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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도는 우리 쌀,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10월27일 17시10분

작성자

  • 최양부
  • 전 대통령 농림해양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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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정부 쌀수매 의무화‘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답이다

지금은 쌀에 대한 오래된 발상을 전환할 때

 

쌀과의 운명적 만남 

 

  농경제학자는 학자 생활하는 동안 운명적으로 한 번쯤은 쌀과 만나게 된다. 쌀을 붙잡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 그는 진정한 농경제학자라 할 수 없다. 어쩌면 그는 현실 문제가 아닌 명색(名色)만의 문제를 붙잡고 학자 생활을 해왔다(shadow-boxing)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경제학자가 직면하게 되는 농업 문제의 8, 90%는 쌀 문제이고, 농정문제의 7, 80%는 역시 쌀 정책과 관련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쌀의 문제는 우리 농(農)의 역사와 함께 하고 농민들의 생과 사와 관련된 살아 움직이는 문제들이다. 그리고 쌀의 문제의 기저(基底)에는 ‘우리에게 쌀은 무엇인가?’라는 ‘쌀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 의문이 도사리고 있다. 쌀은 단순 상품으로 효율성과 시장가격 결정원리의 적용을 받는 (혹은 받아야 하는) 경제재인가? 아니면 농가 소득과 분배, 농가 간 형평 문제도 따지고 정치적 지지 등도 고려해야 하는 정치재인가? 기후변화와 생태환경과 경관 등 다목적(공익적) 가치를 생각하고 환경적 관심을 고려해야 하는 환경재인가? 아니면 그들 사이 어디에 있는 혼합재인가? 

 

 1964년 3월 농과대학에 입학하여 그해 초여름 모내기 농활(農活)에 참가하여 난생처음 벼를 손에 쥐고 허리가 휘도록 모를 심은 후 지금까지 58년간 수도 없이 쌀을 만났으나 그동안 쌀을 붙잡고 밤잠을 설치는 고뇌의 밤을 지냈던 적은 2번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은 1990년 7월 GATT가 주관하는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무역협상 정부대표단에 합류하여 1993년 12월 협상 타결 때까지 3년 반여 동안 ‘우리 쌀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고민하며 밤잠을 설쳤을 때였다. 

 

  또 한 번은 대통령 비서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농수산수석비서관’(1996년 8월 해양수산부 신설 이후 ‘농림해양수석비서관’으로 명칭변경)이 설치되고 1993년 12월 23일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수석비서관 임명장을 받은 후 1998년 2월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4년여 동안 앞으로 10년 후에 닥치게 될 우리 쌀시장의 전면적 개방에 대비하여 세계화 시대 우리 쌀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쌀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이다. 그리고 1994년 나라에 대 가뭄이 들어 논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모내기가 힘들어질  때였고, 쌀시장기능 정상화를 위해 ‘계절진폭제’ 도입을 추진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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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가을 황금들판은 쌀이 가진 경관적 가치의 대표적 사례이다. 쌀이 사라진 가을 들판을 상상해 보라! 우리는 매우 소중한 전통적 (심미적, 정서적, Aesthetic) 경관 가치의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1)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발굴된 재배 볍씨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류 최초의 볍씨는 ‘소로리카’로 방사선탄소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15,118년경 구석기시대의 볍씨로 밝혀졌다. ‘소로리카’는 1994년 충북 청주 옥산면 소로리 일대에 조성계획인 오창과학산업단지 개발을 위한 지표 조사과정에서 발굴되었으며 해당 지역의 이름을 따서 ‘소로리카’(코레아카)라고 명명하였다. 이로써 한반도는 세계가 공인하는 인류 최초의 쌀 문명 기원지가 되었다. 

 

  쌀(米)은 17,000년 전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이래 한국인과 역사를 함께하며 한국인의 생명을 지키고 오늘의 발전을 가져온 에너지, 곧 힘 (정기, 精氣)의 원천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K-푸드, 즉 밥(식) 문화의 중심이며, 생태환경이며, 경관이며, 문화예술이며 종교가 되었다. 오늘날 사물놀이로 각광받고 있는 농악도 쌀 문화의 유산이다. 쌀(밥)은 한국인의 일용할 양식(糧食)으로 부의 상징이며 척도였으며, 흰쌀밥, 밥힘, 밥줄, 찬밥, 더운밥....등등은 한국인의 희망이자 고통이었으며 기쁨이었고 눈물이었으며 삶 그 자체였다. 북에서는 쌀을 공산주의라고 부르며 ‘흰 쌀밥에 고깃국’을 꿈꾸어 왔으나 아직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랬던 우리 쌀에 대한 국민 1인당 소비가 1970년 136.4㎏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해 오고 있다. 1990년 119.6kg으로 감소한 쌀은 2020년에는 57.7kg으로 감소했으며 이러한 감소 추세는 줄어들 줄 모르고 있다. 지난 50년 사이(1970-2020) 국민 1인당 쌀 소비는 78.7kg (57.7%)이나 줄었다. 반 토막 넘게 줄어든 것이다. 그만큼 쌀의 가치도 추락했다. 오늘의 농민들은 밥 한공기 300원을 보장하라며 시위에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쌀소비 감소와 함께 쌀 농가의 고령화로 쌀 농가 감소가 지속될 경우 우리 쌀 산업이 과연 지속 가능할지 우리 쌀의 장래를 걱정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오늘의 우리 쌀은 장래를 위협받는 쌀이 되었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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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국민 1인당 쌀소비량 136.4kg, 2020년 57,7kg (▼78.7kg,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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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 쌀관세화 협상

 

  우리 쌀 농업이 아직도 안정된 생산기반도, 시장 조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던 1986년 9월 UR 농업협상이 시작되었다. 1990년 7월 UR농업협상위원회가 ‘모든 농산물의 예외 없는 관세화’라는 무차별적인 농산물 시장개방과 생산 장려적 가격지지 등을 위한 정부 보조금 삭감을 골자로 하는 UR 협상 원칙을 발표하자 우리 농민들은 한순간에 절망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온 나라가 ‘UR 협상반대, 쌀시장개방반대’를 외치며 ‘우리 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UR 협상테이블에서 일본 등과 힘을 합쳐 ‘쌀의 다목적/공익적 기능을 강조하는 비교역적 관심사항(Non-Trade Concerns, NTCs)’을 앞세워 ‘쌀의 관세화 예외’를 줄기차게 주장하며 ‘예외 없는 관세화 원칙’을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그러한 우리 협상대표단을 다른 나라 대표들은 ‘논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두루미’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협상이 종반으로 치닫게 되면서 미국과 EU가 협상 타결을 위한 타협안을 마련하고, 일본마저 미국에 손을 들고난 후 협상테이블에는 사실상 우리 쌀 관세화 문제만 남게 되었다. 쌀 관세화를 수용하라는 국내외 압력이 거세게 밀려왔다. 나는 ‘이제 우리는 미국과 쌀 관세화 원칙 수용조건에 대해 협상할 적기(適期)가 되었다’며 ‘관세화 원칙을 수용하되 이의 실행을 10년간(1995-2004) 유예하고, 유예기간 동안 쌀 최소의무수입량은 처음 5년간은 국내 쌀소비량의 0%, 다음 5년간은 1-2% 수준하는 조건을 가지고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클린턴 대통령과 협상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다행히 나의 건의를 수용한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전화 협상까지 하며 ‘쌀을 관세화하되 처음 10년간 유예, 유예기간 중 처음 5년은 1%에서 2%까지, 다음 5년간은 2%에서 4%까지 최소의무수입량을 증량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농민들은 김영삼 대통령이 ‘쌀은 직을 걸고 개방을 막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UR 협상장에서는 ‘한국은 쌀시장 개방을 최소화하는 최고의 쌀 협상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피해 관세화보다는 10년 재연장을 선택하고 관세화실시기를 10년 뒤인 2014년으로 미뤘다. 그 결과 우리 쌀 산업은 갈수록 많아지는 최소의무수입량의 중압으로 중병을 앓게 되었다. 우리는 5%의 저율 관세로 년간 40만 8700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했다. 2014년 9월 관세화 재연장 기간 만료로 쌀 관세화 여부를 결정해야 할 입장이 된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의 쌀 관세화유예기간 연장은 국내 쌀 산업에 악영향을 줄 뿐이라고 판단 관세율 513%로 관세화한다는 방침을 WTO에 통보하고 미국, 중국, 베트남, 태국, 호주 등 이해 당사국들과 협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5년여의 협상 끝에 마침내 협상을 마무리 짓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1월 22자로 쌀 관세화와 함께 쌀시장 전면개방을 선언했다. 1995년 UR 협정 발효 이후 26년 만의 일이다.  

 

‘쌀산업’ 국제경쟁력 기반 구축

 

  1993년 12월 UR협상 결과 우리에게는 쌀 관세화 유예기간 10년(1994-2004)이 주어졌다. 영세한 우리 쌀 농업의 국제경쟁력기반을 갖추게 하는 일은 김영삼 정부가 추진해야 할 제1의 농정과제가 되었다. 나는 ‘쌀농사’라는 용어 대신 ‘쌀 산업’이란 표현을 쓰고 농업경제의 제1의 산업인 쌀 산업의 시장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쌀 산업을 이끌어갈 주체가 되는 쌀 전업농 및 전문경영체의 규모화를 위한 구조개선정책과 농업진흥지역내의 농지보전정책, 전천후 기계화 작업(경운, 정리, 이앙, 수혹 등)을 위한 논 경지정리와 수리시설 완비 등 생산기반정책, 그리고 수확 후 쌀 도정, 포장, 저장 판매 등 계열화를 위한 미곡종합처리장(RPC) 설치 등 유통개선정책과 식량안보를 위한 비축정책 등 ‘쌀산업종합대책’을 수립 추진했다. 오늘날 우리 쌀 농업이 전천후 기계화 영농기반을 갖추게 된 것은 전적으로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쌀 산업 경쟁력기반구축을 위한 종합대책의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94년 대 가뭄으로 매일매일 논이 바짝바짝 타들어 갈 때 ‘비 소식 없느냐’며 가뭄을 걱정하는 김영삼 대통령의 전화를 받을 때는 참으로 민망했다. 조선왕조시대에는 나라에 가뭄이 들면 이를 임금의 부덕의 소치로 여겨 임금이 석고대죄를 하고, 하늘에 기우제 등의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지간한 가뭄에도 우리 농민들은 물 걱정은 하지도 않는다. 김영삼 대통령은 쌀시장개방을 막지는 못했지만 우리 쌀 산업의 국제경쟁력기반 구축에 필요한 제도개혁과 재정투자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지원했다. ‘농특세’를 신설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여 평야부 논에 대해서는 농민 부담 없이 전액 국비로 대구획(재)경지정리를 추진했고, 농기계를 반값으로 공급하는 조치도 취했다. 99.9%가 기계화된 현재 논 1ha 농사짓는데 농작업 시간은 연간 110시간에 불과해 작업일 기준으로 1년 중 11일이면 쌀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한 톨의 쌀(米)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팔십팔(八十八)번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쌀 농업은 전화 몇 번으로도 지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농업이 되었다. 이 때문에 고령 농민들도 쌀농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짓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쌀 농업은 쌀 산업으로 전환되었고 본격적인 시장 경쟁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시장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입맛을 붙잡기 위한 쌀의 품질향상을 위한 농업지역간(도별) 경쟁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쌀의 상품적 차별화 경쟁이 시작되었고 다양한 기능성 쌀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쌀값 잣대론’ 논쟁과 ‘쌀 계절진폭제’ 도입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려운 과제는 철저하게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쌀 산업을 시장경제원리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일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쌀값 통제 등 쌀 시장개입을 중지하는 정책개혁이 필요했다. 이 문제 때문에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당시 경제수석과 임금대비 쌀값의 상대적 하락으로 쌀값이 더이상 임금수준을 정하는 잣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이상 정부의 쌀값 통제를 위한 시장개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쌀값 잣대론’ 논쟁을 벌이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단순 일용직 노동자가 하루 노동으로 받는 4-50,000원의 임금으로 20kg 쌀 한 포를 사면 3~4인의 가족이 한 달 정도 먹기 때문에 임금인상요인을 없애기 위해 시장 쌀값을 통제하는 정책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이중곡가제가 사실상 농민을 보호하기보다는 농민을 수탈하는 정책이라며 정부의 수매가격 인상보다 쌀의 수확기(10~12월) 가격대비 단경기(7~9월) 가격의 등락 수준을 나타내는 평균 14~16% 수준의 ‘쌀계절진폭’을 거의 0% 수준으로 통제하여 민간 미곡상들에 의한 수매비축 등 민간 쌀시장유통기능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쌀의 계절진폭이 살아나 쌀 시장가격의 자유로운 변동이 일어나야 개방시대 쌀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논리를 세워 결국에는 쌀값을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변동하게 하는 계절진폭제가 도입 실시되기에 이르렀고 이로써 쌀 시장기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쌀 시장가격 변동을 허용하는 계절진폭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시 시장가격보다 높은 수준에 있는 정부 수매가격을 동결하고 시장가격이 오르게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퓰리스트적인 정부 쌀수매가격 인상을 선호하는 정치인들의 정부 쌀 수매가 인상 요구를 자제 시켜야 했다. 나는 앞장서서 3년간 정부 쌀 수매가 동결정책을 추진했다. 1994년 이후 쌀 정부수매가격 동결에도 불구하고 시장가격 현실화로 농가의 쌀 소득은 오히려 크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경제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당시 정부 내 고위인사와 여당 인사들은 나에게 ‘농대를 나온 사람이 어떻게 정부미 수매가 인상 억제정책’에 앞장서느냐고 힐난하기도 했다. 나는 쌀시장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조치라고 했으나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야당 정치인들로부터는 농민을 죽이는 ‘살농(殺農)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후 그해 가을부터 재임기간 내내 매년 4~5%씩 정부 수매가를 올리면서 쌀시장기능을 자율화하려는 정책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그때 이후 정부의 쌀 수매가격 결정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정치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직접 지불제’ 정책 도입  

 

  UR협상에 참여하면서 정부가 직접 쌀을 수매하면서 수매가격을 올리는 농민지원방식은 UR협정 위반이 되지만 생산과 직접 연계되지 않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UR이 허용하는 다양한 ‘직접지불’ 방식의 지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1994년 12월 UR 협정안에 대한 국회 비준을 추진하면서 당시 ‘세계무역기구협정의 이행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청와대를 적극 설득하여 ▶생산 통제를 목적으로 한 직접지불, ▶영세농 등을 위한 보조, ▶토양 등 환경 보전을 위한 유기농, 경종농에 대한 보조, ▶농림수산업 재해에 대한 지원, ▶생산과 연계되지 아니하는 소득 보조 등을 허용하는 직접지불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997년 은퇴하는 고령 농가지원을 위한 ‘경영이양직접지불제’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후 역대 정부는 친환경농업직불(1999), 조건불리지역 직접지불(2004), 경관보전 직접지불(2004), 쌀소득 보전(고정 및 변동) 직접지불(2005), 밭농업직접지불(2015) 등 다양한 직불제를 도입하였다. 

 

  특히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쌀 관세화 재협상을 추진하면서 만약 쌀을 관세화로 전면개방하게 될 경우를 발생할지도 모를 쌀값 하락에 대비하여 쌀 농가의 소득 보장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부 수립 이후 지속해온 쌀 가격지지 형태의 ‘정부 쌀 수매제’를 폐지하고 쌀 농가의 소득 보전을 위한 ‘쌀소득 보전(고정과 변동)직불제’를 도입했다.  변동직불은 정부가 5년마다 (국회 동의를) 받아 목표가격(예, 2018~2022년산 목표가 80kg 1가마당 21만원 이상)을 정하고 매년 수확기 쌀(80kg)의 산지 시장가격이 목표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그 차액의 85%를 보전해주며, 고정은 쌀 농가 당 재배면적 1ha당 고정액(논 100만원, 밭 45만원)을 지급한다. 참고로 2019년산 쌀(80kg) 목표가격은 21만4000원이고, 수확기 전국평균 쌀값은 18만9994원으로 변동직불금은 5,480원 (1ha당 36만7160원)이며 고정직불금은 1만4925원이었다. 1997년 경영이양직불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직불제 예산은 2조4390억원으로 늘어났으며 그 가운데 쌀 직불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는다. 

 

‘공익직불제’로 전면개편과 ‘양곡관리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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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불예산의 80% 이상을 쌀소득 보전 직불에 사용하면서 쌀직불제가 쌀 생산과잉을 유발 쌀 수급불균형을 초래하고, 타 작물 재배로 전환 등을 억제하고 있다는 비판론이 일기 시작했다. 쌀 농가와 타 작물 재배 농가 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었다. 또한 전체 농가의 55%에 불과한 쌀 농가에 전체 직불금의 80% 이상이 지급되고 있으며 특히 전체 농가 가운데 3ha 이상 경작하는 상위 7%의 대농이 전체 직불금의 38.4%를 가져가는 현실은 농가 간, 대농과 중소농간의 또 다른 형평성 문제를 낳았다. 이런 이유들로 농민들은 쌀 소득보전 직불제 등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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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2월 12일 열린 ‘농정틀 전환을 위한 2019 타운홀 미팅 보고대회’의 모두발언에서 “사람과 환경 중심의 농정을 구현하겠다. 공익형 직불제는 지속가능한 농정의 핵심이다. 쌀에 편중된 직불제를 개편하여 논농사와 밭농사 모두 직불제 혜택을 받도록 하고, 중소 농민을 더욱 배려하여 영농 규모에 따른 격차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는 농가 간, 작물 간 형평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그동안 쌀값 변동 속에서 농가 소득 보호 역할을 해온 쌀 소득보전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는 등 쌀 소득 직불제를 전면개편 ‘공익직불제’라는 이름으로 통폐합하는 ‘농업ㆍ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 (약칭: 농업농촌공익직불법)’을 제정하고 2020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1997년 직불제 도입 이후 23년 만의 전면적인 직불제 개혁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모든 작물을 대상으로 동일한 지원 금액을 지급하여 논과 밭 작물간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중소규모 농가에 대한 소득 보전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면적에 관계없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소농직불제’를 도입 경영 규모가 작은 영세농가일수록 높은 단가를 적용하도록 개편했다. 다만 기본형 공익직불금을 받는 농가의 공익적 의무준수사항을 (기존의 3개를 17개로) 강화했다. 

 

  그리고 산지 쌀값 변동에 대응하여 농가 소득 안정화를 위해 2021년 11월 30일 양곡관리법 제16조(가격안정을 위한 양곡의 수급관리)를 개정하여 정부로 하여금 쌀가격 안정을 위해 ‘쌀수급안정대책’을 수립 추진하고 특히 쌀가격 안정을 위한 쌀의 매입또는 판매 계획을 수립 추진하도록 했다. 정부는 생산자단체 대표 등과 협의 매년 10월 15일까지 쌀수급안정대책을 수립 공표하도록 의무화했다. 

 

  특히 쌀을 매입하는 경우 그 물량은 해당연도에 생산되는 쌀에 대한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을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했다. 다만 “쌀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되거나 변동이 예상되는 경우 등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 이상 또는 이하를 매입하게 할수 있다(제16조 ④)”고 양곡관리법에 규정하고 이에 대한 ‘쌀수급안정대책 수립·시행 등에 관한 규정’을 2020년 7월 30일 아래와 같이 제정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 제3조(미곡의 매입 및 판매)   

1.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등 수급 안정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 또는 예상생산량 (이하 ‘초과생산량’이라 한다)의 범위 내에서 수급 상황을 감안하여 매입할 수있다. 


가. 초과생산량이 생산량 또는 예상 생산량의 3% 이상인 경우 


나. 단경기(7∼9월, 햅쌀이 나오기 직전의 시기) 또는 수확기(10∼12월) 가격이 평년(최근 5년 중 최저·최고 수치를 제외한 평균)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단 2020∼2021년산에 대해서는 전년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한 경우도 포함)”

 

   당시 문재인 정부(기재부)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 시 쌀의 공급과잉과 정부의존도가 커지는 등 부작용 발생이 우려된다”며 “시장격리를 의무적으로 수립해 시행하기보다는 시장 상황을 감안해 정부가 재량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 정부의 쌀 시장격리를 위한 매입을 정부의 의무가 아닌 임의사항으로 규정했다. 

 

2021년산 산지 쌀값(20kg) 폭락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후 유가를 비롯한 가스, 원자재, 곡물 등의 급등으로 모든 물가가 다 올랐는데 쌀값만 떨어졌다며 농민들은 ‘쌀값보장’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0년 공익직불제 도입 이후 2021년 농민들은 전년보다 쌀재배면적을 늘리면서 그동안 감소 추세에 있었던 쌀 생산량이 늘어났다. 농민들의 쌀 농업편중을 시정하겠다며 도입한 공익직불제가 반대의 효과를 냈다. 특히 ‘소농직불제’의 도입으로 종소농가들은 더욱 안정적으로 쌀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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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5 산지 쌀값 20kg 56,803원 2022 9.15 40,725원 (▼16,078, 28.3% 하락) 10.15 46,941(▼9,861, 17,4% 하락)

 

  2021년 쌀 재배 면적은 73만2477ha로 20년 만에 증가했고, 쌀생산량도 2020년 351만t에서 388만t으로 6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러한 여파로 2021년 수확기(10-12월) 쌀 산지가격(20kg)은 10월 5일 5만6803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가 2022년 9월 15일 4만725원으로 1만6078원(28.3%) 떨어졌다. 

 

  정부는 2021년산 쌀의 가격하락을 막기위해 올해만 2월 14만4000t, 5월 12만6000t, 7월 10만t 등 3차례에 걸쳐 모두 37만t을 수매 시장격리조치를 취했으나 가격하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정부는 지난 9월 25일 2021년산 구곡 10만t과 2022년산 신곡 35만t을 추가 시장 격리하겠다고 발표한 후 쌀 가격이 조금씩 오르고 있으나 2022년산 신곡이 나오게 되면 쌀값 하락세를 막기는 어렵다. 

 

 

정부 쌀 수매 의무화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답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쌀 고장인 호남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쌀 농가의 소득안정을 위해 초과 잉여 쌀의 시장격리를 위해 정부의 쌀 수매를 의무화하겠다며 “쌀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되거나 변동이 예상되는 경우 등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수요량을 초과하는 생산량 이상 또는 이하를 매입하게 할수 있다”라고 되어있는 양곡관리법 제16조 ④를 “....매입해야 한다”로 개정 정부의 쌀 수매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을 당론으로 정하고 법 개정에 나섰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이는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도 불가한 것으로 결론을 냈던 사항으로 만일 야당이 그렇게 할경우 농민들의 쌀 농업 편향성을 더욱 조장 쌀공급 과잉기조를 구조화하여 재정 부담(매입 및 보관관리)를 가중 시킬 것이라며 정부와 ‘국민의 힘’은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법률개정안을 다수의석의 힘으로 밀어부쳐 단독으로 소관 상임위를 통과시키고 법사위 심사로 넘겼다. 

 

  야당은 양곡법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이재명 법안’의 하나로 선정 반드시 본회의 통과를 관철시킨다는 방침을 정하고 있어 법안 국회 통과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여당은 야당의 상임위 통과를 ‘날치기 통과’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이를 저지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사람과 환경 중심의 농정구현을 위해 쌀에 편중된 직불제를 개편 논농사와 밭농사 모두 직불제 혜택을 받도록 하고, 중소 농민을 더욱 배려하여 영농 규모에 따른 격차를 줄이겠다”며 도입한 공익직불제하에서 잉여 쌀에 대한 정부 수매를 의무화하는 것은 야당의 자가당착(自家撞着)이고 자기모순(自己矛盾)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농업의 쌀 편중을 개선하고 중소농민을 배려하겠다는 공익직불제하에서 정부의 쌀 수매를 의무화는 결국 쌀 편중 농업을 더욱 고착, 확대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집권 여당으로 있으면서 나라를 위해 도입한 제도와 정책을 야당이 되어 스스로 무위(無爲)로 돌리는 것은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행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무책임 정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을 관철시킬 경우 정부의 선택지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밖에 없다. 만일 이러한 상황에 현실이 된다면 윤석열 정부는 이 기회를 이용 생산과잉으로 장래을 위협받고 있는 우리 쌀 산업의 현재와 장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혁신에 나서야 한다. 

 

지금은 쌀에 대한 우리의 발상을 전환할 때이다

 

  1990년대 UR 협상을 치르면서 우리는 국민의 주식인 쌀이 국제적으로 밀려오는 개방화, 자유화, 세계화의 압력으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우리 쌀을 지키고 국제경쟁력을 갖추도록 없는 농업 재정의 대부분을 쌀에 투자했다. 급격하게 팽창하는 도시화 속에서 쌀 생산을 위해 농지를 지키고 쌀 농업의 전천후 기계화를 위해 힘을 모았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다양한 이름의 정책과 제도를 도입하여 쌀을 지키고 보호하는데 나라 힘을 모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도시인구가 전체인구의 80%가 넘어가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전체 산업인구의 4~5% 수준으로 떨어지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서면서 국민 1인당 쌀소비는 년 간 50kg대로 뚝 떨어졌다. 년간 40만t 정도 수입하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량 자급하는 상황에서 줄어드는 쌀 소비 때문에 이제는 쌓여가기만하는 쌀 재고를 걱정해야 하고, 쌀이 남아돌아서 떨어지는 쌀값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문제를 정부 쌀수매 의무제로 해결할 수있다고 한다면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일 뿐이다. 소비가 감소하고 고령 농민이 늘고 농가 인구가 감소하는 속에도 쌀 생산이 크게 줄지 않는 것은 쌀농사가 어떤 농사보다도 짓기가 편하기 때문이고 정부가 쌀값도 잘 받쳐주고 직불금까지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인한 한반도기후의 아열대화 속에서도 다른 작물들의 재배는 북상하게 되고 그 자리는 아열대 기후에 적합한 작물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으며 이미 아열대 작물에 대한 재배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쌀은 본래가 아열대성 작물인 탓에 다른 어떤 작물들 보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의 경우처럼 1년 2모작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아도는 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도 흰쌀밥을 구경하지 못하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그리고 식량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의 이웃들을 위해 쓰고, 그래도 남는다면 축산 사료로라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요즈음 밥쌀대신 밀가루를 대체할 ‘가루쌀’품종이 새로 개발되어 가루쌀 재배가 각광을 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쌀 과잉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해결을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모자라서가 아니라 남아돌아서 장래를 걱정해야 하는 쌀을 붙잡고 쌀의 생산을 더욱 촉진하는 정책을 쓰겠다는 야당의 발상은 시대착오적이 아닐 수 없다. 쌀 부족시대의 사고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자기모순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시행착오에서 배움이 없는 사람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오늘의 야당의 행동을 나라의 장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생각없는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정책결정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제는 쌀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발상을 새롭게 전환할 때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1) 최양부, “우리에게 쌀은 무엇이었는가? -세계화 속에 위협받고 있는 우리 쌀의 과거와 현재와 장래,”

 <기조강연>, "아시아의 쌀, 미래는 있는가?” 전남대학교 개교 55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전남대학교, 전라남도, 국제미작연구소(IRRI) 공동주최 전남대학교 국제회의동 용봉홀, 2007. 10. 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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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10월27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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