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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망 <6> 신냉전 구도의 확산과 한국의 선택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1월07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1월07일 10시31분

작성자

  • 안석교
  •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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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바깥 세상이 어지럽다. 기존의 제반 국제질서가 무너지면서 미래 세계에 대한 시계(視界)가 불투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되어온 미∙소 중심의 냉전체제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종식을 고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주장해온 「악의 제국」이 무너지면서 국제질서는 이제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적 단극체제에 의해 지배될 것으로 예견되었다.

역사는 그러나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21세기우리의 안보와 경제발전 역시 이러한 「전략적 환경」의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통합이 가속화되었다.  EU통합은 중∙장기적으로 미국 및 중국에 대한 길항세력으로서의 한 축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며 구대륙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비전이기도 하다.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NATO의 역할과 기능에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EU의 독자적 안보역량을 강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유럽에서 미국의 역할은 감소하였다.  양자간의 갈등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표면화되었다.

 

- 중국 「굴기」는 국제정치∙군사적 판도에 지각 변동을 초래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보여준 경제적 성과는 중국을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그 결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이제 전략적 환경변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중국의 등장에 따른 국제 정치∙안보질서의 변화를 지목할 정도가 되었다.  여러 전문기관들이 반복적으로 예측하고 있는 바와 같이 중국은 머지않아 경제적으로 미국을 추월할 것이며, 그에 상응하는 군사력을 축적할 것이다.  중국 견제는 21세기 미국 외교∙안보∙경제 전략의 제일의 우선순위다.  코로나 이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중국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확산되고 있으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세계평균치의 2배 이상이며, 중국의 장기적 발전전망에 대해 필자는 낙관적이다.  

 

- 러시아 역시 푸틴이 등장한 이후 과거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정체상황을 극복하고 안정 속의 성장을 실현하였다.  정치적 카리스마와 원유 및 가스 수출이 그 원천이었다.

경제력과 함께 상응하는 군사력을 축적해온 러시아는 서방세계가 요구하는 게임의 규칙을 거부하고 미국 중심의 패권 구도를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러시아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푸틴이 등장한 이후 러시아가 표방하는 민족주의는 상호의존적인 두개의 축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하나는 슬라브 중심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유라시아주의다.  이러한 사상은 여러 민족주의 성향의 철학자들에 의해 정립되었으며 푸틴 대통령은 특히 두긴(Alexander Dugin)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틴과 그의 추종자들은 이러한 슬라브 중심의 사상에 기초하여 서구적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타락의 문화로 규정하고 러시아는 정교의 교리가 요구하는 도덕 규범을 정신적 토대로 하는 새로운 러시아의 건설을 표방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가 강조하는 유라시아는 정통 정교와 회교(Muslim)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통합을 하고자 하는 유라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과 같은 중앙아시아를 포함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패권 장악과 유지를 21세기 최우선의 대외정책 기조로 삼고 있음이 명백하다.  공화당 정부에서도, 민주당 정부에서도 이점에서는 변화가 없다.  중화사상에 기초한 중국의 부상이나 팬슬라비즘(Pan-Slavism)을 토대로 한 유라시아에서의 러시아 중심 문명권의 형성은 부동의 발전전략으로 보인다.  결과는 단순명료하다.  미국-러시아-중국 간의 갈등구조가 그것이다.  21세기 세계사는 바로 그에 따른 신냉전체제의 역사일 것이다.  불안정한 혼돈의 시대가 다가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럽은 미국이 추구하는 반중, 반(反)러 노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유럽은 다시 독자적 축을 강화시켜 나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EU는 미국에 비해 두배 이상 높은 무역의존도를 보이고 있으며, 독일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대중(對中) 무역의존도는 매우 높다.  2000년 이후 20년간 독일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전략산업들인 화학, 전자, 기계 부문의 대중 수출증가율은 각각 1200%, 1450%, 1860%로 급증하였다.  벤츠, BMW 및 VW과 같은 자동차의 세계 수출 중 삼분의 일 이상은 대중 수출이다.  중국과 얽혀 있는 경제적 이해관계는 여타 EU 국가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비단 무역이나 직접투자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경제 관계가 강화되어온 것이다.  가령 헝가리와 같은 동유럽 국가나 그리스 등과 같은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이미 중국이 중시하고 있는 유라시아 진출의 전략적 벨트로서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엮어져 있다.

 

러시아에 대한 정책 역시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일방적 독주가 어려울 것이다.  독일 통일 당시 기민당의 콜 수상에 대한 정책자문을 담당했던 텔식 자문관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인 2천7백만이 목숨을 잃었다.  이제 독일군이 다시 NATO의 이름으로 소련의 국경지역에 주둔하면 소련은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이 비슷한 사고는 유럽 사민당과 지식인들 사이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물론 EU는 중국에 의한 황색문명의 지배나 러시아에 의한 유라시아의 영향력 강화를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럽국가들은 적어도 경제부문에서 중국과의 교류를 지속해나갈 것이다.  가령, 독일의 경우 통신산업에서 중국의 화웨이를 배제하라는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온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반증이다.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전략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반중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다층적인 군사적, 경제적 기구들을 설립하여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제압∙억제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21세기 한국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의 한미관계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될 것이다.  하나는 「전략적 동맹」이며, 다른 하나는 글로벌 또는 「인도-태평양지역의 동반자」 관계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향후 한반도의 운명에 매우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전자는 기존의 안보중심 양국관계를 경제를 포함한 여타 분야로 확대시키기 위함이다.  미국의 주요 동기는 이를 통해 한국과 중국 간 특히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부문에서의 거래를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후자는 과거 한미 안보관계가 주로 한반도를 대상으로 하였다면, 앞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는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의 핵심 이해관계를 반영한 우리의 대미의존성의 확대 심화는 시장잠재력이 높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제관계를 약화시키고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구조의 정착을 어렵게 할 것이 우려된다.  대미의존성이 심화될수록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정책자율성의 행사가 어려워질 것임은 물론이다.  특히 미국에 대해 비판적이며 전통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강하고 받고 있는 아프리카, 중동 및 남미의 제3세계에 대한 우리의 입지가 약화될 위험이 크다.  이번 엑스포 개최국 선정을 위한 표에서 예상 외의 낮은 득표로 패배한 사례는 제3세계에서 한국이 갖고 있는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은 우리의 최대 시장이며 반도체 소재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 중간재의 핵심 공급원이다.  일부 기술집약적 전략산업에서 중국과의 거래 단절(decoupling)이 확산되는 경우 이는 중국과 한국기업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 분명하다.  2021년 현재 중국은 세계 최강의 수출규모를 과시하고 있다.  세계 수출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미국(7.9%)과 독일(7.3%)을 합한 규모이다.  이는 유사시 중국이 한국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경제는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의 성장거점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중국은 또한 주변 4강 중 대북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이다.  중국의 협조 없이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상황은 러시아의 경우도 비슷하다.  자동차 및 가전제품과 같은 내구성 소비재에 있어 러시아는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이며 국내 대기업들 중 상당수가 러시아에 현지 공장이나 직접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에 비해 러시아는 기초과학이 강하여 오래 전부터 이 부문에서의 협력을 제기해 왔다.  이를 상품화하여 국제시장을 공략하는 데 있어 한국기업이 최적의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하다.  러시아는 또한, 극동지역 개발에 있어 한국의 적극적 진출을 모색해 왔다.  농업, 어업 및 임업 그리고 지하자원의 확보 등에 있어 러시아 극동지역은 장기적으로 우리가 국토의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는 데 있어 결정적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리의 반러 정책에 기인하여 우리는 러시아의 비우호국가로 분류되었고 그와 같은 다양한 협력관계는 단절되었다.

 

최근에 들어서면서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언론의 노력은 환영할 만한 것이다.  문제는 전문가 대담에서 표출되는 관점과 결론이 일률적이어서 토론다운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나 정부 당국은 대외정책의 이원화를 주장하고 있다.  외교안보에 있어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대중 경제교류는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무책임한 주장이다.  안보와 경제를 분리시키는 작업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사드 유치에 대해 중국이 경제 보복을 가하거나 기밀유출을 빌미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일부 반도체용 원자재 수출을 금지하는 것은 모두가 안보와 경제를 연계시킨 결과다.  군사용으로 사용이 가능한 일련의 기술과 전자제품에 대해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대한 대중거래를 금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제안보」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양자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인가.

 

결론은 무엇인가.  안보부문의 대미의존성이 확대 심화될수록 우리의 한중경제관계는 위협을 받게 되고, 러시아를 자극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구조」는 이 지역의 평화정착을 어렵게 하고 경제적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일방적 대미 편향성이 확대 심화되고 한국이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에 가담하는 경우 한국은 이들 강대국간 무력 충돌에 노출될 위험이 현저하게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군사조직과 함께 반중국, 반러시아 전선에 합류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감수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함으로써 한국이 기대하는 국가이익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절실하다.

 

 바야흐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거대한 불확실성의 태풍이 일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을 마련하는 데 온 국민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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