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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때아닌 맥카시 선풍을 걱정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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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8월27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8월27일 18시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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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유공자의 후손들이 맡아오던 독립기념관장으로 그간의 관행과 달리 광복절을 한 주 앞둔 지난 8월 7일 김형석 고신대 석좌교수를 임명하면서, 이번 광복절은 경축의 의미는 퇴색되고 극심한 정쟁과 이념적 분열로 얼룩진 채로 지나갔다.

 

이번 광복절을 전후한 논쟁과 정쟁은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분열되어 있고 정치적 선동마다 쉽사리 타오르는 인화성이 큰 나라인가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우리 사회가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선동으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 온 생생한 역사를 갖고 있다. 광우병 선동이 그랬고, 상주 사드 기지의 전자파 위험, 일본의 핵 발전소 냉각수 방류에 대한 공포적 선동이 그러했다. 이 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건, 이태원 할로윈 사망 사건 등 사건 사고마다 우리 사회는 사고를 매듭 짖고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영구 미제의 현안으로 발목 잡혀 있다.  

 

우리 사회가 확인도 안 된 주장에 흔들리고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근본 이유는 우리 사회가 극도의 불신사회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국민들의 신뢰 수준을 조사하는 엘더만신뢰연구소의  신뢰 척도 (Trust Barometer) 보고서는 2024년은 물론 해마다 우리나라가 가장 신뢰가 낮은 나라라는 불편한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금년 보고서도 우리 국민은 정부, 언론미디어, 시민단체에 대한 낮은 신뢰는 물론이고, 기업 전체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용주에 대한 신뢰는 조사 국가 28개국 중에 가장 낮다.  사회를 이끌고 이는 모든 제도와 기구들을 불신하고 있는 사회로 사회적 자본의 파산 상태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 나라에서 가장 휘발성이 크고 정치적으로 악용이 잦은 이슈는 근대사에서의 반일(反日)과 관련된 이슈다.  정치인들은 거대한 휴화산으로 폭발성이 강한 이 이슈를 정치적 이해를 위해 자주 악용해 왔다.  이는 보수, 진보를 구별하지 않는 우리 정치의 습관성 질환에 해당한다. 광복절에 벌어진 정쟁도 이런 불신의 사회에서 저질러진 정치인들이 불장난에 해당한다. 

 

문제의 발단은 국립 박물관 중에 하나인 보훈부 산하의 독립기념관장의 임명이 윤 정부가 뉴라이트 인사들을 중용하여, 정부와 “뉴라이트 집단”의 역사와 국가 정체성 새로 쓰기의 친일의 음모가 진행 중이라는 주장이 돌연 광복절과 건국절 논쟁과 독립과 건국의 국가 정체성 논쟁까지 비화한 것이다. 

 

급기야는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소위 “뉴라이트 공직 금지법”을 당론으로 추진 중이며 법안을 성안 중이라고 발표했다.  민주당 기준으로 임시정부의 법통이나 독립운동, 독도 영유권 등을 훼손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하고 처벌하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역사 인식을 독점하고 다른 생각을 형사 처벌하겠다는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021년 말 대선 후보 시절 광주 5·18민주화운동 현장을 찾아 ‘역사왜곡에 대한 단죄법’을 만들어 독립운동과 일본군위안부 등을 왜곡하는 행위를 법으로 처벌하겠고 발표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의 국회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진보주의를 내거는 정당이 사상과 야심의 자유를 제약하겠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다.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계몽주의와 시민 혁명이 피로 얻어낸 기본권이다. 양심의 자유는 개인이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이고, 이의 구현 수단은 표현의 자유다. 1789년 혁명을 통해 이들 자유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천명되었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보복, 검열 또는 법적 제재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지지하는 원칙으로  유엔의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법에서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있고 우리 헌법도 정신적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현대 민주정치에 필수불가결한 자유를 고루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민주당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1859년에 출간된 죤 슈트어드 밀의 『자유에 관하여』은 인간의 자유 없이는 과학, 법, 정치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그것은 왜 계몽주의가 인류에게 풍요와 평화,그리고 자유를 가져다 주었는지 역사가 증명한 것이다. 밀은 진리가 궁극적으로 거짓을 몰아내므로 참이든 거짓이든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지만,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당신의 권리를 죽기까지 옹호할 것입니다.” 이는 볼테르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신념의 표현이다. 

이 권리에 대해 노엄 촘스키는 "당신이 언론의 자유를 믿는다면,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견해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믿는 것이다. 스탈린이나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견해 만의 언론의 자유를 옹호했다. 만약 당신이 언론의 자유에 찬성한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 경멸하는 견해 때문에 언론의 자유에 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며 이 기본권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들이 강조하는 바는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이유로 표현되는 주장들이 모두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이단적인 생각을 주장할 권리라는 뜻이다. 다수가 지지하는 발언이라면 권리로 보장할 것도 없다.

이단적 생각마저 권장해야 하는 이유로 밀은 진리는 안정되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고 우리가 한때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거짓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그는 "결정된 의견의 깊은 잠"을 방지하기 위해 자유로운 토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만인의 법 앞의 평등, 왕정 폐지, 진화론, 지동설 등 모든 것들은 수백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 과격한 이단적 주당들이었다.

 

우리의 근대사는 수많은 굴곡과 함께 진행되었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의 건국과 경제 개발에 성공한 오늘에 이르는 역사는 다른 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사례다. 봉건 왕정은 민주 공화국으로 변모했고, 2차 대전의 전범 국가도 아닌데 독립과 함께 분할된 채로 전승국의 군정 하에 놓여졌고, 분단된 두 국가로 나누어졌다. 이런 과정은 다른 나라의 독립 기념일과 건국 기념일의 정의를 우리에게 직접 적용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불행히도 이 기간의 역사는 정직하게 쓰여 지지도 않았다.  일본의 식민사관은 일본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의도에 충성하는 역사기술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반발한 민족사관도 결국 민족주의를 앞세운 왜곡된 역사 기술을 의미한다. 20세기 초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전세계를 휩쓸어서 전세계 인구의 70% 이상이 식민통치하에 있었고 우리도 불행하게 그런 나라에 속했지만 우리 역사에 지금도 지워지지 않은 트라우마를 남겼고, 그것이 반일과 극일의 전투적 국민 감정으로 자리매김했다. 감정에 치우친 국민정서는 우리가 역사에서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는 일을 어렵게 해 왔다.  우리의 근대사가 이미 진실은 다 발견되었고 역사적 판단은 고정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은 없다.  

 

역사는 늘 재해석의 대상이다. 그것은 항구적으로 유동적인 것이다. 왜곡과 재해석의 여지가 큰 우리 역사를 권력이 정의하고 국민에게 다른 의견은 처벌하고 공무담임권을 봉쇄하겠다는 것은 그 발상이 반지성이고, 반인권적이다.  

 

종종 가짜 뉴스의 위험을 강조하는 측은 두 가지 전제를 하고 있다. 제3자 효과 가설로 대중 매체의 메시지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과소 평가하고, 타인에 미치는 영향은 과대 평가하는 편견이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지력과 이성을 갖고 있고 가짜 뉴스의 영향의 실증적 연구는 크지 않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가짜 뉴스의 위험을 강조하는 방법은 음모론이다.  어떤 거대한 집단이 보이지 않는 딥 스테이트로 사회를 움직인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한국에 뉴라이트를 자칭하는 소수의 연구자가 있고, 그 이름으로 MB 정부의 관변 시민단체로 출발한 조직은 정권보다 먼저 이슬처럼 사라졌다.  이들이 정권과 결탁해서 거대한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는 주장은 음모론의 전형적 모습으로 불신 사회의 병적 현상일 뿐이다. 

 

우리가 위험한 발언도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위험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사회가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집회를 하며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KKK와 신나치 조직보다 위험한 것은 은둔하고 폭탄을 배달하는 유나바머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이다. 위험한 생각에 대한 사회적 대응은 반론과 토론이지 침묵의 강요가 아니다. 

 

민주당이 뉴라이트 처벌과 공무 금지법안을 만들겠다는 것은 기본권 제약의 충분한 명분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들의 가치와 역사관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특정 이념으로 채색하고 정치적으로 억압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독점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21세기에 메카시 선풍의 부활을 획책하는 짓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국민 1인당 실질 소득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있는 나라다. 역사의 열등감과 분노를 극복할 만큼 성장했다. 다른 한편 국민들은 절망하고 있다. 학업과 일자리를 포기한 청년이 역대 최대로 늘고 있다. 학력 인플레이션과 일자리의 양극화를 방치해온 결과다. 정부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또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고금리 속에도 부동산은 다시 꿈틀대며 신규 공급은 위축되어 부동산 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가계부채도 기록갱신을 지속하며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저 출산율도 ‘한국 소멸’의 궤도를 달리고 있다. 정권이 자초한 의정(醫政) 갈등은 의료 붕괴의 위기로 진행하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 보호무역주의, 미 대선과 경기 침체 가능성, 중동의 불안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교역 불확실성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역사를 정쟁화해서 국민의 인식을 과거의 노예로 남아있게 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권력이 재단하려는 유혹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누가 동의하는 올바른 역사에 대한 합의가 있다는 망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북한과 다른 자랑스런 나라라는 것은 친일적 발언도 자유롭게 하는 나라이지 김정은의 말이 법이고 역사가 되는 나라가 아니다. 역사에 대해, 국가에 대해, 권력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허용하지 않는 국가들의 사례들을 들어보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정권을 비판해온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대사관으로 유인해 토막 살해했고, 작가인 레이프 바다위는 2012년에 체포되어 채찍질을 당했다. 2022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작전에 대한 "가짜 뉴스"를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도입하는 법안을 도입하고 수천명 이상의 러시아인이 이 법에 따라 기소되었다.  

 

푸틴의 러시아나 김정은의 북조선을 닮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민주당은 파시즘적인 침묵 강요법을 멈추어야 한다. 어떤 사회 든 번영과 평화는 언제나 다양성의 수용 하에서만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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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4년08월27일 18시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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