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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행정의 사령탑은 누구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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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2월17일 17시10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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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K-방역이 결국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항을 활짝 열어두고, 호기롭게 ‘일상회복’을 선언했던 정부가 오미크론의 광풍에 힘없이 무너져버렸다. 이제는 검사·추적·치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선언해버렸다. 우리의 감염 상황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암흑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진단·역학조사·치료를 모두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셀프 방역’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메르스 사태로 단련된 질병관리본부가 구축해놓은 K-방역을 정부·여당이 정치적으로 오염시켜버린 결과다. 개인 정보의 유출을 기꺼이 감수했던 국민과 생존권까지 포기해버린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희생과 협조가 무색해져 버렸다.

 

메르스 덕분에 마련된 K-방역

 

  코로나19 팬데믹에 시달린 지난 2년에 걸친 질곡(桎梏)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것이었다.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武漢)의 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세계 인구의 5.3%가 감염시키고, 586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특히 인구의 24%가 넘는 8천 만 명이 감염되고, 949만 명이 사망한 미국의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팬데믹의 극복에 필요한 보건‧위생 환경을 갖추고, 충분한 경제력과 기술력을 가진 선진국들의 피해가 컸다는 사실도 당혹스러웠다.

 

  우리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지난 3주 동안 오미크론이 기승을 부렸지만 감염율은 여전히 3.1% 수준이고, 치명률도 전 세계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0.46%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20년 1월 20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중국인 여행객의 감염 사실이 밝혀진 이후의 사정은 매우 심각했다. 대구의 신천지 교도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중국에 이어 세계 최악의 감염대국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190여 개 국가가 우리 국민의 입국을 거부하거나 제한했다. 코로나19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던 대통령의 주장은 믿을 것이 아니었다.

 

  그런 우리를 지켜준 것은 ‘검사‧추적‧치료’의 3T 전략을 핵심으로 하는 K-방역이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검사’에 필요한 PCR과 신속항원 진단키트를 개발했고, 신용카드‧교통카드‧CCTV를 비롯한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추적’ 전략도 있었다. 보건의료 행정력을 총동원한 감염자의 ‘치료’와 밀접접촉자의 엄격한 ‘격리’ 조치도 유효했다. 정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K-방역은 메르스 사태로 단련된 질병관리본부가 만들어낸 걸작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언론에 등장해서 차분하게 국민을 안심시켜주었던 ‘정은경 본부장’이 세계적인 스타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오염된 K-방역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오미크론 변이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1월 말부터 상황이 매우 심각해지고 있다. 3주 만에 감염자가 9만 명을 넘어섰다. 2월 말에는 17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있는 형편이다. 지난 11월 영어 조어법에도 맞지 않는 해괴한 ‘위드 코로나’를 외치면서 ‘일상회복’을 시도했던 것이 최악의 패착(敗着)이었다. 이제는 과연 우리가 터널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이 다시 자국민들에게 우리나라 여행을 금지 권고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K-방역의 성과에 취한 정부가 ‘드디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믿었던 것이 문제였다. 

 

정치적으로 오염된 K-방역

 

  2020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국민들에게는 ‘재앙’이었던 코로나19가 정부‧여당의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더 할 수 없는 ‘축복’이라는 역설적인 일이 벌어졌다. 코로나19의 걷잡을 수 없는 확산으로 지탄을 받던 여당이 오히려 총선에서 압승을 기록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부‧여당이 질병관리본부의 K-방역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만큼이나 국민들을 힘겹게 만들었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정치 방역의 결과였다. 2020년 5월 대통령 취임 3주년을 맞이해서 K-방역의 주역이었던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킨 것도 황당한 일이었다.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뜬금없는 조직 개편으로 수비대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믿었던 정은경 본부장은 질병관리청장으로 승진해서 뒷전으로 밀려나버렸다. 

 

  현재 정부의 방역 행정 체계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방역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질병관리청의 역할은 사실상 존재감을 상실해버린 ‘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의 운영으로 한정되어 버렸다. 코로나19의 확산에 대한 기술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대국민 설득에 탁월한 역량을 가진 정은경 청장의 역할도 정부와 국회의 공식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다. 

  점령군처럼 등장한 노란 점퍼의 국무총리와 관료들이 방역 행정을 틀어쥐기 시작했다. 국무총리가 불합리한 사회적 거리두기에 반발하는 국민들을 무섭게 질타하는 황당한 광경이 반복되기도 했다. 결국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킨 것은 방역 전문가들을 뒷전으로 밀어내버리기 위한 절묘한 정치적 꼼수였던  셈이다.

 

  현재의 방역 행정 체계는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한 방역 행정의 핵심은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이 담당한다. 중대본은 본래 대규모 재난의 대응‧복구 등에 관한 사항을 총괄‧조정하는 행정안전부의 조직이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을 핑계로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있고, 간간이 대통령이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에도 코로나19 대응 조직이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고 있는 흔히 언론에서 ‘중수본’으로 부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그런 조직이다. 현재는 중수본도 관계부처 합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능적으로 보건복지부의 중수본이 국무총리가 운영하는 중대본이나 질병관리청장이 운영하는 방대본과 어떻게 차별화되는지는 아무도 파악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교육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는 모든 학교의 방역 정책은 어떠한 전문성도 기대할 수 없는 교육부총리의 몫이다. 교육용으로 비축해둔 마스크를 제멋대로 전용(專用)하기도 하고, 방역 문외한일 수밖에 없는 교사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방역 업무를 떠넘기기도 한다. 최근에는 초중등학생들에게 일주일에 2번씩 자가진단 검사를 실시하도록 요구해서 ‘아동학대’라는 언론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 11월에 정부가 호기롭게 밀어붙였던 ‘일상회복’을 전담하는 ‘일상회복지원위원회’도 있다. 국무총리와 함께 생태학자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청소년과 국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사법부도 법률적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은 ‘방역패스’가 바로 일상회복지원위원회의 작품이다. 방역에 대한 전문성은 물론이고 행정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갖추지 못한 엉터리 대책이었다.

 

  일상회복지원위·중대본‧중수본‧방대본·교육부가 난마(亂麻)처럼 뒤엉켜있는 방역 행정의 정점에는 청와대가 있다. 청와대의 국가위기관리센터를 통해서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기도 하고,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를 통해 중요한 방역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대통령이 방역 정책을 최종 점검하는 ‘코로나19대응특별방역점검회의’도 있다. 감염과 방역 상황을 자의적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부스터샷에 해당하는 3차 접종 시행을 결정하기도 했다. 

 

결국 K-방역의 최고 사령탑은 대통령인 셈이다. 물론 백신에 대한 괴담으로 국민적 불신을 자초한 탓에 업무와 활동을 국민들에게 떳떳하게 공개할 수 없게 되어버린 기모란 방역기획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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