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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의 연금개혁 리더십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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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3월26일 17시1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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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이 심상치 않다.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의 과감한 연금개혁 의지에 반기를 든 노동조합의 기세가 거세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23일 노동조합 총궐기로 노동조합 대표격인 노동총연맹 (CGT: 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이 추산한 바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350만 명, (프랑스 내무부 추산으로는 110만 명), 파리에만 80만 명이 (내무부 추산으로는 11만 9천 명)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지난 1월 10일 연금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후 (지금까지 중간중간 발생한 산발적인 시위 회수를 제외하더라도) 노동조합 주도의 거리 시위로만 9번째이며 지난 3월 7일에 맞먹는 대규모라고 보도되고 있다.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안이 천신만고 끝에 지난 21일 국회를 통과한 이후인데도 아직 미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 성장여력을 갉아먹는 연금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선 마크롱 대통령

 

선진국으로 진입한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듯이 프랑스의 연금재정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연금재정이라는 것이, 원래는 본인이 일하는 동안 납부한 ‘사회보장부담금’ 형태의 기여금을 은퇴 후 생활보장성 소득으로 받는 제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현재 일하는 사람들이 ‘사회보장부담금’의 형태로 내는 기여금으로 과거에 일하다 은퇴한 사람들에게 ‘연금’이라는 형태로 지불하는 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도 지금 노동자들이 내는 사회보장부담금으로 과거 노동자들의 연금을 충당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연금제도를 정착시킨 초기인 1960년 4명에 달했던 연금 수혜자 1명당 사회보장부담금 기여자의 수는 2022년 현재 1.7명으로 급감했고, 2040년에는 1.5명이 될 것으로 전망되어 이대로 가다가는 미래 세대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연금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프랑스의 은퇴자수는 1,700만에 이르고 있는데 2030년에는 2,000만에 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마크롱은 주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은퇴자들의 수명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므로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연금자문위원회의 추계에 의하면 프랑스 연금 재정은 올해부터 18억 유로(약 2조 5000억원) 적자로 돌아선 후 2030년에는 135억 유로, 2050년에는 439억 유로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사실 1993년부터 프랑스 연금재정 문제는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고, 이미 여섯 차례나 개혁안이 논의/제출되는 우여곡절을 겪어 왔으나 모두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적자 문제야말로 향후 프랑스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로 규정하고 두 차례의 선거 과정에서 계속 자신의 최대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그 실현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나선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래 세대를 위해 쓸 돈을 연금 적자에 퍼부을 수는 없다.’라는 강한 슬로건을 외치면서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병상린의 상황에 처해 있는 많은 선진국들이 그 추이에 예의주시하고 있고, 연금은 물론 노동, 교육을 포함한 이른바 3대 개혁을 기치로 내건 우리 정부로서도 그 추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의 미래 성장을 정치적 기치로 내걸어 온 마크롱 대통령

 

반대를 무릅쓰고 마크롱이 개혁을 추진하려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정치적 행보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크롱은 줄곧 ‘프랑스의 경제활력 회복’을 정치적 신념으로 다져왔다. 어느 나라에서건 보수가 경제성장을 강조하고, 진보가 소득 분배를 중시한다는 정치적 성향과는 다른 조금 더 깊은 신념이라고 읽어야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이전에 쌓은 경력을 보면 금융계, 재계 등을 거치면서 현실 경제의 논리를 체득했고,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부 장관을 맡고 있을 때도 계속 ‘프랑스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다가 반대에 부딪치자 장관직을 사임하고 독자적 정치의 길을 열어가면서 그 신념은 더욱 깊어진 것이다. 

 

또한 마크롱은 어려운 정치적 고비를 과감하게 정면으로 돌파하는 길을 택해 왔고 이를 통해 비교적 성공을 거두어 왔다. 그의 첫 임기 동안 두 가지 큰 고비를 넘길 때도 어김없이 그랬다. ‘노란 조끼’ 운동으로 프랑스 전체가 술렁일 때 마크롱은 전국을 돌며 ‘대토론회 (Grands débats)’를 열어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고,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도 세 번이나 봉쇄조치를 추진하는 결기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번에도 그 결기를 동원하여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에 나선 것이다.

 

정년 연장과 사회보장부담금 납부 기간 연장이 핵심 내용

 

연금개혁의 주 내용은 역시 지금 세대가 조금 더 길게 일하면서 ‘사회보장부담금’을 지불하는 기간도 늘리자는 것이 골자이다. 즉, 현행 정년퇴직 연령인 62세를 64세로 연장하는 것과 그렇게 늘어난 근로기간을 이용해서 근로자들이 사회보장부담금을 납부하는 기간도 42년간에서 43년간으로 늘리는 (43년간 납부하면 자신의 소득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의 연금을 수령할 수 있게 됨) 것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연금재정에 숨통을 트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한꺼번에 이 모든 기간 연장을 도입하지 않고 지금 세대부터 점차적으로 사회보장부담금 납부와 정년 연장 기간을 조금씩 늘려가서 오는 2030년 이 제도를 완성/정착시키는 식으로 제시되어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렇게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부담을 안게 되는 현재 세대들을 달래기 위해 향후 수령할 수 있는 연금의 최저 수준을 현재의 1,025유로에서 1,200유로로 인상하는 당근도 제시하고 있다. 

 

개혁의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개혁이 지나치다고 주장하는 반대 여론

 

프랑스 국민들은 지금 그들이 누리고 있는 연금제도에 대해 너무나 익숙하고, 또한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연금제도가 프랑스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정치적 결단을 하는 것을 기다려 온 셈이다. 이를 해결하는 길로서 보통 세 가지 대안이 제시되어 왔다. 정년기간의 연장, 사회보장부담금의 증액, 그리고 연금의 감액 등이다. 세 번째 선택은 누구나 싫어하기 때문에 제외되었고, 마크롱은 두 번째 길을 단호히 배제했다고 한다.

 

사회당과 같은 온건 진보 정당들이 연금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려 하는 가운데, 마크롱의 정적들은 국민 정서에 영합하여 오히려 정년을 단축하겠다고 주장해 왔는데 사회보장 재정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임은 자명하다. 그 대안으로 극우파는 외국인 거주자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의 철폐를, 극좌파인 프랑스 앵수미즈는 부자 증세를 내세운 바 있다.

 

대체로 이런 연금 개혁에 나설 때 다른 나라에서도 그러했듯이 이해당사자들의 진영을 나누는 식의 이른바 ‘divide and rule’ 정책이 채택되곤 했지만, 이번 마크롱식 연금개혁 과정에서는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비교적 온건한 편이어서 마크롱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줄곧 협상 파트너가 되어 왔던 노동조합인 프랑스 민주노동연맹 (CFDT: Confédération Française Démocratique du Travail)조차도 강경파로 돌아서서, 전국적인 파업에 동참하고 말았다. 이로써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이 총결집하여 반대진영에 서게 된 것이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68%가 반대하고 있으니 문자 그대로 사면초가인 셈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높은 연금의 소득대체율 때문에 정년 연장에 반대

 

우리나라에서는 정년 연장을 더 바라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에서는 왜 정년 연장에 이렇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연금의 소득대체율, 즉, 자신이 지금 벌고 있는 소득 대비 향후 기대되는 연금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OECD 연금 통계를 가지고 비교해 보면, 2020년 기준 연금의 순소득대체율 (소득세와 사회보장부담금을 감안, 남자 기준)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45.8%의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데 비해, 이웃 유럽국가들과 비슷하게 프랑스는 71.3%라는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으므로, 정년을 연장하면서까지 더 오래 일할 유인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아직도 나이에 따른 호봉승급의 전통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연령자에게 지급되는 임금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대의 이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프랑스 공화당의 우유부단이 개혁안의 국회 통과와 이후의 정치적 혼란 불러와

 

프랑스 정부의 연금 개혁 추진은 여당인 ‘르네상스’당이 국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어서, 국회 제출 순간부터 그 통과 과정이 매우 험난하리라고 예견되었다. 그렇지만, 좌파와 극우파 정당들의 반대 속에서도 한 가지 희망을 건 것은 전통 우파인 프랑스 공화당 (Les républicains)의 지지였다. 공화당의 지지만 있으면 상/하원 모두 무난히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추진 과정 초기에는 공화당도 정부 개혁안에 지지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점점 반대 여론이 더 거세어지자 공화당의 전열이 흐트러지면서 묘한 상황이 전개되어 버렸다. 개혁안이 상원에서 통과된 이후 상/하원의 합동 토론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의 전폭적 지지가 무너져 가는 가운데 하원에서의 의결 날짜가 다가오자 마크롱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프랑스 헌법 49조 3항이 허용하는 긴급명령을 발동하여 이 법안을 하원 의결의 수순을 거치지 않고 통과시켜 버린 것이다. 법안 제안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기까지 의회가 의결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 법안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가지는 경우’라는 이유를 내건 것이다.

 

이런 대통령의 긴급명령에 대항하여 야당이 추진할 수 있는 길은 일종의 정부 불신임안인 ‘motion de censure’를 발동하는 것인데, 좌파, 극우파가 모두 불신임안을 제출하면서 밀고 나갔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프랑스 공화당이 이러한 불신임안에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국회에서 부결되어 버렸고, 자동으로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연금개혁안의 운명은 미래 세대의 태도에 달려

 

그렇지만, 아직도 연금개혁안은 여론의 역풍이라는 힘든 고비를 넘겨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법안 공포라는 절차에 앞서 노동조합들이 주도하는 시위, 파업의 강도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갈수록 그 강도가 거세어지고 있고, 야당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프랑스의 헌법재판소격인 헌법자문위원회 (Conseil constitutionnel)에 이 개혁안의 ‘헌법 불합치’ 가능성을 제소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법안을 주도하여 만들어 온 보른 총리 측에서도 역으로 이 위원회에 동 법률안의 ‘헌법 합치성’을 속성으로 심의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헌법자문위원회의 판단이 향후 가장 큰 변수로 등장하였다. 대체로 법률적으로는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견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프랑스 연금개혁의 행로는 ‘마크롱 대통령의 뚝심’과 ‘야당들과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여론전’의 싸움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의외로 결정적인 열쇠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라는 미래 세대들의 손에 있는 것 같다. 즉, 이들이 어느 정도 반대 시위에 동참할 것인가가 여론의 향방을 좌우할 것인데, 야당이나 노동조합들도 이들 미래 세대들의 전폭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고, 마크롱 대통령도 이들을 완전히 설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견하여 위에서 언급한 ‘미래 세대를 위해 쓸 돈을 연금 적자에 퍼부을 수는 없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는지도 모른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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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3월26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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