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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한 한국경제, 대책은 없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1월28일 17시11분
  • 최종수정 2024년01월27일 13시05분

작성자

  • 안석교
  •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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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물가가 오르면서 서민들의 생계가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의 일자리 구하기도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다.  수십만명의 젊은 세대가 아예 일자리 찾는 작업을 포기한 걸로 알려져 있다.  경제성장 역시 지난해에 들어서만도 이미 여러차례 하향조정되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편이라 하지만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유럽국가들이 우리를 앞지르고 있고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일본 역시 우리를 추월하였다.  최근의 한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OECD 35개 국가 중 20위에 그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별다른 정책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금리인하를 통한 투자 활성화는 미국이 고금리 정책을 지속하는 한 기대하기 어렵다.  자본유출과 그에 따른 자본시장의 위축 및 환율과 수입물가의 상승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물가가 목표 인플레 2% 이하로 안정되지 않는 한 고금리 정책기조는 계속될 것이며 한국 역시 이른바 정책공조(Synchronization)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재정정책 역시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행동반경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과거 한국은 내외의 전문가나 IMF와 같은 기구에서 경제 펀다멘털(fundamental)이 건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선진국들에 비하여 양호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정부는 재정규율을 지키지 않고 확대재정을 통한 국민의 지지확보에 여념이 없었다.  중앙정부건 지방자치단체건 예외가 없었다.  이제 확대적자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은 더 이상 투입하기 어렵게 되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조세수입의 감소는 정부재정의 확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정치권은 우리보다 두배 이상 높은 선진국의 부채비율을 근거로 정부지출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환자를 가리키며 내가 더 건강하다고 뽐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안고 있는 최대의 질환이 바로 GDP의 100%를 상회하는 국가채무이기 떄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당면한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정책수단들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정부는 바깥 시장이 개선되어 수출이 돌파구를 마련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고, 실제로 반도체를 비롯한 일부 전략상품의 수출이 그동안의 침체상황에서 탈피하고 있는 조짐이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경제의 안정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가 장기간에 걸쳐 저성장의 트랩(trap)에 갇혀 있게 되면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인프라의 확충, 복지정책의 활성화를 위한 재원마련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여러가지 요인들 중 대내적 그리고 대외적 요인을 각각 하나씩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대내적으로는 만성적인 경제의 불균형 구조와 관련되어 있다.  성장잠재력을 제고시키고 안정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수의 대기업과 그들이 지배하는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중소기업과의 불균형 구조를 해소하여야 한다.  국민경제의 소수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우리의 경우처럼 높은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특정 소수기업에 대한 자원집중에 의한 불균형 성장전략이 주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를 창출하고, 산업간 전후방 연관관계를 강화하며,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여 안정적 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육성되어야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균형발전으로의 정책전환을 강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를 위한 산업정책의 청사진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저해하는 두번째 요소는 우리의 대외정책과 연관되어 있다.  한국은 선진국들보다 현저하게 높은 대외의존도를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해외의 시장환경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특히 우리의 불안정성이 높은 것은 우리의 수출상품이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과 같은 특정 소수상품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몇 년에 걸쳐 WTO 체제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체제는 크게 위협을 받아왔다.  자유무역 대신에 이른바 경제안보, 공급망의 재편 등을 빌미로 정치외교, 안보 등과 같은 경제외적 요인들에 의해 국제무역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그 내용을 단순화시켜 보자면, 미국이 자국을 추월하려는 중국을 통제∙제압하려는 수단이다.  한국은 그 지정학적 위치와 반도체, 배터리 등과 같은 전략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중 견제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직접적 피해대상국이 되고 있다.  한국은 최대 무역상대국이었던 중국과의 교역에 있어 자유무역의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미국이 자국우선주의에 입각하여 경제를 외교∙안보정책의 종속변수로 간주하고, 한국정부가 미국과의 이른 바 「정책공조」를 견지하는 한 한국의 자율적 무역정책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미국의 요구는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이란을 비롯한 중동국가 등 갈수록 그 적용대상 국가들이 증가하고 있다.  해당 국가들이 한국에 대해 다양한 보복정책을 도입하는 것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이미 중국과 러시아의 사례에서 보듯이, 수출이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게르마늄, 갈륨, 희토류 등과 같은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의 대규모 잠재수출시장으로 부상하던 러시아 역시 우리의 자동차 및 여러 제품의 수출은 거의 중단되었고 장기적 원자재 확보나 원동지역에서의 대규모 경제협력 역시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 러시아는 한국 대신 북한에 원동지역 개발권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서, 우방국 및 적대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 변화하게 되면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자유나 인권 등과 같은 이념적 잣대를 자주 강조하기는 하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나라이다.  미국정신의 형성에 있어 J. 듀이의 실용주의적 교육철학은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중국견제를 강조하지만 미∙중 교역규모는 기록을 갱신하고 있으며, 마이크론을 비롯한 포춘지 목록 500대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지속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뿐인가.  만일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는 경우 우리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노조에 동조하여 전기자동차에 대한 보조금의 중단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 경우 보조금의 유혹으로 미국에 수십조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국내기업들은 심각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는 이제 저성장의 늪에 진입하는 것인가.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일련의 대외환경변화를 직시하고 정책의 자율성을 견지하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대내적으로는 산업구조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대외적으로는 실익 없는 가치외교의 허상에서 탈피하여 외교안보의 자주성을 제고시키면서 중∙러 및 제3세계에 대한 경제외교의 지평을 넓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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