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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은행 등 금융기업 CEO 선임 절차를 발본 개혁할 때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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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2월28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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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라 전체가 머지않아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정치 논쟁이 극에 달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은행 등 금융계는 오는 3월 말 주총 시즌을 앞두고 최고경영층 구성을 둘러싸고 한 바탕 홍역을 치러야 할 상황이다. 사실, 우리 은행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국가 경제가 급속히 성장, 발전하자 고객들의 ‘은행 이탈’ 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 이에 따라 시장은 좁아지고 수익 구조도 핍박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예전처럼 정부의 시장 진입 통제 속에 독점 이득을 향유하는 것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엄혹한 현실 속에서 지금 해외 경쟁 은행들이 벌이는 ‘디지털 혁신’ 양상을 살펴보면 가공할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특징적인 것 몇 가지만 살펴봐도, 서비스 전달 체계에 모바일 앱(Apps) 적용 확산, 비대면(非對面) 거래 급증, 로봇 및 블록체인 기술 적용 확대, 인공지능(AI) 및 바이오 기술 응용 등, 이루 헤아리기도 힘들 지경이다. 여기에 핀테크(Fintech) 스타트업 등, 불과 십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종(異種) 분야 기업들의 금융권 진입도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금융 환경이 격변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 선진 은행들 모습은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한편, 외부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금융 기업들의 영업 체제도 변신 중이다. 종전의 대형화 일변도에서 맞춤형 서비스 체제로, 광범한 점포망 위주 시스템에서 플랫폼 체제로 빠르게 전환 중이다. 한 마디로, 은행들은 지금 종전의 대규모 장치 산업에서 복합적 기술기업으로 본질적인 변신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그룹 솔로몬(Solomon) 회장이 최근 “우리는 기술 기업이고 플랫폼일 뿐” 이라고 언급한 것은 글로벌 금융기업들의 미래상(像)을 예시한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은행을 포함한 우리 금융기업들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실상을 솔직한 자세로 한번 살펴보는 것은 만시지탄이나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각 금융 기업의 경영 책임을 맡고 있는 당사자들은 물론, 금융 정책, 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당국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이 진솔한 마음을 모아, 우리 금융 기업들을 어떻게 발본 개혁하고, 현 시점에서 급변하는 시대 조류에 따라가려면 어떻게 행동에 착수할지를 성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라고 본다. 오히려 늦어도 한참 늦었는지도 모른다.

 

■ 은행 등 금융기업 경영 환경은 ‘디지털 전환(DX) 대변혁’의 시대 

 

세계적 권위의 컨설팅 기업인 멕킨지(McKinsey & Co.)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은행들은 향후 예상되는 디지털 혁신 요구에 맞춰, 효율성 높은 IT 집약형 ‘서비스 전달 모델(delivery models)’을 갖출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미래 생존 전략의 핵심으로 IT 중심 체제로 담대하게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동시에, 종전의 영업 구조를 훨씬 뛰어넘는 차세대형 플랫폼을 구축할 것도 권한다. 사실, 지금 선진 은행들은 디지털 혁신에 막대한 경영자원을 쏟아가며 전력을 기울이고 있고, 은행들의 모습도 나날이 변모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은행 등 고유의 금융 영역에 이종(異種) 산업 기업들이 속속 참여하는 현실이다. 종전의 비(非)은행 서비스 제공자들은 은행 산업을 ‘서비스’ 산업으로 정의하고 적극 참여하거나 혹은 이들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서비스 네트워크로 진화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종전의 업종 간 구분도 유명무실해지면서, 바야흐로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극한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해외 선진 은행들은 지금 이런 ‘파괴적 혁신’에 막대한 경영자원을 투입해가면서 고객 확보 및 잠재적 시장 발굴에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런 과정에서 당연히 은행들이 제공할 서비스의 질(質)과 범위도 변화하고 있고, 개별 금융기업들에게는 조직 경영 전반을 ‘재설정(re-booting)’하는 수준의 대혁신이 지상 과제로 대두되어 있다. 한 마디로, 첨단 기술에 기반한 ‘게임 체인저(Game-Changer)’ 개발이 혁신 아이콘이 되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격변기로 본격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근자에 돌출된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Covid-19 팬데믹 사태를 계기로 대부분의 고객들이 비대면(非對面) 서비스 등 디지털 채널을 통한 서비스를 선호하게 되면서 더욱 가속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 최대 상업은행 JPMorgan & Chase CEO 다이먼(Jamie Dimon) 회장의 최근 발언이 눈길을 끈다. 그는 “앞으로 상업은행들은 광범한 영역에서 실리콘 밸리 핀테크 스타트 업들 혹은 아마존, 애플, Facebook, 구글 등 대형 기술기업(Big Tech)들로부터 엄중한 도전에 직면할 것” 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은행들은 향후 대출, 일부 예금 수취, 지급/결제 등 부문에서 점차 작은 영역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는 심지어 세계 굴지의 금융기업 CEO도 앞으로 당면할 엄혹한 경영 환경 변화를 그만큼 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 기후변화에 대응할 ‘그린 뱅킹’ 요구 및 ‘CBDC’ 도입의 미래 충격 

 

은행을 포함한 금융 산업 전반에 일고 있는 경영 혁신 요구는 단지 산업 내의 기술적 측면만이 아니다. 최근까지 은행 등 금융기업의 영업 활동에 그다지 중시되지 않던 분야이지만 지금 가장 첨예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게 바로 범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소위 ‘그린 뱅킹(Green Banking)’ 요구다. 이는 이미 글로벌 사회의 공통된 과제로 부상되어 있어서 어느 나라, 어느 산업, 어느 기업이라고 해서 그런 대세를 비켜갈 수가 없게 된 것이 현실이다. 

 

특히, ‘글래스고(Glasgow) COP26 합의’ 이후 ‘탈(脫)탄소’ 사회 건설은 각국이 의무적으로 받아들여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될 지상 명제로 부상했다. 여기에 각국의 금융 기업, 특히, 은행들의 중추적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노무라총연(野村總硏; NRI)은 최근 보고서에서, 탈(脫)탄소(zero carbon) 사회 실현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실질적인 주체로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업들을 꼽고 있다. 이 보고서는, 탈(脫)탄소 사회 이행과 관련해서, 은행 등은 탈(脫)탄소 과제의 이행 실적을, 거래하는 기업의 가치 평가에 중심적 요소로 반영해서 자금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기업들로 하여금 탈(脫)탄소 이행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은행 등이 자금 공급 경로를 통해 탈(脫)탄소 실행을 적극 유도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을 포함한 탈(脫)탄소 사회의 조기 실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고 금융기업 자신들의 기업 가치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최근 글로벌 사회에 첨예한 이슈로 부상한 또 다른 요인이 바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도입 움직임이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민간 주체들이 발행하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에 대응해서 CBDC를 발행하는 방안이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이와 관련, 최근 미 연준(FRB)이 발표한 ‘CBDC 검토 보고서(discussion paper)’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보고서가 비상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중국이 이미 고유의 CBDC인 디지털 위안화를 시험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연준이 이번 보고서에서 자국의 CBDC 도입 방향, 일정 등을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최대 경쟁국 중국이 CBDC 발행을 계기로 글로벌 금융시장 패권 확장에 선제적으로 나설 경우, 미국도 이제 수수방관할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양국이 CBDC 발행을 둘러싸고 본격적으로 격돌하는 경우에는, 이들 두 나라와 공히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우리나라도 어쩔 수 없이 양국의 디지털 통화와 호환되는 ‘디지털 원화’ 형태의 CBDC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은 자명하다. 지금까지 선행 연구 결과로는 CBDC 발행에는 몇 가지 다른 형식이 상정된다. 여기서, 금융기업들의 경영 환경 변화와 관련 지어 주목할 형태로, 가령, 개별 주체들이 직접 중앙은행에 ‘이자가 붙는’ 계좌를 개설하고 CBDC라는 새로운 통화로 자금 이체 등 일상 금융 거래를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경우에는, 국내는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 자금 흐름에 가히 경천동지할 변화가 생길 것이고, 이에 따라 은행들의 핵심 업무에 지각(地殼) 변동의 대변혁이 불가피할 것이다. 

 

글로벌 사회에 CBDC 도입이 본격화되는 경우를 상정할 때 또 하나 큰 관심을 끄는 영역이 바로 국제 자금 거래 시스템의 변화다. 즉, 새로운 ‘디지털 통화’ 표시의 국가 간 자금 이체 시스템이 구축되는 경우에는, 종전의 은행 간 코레스망(網)에 기반한 ‘SWIFT’ 체제를 훨씬 뛰어넘는 ‘저비용의 신속하고 효율성이 탁월한’ 혁신적인 국제 자금 이체 시스템이 탄생할 수도 있다. 아직 확실치 않으나, 만일, 중앙은행과 상업은행들이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상호 경쟁하는 형태가 일반화되는 경우에는, 은행 수신 자금의 대이동 및 자금 조달 비용 상승 등, 상업은행 업무 판도와 수익 구조에 상상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것만은 분명하다.

 

■ 방관과 무관심 속에 ‘황제’ 경영이 판치는 어느 금융그룹의 참상 


여기서 잠시 눈을 돌려 우리나라 유수의 한 금융그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영 실상을 살펴보면, 말 그대로 경악을 금치 못할 뿐 아니라, 그 참혹함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지만, 은행 경영의 첫 시발점인 직원 채용 단계부터 특정 인물을 채용하려고 부당한 업무 조작을 서슴치않고 저지르는 등 명백한 불법 행위들이 드러나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최종 결재자인 해당 은행 최고경영층 자신들은 교묘히 빠져나가려고 하위 직원들에게 가혹하게 책임을 미루는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고객들을 상대로 불법, 편법 영업을 자행하다가 적발되어 조직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고 감독 당국의 엄중한 징벌을 받고도, 무슨 연유인지 알 수는 없으나, 고위 경영 책임자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 높은 자리를 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더해, 이러한 명백한 개인 비리로 벌어진 송사(訟事)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을 온전히 회사 부담으로 처리하고 있다니 그저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불법 부당한 행태는 도저히 정상 경영이라고 할 수 없는 일탈(逸脫)된 참상의 극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심심찮게 사회적 지탄을 받는 대형 비리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도, 이런 불법 부당한 의사결정을 했던 최고경영책임자는 아직까지 상응하는 징벌이나 제재도 받지 않고 건재하고 있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깊숙한 내막을 들어보면, 외부 눈길이 잘 미치지 않는 해외 부문에도 엄청난 의혹이 감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고도의 금융 기술적 판단이 필요한 해외 투자 부문에서, 의사결정 사유도 업무 집행 과정도 불투명한 채 투자가 이뤄진 의혹이 숨겨져 있다고 들린다. 결국, 이로 인해 이미 드러난 것 만도 천문학적 금액의 손실을 보고 있어도 여태 사건의 전모는 흑막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말 희한한 일은, 이런 범죄 행위에 가까운 비리 의혹이 어찌해서 그간 수없이 들여다보았을 감독기관의 눈에는 띄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더욱 개탄할 일은, 이런 터무니없는 불법하고 부당한 행위로 소중한 고객 자산에 엄청난 손실을 끼치고 있어도, 내부에서 이를 견제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필시 기묘한 곡절이 숨어 있음이 분명할 것이어서 달리 이해할 방도가 없다. 들리는 바로는, 연임, 3연임을 거듭하며 장기 집권 중인 ‘그분’ 회장님은 1인 전횡 체제 하에서 온갖 횡포를 자행하며 폭압적 ‘황제’ 경영을 일삼아도 조직 내에는 이를 견제할 아무런 수단도, 의지도 없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이렇게 현장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은 실로 필설로 하기도 어려운 참혹한 지경이다. 대개의 경우, 금융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이렇게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안하무인의 업무 전횡은 물론, 부하 직원들을 향해 폭압적 행위를 일삼고 있는 것은 필시 모종의 막강 세력을 배경 삼아 자행하는 것으로 의심되기도 한다. 은행 업무를 경험한 이들은 누구나 금과옥조처럼 몸에 익히게 되는 규율이 하나 있다. 바로 정치적, 종교적 중립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솔선해야 할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스스로 이를 포기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사리(私利)와 보위(保衛)를 도모한다면, 이미 기본 윤리를 결한 것일 뿐 아니라, 그런 타락한 리더십 하에서는 경영 혁신이니 디지털 전환이니 하는 시대적 사명은 한갓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 

 

■ 정실집단(Crony)에 의한 사악한 비행(卑行)을 방치하는 현행 제도 

 

이런 파행적 경영 행태가 굳어지다 보니, 일상 업무 과정에서, 다른 선진국들 같았으면 벌써 자리를 내놓아도 몇 번은 내놓았을 만한 중대 사건이 불거져도 어찌어찌 해서 금융 기업 회장님들은 용케 자리를 보전한다. 비근한 예로, 현대경제 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이슈로 여기는 개인정보 보안과 관련해서, 일부 금융기업들의 고객정보 유출 사례가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으나, 해당 금융기업의 최고경영자 어느 누구도 책임지고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이런 정황이 해마다 정기 혹은 수시 검사에서 업무 내막을 그렇게 세밀히 들여다보았을 감독자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모양이니 그게 참으로 신기하고 해괴할 뿐이다.  

 

우리 금융당국은 금융기업 최고경영층 선임 시에 따라야 할 준칙으로 소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및 관련 시행령 등을 아주 ‘착실하게’ 마련해 놓고 있다. 그리고 이런 법령의 취지에 맞춰서 금융 당국은 수시로 금융회사들의 경영 구조 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침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실제 금융기업 경영 현장에서는 이런 법령이나 행정 집행의 본지와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고, 실효성 있는 견제와 감시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금융기업 내부에 자연스레 ‘정실주의(情實主義; Cronyism)’가 형성되고 이것이 온갖 악행의 근원이 되고 있다.

 

여기에, 무엇보다 우선해서 지적할 것이 바로 형식적인 사외이사 선임 절차 및 편의적 운용 실태다. 이 제도 도입의 원래 취지는 사외이사들로 하여금 전문가적 식견과 각 이해관계자 그룹들을 대변해서 최고경영층의 경영 행태를 견제하고 감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취지와 전혀 동떨어지게 현직 최고경영자의 ‘친위(親衛)’ 세력으로써 역할을 하는 게 현실이다. 사외이사들이 일단 형식적으로 주총을 거쳐 선임된 뒤에는 자신들을 선택해준 회장님을 비롯한 각급 임원을 선임하는 위원회에 참여해서 소위 ‘고무 도장’ 역할을 하기 십상이다. 어찌 보면 이런 상황이 당연한 것이, 각종 연고로 아니면 막중한 은혜를 입어 자리를 얻은 처지에 자신들을 선택해 준 현 최고경영자를 도저히 거스를 수가 없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때로는 ‘황제’ 경영을 보위하는 근위대 역할을 하게 된다. 

 

금융기업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경영층 구성이 이렇게 정실(情實)주의로 흐르다 보니, 조직 상층부에 형성된 일단의 강고(强固)한 이익집단은 ‘공동운명체’로 결합하여 경영 전횡을 일삼는 집단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리고 일단 이런 집단 구조가 형성되고 나면 금융기업 내에는 최고경영자의 지시나 묵인이 없이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각종 불법, 위법, 탈법, 편법이 자행되고 난무하게 된다. 이를 도구로 삼아, 외부 실세의 든든한 연줄을 잡은 최고경영자라면 마음 놓고 온갖 오만 방자한 폭압 행위, 불법 부당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문제도 없이 연임도 하고, 2연임, 3연임도 하면서 장기 집권을 거침없이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 사외이사 선임에 현직 CEO의 영향력을 완전 배제하는 것이 요체

 

우리 정부가 일정한 조건에 해당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층에 일정 비율의 사외이사를 두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당초 이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해당 기업의 이해관계자 그룹 대표자들 및 전문가들이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여 경영 상황을 상시적으로 감시, 견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제도는 엉뚱하게 현직 CEO의 보위(保衛)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거의 일반화되어 있다. 현직 최고경영자가 사외이사 임명을 사실상 전횡하며, 이사회 구성에서 개별 경영 안건의 최고 의사결정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현직 CEO를 견제, 감시하는 기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즉, 우리나라 금융기업들의 사외이사 제도의 운용 과정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보면, 사외이사 선임 단계에서 일반 주주들, 정부, 종업원 등, 핵심 이해관계자 그룹들은 거의 소외된 채, 현 CEO가 독단으로 선임하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이렇게 현 CEO가 자의로 선임한 사외이사들은 이사회는 물론 각종 인사 위원회에 참여하며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 사외이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첫 단계에서는 이들의 선임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그룹들이 현직 CEO와 전혀 독립된 경로를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대표할 인물들을 직접 제청해서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선임된 사외이사들은 비로소 독자적 위상을 가지고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현행 제도 하에서 금융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이 내밀한 경영 사정이나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금융 당국이 중립적으로 구성한 공적기구를 통해 사외이사를 포함한 최고경영층 후보자들의 적격성을 사전에 심사하도록 하는 것도 유효한 보완책이 될 것이다. 가령, 금융 당국 산하에 금융, 경영 전문가들로 구성된 ‘금융기업 최고경영자 자격 심사위원회’ 같은 잠정 기구를 설치하고, 필요가 생길 때마다 사외이사를 포함한 금융기업의 최고경영층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적격성을 사전에 심사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맞추어서, 이런 심의 기구는, 사전에 금융 기업의 각급 최고경영층 후보자에게 요구되는 일정한 자격 기준을 상세히 정해 두고, 각 이해관계자 그룹들이 이를 참조해서 자신들을 대표할 후보자들의 능력, 자질, 인성 등을 사전 검증한 뒤, 동 기구의 사전 심의를 거쳐 주주총회에 정식 회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금융기업에 대한 하등 경영 간섭도 아니고, 금융기업들이 공적 사명을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사(私)기업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감독 기관의 당연한 책무인 것이다. 

 

이에 더해서, 종전의 관행은 일단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최고경영자들은 대충 임기를 채우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이미 선임된 최고경영자가 업무 상 중대한 비행 혹은 과실로 은행에 손실을 끼치거나 심각한 위해(危害)를 불러온 사실이 지득(知得)될 경우에는, 조직 구성원 등 이해관계자들이 해당 인사의 적격성을 다시 심사하도록 제소(提訴)하는 경로를 만드는 것도 유효할 것이다. 이런 절차를 통해 사외이사들이 선임되고 이들이 부여된 본연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한다면 지금까지 지탄을 받아온 ‘거수기’, ‘꼭두각시’ 모습을 탈피하고 실질적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데, 이를 위해서는 사외이사 선임 단계에서부터 현직 CEO가 관여할 여지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본다. 

 

또 하나, 우리 금융기업들이 시급히 탈피해야 할 핵심 과제로 지적할 것은, 전통적으로 우리 금융 산업 내부에 철통같이 굳어져 내려오는, 그러나 실은 백해무익한 폐습인, ‘순혈주의(純血主義)’를 한시 바삐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극명한 사례로, 심지어 어느 금융기업의 경영이 파탄되어 새로 조직을 회생시킬 책임자를 선정하는 경우에도, 바로 그 경영 파탄에 책임이 있는 ‘차위’ 경영층에서 선임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경영 파탄의 원인을 제공했던 당사자에게 다시 경영책임을 부여하는 모순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이럴 경우에는 아예 조직 밖에서 널리 인재를 찾아 수혈하는 것이 더욱 유효하고 타당할 것이다. 

 

■ 새로 들어설 정권의 불퇴전의 용기와 단호한 결단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구 시대의 잔재이지만, 지금도 금융기업에 어떤 권한도 없는 ‘정치’ 세력의 입김이 암암리에 작동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가시질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역대 위정자들의 자정(自淨) 의지의 박약함과 해당 경영책임자들의 사적 이해관계가 쉽게 결탁되는 음흉한 파행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염치를 모르는 금융기업 최고경영자는 아예 정치 세력을 등에 업고 자신의 입신양명을 도모하거나, 심지어 명백한 범법 행위 마저도 은폐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무시로 벌어지는 것이다. 조직의 명운이 걸린 생존 경쟁에 촌각을 아껴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오로지 자신의 영리(榮利)를 위해 정치적 연줄을 찾아 헤매는 행태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 금융산업 내에 천착된 소위 ‘적폐(積弊)’의 정점에는 부패한 정치 세력과 결탁한 타락한 경영자들이 있어 왔다. 극명한 사례로, 언젠가 금융감독 기구가 특정 은행의 비리를 처단하려고 시도하다가 되레 그 기구의 수장이 자리에서 떨려났던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항간에는 당시 해당 기업 최고경영자가 정권 실세를 등에 업고 감독기구의 수장을 몰아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예사로 벌어지다 보니, 은행 경영의 정치적 중립성은 아예 허공으로 사라지고, 은행 업무에는 온갖 추악한 비행(卑行)이 난무한다. 그래서 우리 은행들이 아프리카 어느 후진국 수준이라는 치욕적 평가를 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흔히들 은행 등 금융기업들의 경영 혁신을 쉽게 말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조직의 정점에 있는 리더가 스스로 자기혁신을 궁행하고, 때로는 자기희생은 물론이고 조직 전체를 아우르며 각고의 변신을 감내하는 집단적 노력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지난한 과제다. 누구를 시켜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혁신하지 않으면 도저히 나아갈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실상이 그러한데, 편하게 일신을 보전할 방도를 잘 알고 있는 처지에 어느 누가 나서서 굳이 어려운 가시밭길을 가려고 할 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툭하면 시스템이 멈춰서 고객들에게 엄청난 불편을 끼쳐도, 엄중하게 관리해야 할 고객정보가 대량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해도, 그냥 빈 말 한 마디로 사과하면 씻은 듯이 지나가고 만다. 이토록 한심한 모양으로 흘러가니 금융 선진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요, 책임 경영은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한 게 되어버린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우리 금융산업 내에 안존하는 ‘금융 적폐’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불퇴전(不退轉)의 용기를 가지고 단호한 결단만이 유효할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역대 정권이 출범 초기에는 이구동성으로 금융개혁을 외쳤지만 결국엔 자신들 스스로 개혁의 걸림돌로 전락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금 엄중한 글로벌 환경 속에서 또 다시 구래의 과오를 멋모르고 반복한다면,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우리 금융기업들은 글로벌 경쟁 대열에서 낙오될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이제 불과 며칠 뒤면 새로운 정권이 선출될 것이다. 누구는, 불의(不義)를 보고 눈을 감는 것이 바로 더 큰 불의를 낳는다고 했다. ‘조직은 스스로 변하는 사람만이 변화시킬 수 있다’ 는 조직 이론의 격언도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런 ‘용단(勇斷)’이 절실한 시기에 당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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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2월28일 17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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