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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막장에 이르고,국민은 외통수에 걸렸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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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3월07일 12시15분

작성자

  • 최진석
  • 전 한국의희망 상임대표, KAIST 김재철AI대학원 초빙석학교수,(사)새말새몸짓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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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나 우파도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된다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성향이 좌파로 살게 하거나 우파로 살게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하는 경험이나 학습 등도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봅니다만, 타고난 성향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는 정치가 거의 모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정치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정치를 종교나 진리로 삼습니다. 아무리 오랜동안 교유를 한 친구라도, 성당을 매일 함께 다녔던 친구라도, 어린 시절 승조(僧肇)의 『조론』(肇論)을 함께 읽은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하였더라도, 유학생활을 같이 하면서 사귄 서로 조심하는 선후배라도,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순간 갑자기 적으로 삼아버리는 일입니다. 

 

최근에 한국 화단의 최고령 화가인 김병기 화백이 106세로 별세하셨습니다. 김화백은 한국전쟁이 한참일 때 ‘피카소와의 결별’(1951)을 발표한 것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는 한국전쟁을 기계처럼 그려진 미군이 벌거벗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총을 쏘는 장면으로 묘사하였습니다. 김병기 화백은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은 너무 피상적이고 부당하다고 비판하였습니다. 나는 피카소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는 김병기 화백의 편에 섭니다. 나는 김일성보다는 박정희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김정일보다는 박근혜를 더 좋아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을 좋아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원 원훈석(院訓石)의 글을 신영복 글씨체로 바꾼 것은 잘못이라고 봅니다. 제 성향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다 중요하게 보는 바가 다를 것입니다. 저는 이 점들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저를 나쁘다고 하지 말아주십시오. 누구나가 타고났든 학습의 결과이든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을 다르게 가질 수 있으니까요. 저는 동유럽 사회주의의 실패도 듣고, 소련의 붕괴도 가까이서 보고, 중국에서 살아도 보고, 북한 사람들도 만나본 후, 1990년대 초에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렸습니다. 책과 토론을 통해 배운 것을 버리고, 내가 직접 본 것을 믿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586이 주류 기득권 세력이 되면서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사회주의적 기풍을 주류 이데올로기로 만들려고 한다고 봅니다. 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민주와 자유의 위축도 저는 위험하게 봅니다. 부동산 문제나 사회분열의 문제나 정치적 갈등이나 포퓰리즘이나 거짓말이나 염치를 모르는 일이나 다 이런 추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다르게 볼 수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는 성향을 가지고 있나봅니다.

 

현재의 선거판을 저는 “정치는 막장에 이르고, 국민은 외통수에 걸렸다”고 정리합니다. 막장의 선거판이다 보니 양대 후보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나쁘고, 누가 더 문제가 많은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천사로 만들고, 반대하는 후보를 악마화하려고 하지만, 서로 부끄러움 속에서 지지한다는 것은 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내 고향을 기반으로 하고, 부모님 때부터 내내 지지해왔던 정당이며, 아내와 함께 촛불 대오에도 서 있었던 내가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안철수 후보가 막판에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해남까지 함께 시인을 찾아가 밥도 먹고 대화도 나눴던 후배가 마치 평생의 원수를 보듯이 일거에 파멸시켜버리려는 의지를 담은 몇 문장을 남길 때, 그럴 수 있겠다고 하면서도, 정치 이전에 나눴던 목소리며 봄볕 같았던 눈빛이 생각나 갑자기 쓸쓸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뭐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그냥 방바닥에 벌렁 나자빠져 버릴 뿐입니다. 대신에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것이 분명한 친구가 남긴 “수고했다”는 짧은 한 줄에 눈알이 시큼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정치 이상의 것은 없는 것일까? 

혹은 정치 이전의 것이나 정치 이상의 것으로 정치를 어루만질 기력은 정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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