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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엔화 약세의 원인과 귀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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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11월07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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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중호
  •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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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담한 금융완화가 이루어진 배경

 

아베노믹스 실시 직전인 2012년말 달러당 86엔이었던 엔화 가치가 10년이 지난 2022년 11월(2일 시점)에는 147엔을 기록할 정도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 위상의 상대적인 추락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엔화 약세는 2013년 3월부터 시작된 아베노믹스 전개로 촉발되었고, 2022년 인플레이션 대처를 위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가속되었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미친 영향과 그 귀결을 짚어보고자 한다. 

 

일본에서 2000년대는 디플레이션 문제가 본격화 된 시기이다. 일본 내각부의 국민경제계산 데이터를 이용하여 2000년대(2001~2010년)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산출해 보면, 실질 성장률은 0.7%, 명목 성장률은 -0.5%로 명목 성장률이 실질 성장률보다 낮게 나타난다. 2000년대는 이러한 디플레이션의 전개와 더불어 저출산 고령화가 본격화된 시기이다. 고령화 진행으로 급속히 증대된 사회보장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방대한 규모의 적자국채가 발행되었고, 그 결과 일본의 국가채무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일본 재무성 자료에 기초하여 2000년대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계산해 보면, 1990년대(71.9%)의 두 배가 넘는 159.8%까지 상승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실시를 전후하여 정치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1993년 8월부터 1996년 1월까지 비(非)자민당ㆍ비(非)공산당에 의한 2년 5개월 동안의 연립정권 시기가 있었고, 그 후 2009년 9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3년 3개월 동안 민주당 정권(다른 소수 정당과의 연립정권) 시기가 있었다. 이들 시기를 제외하면 1955년 결성된 자민당(자유민주당)에 의한 통치가 계속 이어져 왔다. 2012년 말 자민당 정권인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출범 직후인 2013년 3월, 구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 일본은행 총재 임명이 있고 나서 아베노믹스가 가동되었으며, 현재(2022년 11월)까지도 그 정책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듯이, 아베노믹스는 대담한 금융완화, 기동적인 재정출동(지출),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성장전략이라는 세 축으로 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이들 세 가지 정책의 축을 목표 과녁을 쏘는 ‘세 화살(矢)’로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특이점은 엄청난 규모의 통화량 확대를 의미하는 ‘대담한 금융완화’에 있는데, 이를 차원이 다르다는 말을 차용하여 ‘이차원(異次元) 금융완화’라는 표현도 쓰고 있다. 대담한 금융완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주된 배경에는2000년대에 진행된 ‘디플레이션으로부터의 탈출’이 있었다. 이를 위한 일본은행의 구체적인 정책목표가 금융완화를 통한 2%의 인플레이션 달성이었다. 


2. 금융 완화가 가져온 경제실적 평가

 

그렇다면 과연 대담한 금융완화를 중심축으로 하는 아베노믹스의 전개는 어떠한 경제실적을 보였을까? <표1>에서는 아베노믹스의 대담한 금융완화 10년에 걸쳐 주요 경제지표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정리하여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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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1>에 보이고 있듯이 달러당 엔화 환율은 대담한 금융완화 실시 직전인 2012년말 달러당 86엔에서 2022년 11월 2일 시점에서 147엔을 기록하고 있다. 이 10년 사이에 엔화 가치가 70.9% (=(147-86)÷86)나 절하되었음을 보여준다. 대담한 금융완화는 주로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매입) 증가를 통해 이루어졌다. <표1>을 보면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 비율은 2012년 11.5%에서 2022년(6월말) 49.6%로 전체 국채의 절반 정도나 보유할 정도로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엔화 가치의 하락(엔저)을 가져온 명목적 요인으로, ①일본은행의 대담한 금융완화, ②미국의 금리 인상 단행을 들 수 있다. ①의 대담한 금융완화로 인한 엔저의 진행은 2013년 아베노믹스의 시동으로 초래된 것이며, ②의 미국의 금리 인상은 2022년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요인이다. 후자 ②의 경우 미·중 대립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 2월 24일)으로 인해 각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심해졌고,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킬 목적으로 단행한 금리인상이 엔화 약세를 가속화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인 2022년 1월 엔화가 달러당 115엔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2022년 11월초 150엔 가까이까지 이르렀다 함은 한 해 동안의 엔화 가치 하락이 얼마나 급격했는지가 드러난다.

 

아베노믹스가 치적으로 내세우는 두 가지 대표적 지표가 ‘주가 상승’과 ‘실업률 하락(또는 취업률 상승)’이다. <표1>을 보면, 닛케이 평균주가는 2012년 10,395엔에서 2022년11월 2일 시점에서 27,663엔으로 크게 올라가고 있다. 주의할 것은 이 기간 중 일본은행이 ETF(상장투자신탁: <표 1> 하단의 각주 설명 참조) 보유를 1조엔에서 37조엔으로 늘려 증권시장의 최대주주로서 주가를 떠받치는 정책도 병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의 주가가 실물경제와 상당 정도 괴리되는 ‘관제주가(官製株價)’로서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표1>에서 실업률을 보면 같은 기간 4.3%에서 2.5%로 하락하고, 유효구인배율(=구인수÷구직수)은 2012년 말 0.83에서 2022년 9월 1.34로 올라가고 있다. 그만큼 아베노믹스가 실업률 하락, 구인배율 상승에 힘을 쏟았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도 주의할 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한 구인배율이라고 하는 점이다. 총무성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2021년 비정규직 고용자의 비율은 전체 고용자의 36.7%를 기록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임금수준이 낮고(정규직의 3분의 2정도) 고용 안정성도 낮은 편이다.

 

비정규직 고용자가 늘어나면서 전체 임금수준은 하락했다. <표1>의 실질임금 지수를 보아도 2020년 실질임금을 100으로 하였을 때 2012년 평균 105.9였던 것이 실질임금 지수는2021년 100.6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로부터 일본의 임금 수준이 최근 10년 동안 오히려 하락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표1>을 보면 2022년의 9월 시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3.0%로 되어 있는데, 이는 원유 및 다른 수입물가가 오른 까닭에 초래된 물가상승이다. 일본은행이 정책목표로 내세웠던 소득수준이 증가하고 그에 따른 구매력 증가로 인한 물가상승이 아니라, 소득수준이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실질소득의 감소 효과를 초래시키는 물가상승이었다는 점에서 ‘나쁜’ 물가상승이다.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은 소득수준, 고용, 물가, 국가채무 등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책효과를 간략히 정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는 하나 분배문제를 차치한다면 거시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귀결은 결국 ‘소득수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로 가늠할 수 있다. 대담한 금융완화는 엔화 표시와 달러 표시 간의 소득수준에서 현격한 차이를 가져왔다. 

 

<표1> 하단에 보이고 있듯이 일인당 GDP수준을 보면 엔화 표시는 아베노믹스 실시 전인 2012년 392.4만엔에서 2022년 441.2만엔으로 10년 동안 불과 48.8만엔(12.4%) 늘어나는데 그치고 있다. 그에 반해 달러 표시 일인당 GDP는 2012년 49,175달러에서 2022년 34,358달러로 10년 동안 14,817달러(30.1%)나 줄어들고 있다(IMF통계). 달러 표시 소득수준 저하가 양적완화에 따른 엔화 약세 요인에 기인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기간 중 한국이나 미국 등 다른 주요 국가에서 달러 표시 소득수준은 늘어났다.

 

이상으로부터 소득수준에 미친 효과로 보았을 때, 아베노믹스는 “국제적인 관점에서 일본경제의 위상 저하를 가져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부연하면, 달러 표시 소득수준을 크게 하락시켜 일본의 상대적인 경제 위상을 눈에 띄게 추락시켰다고 하는 것이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의 귀결이었다.


3. 금융완화 정책의 속내와 부작용 노출

 

1)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의 속내

 

자금 공급이 풍부하나 자금 수요(즉, 투자)가 적으면 금리(이자율)가 떨어지게 된다. 일본의 금리는 0%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의 모험적인 투자는 정체되어 있고 경제상황도 활발하지는 못하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는 “경기침체를 가져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리(이자율)를 낮게 유지한다”는 것을 정책 논리로 내세우고 있으나 그리 설득력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2022년 들어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 국가들은 대부분 금리를 인상하면서 대응하고 있으나, 유독 일본만이 금리 인상을 하지 못하고 금융완화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천문학적 국가채무를 안고 있다고 하는 일본 특유의 사정이 자리 잡고 있다. IMF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국가 채무의 GDP비율은 한국 51.3%, 독일 69.6%, 미국 128.1%인데 비해 일본은 262.5%로 월등히 높다. 

 

일본 중앙정부의 2022년 일반회계 세출(107.6조엔)에서 차지하는 국채비(채무상환비, 이자지불비)는 22.6%에 이르는 수준이다(재무성 자료). 국채 관련 이자지불 비용을 낮게 억제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일본은행이 국채를 매입해 금융완화를 실시하는 방법이었다. 

 

일본은 금융완화를 통한 낮은 이자율 유지라는 금융정책과 국채발행이라는 재정정책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자율 상승이 있게 되면 거대 규모의 국가채무에 대한 이자지불 비용도 삽시간에 늘어나 ‘재정 경직성’이 심화되고 재정정책의 재량성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이자지불 비용이 불어나 교육, 공공투자, 사회보장과 같은 정책적 경비에 대한 지출에 압박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이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배경에는 ‘재정정책의 마비 방지’라는 속내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도 일본은 국채비용에 더해, 마찬가지로 지출 경직성이 큰 사회보장관계비가 일반회계 세출의 33.7%에 이르고 있을 정도로 재정운영의 재량성에 큰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2022년도). 대담한 금융완화를 통한 낮은 이자율 유지는 이자율 상승이 가져오는 “재정 재량성의 마비를 피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할 것이다. 

 

2) 삐걱거리는 일본 국채 시장

 

일본은행은 2016년부터 장기 국채금리가 0.25%를 넘지 않도록 억제하는 쪽으로 금리 수준 목표를 설정하여 국채를 매입하는 정책(YCC: yield curve control)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이는 일본은행이 낮은 금리를 정해 놓고 무제한으로 국채를 사들이는 ‘지정가격 공개시장 조작’을 뜻한다. 시장 거래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장기금리 수준을 일본은행이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비정상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자율과 국채가격은 상반된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에 이자율을 낮게 유지한다는 것은 실태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국채를 매입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아주 낮게 억제하는 이례적인 대응책을 취하는 가운데 채권시장에서 장기국채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낮은 이자율 유지로 인해 실제 가격이 높아진 국채의 구입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2년 9월에 신규로 발행된 10년 만기 국채(10년물 국채) 거래가 이틀 연속으로 성립되지 않았고, 10월초에는 6일간(4영업일 연속) 국채 거래가 성립되지 않은 적도 있었다. 10년물 국채가 장기금리의 지표가 된 1999년 이후 국채 거래가 성립되지 않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은행이 낮은 금리를 유지하려 국채를 매입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느 정도가 적정 가격인지를 가늠할 수 없어 국채 매입을 유보한 모양새라 할 것이다. ‘국채시장의 기능 저하’를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이 초래한 격이었다.

 

물가가 상승하게 되면 금리도 올라가는 것이 보통인데 강제적으로 낮은 금리를 유지시키는 금융완화 정책은 국채시장의 정상적 거래를 반영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더욱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하면서 일본의 장기금리 상승 압력도 거세졌다. 그 결과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크게 확대되었고, 외환시장에서는 달러를 매입하고 엔화를 매각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엔화 약세의 가속이 이어졌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는 2022년 10월 28일 기자회견에서 YCC 정책으로 인한 시장기능 저해에 대한 인식을 표명하면서도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는 쪽으로 시간을 벌며 금융완화 기조를 수정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아시히 신문 2022년 10월 29일자). 미즈호증권의 추계에 따르면, YCC가 없을 경우 일본의 10년물 국채 장기금리는 0.8%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금리수준을 상정할 경우10년물 국채 금리는 YCC로 인해 0.55%포인트(=0.8%p-0.25%p)나 억제되고 있는 셈이다. 달리 말해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을 중단한다고 할 때 금리 급등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앞서 언급한 일본 재정운영 상의 경직성 심화는 물론, 가계 부문의 주택융자 변제 부담 및 기업 투자비용의 갑작스런 증가로 인해 현 상황보다 훨씬 심한 경기침체로 치달을 수도 있다. 

 

4. 일본 기업의 약체화와 엔저의 진행

 

위에서는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의 속내 및 국채시장 왜곡으로 인한 부작용에 관한 논의였다. 이에 더해 실물경제의 약체화가 엔화 약세를 가져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좀비 기업을 구제하는데 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자금 투여가 비일비재했고, 발행 국채의 많은 부분을 일본은행이 사들이면서 엔화 약세를 가속시켰다. 좀비 기업 구제정책은 디지털화를 촉진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정책 유도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디지털화의 진전은 일본기업의 상대적인 약체화를 부각시켰다. 대담한 금융완화에 따른 엔화 약세가 수출기업의 실적을 일시적으로 개선시키기는 하였으나, 산업구조 전환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징후가 여실히 포착되고 있다. 일본은 소재·부품·기계·장비 분야 등 아날로그성이 짙은 산업이나 손으로 직접 그리는 애니메이션 등에 강점을 지닌다. 실태를 보다 정확히 짚어보면 반도체 및 정보통신기술(ICT)을 비롯한 디지털 산업의 부가가치가 크게 높아진 반면, 일본의 아날로그 분야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미국과 일본 기업의 희비가 더욱 엇갈렸다. 고도의 디지털 기술을 구사한 미국 기업은 그 실적을 늘려 기업가치를 대폭 증대시켜 온 반면, 일본 기업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여기서 ‘상대적으로’라 표현한 것은 미국 기업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대기업이 일본 기업의 실적을 훨씬 뛰어넘는 신장을 이루어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표2>는 11위까지의 세계 주요 기업 시가총액 순위와 함께 삼성전자와 도요타자동차의 시가총액 및 그 순위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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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2>에서 보듯이 시가총액(=발행된 총주식수×주가)으로 가늠한 기업가치로 보았을 때, 세계 상위 10대 기업(톱10)에 일본 기업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 2022년 1월 시점에서 세계 톱10에는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은 6개사나 포함되고 있다. 그 6개사는, 1위 애플, 2위 마이크로소프트, 4위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5위 아마존, 7위 메타(옛 페이스북), 9위 엔비디아(반도체 대기업)이다. 여기에 미국 기업으로 전기자동차(EV) 대기업 테슬러가 6위, 투자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가 8위로 들어가 있다. 이로부터 미국과 일본의 기업가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남을 알 수 있다.

 

<표2> 오른쪽 하단에는 삼성전자와 도요타자동차도 싣고 있다. 일본 기업 중 가장 많은 시가총액을 차지하는 도요타자동차의 순위는 29위에 머물고 있다. 애플의 시가총액(2.8조 달러)은 도요타자동차(0.3조 달러)의 약10배(9.3배)에 달한다. 도요타자동차의 시가총액은 대만 기업인 TSMC(반도체 제조업체)의 10위, 중국 기업인 텐센트의 11위, 한국 삼성전자의 16위보다도 하위권에 위치한다. 향후 EV에 정보통신기술(ICT) 도입이 빨라져 머지않아 EV가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요타차의 EV 진전이 테슬러를 비롯한 다른 나라 EV 기업보다 뒤지게 된다면 도요타의 시가총액 순위는 더욱 밀려날 수 있다는 뜻이다.

 

강점을 자랑하던 일본 제조업의 생산성 순위도 근년 들어 크게 저하되었다. 일본 노동생산성본부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제조업 생산성(취업자 일인당 부가가치액) 순위는 1990년에는 주요 37개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2018년에는 16위까지 밀려났다. 일인당 노동생산성은 2019년 37개국 중 26위를 차지하며 선진 주요 7개국(G7) 중 1993년 이후 최하위를 기록한다. 

 

실물부문에서 노동생산성 하락은 경제성장을 더디게 하고 엔화 약세를 초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생산성이 낮아지고 성장이 더뎌지면 조세수입도 덜 걷힌다. 실제로 일본은 조세수입이 부족해1990년대 중반 이후 사회보장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적자국채 발행을 늘려왔다. 발행된 적자국채의 상당 부분을 일본은행이 매입하는 방식이 취해지면서 통화량이 증대되었고 그것이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쪽으로 작용했다. 

 

거품 붕괴 이후 지금까지 일본 경제 실태는 ‘성장상실기 30년’이라고 할 정도로 크게 실추됐다. 재정 및 금융정책이 주효하지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폐색감(閉塞感)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적자국채 발행, 대담한 금융완화, 그리고 기업의 생산성 저하가 맞물린 덫에 걸려 ‘채무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 과제와 전망: 출구전략에 성공할 것인가?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일본경제가 답보 상태 또는 정체로부터 벗어날지는 ‘출구전략’의 성공 여부가 그 관건이 될 것이다. 미시적 관점에서는 일본 기업이 ‘디지털화’ 진행에 잘 대응하고 적응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여기서는 거시적 관점에서 일본 경제의 과제와 전망을 진단하기로 한다.

 

출구전략에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는 일본 경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구전략이라 함은, 대담한 금융완화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금융정책으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상적인 대담한 금융완화를 계속적으로 유지해 갈 수는 없다. 자국 통화(즉, 엔화)의 무제한적 증대를 통한 대담한 금융완화의 지속은 결국 엔화에 대한 국제적 신용 실추를 초래하여 언젠가는 파탄날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완화의 지속은 일본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일본정부는 엔화의 신용 실추를 가져오기 전에 엔화 약세를 이용하여 수출기업의 실적을 높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앞 절에서 보았듯이 10년 동안 지속된 아베노믹스의 대담한 금융완화가 일본 기업 체질을 크게 개선시켰다고는 보기 어렵다. 일정 시점에서 일본은행의 국채매각을 통한 금융긴축이라는 출구전략이 성공하지 못하거나 경제구조 개혁이 수반되지 않으면 잠재성장력은 가일층 떨어지게 될 것이다. 작금의 정책 기조대로 간다면 일본 경제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뜻이다.

 

통화긴축을 하면 통용되는 화폐량이 적어지면서 이자율을 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자율이 오르게 되면 방대한 국채 잔액을 떠안고 있는 일본 정부로서 국채의 이자지불 비용이 크게 늘어나 다른 재정지출을 압박하게 된다. 현재도 지출 경직성이 충분히 높은 가운데 일본 정책 당국은 출구전략이 ‘재정 경직성’을 더욱 심화시켜 경기침체가 가속화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높여 조세수입을 늘리는 길을 찾으려 하고 있으나 성장 동력이 원활히 가동되고 있지 못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상적인 경제정책 운영으로 되돌리려면 이자율 기능이 잘 작동(또는 정책변수로서 이자율이 기능)해야 한다. 현재 일본은 이자율이 0%에 가까워 투자를 위한 차입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자율이 0%에 가까움에도 투자를 주저하는데, 이자율이 오른다고 하면 위험회피 성향이 큰 일본 기업들은 투자를 더욱 꺼리게 될 것이다. 내향적인 일본 기업들의 투자회피 성향도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어둡게 하고 있다.

 

대담한 금융완화 정책을 뒷받침해 온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의 임기는 2023년 4월 8일까지이다. 금융완화 정책 기조는 그의 임기 중에는 유지되고 퇴임 후 출구전략 대처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출구전략에는 고난도의 정책운용 기술이 요구된다. 출구전략 추진 시 일본 경제에 강한 충격을 주는 경착륙(하드 랜딩)으로 갑작스런 경기(景氣) 실속(失速)이 될 것인지, 아니면 경제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면서 출구전략을 성공시키는 연착륙(소프트 랜딩)으로 정상적인 경제정책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인지가 머지않아 중요 국면으로 대두되겠다 싶다. 

1991년 거품경제가 붕괴 이후 아베노믹스 기간을 포함한 일본의 ‘성장상실기 30년’은 “경제정책의 오류와 민간부문의 위축이 초래한 합작”이라 총괄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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