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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18> 국제 비엔날레의 정치·사회적 담론과 반유대주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10월16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10월14일 20시08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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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hamas)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 수천 발을 발사하며 전례 없는 이스라엘 공격에 나섰다. 하마스는 가자(GAZA)지구 인근 지역에 무장 대원들을 진입시켜 주민 수백 명을 살해하고 수십 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철통같은 방공망 아이언 돔이 아날로그식 공격에 허를 찔린 셈이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완전히 포위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려 하고 있는데, 그들의 전통적 보복 방식인 진멸(盡滅)을 고려할 때 대량 참사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은 가깝게는 2차대전 이후 영국이 지배해오던 이 지역에 이스라엘인들이 1948년 국가를 건설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멀게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가나안 지역의 원주민 족속인 숙적 블레셋과의 투쟁과 대립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조상들의 고토를 회복하며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이스라엘과 아랍계인 팔레스타인의 전쟁이 있었다. 가자 지구는 구약성서의 삼손과 델릴라의 이야기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 지중해를 연하여 폭 10km 길이 41km의 긴 부지에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2007년부터 이집트와 이스라엘로부터 완전 통제받으며, 수시로 전력과 수돗물 공급이 끊기는 등 주민의 대부분이 UN 구호 식량으로 살아가고 있는 처지라 한다. 이 지역은 중동의 화약고로 지칭되며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이라는 종교적 갈등도 근본적인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미국의 정치와 경제적 영향력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들과 아랍 세력 간의 대립으로 반유대주의적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에 이어 지구촌의 또 다른 전쟁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종교적 갈등을 둘러싼 정치적 문제는 예술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국제적으로 중요한 비엔날레의 주제나 중심 담론들은 대개 팬데믹, 전쟁, 환경 등의 재앙에서 비롯된 이주, 난민,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문제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고 서구와 유럽 중심의 자본주의와 문화에 대한 비판과 반성 등이 중심 주제로 부각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들은 비엔날레와 같은 큰 미술 행사의 감독을 동남아나 남미와 같이 비서구인들에게 맡겨 새로운 담론의 생산을 구현코자 하고 있으며 북반구가 중심이 되어온 문화적 생태계와 위계를 인위적으로 해체하고자 하는 의도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의 남미 출신 큐레이터인 아드리아노 페드로사가 감독을 맡은 베니스비엔날레의 내년도 전시 주제는 “어디에나 있는 이방인”으로, 이주와 난민과 같은 비서구적 요소들이 가지는 사회적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경우도 “불가능한 안무”를 주제로 남미와 아프리카 작가들을 중심으로 서구적 관점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새로운 담론을 모색하고 있다. 작년의 광주비엔날레의 전시 제목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역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차용한 것으로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물처럼 부드럽고 약한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는 광주의 정신을 전 지구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차별, 기후재난, 난민 등 오늘의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위기 상황에서 물이라는 은유적 매체를 통해 그 위기를 전환, 회복, 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고자 했다. 

 

  이들 중 종교와 정치적 문제로 가장 심한 갈등을 겪었던 국제적 미술 행사는 독일의 소도시 카셀에서 매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카셀 도큐멘타는 과거 독일 나치 정권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히틀러에 의해 퇴폐의 소산으로 여겨졌던 모던아트(modern art)를 재조명하고 문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홍보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1955년 신설되어 5년마다 개최되는 도큐멘타는 작년 제15회를 맞아 주 전시장인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등 32곳에서 개최되었으며, 장르의 경계를 넘어 현대미술의 미래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권위 있는 미술 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제15회 도큐멘타는 자카르타에 기반을 둔 예술가 집단 루앙루파(ruangrupa)가 기획자로 참여하며 《룸붕(lumbung: 공동 쌀 헛간을 가리키는 인도네시아 용어)》을 주제어로 삼아 그 핵심 가치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시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는 도큐멘타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기획자들을 선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조직위원회는 ‘3W 없는 카셀 도큐멘타’를 설계했다. 즉 백인(Being White), 서양 중심주의(Western), 세계적인 아티스트(World famous)에게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또한 도큐멘타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지구의 북반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예술계의 시계를 남반구로 돌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작가 1,000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 작가로는 ‘이끼바위쿠르르’라는 그룹이 유일하게 선정되었는데, 설치미술, 행위예술, 작곡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통해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환경 보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팀으로 한국전쟁 및 태평양 전쟁과 관련된 미역의 역사를 소개한 ‘미역 이야기(Seaweed Story)’와 미크로네시아 섬에 남아 있는 태평양 전쟁과 식민주의 잔재를 탐구한 ‘열대 이야기(Tropics Story)’를 주제로 한 비디오 네러티브 작품을 선보였다. 

 

  기획자들이 예술적, 경제적 모델로서 제시한 ‘룸붕’은 집단성, 공동 자원 공유, 평등한 할당과 같은 원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협업과 전시의 모든 부분에 구현된다. 도큐멘타가 유럽의 전쟁 상처를 치유하려는 숭고한 의도로 시작되었다면, 이 개념은 오늘날의 상처, 특히 식민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적 구조에 뿌리를 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 동기를 확장코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룸붕은 집단성, 자원 구축, 공평한 분배의 원칙은 큐레이터 작업의 중추였으며 집단의 작업 방식은 생태학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자원, 아이디어 또는 지식이 공유되는 곳)과 사회 참여에 대한 대안적이고 공동체 중심적인 지속 가능성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아이디어는 전시 기획에서도 모든 표현에 있어 포괄적으로 고려되었다. 루앙루파는 이미 자카르타의 다른 집단과 함께 에코시스템(Ekosistem: 생태계를 뜻하는 인도네시아어)을 형성하여 자원을 공동으로 공유했다. 이 원칙에서 출발하여 루앙루파는 도큐멘타에 에코시스템의 일부가 되도록 기획했는데, 그들은 도큐멘타를 일방적으로 의뢰하는 예술 기관이 아니라 자원의 분배가 공동으로 형성되는 공동체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난 도큐멘타의 가장 큰 이슈는 반유대주의와 이를 둘러싼 논쟁이라 할 수 있다. 전시회 개최 6개월 전 참여 작가 명단이 공개되었을 때, 참가자들로부터 BDS(보이콧, 투자철회, 제재: 팔레스타인이 주도하는 자유, 정의, 평등을 위한 운동)와의 제휴가 의심된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초기에는 부당한 공격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공식적인 개막 이틀 후 인도네시아 예술가 그룹 ‘타링 파디(Taring Padi,People's Justice, 2000)’가 전시한 돼지 얼굴과 다윗별을 가진 군인이 등장하는 숨은 그림 형태의 야외 대형 걸개그림이 명확한 반유대주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에 따라 작품이 철거되고, 사무총장인 사비네 쇼르만(Dr. Sabine Schormann)이 사임하며, 조사위원회가 구성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 따라 전시회의 미래를 보장하고 앞으로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도큐멘타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및 위원회의 구조에 대한 조직적 재평가를 시행할 것을 제시하며 마무리되었다.

 

  작년 카셀 도큐멘타의 사례는 현대미술에 있어 예술의 정치적 도구화와 표현의 자유 사이에 많은 논쟁거리를 남긴 셈이다. 지나친 정치도구화는 거부해야 하지만 도큐멘타 15의 다원주의와 세계 곳곳의 풍부하고 다양한 예술적 발언의 가능성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이 정치적 공식과 고정된 사고 패턴을 재고하고 폭로하고 비판할 권리는 옹호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찌 처리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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