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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8> 한국 메이저 비엔날레들의 일신을 바라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5월15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3년05월14일 10시56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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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에게도 이젠 비엔날레란 명칭은 낯설지 않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전시’라는 의미를 가진 대규모의 전시 행사로 국내에는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비엔날레 등 20개가 넘는 크고 작은 비엔날레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비엔날레를 개최하기에는 규모가 큰 관계로 많은 예산과 전문성이 필요하여 민간보다는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광주비엔날레는 국제적 명성을 가진 국내의 대표적 비엔날레로서 아시아 제1의 비엔날레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이나 서울, 그리고 군소 비엔날레 역시 나름의 영역에서 지명도를 가지면서 국제교류의 창구로서의 역할과 국내 미술 분야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단체가 운영하는 작은 비엔날레는 말할 것도 없고, 메이저급 비엔날레 역시 여러 가지 제도적 한계와 문제점들을 일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비엔날레라는 전시의 역사적 기원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시작되었다. 베니스 비엔날레로 지칭되는 이 행사는 1895년 이탈리아 정부가 설립한 국제행사로서 자국의 예술적 우월성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베니스의 자르디니 공원 내에 본 전시장인 아르세날레(Arsenale)관과 각국가관을 조성하고 각국이 문화적 우월성을 겨루는 장으로서 기능하도록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지금도 베니스 비엔날레는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행사로 비엔날레가 열리는 시기가 되면 전세계 미술관계자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미술 플랫폼이 되고 있다. 베니스 시는 이를 문화산업으로 발전시켜 지역 경제를 확충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도 베니스 현지에 한국관을 확보하고 있어 우리의 미술을 소개하는 중요한 장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필두로 상파울로,이스탄불,베를린 등 각국에서는 앞다투어 비엔날레를 조성하고 있으며 1995년 급기야 한국에서도 비엔날레를 소유하게 되었다, 베니스에는 미술 이외에도 건축, 영화, 무용, 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비엔날레 행사가 벌어지고 있어 전세계 예술 종사자들의 메카로 상징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비엔날레의 태생적 속성이 보여주는 것처럼, 마치 19세기 영국이나 프랑스가 주도하던 만국박람회와 같이 제국주의 시대 선진국이 자국의 경제적 부를 과시하는 전근대적 사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점은 비판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적인 행사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는데, 독일 카셀에서 개최되는 도쿠멘타전이나 뮌스터의 조각프로젝트 같은 행사가 그것이다. 1955년 설립된 카셀도쿠멘타는 5년마다 개최되며 현대미술을 ‘퇴폐미술’로 명명하며 탄압했던 나치즘 시기의 문화적 암흑기를 쇄신하며 국민들에게 고급미술 문화를 향유케 하려는 목적으로 건립되다. 현재는 현대미술을 선도하는 전시회로 경쟁보다는 새로운 담론을 개발하는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베니스와는 다른 새로운 성격의 비엔날레들이 늘면서 유형이 다양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비엔날레의 양상들은 초기와는 달리 그 열기가 식고 있다. 그 수효가 많기도 하고 비엔날레와 같이 비영리적 행사보다 볼거리가 많은 상업적 행사인 아트 페어가 좀 더 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엔날레 마다의 정체성과 특성이 약화되며 매년 개최되는 행사의 주제나 작가들 역시 비슷비슷한 성격을 보이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비엔날레 마다 팬데믹, 기후변화와 생태, 패미니즘과 신식민주의,신자유주의 등 비슷비슷한 주제를 내걸고 있고  제한된 수의 커미셔너나 예술감독들이 중요한 비엔날레들을 순회하며 직임을 맡아 수행하면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작가군들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작가 풀 역시 비엔날레마다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그중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

 

  국내 비엔날레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초기의 열기는 식어지고 매년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전시와 부대행사를 마련하고 있지만, 실제로 국내 작가들의 관심 제고나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위한 설립 초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여전히 역부족인 실정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광주비엔날레 역시 그 역사에 비해 성과나 흥행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본격적인 전시 평가에 앞서 불거진 ‘박서보 예술상’의 문제가 해소되긴 했지만, 비본질적인 측면에서 비엔날레 운영과 전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고 말았고, 전시의 내용 역시 전술한 주제 관련 이유로 큰 호평을 받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광주비엔날레만의 차별성을 찾을 수 없을뿐더러 또한 ‘박서보 예술상’의 스캔들에서 불거진 ‘광주의 정신’과 관련한 광주비엔날레의 정체성 문제를 여전히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과제로 남기고 있다. 지속가능성, 인권, 정의, 다양성 등 소위 ‘광주 정신’을 재문맥화 할 수 있는 거시적인 시각과 국제적 맥락에서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고민할 때가 이미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운영방식과 관련해서도 앞서 논의한  베니스의 사례를 추종하는 듯한 국가관 조성 운영은 광주 정신과 결부시켜볼 때 시대착오적인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24년도 전시 감독 선임과 관련한 문제 역시 전향적 사고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번 선임된 감독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비평가로서 큐레이터로서 경험과 능력 면에서 정평을 가진 인물임엔 틀림없어 전시의 흥행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국제무대에서 이미 수많은 비엔날레를 치룬 베테랑으로서 신선하지 못한 인물이다. 예단할 수 없지만 그가 꾸려낼 전시는 과거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주 정신과 광주만의 독특한 차별성을 찾고자 하는 상황에선 많은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광주뿐만 아니라 내년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선정도 한국관 개관 이래 최초로 해외 인사를 선정했다. 주최 측인 예술위원회는 야콥 파브리시우스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팀을 선정하고 짐짓 새로운 시도임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그 역시 국제 비엔날레 무대에서 신선한 인물은 아니다. 혹여 그의 인맥을 활용한 흥행이나 선정작가의 수상 전략이라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종 후보자선정 과정에서 그들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어 선택되었을 것으로 믿고 있고 그들의 능력을 폄훼하거나 국수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여전히 내국인보다 해외 인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외국인을 초빙하여 한국미술을 글로벌화 하겠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 결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개방적으로 능력있는 해외인사들을 초빙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베니스의 독일관처럼 타국의 작가를 초빙하는 전향적 태도도 필요하다. 하지만 주체적 입장이 결여된 태도는 결과적으로 시행착오만을 반복할 뿐이다. 

 

  어쨌든 전세계적으로 비엔날레라는 제도는 점진적으로 에너지가 약화되어 가고,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환경의 문제, 막대한 재원확보를 위한 스폰서링의 문제, 인프라의 확충 문제 등등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각예술 분야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새로운 틀의 대안적 제도가 필요한 시점에서 여전히 과거의 틀을 답습하며, 약화되어 가는 서구적 플랫폼과 인력들에 의존하면서 독자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우리 미술의 경쟁력은 어느 세월에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국내 메이저 비엔날레들과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운영과 관련하여 좀 더 우리만의 획기적인 혁신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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