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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정치리더십 - 외천본민(畏天本民) <31> 국정(國政)의 근본 원칙과 목표 V. 바른 국정을 도운 인재들 ⑩안숭선[安崇善(1392-1452), 시호 文肅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2년08월05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2년07월01일 10시0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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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V.10 안숭선[安崇善(1392-1452), 시호 文肅公]

 

안숭선은 고려 때 찬성사를 지낸 안축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의정부찬성사를 지낸 안순이다. 문음으로 관직에 출사했지만 재능이 매우 뛰어난 사람으로 세종 2년 3월 문과에 장원급제해 사헌부 지평이 되었다. 안숭선은 초기에는 주로 사헌부에서 근무했다. 세종 10년 10월 사헌부는 모친의 상중에도 음탕한 일을 일삼는 황상이라는 자를 고발하였다. 이 자는 첩 문제로 다른 사람과 다툰 적이 있었는데 그 첩은 옛날 태종이 총애하여 옹주로 봉했던 여자였다. 따라서 황상의 첩을 비판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태종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같이 되어 사헌부 전 직원이 의금부에 감금되어 벌을 받게 된다. 대사헌 조계생은 직산으로 유배되었고 안숭선은 파면되었다(세종 10년 10월 22일). 파면되고 얼마 안 되어 세종의 이복동생 공녕군(나중에 함령군이 됨)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될 때 안숭선이 서장관으로 동행하였으며(세종 11년 11월), 그 다음해 12월에는 김종서와 함께 승정원으로 들어와 동부대언이 되었다가(세종 12년 8월 16일), 곧 지신사로  승진하였다(세종 13년 2월 29일). 이 때 김종서도 그 자리를 매우 원했었지만 안숭선이 지신사가 되었다. 이후 김종서와 안숭선의 사이는 매우 나빠진 것으로 실록은 기록한다. 

 

지신사(지금의 비서실장) 안숭선의 왕명 처리는 매우 정확하고 신속하였으며 공명하고 정직하였다고 실록은 평가하였다. 세종 15년 북방정벌 때 조정의 의견이 분분하자 세종이 안숭선의 의견을 물었다. 안숭선은 ‘갑옷을 입은 사람은 전쟁을 말하고 선비는 화친을 말하나 신이 헤아린 바로는 이만주의 죄를 용서할 수 없으니 파저강 토벌(問罪之師)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깔끔하게대답했다. 같은 생각을 가졌던 세종은 전쟁 수행에 관한 전략과 병참을 안숭선이 주도하도록 위임했다.  

 

세종 17년 3월 안숭선은 모친 병간호를 위해 세종 13년 2월 29일부터 세종 17년 3월 8일까지 꼭 4년 재직하던 도승지(지신사) 자리를 신인손에게 물려주었다. 세종이 안숭선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안심하고 약을 드리고 내 명령이 내릴 날을 기다리도록 하라.

    (安心奉藥 以待予命出之日 : 세종 17년 2월 5일)”  

 

모친상을 당한 지 2년 되는 세종 19년 3월, 세종은 안숭선을 대사헌으로 불렀다. 그러나 안숭선과 사헌부는 양령을 서울에 들어 와 살도록 한 세종의 조치를 취소하기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세종은 이런 상소를 올리는 안숭선에 몹시 실망했다.  

 

   “경은 이미 내 가까이서 근무해 본 바라, 내가 끝내 허가하지 않을 것을

    잘 알 텐데 어찌 끈질기게 간청하는 것인가. 입 다물고 말을 안 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조롱할까봐 그런 것인가. (卿嘗爲近侍 固己知予之終不允   

    何如此固請也 畏人譏其含黙而然乎 : 세종 20년 1월 6일)”

 

대사헌 안숭선은 국가시책을 바로 잡을 항목 세 가지를 올렸다. 법 적용이 너무 느슨하므로 보다 엄격하게 법을 세우자는 것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니 각 마을마다 책임자(정장,正長)를 두어 감독하게 하자는 것과 아전들의 비리를 통렬하게 바로잡자는 내용이었다(세종 20년 3월 14일). 

 

의정부는 이 문제를 의논했으나 정장에 관한 안을 제외하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헌부 전 직원은 바로 사직안을 제출했다(세종 20년 4월 12일). 마침 하위지가 문과과거 책문의 답을 쓰면서 대간(사헌부와 사간원)의 무능함을 비판했는데 세종이 이런 하위지를 몹시 칭찬했으므로 이를 이유로 모두 사직원을 낸 것이다. 물론 세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숭선은 더 이상 대사헌으로 있을 면목이 없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도리였다. 사직서를 다시 냈고 그 날로 공조참판으로 임명되었다(세종 20년 4월 28일). 품급으로 따진다면 종 2품의 수평 이동이지만 사실 상 좌천으로 봐야 할 것이다. 공조라면 육조 중에서도 가장 위차가 낮은 부서이다. 두 달 뒤 예조참판으로 옮기고, 2년 근무 하던 안숭선은 세종 22년 7월 12일 경기도 도관찰사로 전직되었으며 여러 번 옮겨 다니다가 세종 25년 1월 동지중추원사와 형조판서로 중앙에 복귀한다. 2년 뒤에는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곧 평안도 도관찰사(세종 29년 4월)로 옮겨갔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가 다시 예문관대제학으로 돌아왔다(세종 30년 3월).

 

 

안숭선이 대제학이 된 지 두 달 만에 이종원 사건이 발생했다. 안숭선이 병조판서로 있을 때 이종원이라는 사기꾼이 초고속 승진(만호)을 했는데, 이 자는 안숭선이 관직을 시작할 무렵 매우 가깝게 지내던 이휴라는 사람의 아들로서 안숭선이 뒤를 봐 줬던 것이 탄로가 난 것이다. 나중에 실록 편찬자가 평했듯이 ‘장점을 보면 단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숭선의 문제’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때 이종원이라는 자는 친구의 아들이기도 했지만 재능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장점 때문에 여러 가지 가짜 증명서를 의심 없이 믿고 만호라는 중책을 주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의금부는 두 사람 모두 참형을 줄 것을 요구했으나 세종은 안숭선을 진천으로 유배 보냈다. 대사헌은 끈질기게 안숭선의 참형을 요구했다. 세종은 막고 나섰다.

 

   “경의 말은 옳다. 그러나 대신을 가볍게 죽일 수가 없다.

    (卿等之言善矣 然大臣不可輕殺之也 : 세종 30년 6월 27일)”   

 

명나라 법을 인용하면서 또 다시 안숭선을 죽여야 한다고 하자 세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사는 말로 법을 집행하지만 임금의 진퇴는 옛날부터 이런 것이다.

    지금 숭선의 죄를 용서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그의 죄가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有司執法而言之 人主進退之 自古而然 今予恕崇善之罪 其是非予未知也 : 

     세종 30년 6월 27일)”

 

법에 따르면 장 100대에 공신직첩을 회수하고 유배 3천리를 보내야 하는 법이라고 대사헌이 우기자 세종은 안숭선의 공신직첩은 반환시키고 진천이 아닌 고성 땅에 유배시키되 장형은 절대로 불가하다고 잘라 말했다. 세종은 안숭선이 알고 한 것이 아니라 사기꾼 이종원의 계략에 넘어간 것을 알고 있었다. 병으로 고생하는 안숭선을 고성에서 직산으로 옮겨왔고 그 자녀들의 자격도 복원시켰다(세종 31년 3월). 

 

세종실록은 안숭선을 평가하기를 “지조와 절개가 있으며 총명하고 예민하여 굳세고 과단성이 있어 시비를 판단함이 물 같이 신속하여 이르는 곳마다 명성이 있었다. 남의 재간 있음을 보면 사랑해 마지않았으며 사람 된 인품이 단정하고 아름다웠고, 또한 온화하고 엄숙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러나 과단성이 지나쳐 좋아하고 미워함에 치우침이 있었는데 그에게 좇는 사람을 반드시 비호하려고 발탁 추천하는데 바빠 이런 일이 생겼다.”고 했다.

 

세종은 승하하시기 직전 여러 집으로 거처를 옮겨 다녔다. 돌아가시기 전 해

6월과 7월에는 넷째아들 임영대군의 집에 묵었고 9월에는 여섯 째 아들 금성대군의 집에서 지냈다. 돌아가시는 해 1월 22일에는 작은 형님 효령대군의 집에서 묵다가 그 다음 달 윤1월 24일에는 안숭선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만큼 안숭선을 가족처럼 믿고 아끼던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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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숭선의 집에서 나온 세종은 2월 4일에는 소헌왕후와의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집으로 옮겼는데 꼭 2주 뒤 이곳에서 53세의 춘추로 승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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