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 #22 : 사마염의 서진(西晉) <D>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12월17일 17시1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0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11> 서진 종실원로 사마부의 유언(AD272)

 

사마부(AD180-AD272)는 사마의보다 한 살 적은 동생이었다. 성품은 충성스럽고 신중하였으며 형 사마의가 실권을 장악했을 때도 나서지 않고 항상 물러나 손해를 보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형 사마의가 죽고 조카 사마사나 사마소가 집권했을 때에도 황실의 계승문제에 나서지를 않았으며 자기 생각을 내세우거나 압박하는 일이 없었다. 사마염이 황제가 되자 사마부는 황실의 최고 원로가 되었지만 손자뻘인 사마염의 권위를 존중하면서 그 앞에서 무릎을 꿇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사마염 또한 종조부 사마부를 깎듯이 대접하면서 가마를 탄 채 궐로 들도록 하였고 항상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어른에 대한 예절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 사마부가 92세의 나이로 임종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 위나라 곧은 선비 숙달(사마부의 자)은

     이윤도 되지 못하고

     주공도 되지 못하며

     관이오 못 되고

    유하혜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몸을 세워 도리를 실천함에 있어서

    처음과 끝까지 변함이 없었다.

    마땅히 평복을 입혀 장살르 지낼 것이고

    아무런 문양이 없는 관을 사용하여 염습하라.”

 

사마염은 격식에 맞추어 관을 하사하고 제물을 제공하였지만 사마부는 그 물건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유언에 따라 극히 검소하게 장례를 치렀다.

 

<12> 사마염과 논쟁하는 황보도(AD272)

 

사마염과 우장군 황보도가 어떤 일로 언쟁을 크게 벌였다. 산기상시 정휘는 황제에게 무례하다고 하여 황보도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청했다. 사마염이 이렇게 말했다.

 

   “ 충성스럽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말은

     그것을 듣지 못할까 걱정해야 하는 법이다.

     산기상시는 자기 직책을 뛰어넘어 

     망령되게 우장군을 추궁하는 상주문을 올렸으니  

     어찌 짐의 뜻과 부합되겠는가!”

 

오히려 정휘를 면직시켰다.

 

 

<13> 어지러운 익주 상황(AD272)

 

익주, 지금의 사천성은 상당히 외떨어진 지역이어서 중앙의 통치력이 잘 닫지 못하여 반란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익주의 어떤 부락이 반란을 일으키자 익주자사 황보안이 즉각 군사를 일으켜 토벌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하 하려는 반란세력이 대단하지 않은 무리라서 당장 군대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반대했다. 황보안은 듣지 않았다. 그러자 호족인 강목자소향이라는 사람이 출병하면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소리치면서 반대했다. 

 

황보안은 군사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짓이라고 판단하고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강목자소향의 목을 잘랐다. 황보인이 반대 세력을 억누르고 출병하자 전쟁을 반대하는 나머지 세력들이 장홍을 앞세워 황보인을 죽이면서 내부반란이 일어났다. 장홍은 황보인의머리를 낙양으로 보내면서 죽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황보안이 자기 세력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켜서 할 수 없이 죽였습니다.” 

 

 장홍은 오히려 황보안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 때 황보안의 주부 하반은 모친상을 당하여 집에 와 있었는데 장홍이 황보안에게 반란의 혐의를 뒤집어 씌우자 서둘러 낙양으로 와 황보안이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익주의 광한 주부 이의가 광한태수 왕준에게 이렇게 말했다.

 

   “ 황보안은 유생으로 시작한 사람인데 

     무엇을 얻으려고 반란을 일으켰겠습니까.

     장홍은 원래 도적떼 같은 사람들이니 

     이 기회에 토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준이 그 말을 듣고 조정에 장흥 토벌을 승낙해주라는 편지를 올리려고 했다. 주부 이의가 이렇게 말했다.

 

   “주인을 죽인 장흥과 같은 적은

    마땅히 토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청하실 필요 따위가 없는 일입니다.”

 

왕준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장흥 목을 베고 삼족을 이멸했다. 왕준은 처음 양호의 참군이어서 양호가 그를 잘 알았다. 양호의 조카 양기가 이렇게 말했다.

 

   “왕준은 뜻은 크지만 사치하는 사람이어서 큰일을 맡기기에 부족합니다.”

   

양호는 그러나 그의 재주와 포부가 큰 것을 알고 크게 기용할 인물로 생각했다. 양준은 항상 오나라 정벌을 주장했고 실제로 오나라 멸망에 제일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된다.

 

 

<14> 가충의 농간으로 폐출되는 임개 (AD272)

 

사마염과 사돈지간이 된 가충은 사공에 시중과 상서령과 영병의 직책을 겸하는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다.  그 때 시중 임개 또한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는데 가충으로서는 이것이 거슬렸다. 황제의 총애를 독점하기 위해 가충은 임개를 모함했다. 조정의 신료들도 가충편과 임개편으로 갈라졌다. 이것을 알게 된 사마염이 둘을 불러 말했다.

 

  “ 조정은 마땅히 하나가 되어야 하고

    대신들도 화합해야 될 것이요.”

 

가충은 임개를 이부상서로 추천했다. 이부상서가 되면 시붕직보다 황제를 알현하는 기회가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아울러 순욱과 풍담을 시켜서 끊임없이 임개를 참소하도록 시켰다. 사소한 일로 죄를 얻게 된 임개는 이부상서 직에서도 쫓겨나 결국 폐출되었다. 

    

 

가충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연회를 하다가 취중에서 하남윤 유순과 심한 언쟁을 하게 되었다. 가충이 유순에게 이렇게 꾸짖었다.

 

   “ 그 대 아버지가 늙으셨는데 

     가서 봉양하시지는 않는 것을 보니

     그대는 하늘도 없고 땅도 없구료.” 

     

대단한 모욕이었다. 화가 난 유순은 이렇게 대꾸했다.

 

    “ 그렇다면 고귀향공은 어떻게 된 것이요? ”

 

고귀향공은 조조의 증손자로 사마씨에게 항거하다가 가충에게 죽은 사람이다. 두 사람이 취중에 서로 물고 뜯으면서 물의를 일으키는 이 일로 둘 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조정에서는 일단 유순을 면직시키고  다섯 공들에게 유순의 죄가 있는지 없는 지를 물었다. 석포는 유순이 부모를 잊고 관직에 나가는 것이 예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고 사마염의 사촌동생 사마유는 유순이 예를 범한 것은 없다고 보았다. 사마염은 사마유의 생각대로 유순에게 죄가 없다고 판단하고 국자좨주로 삼았다.

 

<15> 오의 육항(AD226-AD274)과 절친한 서진의 양호 (AD272)

 

서진의 평남장군 양호는 비록 오나라를 대적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오나라 육항과는 서로 신뢰하며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육항은 육손의 둘째 아들이다. 육항이 양호에게 술을 보내면 양호는 의심하지 않고 마셨고 육항이 병이 들어 양호가 약을 보내면 육항 또한 조금도 서슴지 않고 약을 먹었다.  육항의 주변 사람들이 말리자 이렇게 말했다.

 

   “ 양호가 어찌 다른 사람에게 독을 줄 사람이겠는가?“  

 

육항은 변경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저들은 덕을 쌓으면서 전쟁을 하는데

     우리가 포악한 짓으로 대응한다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는 것이다.

     자잘한 이익을 절대로 구하지 말라.“ 

 

오나라 주군은 못 마땅하여 자주 질책하자 육항은 이렇게 대답했다. 

 

   ” 한 읍이나 한 군이라도 반드시 신의가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큰 나라는 어떻겠습니까.

     신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저들의 행동만 표창하는 것이 되고

    양호에게 더 득이 될 뿐입니다.“

 

양호는 조정의 권세가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순욱, 풍담이 양호를 싫어하였다. 양호의당생질 왕연이 양호에게 그 사실을 말해 주었지만 양호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왕연은 양호가 답답하다고 여기고 옷을 털고 돌아서 나갔다. 양호는 이렇게 투덜댔다.

 

   ” 왕연은 명성이 높고 높은 자리에 올라 갈 것이지만

     풍속을 해칠 사람 또한 그 사람일 것이다.“ 

 

오나라 강릉을 공격하면서 왕융이 군법을 어겼다. 양호는 당연히 왕융의 목을 칠 생각이었지만 왕연이 극구 말려서 왕융이 죽음을 면하였다. 왕연과 왕융은 사촌사이였다. 이 일 이후 왕융과 왕연은 양호를 비방하기 일쑤였다.(AD272) 왕연과 왕융은 서진 말기에 조정을 흔드는 중신이 되지만 그 전에 양호는 세상을 떠난다.  

 

e00e9e1eef3937fe7a6c9b027bc4a2e9_1638759

0
  • 기사입력 2021년12월17일 17시10분
  • 검색어 태그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