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전쟁과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 한국의 전략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2월15일 17시10분

작성자

메타정보

  • 1

본문

지난 8일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놓여 있던 그곳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서 있는 모습이 TV 화면에 보였다. 전시 대통령인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영국을 방문해 상하 의원들 앞에서 연설한다는 뉴스를 보고 BBC를 켠 참이었다.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외국 정상이 연설하는 건 사실 매우 특별한 일이다. 2012년 미얀마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 이후 처음이라고 한 외신이 전할 정도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입장하기 한참 전부터 홀에는 리쉬 수낙 총리와 상하 의원들이 모여서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꽤 오래, 그들은 연단 아래 홀에 서서 젤렌스키를 기다렸다. 의원들이 앉을 의자는 없었다. 그들은 젤렌스키가 국회의장과 함께 들어오자 한동안 기립박수를 쳤다. 

선 채로 자신의 연설을 경청하는 영국 국회의원들 앞에서 젤렌스키는 영어로 전투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사한 우크라이나의 파일럿이 썼던 헬멧을 국회의장에게 선물했다.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날개를 달라.” 헬멧에는 그렇게 쓰여있었다.

 

웨스트민스터 홀 연설을 위해 방문한 그를 수낵 총리가 직접 공항에서 영접했고, 둘은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아침 식사를 함께했다. 연설을 마친 젤렌스키는 버킹엄궁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찰스 3세 국왕을 만났다. 러시아와 싸우는 전시 대통령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다.

 

유럽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예우와 지원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원래 젤렌스키는 영국 방문 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장으로 바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나섰다. 런던에서 브뤼셀로 곧장 이동하려던 젤렌스키는 프랑스의 간곡한 설득으로 파리로 방향을 틀었다. 8일 오후 늦게 파리로 간 그는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마크롱의 요청으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까지 전격 합류해 우크라이나·프랑스·독일 3국 정상의 만찬 회동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9일, 젤렌스키는 개전 후 처음으로 유럽연합(EU) 27개국 정상들과 특별정상회담을 가졌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과 공동기자회견도 열었다.

 

곧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1년이 된다. 러시아는 지난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했다. 사실 이 전쟁은 초반에만 해도 단기에 러시아의 승리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굴복하지 않았고, 유럽 국가들도 겨울의 에너지 부족을 참고 견디며 분열되지 않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계속했다. 신형 탱크 등 공격용 무기까지 공여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측의 주장이었던 ‘특별군사작전’이 아니라 ‘유럽의 전쟁’이 된 것이다.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러시아와 유럽의 전쟁은 이렇게 1년째 지속되고 있다.

 

젤렌스키의 영국,프랑스, EU방문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뉴스가 우리에게 전해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7일 국정연설에서 '바이 아메리칸(미국산 구매) 정책‘을 더욱 분명히 했다. 그날 바이든은 앞으로 도로, 교통, 수도, 초고속인터넷 등 연방 인프라 프로젝트의 모든 건설자재를 미국산으로 쓰겠다고 발표했다. 

바이든의 미국산 구매 정책이 잇따라 촘촘히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바이오 산업 행정명령’ 등 미국은 많은 분야에서 미국산 사용을 의무화하겠다는 의지를 제도로 착착 만들어가고 있다.

 

항상 전쟁은 있었고, 무역분쟁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세계는 분명 이전 70여 년 동안의 세계와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전쟁과 무역분쟁의 차원이 달라졌다. 테러와의 전쟁이나 국지전이 아닌 전면전이 벌어진 세상, 핵무기 사용 위협이 불거진 세상, 항행의 자유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하는 세상, 미국 시장이 닫혀가고 글로벌 분업이 약화되는 세상.

그건 한마디로 ‘현재의 한국을 가능케 해준 구조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세계시장으로의 수출’이라는 한국경제의 모델이 흔들릴 가능성이 생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평화와 풍요의 시대’가 의심 받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모를 일이다. 어느 날 전격적으로 1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끝나고 미국 등 서방진영과 러시아가 다시 화해를 하게 될까.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경제 전면전이 갑자기 끝나고 다시 평화와 무역의 시대로 돌아갈까.

 

그런데, 그렇지 않고 지금의 분위기가 지속되다 ‘평화와 풍요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에너지와 원자재를 외국에 의존하면서 수출로 부유해진 한국은 가장 불리한 여건에 빠지는 국가가 될 것이다. 기업, 정부, 개인 등 모든 주체들이 군사, 외교, 에너지, 식량, 원자재, 수출시장 등 분야별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전략과 계획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 지금이다.

<ifsPOST>

 

1
  • 기사입력 2023년02월15일 17시10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