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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26>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 예술문화 정책의 능사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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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4년01월22일 17시03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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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예술의 전당에서는 「2024 문화예술인 신년 인사회 및 신년 음악회」가 열렸다. 매년 연초에 개최되는 행사로 대통령이 작년에 이어 2년째 참석했다. 예술문화인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인사를 전하는 가장 큰 신년 행사로, 대중문화 분야의 인지도 높은 스타들을 비롯해 예술문화계, 문화콘텐츠 및 후원기업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한국을 빛낸 문화예술인들의 노고를 위로하며 환담하였다. 이 내용 중 일부는 방송되어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기억에 남는 대통령의 몇 가지 발언으로 우선, 미국 순방 시 백악관 행사에서 팝송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일을 소개하며, 외교에서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는 언급이다. 물론 외교에서 문화와 예술을 결부시키는 일은 오래전부터 선진국들이 즐겨 쓰는 가장 기본적이며 세련된 전략임은 상식이다. 이를 느꼈다니 향후 좀 더 세련된 문화외교 전략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한류나 K-아트가 현재와 같은 성과를 거두는 과정에 정부가 개입했더라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라는 교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며, 정부는 예술문화계의 발전을 위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라는 ‘팔길이 원칙’의 관용구를 언급했다. 물론, 이것은 예술인들의 창의와 자율성을 적극 격려하겠다는 맥락으로 이해하지만, 자칫 예술인과 국민들에게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언사로 들릴 수 있다. 

 

  ‘정부가 개입했으면 실패했을 것’이라는 약간의 자조 섞인 언급은 부분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문화와 예술 분야 글로벌 생태계를 발 빠르게 선점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전문성이 미흡한 정부의 개입은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K-문화의 성취는 시대변화를 포착하는 뛰어난 안목의 문화기획자들과 문화자본이 정부의 도움 없이 힘들게 이를 개척하고 앞서갔던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후속적으로 정부의 제도 정비나 재정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취는 불가능한 것이었음도 기억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발언으로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언급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팔 길이 원칙’은 예술인들의 필요와 요구에 정부는 지원만 하고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정책적 방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와 예술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로움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가치는 정부 정책이 가지는 보수적 속성을 비판, 탈피하거나 심할 경우 좀 더 급진적인 혁명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창작의 자유가 때로는 지나친 방종이나 사회적 도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지나친 방종에 이르는 창작 행위조차도 존중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문화의 역사에서 보듯, 시대를 앞서가는 지나침이 정체된 구습의 빗장을 제거했던 많은 사례들이 이를 웅변한다.         

 

  우리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문화예술 지원 정책의 원칙 중 하나로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이해되면서 예술문화 분야에 대한 정부로부터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근거로 삼아왔다. 앞서 필자의 연재 칼럼 <17>(2023.10.2.)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팔 길이 원칙”은 1945년 이후 영국 정부의 공공 지원 제도의 원칙 중 하나로 채택, 시행되어 온 것으로서, 그 기본은 무조건 정부의 간섭을 폐지하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라 주로 정부 자금이나 지원이 사용되는 목적에 대한 투명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원칙임을 기억하자. 이 원칙은 정부 자금 사용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고, 정부의 자금 사용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영국의 ACE(Art Council England)의 위원장은 임기 중 정부와 ACE 예산 및 운영 전반에 관한 계약을 맺고 그 계약 내용 안에서 자율권을 가지고 기관을 운영한다. 이 계약 내용에는 지원금이 사용되는 목적, 지원의 수혜자와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를 통한 자금 사용의 사회적 영향, 자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 달성을 위한 자금의 효율적 사용 방법, 지급 방법과 절차와 기준, 지원 규모와 범위, 부적절한 사용이나 오용방지책, 지원 결정의 전문성, 성과에 관한 공개 등 투명성, 공정성 및 공공성 등에 관한 세세한 원칙들이 정해져 있다. 기금을 지원받는 단체와의 사이에도 이 계약 원칙에 준하는 지원 방침과 의무 규정이 적용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볼 때,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은 계약체결 시 확정한 내용의 범위 안에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무조건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 방임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계약을 체결할 때, 이미 정부는 예술문화계와 대등한 전문성을 가지고 정책 방향을 결정하며, 그 틀 안에서 분야별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에 부합하는 사업들을 지원하는 절차를 가지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지만 이미 정책적으로 예술문화계를 선도하는 입장을 가진 것이 된다. 물론 이 정책 수립에 있어 정부는 업계 전문가들의 연구나 분석 등을 참고로 한다. 정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란 다양한 영역과 분야에 관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미 다양한 견해들끼리의 건강한 논쟁을 거친다. 우리와 같이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일부 편향성의 인사들로 구성된 요식적인 자문회의를 거치는 것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현장 전문가들이 필드의 다양한 입장을 균형 있게 반영된다. 따라서 정부와 산하기관, 산하기관과 현장의 기금 수혜자 사이에 이미 사전에 큰 틀의 정책적 인식 공유가 이루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선정된 사업에 대해 정부가 특별히 간섭할 이유가 없게 된다. 따라서 사전에 마련된 정책은 철저하게 예술문화 현장의 입장이 반영된 진취적 성격으로 운영되므로 자유방임적 입장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한국의 국격을 높이는데 문화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섰다면, 정부의 문화정책은 좀 더 전문성을 가지고 야심 차고 치밀하게 설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마치 소가 뒷걸음치다가 개구리를 잡는 것과 같이 민간이 수행해서 얻게 된 약간의 성취에 편승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현장을 바탕으로 역량 있는 민간의 전문가들을 폭넓게 참여시켜 정교한 중장기 정책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선도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정교하게 만들어진 정책이 동반 상승을 낼 수 있도록 예술문화인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보장해야 한다.

 

  우리에게도 중장기 계획과 정책 시나리오가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약점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중장기 정책이 계획대로 지속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임 정권이나 전임 지자체장이 만든 마스터플랜은 정권이 바뀌거나 지자체장이 바뀌면 대개는 무용지물이 된다. 이전의 것들을 폐기하고 다른 정책을 세우며 문화를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물론 심각한 사회적 폐해가 예상될 경우, 필요에 따라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문화는 정치를 넘어선 사회통합과 정체성 구축, 그리고 국가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략적 입장과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국가경쟁력 차원의 정교한 문예 정책을 기반으로 자유와 창의가 넘치도록 현장의 동반자가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술문화 현장의 자정과 자율의 기반으로 간섭이 불필요하도록 치밀한 중장기 정책 수립이 선결되어야 한다. 예술문화의 성장과 혁신은 조건 지워진 자유 방임주의를 기초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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