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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15> 국립근대미술관의 조성에 앞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8월21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8월22일 10시42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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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화랑에서 최근 임군홍(林群鴻, 1921~1979) 이란 작가의 대규모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물론 미술인들에게도 조금은 생소한 이름의 작가이다. 임군홍은 보통학교 졸업 후 경성양화연구소를 다니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서화협회와 조신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입선했던 작가로 1930~40년대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현재 가족을 그린 작품과 중국풍경 및 정물 등 100여 점에 이르는 수준 높은 유화와 드로잉 작품을 남기고 있는데, 그 당시 활동하던 타 작가들과 비교할 때도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모던 뽀이’와 ‘모던 껄’로 상징되는 시대의 문화적 편린들을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고 당시 작가들의 생활상과 동아시아의 사회상을 유추할 수 있는 많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1939년 경성에서 예림 스튜디오라는 업체를 열고 간판, 포스터 등 디자인 관련 사업을 펼치다 중국 우한(武漢)의 한커우(漢口)로 이주하여 그곳에서도 광고 등의 상업미술사를 운영하면서 그림을 계속하였다. 한커우와 북경을 오가며 그린 작품 중에는 북경의 자금성과 이화원을 그린 작품들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중국에서의 사업은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1947년 귀국하여 사업을 이어갔다.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가 제작한 달력에 월북 무용가 최승희를 그려 넣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업무로 만난 미군들의 탄원으로 풀려났으나 전쟁 중 월북하고 말았다. 가정과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던 그의 정확한 월북 동기는 알 길이 없다. 남겨진 가족들의 생활고나 연좌제에 묶인 삶의 피폐함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어려운 형편에서도 작가의 작품과 유품들을 목숨처럼 보관해온 부인과 둘째 아들 덕진씨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그의 작품들이 오랜 기간이 지난 후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작가 임군홍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의 근·현대사는 숱한 개인사와 가족사의 총체이다. 뼈아프게 묻어둔 애환을 갖지 않은 가족사가 얼마나 될까? 이는 모두가 일제의 식민 시기와 동족 간의 전쟁이 남긴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어려운 시절의 기억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의 근대사가 가진 이 미해결의 상흔과 응어리들이 치유되기까지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할 정치,사회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근대의 기록들은 매우 부족하다. 특히 예술 분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주로 제도권에서 조명받았던 작가들을 중심으로 남아 있지만, 예술적 성취가 뛰어나다고 하여도 자료의 망실이나 정치·사회적 요인 등으로 묻힌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것들마저도 친일이나 반공의 잣대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1988년 월북예술인들의 해방 이전 작품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1920년대 이후 해방에 이르는 20여 년의 문화사적 공백을 복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이미 실재했던 문화적 소산들을 매장해 왔던 정치적 기준을 문화사적 영역에서 제거함으로써 우리 민족 문화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전기가 됐다. 이 조치는 궁극적으로 분단의 역사와 현실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기반으로 작용할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여전히 친일 행적을 남긴 예술인들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다. 

 

2009년 11월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 인명사전』에 따르면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친일 인물 총 4,776명에 이르며, 그들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 행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해 국가 기관인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보고서」는 그와 다른 내용을 밝히고 있다. 『친일 인명사전』은 학계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민간 연구소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 결과물로서 많은 문제점이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 과정에서 규정한 친일 기준의 일관성이 없고 때에 따라서는 명백한 친일 행적을 가지고 있지만 명단에 빠져 있는 일도 있어 새로운 관점과 세밀한 교차검증 등을 통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특정 인사의 경우는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독립투사로 인정되어 그의 이름을 딴 미술상이 제정 운영되고 있기도 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우리의 근현대사가 안고 있는 질곡의 한 단면이다. 해방 후 반민특위의 활동이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원인이 크지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친일파의 프레임이 더 강세를 보이는 현실이고 보면 친일의 문제는 미래를 위해 오늘의 시점으로 좀 더 명확한 기준과 사회적 공감대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이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예술사를 위한 별도의 담론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아직 국립근대미술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 미술 작품에 대한 수집과 연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명칭(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에서 보듯 근대와 현대, 컨템포러리(당대) 미술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처지인데, 근대와 현대에 대한 구분도 명확지 않은 상황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그간 근대보다는 현대와 당대에 더 비중을 두어 온 터라 근대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정황이다. 근대를 근거로 하지 않는 현대나 당대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립근대미술관의 건립에 대한 필요성과 이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발의되었다. 대구광역시 등 지방 도시들은 저마다 지역의 근대미술사적 의미를 결부시켜 국립근대미술관의 유치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 기반 작가들의 불충분한 작품들을 근거로 건물을 조성하는 일에 관심을 가질 뿐 근대에 관한 총체적 시각이나 관점을 기반으로 고민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 과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로 그리 단순치 않다. 근대라는 시기 규정과 함께 근대의 역사적 질곡의 내용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로 인해 없어지거나 노출되어 있지 못한 기록들과 작품들을 충분히 수집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근대미술사 전문가들의 연구가 집적되어야 하고 다른 한편 작가들과 흩어져 있는 그들의 작품의 소재 파악과 수집 절차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근대의 공간적 범위는 국내만을 대상을 넘어서고 있어 일본이나 중국, 미국이나 유럽 등의 넓은 공간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임군홍의 경우는 매우 운이 좋은 사례이다. 거의 7.80년 전 제작된 그의 작품이 비교적 고스란히 양호하게 남아 있고, 아카이브도 충실한 편이다. 오늘의 그가 있을 수 있는 것은 유족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고 전시를 통해 빛을 보게 한 예화랑은 물론, 선견자들의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우리에겐 여전히 발굴되지 못하고 있는 많은 근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있다. 정부는 근대 미술의 발굴을 위해 체계적인 기준을 세우고 작품조사와 수집에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그 일을 담당해야 하겠지만, 미술사와 비평 분야 전문가들,그리고 미술계의 많은 주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 연구자들에 대한 전폭적 지원과 유족들이나 소장자들과 폭넓은 네트 워크를 조성하고, 망실될 수 있는 작품과 자료들을 보존하고 확보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 유산들은 각각의 특성들로 서로를 보완함으로써 근대의 문화적 총체를 규명해 내는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숱한 근대의 문화유산들이 말없이 스러져 버릴 위험에 직면해 있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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