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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32> I'll be back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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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12월25일 10시40분
  • 최종수정 2023년09월12일 11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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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플래카드가 왜 여기 걸려있는 건가요?”

“글쎄요?”

“여긴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도 아닌데….”


 2019년 9월 초 퇴계 이황 선생님의 17대 종손인 이치억 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충남 논산에 있는 명재(明齋) 윤증 선생 고택을 찾았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전통 명가의 제사 문화를 듣기 위해서였는데 그가 논산 쪽에서 일하고 있던 데다 그 근방에서는 윤증 선생 고택이 사진 촬영장소로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윤증 고택은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그리 높지 않은 산 중턱에 있었는데 그 야산 중턱에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십시오. 이인제’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13, 14, 16~19대 국회의원(6선)을 지내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일명 피닉제(불사조의 영어명인 피닉스와 이인제의 합성어) 이인제 전 의원 맞다. (1996년 15대 총선에 안 나온 건 그해에 경기도지사에 출마해 당선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저 플래카드가 왜 걸려있는지, 왜 이 한적한 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윤증 고택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길 끝에 있고, 이 집 뒤로는 더 이상의 인가도 없었다. 길 이름으로 미뤄 플래카드가 걸린 야산이 노성산이 아니었나 싶다. 건 이유도 이해가 안 갔지만, 왜 이런 위치를 선택했는지는 더더욱 이해가 안 갔다. 산 중턱에 걸려있다고 해도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곳은 정말 하루에도 몇 명 지나다니지 않을 것 같은 산길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아…’하며 내년(2020년)에 총선이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분이 설마 또 나오려고?’(결국 이 짐작은 맞았다. 아마 기자 중에서 그의 21대 총선 출마 의지를 읽은 사람은 내가 가장 먼저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왜 이 한적한 곳에도 플래카드를 걸었는지 추정해볼 수 있었다. 도심은 보는 사람은 많아도 누구나 걸기 때문에 주목받기 힘들어서가 아닐까? 그런데 이런 외진 곳에 걸면 나처럼 의외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이런저런 입소문을 낼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 그 입소문이 ‘이인제가 야산에 플래카드를 걸었던데? 돈이 많나 봐' ’든, ‘그런 외진 데까지 거는 걸 보면 진짜 또 하고 싶은가 보지?’든. 분명한 건 나조차도 논산 시내에서 그의 플래카드를 봤다면 이렇게까지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나이가 많기 때문에 물러나야 한다는 도식적인 생각에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아무 콘텐츠도, 사명감도 없이 오직 젊다는 이유로 뽑아달라는 청년 정치인들도 배격한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자질과 능력이다. 100살이 넘어도 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정치를 하는 것이고 20살이어도 하는 짓이 ‘젊은 꼰대’면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피닉제’ 선생님의 플래카드를 봤을 때는 ‘좀 너무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당시 71세(1948년생)이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박근혜 정부 시절 친박계로 활동하면서 그가 보여준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기에 이제는 그만 만족을 알고 물러나시는 게 더 아름답지 않나 싶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그는 결국 2020년 21대 총선(충남 논산·계룡·금산)에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 공천을 신청했지만 컷오프(공천배제)됐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우리 정치, 여의도에서 정말 보기 힘든 게 ‘아름다운 퇴장’이다. 그만큼 했으면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아직도 자신은 하늘의 소명을 받았기 때문에 정치를 계속해야 한다고, 국민이 불러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국민의 소리가 더 많다는 건 왜 안 들리는지 모르겠다. 

과거 이인제 의원과 저녁 식사를 두어 번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정치인은 절대 자신의 거취에 대해 말해선 안 된다”라고 했는데 예를 들면 ‘○○당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 ‘직을 걸고 아니라고 하겠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참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대선 행보만 해도 1997년 신한국당 탈당→국민신당 창당 후 15대 대선 출마, 낙선→국민회의와 합당→2001년 새천년민주당 16대 대선 경선 출마→중도 사퇴→새천년민주당 탈당→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도 불구하고 2004년 17대 총선 당선(자민련 소속)→2007년 꼬마 민주당 입당 후 17대 대선 후보 선출→낙선으로 이어질 정도로 파란만장했으니 말이다. 


말이 난 김에 마무리가 참 안타까운 정치인 중 하나가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다. 그는 2021년 11월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의회 중심의 연합정치를 펴겠다”라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지 두 달 만인 2022년 1월 27일 대선 레이스에서 하차했다. 지지율이 너무 안 올랐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후보군에도 들지 못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오죽하면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이 (내가) 출마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더라”라고 말했을까. 이때가 네 번째 대선 출마였는데 안타까운 것은 한 번도 대선 후보가 돼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의미 없는 것이지만, 지금도 여의도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손학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았으면 충분히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 텐데”하는 말이다.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해 당시 대통합민주신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그가 왜 한나라당을 탈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결국 당시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있던 한나라당에서는 대선후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게,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까지 만약 당에 남아있었더라면 이후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파란을 겪을 때 그만한 강력한 구심점과 대안은 달리 없었을 것이란 점이다. 그랬더라면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의도에는 아직 많다. 그리고 나도 그런 가정에 동의하는 편이고, 그가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았더라면 설사 대통령이 안 됐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말이 길어졌는데 두 분을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단지 지금 자리에 목을 매고 이전투구를 서슴지 않고, 지금 그 자리가 영원히 자기 것일 것 같은 착각 속에 있는 여의도 사람들이 조금은 아름다운 퇴장을 염두에 둔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자신의 아름다운 퇴장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아름다움에 오물을 묻히는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니까. 언젠가 본 항공관련 영화에서 이런 대사를 본 적이 있다. 


<모든 비행의 끝은 착륙이고, 언젠가는 우리 모두 내려와야 한다.>

날아본 적도 없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좀 주제넘기는 하다.  

 

<ifsPOST>​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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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3년09월12일 11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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