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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18 : 작은 아버지의 유업을 못지킨 남연의 모용초(G)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6월10일 16시50분
  • 최종수정 2022년05월29일 11시21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3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

 

  

 (31) 모용수의 도망(AD383)

 

전진의 100만 대군은 8할 이상 깨졌지만 3만의 모용수 군대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먼저 운성(호북성 안륙)을 함락시키느라 직접 비수대전에 참여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전진의 부견은 떠도는 화살에 맞아 천여 기를 이끌고 모용수에게로 갔다. 아들 모용보가 모용수에게 간청했다.

 

 “ 집안과 나라(전연을 말함)가 기울어지고 엎어졌지만

   하늘의 명과 사람의 인심은 모두 지존(모용수)에게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단지 때가 이르지는 않았으니 뜻을 감추어야 합니다. 

   전진 주군이 패배하여 우리에게 몸을 의탁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우리 연에게 주는 호기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십시오.“

 

모용수는 머뭇거렸다.

 

“ 네 말이 옳다.

  그러나 전진의 주군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지 않았느냐.

  지금 어린 아이 같은 위태로움에 빠져 있는데 어찌 그를 해치겠느냐.

  하늘이 이미 부견을 버린 것 같으니 그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그의 위험을 보호해주어 은덕을 덕으로 보답한 뒤

  틈이 생기는 것을 기다렸다가 도모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묵은 마음을 지니면서 동시에 의로움으로 천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용수의 모든 부장들은 하나같이 이 기회에 부견을 처치하자고 했지만 모용수는 그에게 입은 깊은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휘하 3만 군사를 모두 부견에게로 돌려보냈다. 부견은 흩어 진 군사 10만을 거느리고 장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모용수는 부견에게 북쪽 유주지역의 흉흉한 인심을 거두기 위해 자신을 거기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부견은 좋다고 허락했다. 부견의 측근 권익은 기르는 매를 날려 보내는 것과 같으니 안 된다고 했다. 부견이 말했다.

 

 “ 필부도 말을 뒤집지 않는 법이요.

   천명에 흥하고 망하는 뜻이 있다면

   내가 허락하고 안 하고 상관없이 되는 것이요.“  

 

상서좌복야 권익이 말했다.

 

“ 폐하는 사소한 신용을 중히 여기시지만

  사직을 가벼이 여기시는 것입니다.

  신이 보건대 이번에 그가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관동의 혼란이 바로 그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부견은 끝내 3천 군사를 주어 모용수를 고향으로 가게 했다. 부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권익은 모용수를 제거하기 위해 하교라는 다리 곁 창고로 몰래 모용수를 불렀다. 모용수는 정동이라는 측근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보내고는 그 길로 대나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 정동이 다가오자 권익이 숨겨둔 자객들이 나타났는데 정동은 잽싸게 도망쳐 나왔다. 

 

(32) 모용수가 후연 건국(AD384)

 

낙양을 공격하고 있는 적빈 무리들 안에는 옛 전연의 유민들이 많았다. 모용봉, 왕등, 단연 등과 같은 전연의 유민들은 적빈을 설득하여 모용수 휘하에 들어가기를 종용했다. 적빈도 그것을 수락했다. 모용수는 적빈의 무리를 환영했다. AD384년 1월 2일 모용수의 대군이 낙양에 당도했다. 그러나 낙양을 지키던 부휘는 모용수를 믿을 수가 없었다. 문을 닫아걸고 열어주지 않았다. 적빈 무리는 낙양을 공격하자고 재촉했다. 모용수는 낙양의 지세가 사방으로 트인 곳이라서 함락을 시키더라도 공격을 받기 매우 쉬운 땅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모용수와 적빈의 대군은 다시 머리를 돌려 업으로 향했다. 모용수가 형양에 도착했을 때 온 무리들이 모용수를 대도독 연왕으로 추대했다. 후연(AD384-AD409)이 건국된 것이다.

 

모용수의 둘째 아들 모용농은 업을 빠져나와 동생 모용해와 모용소와 함께 주변 지역을 돌면서 군사를 규합했다. 오환의 장양, 필홍, 장연, 이백, 곽호 등의 흉노족과 여화와 칙발이라는 동이 여러 이민족을 모았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전진의 맹장 석월을 격파하고 죽였다. 석월이 죽자 도처에 전진 조정에 대한 반란이 불처럼 일어났다.    

 

연왕 모용수는 정령과 오환의 혼합군 20만 대군으로 업을 공격했으나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업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었다. 그러나 포위 상태가 8개월에 가까워오자 업성 내부는 말먹이와 군량미가 다 떨어져 소나무 껍질로 연명했다. 연왕 모용수가 포위를 풀고 적들이 달아날 공간을 주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용수가 군사를 물려 포위를 풀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비는 성을 버리지 않고 버티었다. 밀사를 보낸 동진 사현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현은 2만 군사와 함께 군량미 2천곡(곡=1석, 열 말)을 장군 유뢰지를 통해 수송해 보내 줬다. 모용수는 다시 업을 포위하고 다만 서쪽을 터줘 도망갈 틈만 만들어 주었다. 모용수는 부견이 AD385년 죽자 다음 해인 AD386년 정월 61세의 나이로 황제에 올랐다. 

 

 

(33) 모용홍의 서연건국(AD384)

 

모용수가 업 방향으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북지(섬서성 빈현)장사 모용홍은 관동 쪽으로 도망가서 이민족 수 천 명을 규합한 다음 장안 동쪽 80KM 지점인 화음(섬서성 화음)에 진을 치고 스스로 도독섬서제군사 및 제북왕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삼촌 모용수를 승상으로 삼는다고 발표했다.(AD384년 3월) 모용홍은 전연 모용준의 아들이고 또 전연 마지막 황제 모용위의 친동생이기 때문에 모용수보다는 정통에 더 가까웠다.   

 

부견은 부희와 부예, 그리고 두충과 요장에게 5만 군사를 배치하여 모용홍을 토벌하게 하였다. 요장은 부예에게 전투를 걸지 말고 그냥 모용홍이 도망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칠고 난폭한 부예는 말을 듣지 않고 모용홍을 공격하다가 패사했다. 두충에게 공격을 받은 모용충은 군사 8천을 이끌고 화음의 친형 모용홍에게로 갔다. 모용홍의 군사는 10여만을 넘기게 되었다. 군사력이 강해지자 모용홍은 부견에게 전연의 황제였다가 AD370년 전진에게 망하여 포로 신세가 된 친형 모용위를 자신에게로 돌려보내 주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은 업으로 돌아가고 또 하북 중산에 웅거하고 있는 숙부인 모용수에게 잘 말하여 전진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편지에 썼다.  

 

부견은 당장 모용위를 불러 동생과 숙부 모용수의 배신 행위를 꾸짖었다. 모용위는 전혀 모르는 일이기도 하려니와 자칫하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 지도 몰라 피가 나도록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부견은 모용위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고 그를 용서했다. 그리고 모용위에게 편지를 써서 모용수, 모용홍, 모용충을 반성하고 깨우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모용위는 몰래 모용홍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이 죽으면 즉각 황위에 올라 전연을 계승하라고 명을 내렸다. 모용홍이 군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진격했다. 이렇게 해서 10년 왕국 서연이 개국했다. (AD384년-AD394)  

 

요장은 부견에게 부예의 전사 소식을 보고하면서 패전에 대해 사과했다. 부견은 화가 나서 요장이 보낸 전갈을 모두 죽였다. 요장은 겁이 나서 북쪽 천수(감숙성 천수)로 도망쳤다. 천수에 거주하던 강족 주민들은 요장을 열렬히 환영하며 동족을 규합했다. 순식간에 5만여 호가 요장 밑으로 들어왔다. 요장은 스스로 만년진왕 대장군 대선우라고 칭하면서 천수에서 후진을 건국했다.(AD384년 4월)   

 


(34) 모용수의 하남왕 적빈 제거(AD384)

 

모용수와 연대한 흉노계통의 적빈 무리들은 속으로 불순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모용수의 아들 태자 모용보가 적빈을 제거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모용수가 말했다.

 

“ 하남에서의 맹약을 저버릴 수가 없다.”

 

모용덕과 모용소와 모용농 등 모용수의 측근들은 하나같이 적빈 무리가 나라의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고 경계했지만 모용수는 이렇게 말했다.

 

“ 저들이 교만하면 할수록 빨리 패할 것이니 

  우리가 초조해 할 것이 무엇이냐.

  그에게 큰 공로가 있으니 스스로 엎어져 죽게 할 뿐이다.“

 

모용수는 더욱 더 큰 예를 보여 적빈을 우대하였다. 적빈은 모용수에게 조정 최고위직인 상서령을 달라고 요청했다. 모용수는 이렇게 달랬다.

“ 마땅히 상보에 임명해야 합니다만

  아직 상서대가 다 갖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설치할 수도 없소.“ 

 

적빈이 화가 나서 장락공 부비와 내통하여 모용수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의 제방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웠다. 이 음모를 밀고로 알게 된 모용수는 마침내  적빈과 동생 적단 그리고 적민을 참수해버리고 나머지는 다 사면해 주었다. 적빈의 조카 적진은 야밤을 틈타고 한단으로 도망갔다. 모용해와 모용소가 모용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너무 다그치면 오히려 적이 될 것입니다.

  느슨하게 한 뒤에 흩어지면 그 때 공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모용수는 그 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적진을 추격하기를 그쳤다.

 

 

(35) 모용수의 업 포위와 기주 장악(AD384)

 

적빈 무리를 제거한 모용수는 업을 포위하는 것에 집중했다. 후연이 건국하기는 했지만 근거지다운 근거지가 없었으므로 전연의 수도 업성을 차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업성에서는 말먹이와 군량미가 완전 소진되어 나무 껍질을 말에게 먹일 정도였다. 업성을 포위한 모용수는 이렇게 말했다.

 

 “ 저들이 도망갈 길을 열어주어

   진왕의 옛 은덕을 갚고

   한단에 있는 적진을 먼저 토멸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모용수는 포위를 풀고 부비 무리들이 도망갈 길을 열어주었다. 모용수는 모용농을 파견하여 청하(산동성 임청)와 평원(산동성 평원)지역을 두루 다니며 민심을 수습함과 동시에 과세를 형평하게 매기는 일에 주력하였다. 

 

포위에서 풀린 장락공 부비는 적진 세력과 연대할 생각으로 환관 광조를 적진이 있는 승영(하북성 정주)으로 보냈다. 전진의 양평(하북성 관도현)태수 소흥의 군대를 중심으로 광조의부비군과 적진이 연대하여 모용수에게 대항하였다. 모용수는 아들 관군대장군 모용륭과 장숭을 파견하여 소흥의 군대를 양국에서 격파하였다. 소흥은 북쪽으로 달아나다가 광아(하북성 융요현)에서 모용농에게 붙잡혔다. 마지막 희망 소흥이 무너지자 전진에 붙었던 기주지역 민심은 후연에게로 돌아섰다. 

 


(36) 모용위의 부견 암살 모의(AD384년11월)

 

당시 모용충의 공격을 받고 있던 장안에는 선비족이 약 천 여명 살고 있었다. 모용숙이라는 사람은 모용위와 모의하여 부견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모용위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으므로 부견을 집으로 초대하여 그 때 죽이자는 계획이었다. 부견도 아무 의심 없이 갈 생각이었으나 큰 비와 벼락이 치면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용위의 암살 계획이 드러나자 부견이 그들을 꾸짖었다. 모용숙과 모용위는 부견의 개인적인 은혜는 고마우나 전연나라의 미래 문제를 눈감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답변했다. 부견은 모용위와 모용숙과 성안의 모든 선비족들을 몰살시켰다.(AD384년 11월) 모용충은 아방궁에서 공식적으로 서연 창건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용렬했다. 상벌에 기준이 없이 제멋대로였다. 모용충의 사촌 모용유가 이렇게 내뱉었다.    

 

“ 열 명 중의 우두머리는 나머지 아홉보다 재주가 뛰어나야 안정될 것인데

  중산왕 모용충은 재주도 못 미치고 공적도 없으면서    

  교만과 사치가 극심하니 거의 일을 풀어나가기 어려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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