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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20 : 북제 창업자 고환의 업적을 다 까먹은 아들 고담과 손자 고위 <E>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4월14일 16시50분
  • 최종수정 2023년04월03일 11시04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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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31> 고환이 절민제 원공의 폐위(AD532)

 

이주천광은 고환을 치려고 했을 때 동생 이주현수를 장안에 남겨두고 진주자사 후막진열과함께 동쪽 낙양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주천광의 부장 하발악은 반드시 패할 것을 알고 후막진열을 남겨두게 한 다음 이주현수를 처치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발악의 부하 우문태가 하발악에게 말했다. 

 

  ” 이주천광이 가까이 있고 또 후막진열은 아직 반란의 생각이 없습니다. 

    후막진열의 부하들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도록 설득하면 

    자연스럽게 행군속도도 더뎌지고 또 이준천광의 의심도 사게 되어서

    후막진열이 결국 모반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발악은 기막힌 책략이라고 생각하고 우문태를 후막진열의 군영 안으로 들여보내 군사들을 설득하였다. 후막진열이 마침내 생각을 고쳐서 하발악과 함께 장안을 역공하여 이주현수를 사로잡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AD532년 4월 18일 고환은 절민제 원공과 함께 낙양의 북쪽 망산에 도착했다. 그러나 크게 성공한 고환은 원공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이 없었다. 황족으로서의 계보가 멀기도 하고 민심이 어떻게 따라 줄지도 걱정이었다. 따라서 측근들에게 이주씨가 세운 절민제 원공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보도록 지시했다. 고환의 측근들은 절민제의 생각과 학식이 범상치 않으므로 장차 통제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교체하기를 바랐다. 고환이 백관을 모아놓고 의견을 물었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기무준이 나서서 절민제가 현명하다고 크게 칭찬했다. 고환의 측근들은 현명하기로 따진다면 고환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오랑캐가 추대한 사람이 어떻게 황제가 되느냐고 반박했다. 고환은 절민제를 숭훈불사에 유폐했다. 

 

이주씨를 무너뜨리는 계략을 짰던 곡사춘이 하발승에게 말했다.

 

  ” 지금 천하의 일은 나와 그대에게 있을 따름이요.      

    먼저 다른 사람(고환)을 제압하지 않으면 곧 제압당할 것이오.

    고환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도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소.“

 

하발승이 말했다.

 

  ” 계획은 우리가 세웠으나 큰 공로를 세운 것은 그(고환)요.

    그를 해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할 것 같소.

    그와 며칠을 함께 묵었는데 

    그가 공을 높게 생각하며 고마워하고 있소.

    걱정이 너무 지나친 것 같소.“

 

곡사춘은 고환을 제거할 생각을 접었다. 고환은 원공을 대신할 종친을 물색하다가 숨어있던 전 상서좌복야 평양왕 원수를 모셔왔다. 그는 원굉의 손자이고 효명제 원후의 사촌동생이었다. 황실 적통에 가장 가까운 종친이었으므로 원공을 설득하여 양위하게 하고 원수를 황제로 모셨다.(AD532년 4월 25일) 이 사람이 효무제 출제다. 폐위된 절민제 원공을 전폐제라고도 한다. 고환은 대승상, 천주대장군, 태사가 되었고 정주자사를 겸하였다.

 


<32> 하발악, 고환의 소환 거절(AD532)

 

낙양에 들어와 옛 황제 원공을 폐하고 새 황제 원수를 세운 고환은 기주(하북성 기주 부근)자사 하발악을 징소했다. 하발악은 이주천광과 함께 행동한 사람이었으므로 들어가면 죽을 지도 몰랐다. 하발악이 망설이면서 양에 투항할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설효통이 말했다.

 

  ” 고환은 지금 안에서 영웅호걸을 어루만지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공과 군사를 가지고 다툴 계제가 아닙니다.    

    또 관중의 여러 세력들은 공에게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쉽게 손발을 묶어서 다른 사람에게 통제를 받으려고 하십니까?“

 

하발악이 말을 끝내지 않은 설효통의 손을 잡고 말했다.

 

  ”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옳소.“

 

하발악은 고환의 부름에 겸손한 말로 응하지 않고 자신의 영토 기주를 굳게 지키기로 했다. 고환은 군대를 이끌고 정주(도읍은 업)으로 돌아갔고 잡혀있던 이주천광과 이주도률의 목을 베었다. 북위 황제 원수는 유폐된 절민제 원공을 독살하고 원흔을 태사, 원심을 태보, 원보거를 태위, 원단을 사공, 그리고 장손치를 태부로 임명했다. 고환은 천주대장군을 극구 사양했다.

 

 

<33> 고환의 이주조 소탕(AD532-AD533)

 

이주씨 무리 중에 아직 제거되지 않은 세력은 태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이주조였다. 북위 조정에서는 대도독 고적간과 표기대장군 고륭지의 10만 대군이 이주조를 토벌했다. 고륭지는 고환과 만나서 함께 이주조 군대를 격퇴시켰는데 이주조는 수용(산서성 삭주)으로 도망쳤다.

이주조가 다시 노략질에 나서자 고환은 반격한다고 하면서도 군사를 중지시키기를 여러 번 하였다. 우둔한 이주조는 고환의 군사가 겁을 먹고서 싸울 생각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방비를 게을리 하였다. 고환은 이주조가 연초 연회를 열 것을 고려하여 급하게 선발대를 파견한 다음에 대군을 이끌고 뒤를 이어갔다.(AD532년 12월)    

다음해 초 고환의 장수 두태가 연회를 열고 나태해 있던 이주조를 급습하였다. 궁산으로 도망갔던 이주조가 좌우에 명하여 자신의 목을 자르고 투항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그러지 못하였다. 결국 이주조는 자기가 타던 백마를 죽이고는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고환은 이주조를 후하게 장례를 치렀다. 이주조의 졸병들과 이주영의 처자를 거느리고 있던 모용소종은 고환에게 투항했는데 평소 그가 의로웠으므로 고환이 후하게 대해줬다. 그리고 이주조가 수용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고환과 내통했으나 그러지 않은 장량의 절개를 가상하다고 여겨 자신이 있는 승상부의 참군으로 임명했다.   

 

 

<34> 곡사춘의 고환 제거모의(AD533)

 

투항한 이주중원의 참모 교령과 장자기를 고환이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시중 곡사춘이 매우 불안했다. 곡사춘은 조금 전까지 고환을 제거할 생각을 가지고 하발승과 의논을 했던 사람이었다. 곡사춘은 원보거, 원비 왕사정 등과 함께 북위 황제 원수를 움직여 고환을 제거할 계획을 꾸몄다. 그리고 황궁 내에 도독부곡을 설치하여 무사 수백 명을 추가로 엄선하여 수행병으로 삼았다. 황제와 마음이 맞은 곡사춘은 황실과 온갖 정무를 장악했고 군사는 하발악에게 관중대행대, 그의 형제 하발승에게 도독삼형등칠주제군사라는 직책을 주어 고환을 견제하도록 했다. 당시 신도에 있던 시중 고건이 부친상 때문에 사직하자 황제는 그것을 허락함과 동시에 고환을 제거할 의사를 밝히고 동참하는 언약을 얻어냈다.  

   

황제가 궁내에 도독부곡을 설치하고 고환제거 작업을 착착 진행하자 고건은 마침내 친척들에게 황제와 곡사춘과 하발악과 하발승과 완사정과 원사필의 무리들이 연합하여 고환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다고 고환에게 알리도록 했다. 고환은 그 사실을 듣고서 고건을 병주로 불러 면담을 했다. 고건은 이참에 황제로부터 선양을 받으라고 권했지만 고환은 펄쩍 뛰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리고는 황제에게 고건을 시중에 복직시켜 줄 것을 요청했지만 황제는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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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이 서주자사직을 얻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결국 서주자사가 되었다.   

 

고건이 서주자사로 나갈 때 황제는 고환제거 계획이 드러난 것을 깨닫고 고환을 불러서 고건이 자신과 함께 고환을 제거하기로 한 약속을 했다는 사실을 고환에게 알려주었다. 매우 불쾌한 고환은 고건과 교환한 모든 서신을 황제에게 보여주었다. 황제는 다시 고건을 소환하여 고환제거 소식이 누설된 것을 꾸짖었다. 고건이 이렇게 반문했다. 

 

  ” 폐하께서 스스로 서기 위해 변란을 꾸미신 것인데

    신하더러 반역을 했다고 꾸짖으십니다.

    주군이 죄를 내리니 누가 거역하겠습니까?“

 

사약을 받고 고건이 죽었다. 황제는 동시에 동서주자사 반소업에게 고건의 동생 고오조를 죽이라고 지령을 내렸는데 고오조는 형이 죽은 것과 자신을 제거하러 온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서 건장한 장사를 길에 매복시켰다가 반소업의 칙서를 훔쳐가지고 고환이 있는 진양으로 도망갔다. 고환은 머리를 싸 감고 곡을 하며 고건이 죽은 것을 애통해했다.

 

 

 

<35> 하발악의 사마 우문태(AD533)

 

관중대행대 하발악은 부하인 풍경을 진양에 있는 고환에게 보냈다. 고환은 심히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하발공은 마치 내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소.“ 

 

그리고 풍경과 삽혈하여 하발악과 의형제를 맺었다. 돌아온 풍경은 하발악에게 고환이 매우 간사하여 믿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하발악의 사마 우문태도 사신을 자청하여 진양으로 가서 고환을 만났다. 고환은 우문태의 기이한 모습을 보고 잡아두려고 했지만 꼭 돌아가서 상관에게 보고해야한다고 하므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곧 크게 후회하여 군사를 보내 추격했으나 따라잡지 못하고 돌아왔다. 우문태가 추격을 예상하고 놀라운 속도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붙잡히지 않았다. 장안으로 돌아온 우문태는 하발악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아직 정권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공을 형제로 삼자고 한 것입니다.

    후막진열의 무리는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공께서는 몰래 대비를 하셔서 고환을 쉽게 도모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문태가 여러 가지 전략을 말하자 하발악이 매우 기뻐하며 그를 낙양에 보내 그 내용을 비밀리에 북위 황제에게 보고했다. 만족한 황제는 우문태에게 위무장군의 칭호를 내렸다. 8월에 황제는 하발악에게 도독옹화등이십주제군사, 옹주자사를 내리고 신뢰의 뜻을 보이기 위해서 가슴 앞의 피를 뽑아서 사자에게 주어 보냈다. 하발악이 말을 먹인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서쪽 평량(감숙성 화정)으로 들어갔다. 곡발이아돌, 흘두릉이리, 비아두만사 등이 하발악에게 호응해 들어왔고 철륵사람 곡률사문등도 투항해 들어왔다. 다만 영주자사 조니는 고환에게 붙었다. 진주, 남진주, 하(河)주, 위주의 네 주가 평량에 모여 하발악의 지휘를 받기로 약속했다. 하(夏,정변)주가 매우 중요하여 누구를 맡길까 고민했는데 모두들 우문태를 추천하므로 하발악이 말했다.

 

  ” 우문좌승이야 말로 나의 오른 팔 왼팔 같은 사람이다.

    어찌 마다할 수가 있겠는가! “       

 

며칠을 즐거워하더니 돌연히 표문을 올리고 그를 기용했다. 고환은 하발악과 후막진열의 세력을 넓혀감에 따라 양 세력 간에 이간정책을 쓰기로 하고 우승 적숭을 파견했다. 적숭은 후막진열에게 가서 조만간 하발악이 공격해 들어올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36> 하발악의 사망과 우문태의 집권 : 하곡(河曲)의 변(AD534)

 

하발악이 고환에게 붙은 영주자사 조니를 토벌하려고 우문태와 상의하였다. 우문태는 조니보다 후막진열을 먼저 공격하자고 했다. 그러나 하발악은 우문태의 말을 듣지 않고 후막진열과 함께 조니를 치러 가기로 했다. 그러나 후막진열은 이미 적숭으로부터 하발악이 배반하고 자기를 공격할 것이라는 반간 계략을 믿고서 거꾸로 하발악을 잡을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발악의 참모 뇌소가 그 가능성에 대해서 경고했지만 하발악은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하발악과 후막진열이 함께 출병하여 북으로 진군하는 도중에 하곡에 이르렀을 대 후막진열이 하발악을 군영으로 초대했다. 식사를 같이하던 중 후막진열이 배가 아프다고 빠진 사이에 그의 사위 원홍경이 들어와 하발악의 목을 베었다. 후막진열은 본거지인 농(감숙성 장랑)으로 돌아갔다. 하발악의 남은 무리들은 우문태를 추대했다. 우문태는 장좌들과 빈객들과 그 문제를 의논했는데 하늘이 준 기회니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우문태가 말했다.

 

  ” 후막진열이 원수(하발악)를 해친 다음 

    승기를 타고 바로 평량으로 가지 않고

    군사를 물려서 본거지 수락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나는 그의 무능함을 알았다. 

    무릇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것이 때(時)다.

    만약 서둘러 부임하지 않으면

    민심이 장차 떠날 것이다.“  

 

우문태가 좌장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고환이 하발악 무리를 위무하려고 후경을 보냈는데 우문태가 화를 내며 말했다.

 

  ” 하발공이 돌아가셨지만 엄연히 내가 있는데 

    경은 무슨 일을 하자고 온 것이요! “  

 

후경이 실색하며 말했다.

 

  ” 저는 오로지 그대의 활 앞에 있을 뿐입니다.

    마음대로 쏘셔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우문태는 후경을 돌려보냈다. 고환이 다시 후경과 장화원과 왕기를 보내 하발악의 사망을 위로하려고 했다. 우문태는 그들을 억류하면서 사로잡아 두려고 했지만 장화원이 말했다.

 

  ” 밝으신 공께서 사자들을 죽음으로 위협하시지만

    그것은 저 화원이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니다.“

 

우문태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왕기가 돌아와서 아직 안정되지 않은 지금 공격해야 한다고 재촉하자 고환이 말했다.

 

    ” 경은 하발악과 후막진열을 보지 못하고 하는 소리요.

      나는 당연히 꼼꼼히 생각해보고 움직여야 하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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