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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계정 기준년 개편과 재정운용의 과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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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7월22일 19시00분

작성자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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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5일 오전 8시, 한국은행은 국민계정(National Accounts) 통계의 기준년을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변경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기준년 변경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시계열 수치들은 약 6% 상향 조정되었다. GDP 수치의 이러한 조정은 다양한 정책지표들을 -GDP 대비 비율로 표시되는- 변화시키기에 그 정책적 함의는 매우 클 수밖에 없다. 

 

GDP 통계의 이러한 조정은 왜 나타나는가? 그것은 통계를 위한 전수조사가 5년 단위로 이루어지고, 그 사이의 연도들에서는 표본조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전수조사인 ‘경제총조사’는 국내에서 생산활동을 수행하는 사업체 전체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대면조사 또는 인터넷 조사를 말한다. 한국은행은 통계청의 ‘경제총조사’를 활용하여 ‘당해 연도에 새롭게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합산’한 GDP를 평가한다. 2015년, 2020년 등 전수조사가 이루어지는 년도들을 GDP 기준년이라 한다. 

 

그런데 기준년에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들이 모두 파악되지만, 그 사이의 연도들에서는 새롭게 등장하는 신상품과 퇴장하는 기존 상품들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예컨대 기준년도 t에서 사업체 i가 산출한 부가가치를 PtiXti(P는 시장가격, X는 실물의 부가가치)로 표현할 때, GDP는 이 값을 사업체 i에 대해 모두 합산한 값이다. 그런데 기준년도가 아닌 t+1, …, t+4 년도들에서는 기준년 t에서 파악된 사업체 i들에 대해서만 표본조사를 수행한다. 이 때문에 사이 연도들에서는 국민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기준년에서 멀어질수록 경제현실의 반영도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2024년 6월 5일 오전 9시, 한국은행의 기준년 개편 결과가 나온지 1시간만에 기획재정부도 곧바로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2023년 한국의 GDP 세계 순위는 14위에서 호주, 멕시코를 앞질러 12위로 상승하였고, 1인당 국민소득 규모는 33,745달러에서 36,194달러로 증가하였다. GDP 수치의 이러한 증가는 GDP 대비로 표현되는 주요 재정·금융지표들을 상당히 개선되었다. 2023년 국가채무 비율은 50.4%에서 46.9%로,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3.9%에서 –3.6%로, 가계부채 비율은 100.4%에서 93.5%로, 기업부채 비율은 122.3%에서 113.9%로 각각 하락하였다. 보도자료의 시간차 한 시간은, 경제정책 운용에 상당한 여지를 갖게 된 기획재정부의 들뜬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재정지표 개선이 재정운용에 갖는 정책적 의미는 오랜 가뭄 끝 단비 이상의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초부터 관리재정수지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는 재정준칙 입법을 줄곧 외쳐왔으나, 유감스럽게도 이를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준수하지 않았다. 물론 나름의 이유들이 있지만, 결산 수치를 기준으로 할 때 관리재정수지 비율이 2022년 –5.4%, 2023년 –3.9%, 그리고 2024년에도 세수부족으로 –3%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1)  2020년부터 5개년 연속 관리재정수지 비율이 –3%를 초과하고 있는데, 이는 1980년 이후 대한민국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달리 코로나19 위기라는 의지할만한 어떠한 상황적 명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21대 국회에서 무산된 재정준칙 입법을 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2) 정부가 스스로 세운 재정준칙조차도 지키지 않으면서 이러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과연 면목이 서는 일인가! 더구나 세수감소가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정부 여당은 여전히 감세정책들을 -종부세 완화, 금투세 폐지, 상속세 완화 등- 쏟아내고 있어 야당뿐 아니라 전문가들조차 과연 정부가 재정준칙 준수에 진심인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정준칙의 입법 그리고 그 준수에서 아무런 성과도 보여주지 못한 윤석열 정부에게, 이번의 GDP 기준년 개편은 실낱같은 희망을 안겨주었다. GDP가 늘어난만큼 재정적자의 수용가능한 규모도 –GDP 증가에 상응하는 지출증가 규모는 약 40조원이다- 그만큼 확대되기 때문이다. 또한 GDP가 늘어난만큼 국가채무 비율 목표치에 대한 여유분도 크게 확대되었다. 2023년에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의하면 2027년의 국가채무(중앙정부) 비율 목표치는 53.0%였는데, 이번 기준년 개편으로 2023년의 국가채무 비율이 50.4%에서 46.9%로 하락하여 그 여유분이 당초의 2.6%에서 6.1%로 증가하였다. 

 

재정준칙의 준수에서 ‘말만 있고 행동은 없다’는 비판 속에서, 지금 윤석열 정부는 중요한 시험대 위에 놓여 있다. 재정준칙 준수에 진심이라는 사실을 국민과 역사 앞에 보이고자 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2025년부터 예산과 결산 모두에서 –3% 비율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설령 세수부족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지출삭감을 통해 –3%를 준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윤석열 정부의 재정총량 성과는 막대한 초과세수를 누렸던​ 문재인 정부보다 더 못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부터 윤석열 정부는 재정준칙 입법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사실 재정준칙에서 입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야 정치권의 실질적 합의이다. 재정준칙을 입법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보다 명시적으로 용이하게 추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어겼다고 하여 정부와 정치권에 가할 수 있는 법률적 제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왕정과 달리 민주정에서는 재정이 공유지이기 때문에, 그 공유지가 황폐화될 때 책임은 국민들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재정건전성 유지에 진심이라면 재정운용에 정치적 책임을 강화하는 차선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2025년에 이루어지는 기획재정부의 장기재정전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2015년과 2020년에 수행한 두 차례의 장기재정전망 보고서는 국회예산정책처에 비해 너무도 빈약하여 외국에 공개할 엄두도 내지못할 만큼 부끄러울 지경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출범 직후 ‘재정비전 2050’을 수립하여 중장기 재정전략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사실상 공수표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라도 윤석열 정부가 장기적 재정건전성에 진심임을 국민들에게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장기재정전망에서는 50년 이상의 장기적 재정상황을, 그리고 그에 따라 나타나는 미래 세대의 부담을 낱낱이 보임으로써 현재 세대가 받아들여야 할 재정개혁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재정준칙 준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가채무 평가의 문제를 낱낱이 드러내는 제도적 기제도 마련해야 한다. 국가채무(D1), 일반정부 부채(D2), 비금융공공부문 부채(D3)를 넘어 금융공기업을 포함하는 공공부문 부채(D4)를 매년 발표하는 시스템을 구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 통화안정증권을 포함하는 금융공기업들의 부채, 그리고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의 충당부채 등에 대한 심각성을 부각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OECD 국가의 통계들을 지속적으로 수집 비교함으로써 우리 재정의 장단점을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3) 


보도자료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 기획재정부가 GDP 기준년 개편을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기는 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들뜬 마음으로 한 순간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무엇을 대비할 것인지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재정준칙 입법을 그토록 반대하였던 야당이 22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사실상 입법이 불가능한 재정준칙에 허망한 노력을 고집스럽게 투입하기보다, 재정건전성을 위해 정치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행정적 시스템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매년도 예산안 공청회에서 장기적 재정건전성을 중요한 제약조건으로 인식하는 정치인이 더 많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우리의 정치권에 희망을 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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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정준칙 준수의 실적에 대한 설명은 옥동석, “윤석열 정부의 재정준칙 입법, 어떻게 되고 있나?” News Insight, 2024.02.20., 국가미래연 참조. 

2) 김희원 기자, “‘국가채무 증가’에 당정 재정준칙 도입 추진…‘지키지 못할거면서’ 야당 반대에 불투명,” 2024.07.01., 굿모닝경제. 

3) 황정환 기자, “콜롬비아보다 높은 한국 부채비율… 재정건전성 ‘빨간불’,” 한국경제신문, 2024.01.19., 지면 A5 참조. 원자료는 옥동석, “국가채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급증하는 국가부채의 진단과 해법’, 이상민 의원실 안철수 의원실 공동주최, 2024.1.2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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