우 우크라이나는 휴전/종전 협상에 나서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힘을 통한 해법을 다시 추구하면서 유럽II-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충돌하는 입장(C)으로 수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럽II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의 지속가능성은 제한적이기에 이 경우 전쟁은 저강도 분쟁의 성격을 띠면서 지속될 수는 있겠으나 그 기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리해 보자면, 트럼프 행정부 시기 러-우전쟁의 향방은 지난 3년간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수렴·충돌한 선택지 D의 고강도 분쟁으로부터 이동하여 저강도 분쟁의 선택지 C나 휴전/종전 협상의 선택지 A로 이동하면서 A~C사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양 선택지 사이의 입장 차를 좁히기 위한 협상 가능 영역과 조건을 트럼프 행정부가 얼마나 빨리 발굴할 수 있을지에 따라 휴전/종전 협상의 시기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그보다는 약한 형태의 안전보장을 받게 된다는 조건 하에서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분적 영토 양보를 통한 정전 합의이다. 우크라이나가 점령당한 영토 일부 내지 전부 를 포기하고, 해당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실효적 통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정전/종전에 합의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포기한다면, 현재로서는 이 시나리오가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둘째는 장기적 정전 또는 중재국이 개입하는 형태의 정전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직접적인 종전 합의 대신, EU 또는 제3국(미국, 중국, 인도 등) 또는 국제기구(UN)가 중재하여 장기적 정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셋째는 협상 조건의 모색이 어려워지면서 전쟁이 지속되는 것이다.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이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면 현재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러시아는 휴전/정전/종전 어떤 협상에도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러시아로서는 결국 힘에 의한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의 방향으로 나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지금처럼 기존 점령지를 유지하며 전쟁을 소모전 형태로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가 항복할 때까지 압박하게 될 것이다.
| 러시아 국내 정세와 전망
러-우전쟁 종전 협상과 관련해 생각해 볼 또 다른 중요 변수는 2025년 러시아의 국내 정세이다. 초기 예상과 달리 러시아가 지난 3년 간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내구성을 계속해서 보여 온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내년에도 그 내구성을 유지하며 전쟁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능력은 러시아가 종전/휴전 협상에 나서서 그 여부를 결정하는데 고려할 가장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2024년 봄 시행된 러시아 대통령 선거의 결과, 77.4% 투표율에 87.3% 득표로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된 푸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정치체제는 “깃발 아래 뭉치기” 현상이 러시아에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게다가 9월에 실시된 지방 선거에서도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런 국내 정치적 안정성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보여 주었다. 이런 정치적 안정성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으로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러시아 사회의 보수화이다. 1990년대 사실상 나라가 망한 경험을 한 러시아인들의 기억은 푸틴에 대한 지지의 저변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1993년 선거에서 지리놉스키 현상을 통해 확인된바 러시아인들이 느낀 강력한 모멸감(humiliation)은 그 이후 러시아 정치의 심각한 보수화를 빠른 속도로 진전시킨 주요한 동력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해서도 반전(反戰) 여론도 존재하지만, 다수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비무장화, 비나치화”를 목표로 하는 “특수 군사작전”의 정당성을 상당히 수긍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게다가 이 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서방에 의해 러시아가 90년대와 같은 수모의 시간을 다시 겪게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서가 푸틴에 대한 적극적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푸틴 체제의 비민주성과 언론통제 및 전쟁 반대의 여론도 있지만, 이런 여론이 다수가 되지 못하고 힘을 받지 못하는 것은 푸틴 정권의 정치적 억압과 조작에 의존한 결과라기 보다 러시아 사회의 보수화와 전쟁 시기 그런 경향성의 강화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해 보인다. 따라서 러시아의 보수화된 국내 정치가 전쟁이라는 조건과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정치적 안정성은 2025년에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전시 러시아의 관리 경제가 보인 성과이다. 세계은행 그룹이 발표하는 각종 지표는 러시아 경제의 활황세를 분명히 보이고 있으며, 전쟁 초기 잠시 물가가 오르기는 했지만, 곧 경제가 안정되면서 전시 경제의 활성화로 국민들의 소득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 3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 경제가 예상 밖으로 선전하면서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러시아의 구매력 평가(PPP)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5조 5000억 달러(약 7330조원)로, 독일의 5조 3100억 달러(약 7100조원, 6위)보다 높았다. 2023년 경제 성장률은 3.6%였고, 2024년은 3.9%로 예측되었다. 미국을 포함한 G7의 GDP 성장률을 다 앞서는 성적이다. 또 국제금융경제평가관들은 러시아를 경제 규모, 구매력 평가 측면에서 유럽 1위, 세계 4위로 평가했다. 중국, 미국, 인도에 이은 4위로 작년에 독일을 추월했고 올해는 일본을 추월했다. 이런 러시아 경제의 선전은 중국 및 글로벌사우스와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서방 제재를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고 있음을 보여 주었고, 러시아 군수산업의 활성화 효과가 확산되면서 임금도 상승하여 소비가 진작되는 선순환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일부에서 전시 경제의 착시효과라는 지적과 더불어 높은 인플레이션의 문제와 10%대 후반에서 오르내리는 높은 이자율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 중앙은행은 2024년 인플레이션이 9.2~9.3%로 예측되지만 실질 임금 증가도 9%대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쇄하고 있으며, 군비 예산으로 인한 재정 적자와 부담 관련해서도 푸틴 5기 출범 이후 단행된 누진소득세 도입과 법인세 인상 조치로 발생하게 될 2조 6천억 루블의 추가 세수 덕분에 향후 전쟁 비용 충당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국 자원과 식량에서 완전한 자급이 가능한 러시아가 전쟁을 계기로 점차 제조업의 독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가고 있다는 다소 섣부른 평가도 나오는 가운데, 전반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러시아 경제는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효과적으로 불식시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같은 국내 정치 및 경제 상황에 기초하여 적어도 1~2년 정도 러시아가 전쟁을 지속하기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은 전쟁 이후 러시아의 경제에 대한 전망을 차치하고라도 러시아가 이 전쟁을 당분간 지속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푸틴 5기 국방부 장관이 안보전문가 쇼이구에서 경제전문가 벨로우소프로 교체는 장기적 소모전에 대한 대비와 전시 경제 관리의 전문성에 러시아가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가를 잘 보여 준다. 따라서 러시아의 국내 정치의 안정성과 전시 경제의 성공적 관리는 향후 휴전/종전 협상에 임하게 될 러시아의 든든한 기반이 될 것으로 보이며, 이런 자신감이 최근 전선에서 나타나는 러시아의 공세적 입장을 설명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 한-러관계의 도전과 대응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는 기조에 맞게 대러 제재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나토와의 협력에도 적극적이었다. 한국의 적극적인 대러 제재 연대 참여는 그에 상응하는 러시아의 보복적 대응조치를 초래했으며, 삼성, 현대, 엘지 등 러시아 진출 한국 기업들의 활동이 위축되었고 양국 직항 항공편이 차단되어 인적·물적 교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러 관계의 악화와는 대조적으로 북-러 밀착은 한반도 정세와 한국 외교에 중요한 도전을 구성하고 있다. 2022년 러-우전쟁의 발발 이후 적극적으로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고 지원해 온 북한은 결국 러시아에 대한 무기 및 포탄을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 원칙의 변화를 자극하였고, 이것이 2022년 말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미국 폴란드를 통한 포탄 우회 지원 결정을 내린 배경이 되었다. 나아가 윤석열 정부는 북-러 간 불법 무기 거래를 한국에 대한 도발로 규정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용 무기 직접 지원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한-러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결정적인 변화는 2024년 6월 푸틴의 북한 방문과 군사 재동맹 성격의 ‘러·북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러-우전쟁 동안 심화된 지정학적 갈등(서구와 러시아 사이)을 비롯하여 북-러 밀착 문제, 제재 참여와 그에 대한 보복 조치, 군사 및 안보 우려 등은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중대한 도전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불거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은 이 전쟁의 향방에 일정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북한군의 전투 참여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섣부른 대응조치를 취하기도 꽤 조심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는 한국 외교에 다면적 도전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으로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에 있어서 러시아의 중재적 역할 수행 가능성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중국의 부상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감을 떨쳐버리기는 어려운 러시아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러시아 정책이 유화적으로 변화할 경우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나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의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치 변동은 한국 외교 노선의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는 사건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국 국내 정치의 변동이 동북아 정세의 유동성과 불안정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될 경우, 이는 동북아 안보 정세 및 세력균형의 커다란 변동성을 초래할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급변하는 안보 정세에 대응하여 유연하고 실리적인 외교를 구사할 수 있는 기민한 대응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굳건히 하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취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북아 내 한-중-일 채널과 같은 소다자 채널의 적극적 활성화를 통해 외부 환경 변화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가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접근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불식하여야 한다. 이런 과제는 기민하고 유연한 외교적 대응을 통해서 가능하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한국 외교의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과 러시아는 2008년 이후 ‘전략적 협력의 동반자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다양한 협력 채널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가 있다. 또한 지정학적 현실주의 측면에서 한국의 대외적 핵심 과제인 한반도 평화 구도 정착과 통일은 러시아와 분리해서 설명하기 어렵다. 러시아는 남북 분단의 원인 제공자이지만 동시에 통일의 여정에서 기여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보다 비토 세력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급변한 정세 속에서 우리 외교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또 열리는 기회에 대한 긍정적 자산을 미리 확보해 둔다는 차원에서 훼손된 한-러관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면서 개선해 갈 필요가 있다.
<「세종포커스』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세종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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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한 [정세전망 2025-특집호-제5호](2024.12.23)에 게재된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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