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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80) 나무와 경제 4: 전지는 나무의 자유를 속박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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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10월29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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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기하학적 형태로 지나치게 잘 정돈해 놓은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에 비해 영국식은 가능한 한 식물들의 자연적인 모습을 살리면서 정원을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영국이 결국 EU의 경제적 규제들을 못 견디고 브렉시트를 결정한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무와 풀 등의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모습 중에서 어떤 쪽을 더 선호하시는지요? 베르사이유 궁전의 프랑스식 정원에는 자연에다 사람의 통제가 지나치게 많이 가해지는 것 같다는 점은 어느 정도 동의하시겠지만, 다른 극단의 모습으로 아마존이나 동남아에서 만날 수 있는 정글은 어떠신지요? 모든 식물들이 자연이 주는 조건에만 적응하면서 저마다의 번식력을 발휘하며 서로 경쟁하여 만들어가는 정글이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일 것입니다.

경제에서도 극단적인 통제가 가해지는 경제 시스템이 있는가 하면, 우리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극단적인 자유 방임주의 경제 시스템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요. 필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시대의 세계 각국 경제 시스템은 그 어디인가 중간쯤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산에서 보이는 자연은 위에서 언급한 정글에 가까울까요? 실은 우리나라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사람들의 손길이 제법 가해져 있는 것을 느낍니다. 산림 녹화를 강조하면서 수입된 수목들을 많이 심었던 흔적으로 리기다소나무, 이깔나무, 아까시나무 등이 산 아래쪽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필자가 주로 다니는 등산로 근처는 사람들의 걸음과 손길이 닿아서 수종이 한정되는 경향도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산림청에서도 지나치게 숲이 노화되었다고 판단해서 나무들을 베어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이런 정도의 사람의 손길은 자연을 제약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해서 우리 주변 산에서는 나무와 풀들이 뿜어내는 자연의 힘을 마음껏 느낄 수 있습니다. 열대 지방의 정글 속에서 느낄 자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즐길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산들이 대도시 어디서나 접근이 용이하니 우리나라는 복 받은 나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유달리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점이 이해가 됩니다. 요즘은 수도권의 산은 물론 알려진 지방의 산들에서조차도 적지 않은 외국인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는데, 아마도 외국인들도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가치 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공원이나 대학 캠퍼스 혹은 아파트단지의 정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비록 필자가 자연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하더라도 공원이나 정원에서 수목이나 화초들이 제멋대로 자라는 모습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아파트단지의 경비인력을 줄이는 추세가 늘어나면서 화단에서도 야생의 풀꽃들이 자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런 야생의 풀꽃들을 종종 사진에 담기도 하지만 역시 화단에서는 잘 손질된 화초가 자라기를 기대하는 것이 정상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무들에 가해져야 할 손질, 즉 전지의 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요? 실은 공원이나 정원의 나무들을 그대로 두면 지나치게 웃자라서 다른 수목의 건강을 해칠 위험도 있고, 때로는 단지 내의 특정 세대들의 조망을 해치거나 햇볕을 차단하는 경우도 발생해서 이른바 가지를 자르는 ‘전지’ 작업을 주기적으로 합니다. 이런 전지 작업 후의 수목들의 모습이 참으로 잘 정돈된 것으로 비추어져서 공원이나 정원이 훨씬 보기 좋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공원이나 정원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작은 나무들에게 가해지는 전지의 손길은 가혹하다고 느껴질 정도가 많습니다. 

 

극단적인 경우가 바로 프랑스식 정원의 나무들에 가해지는 전지의 손길이겠지만, 회양목, 쥐똥나무, 산철쭉 등의 관목들에게 가해지는 우리나라 전지의 손길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울타리용 관목들에 가해지는 전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때로는 키큰 나무들에 가해지는 강한 전지는 처참한 결과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등은 비교적 강한 전지를 잘 견디는 것 같지만, 느티나무, 벚나무, 중국단풍나무 등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전지를 당해서 비정상적인 크기의 잎을 내밀기도 합니다. 나무가 전지의 스트레스를 느끼는 순간이지요.

 

경제시스템에서도 ‘전지’와 비슷하게 정부의 손길이 가해집니다. 이런 전지와 비슷한 정부의 통제를 우리는 ‘규제’라고 부르고 있지요. 지나치게 힘이 세어진 대기업들이 다른 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할 정도가 된다고 생각할 때 이른바 ‘경쟁정책’이나 ‘중소기업 보호정책’ 같은 형태의 규제가 가해지기도 하고, 혹은 대기업들에 기대어 사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의 힘에 억눌리지 않도록 정부가 규제를 가하기도 합니다. 회양목 울타리에도 강한 전지가 가해지듯이 대기업들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에게도 정부의 규제는 가해집니다. 어쩌면 이런 중소기업들은 규모가 작은 만큼 정부가 같은 정도의 규제를 적용하더라도 더 큰 강도로 느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필자는 잘 전지되어 있는 관목 울타리들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관목들 가지들이 길게 웃자라는 모습에서 자연이 보여주는 더 큰 활력을 느끼듯이 강한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그 규제를 돌파하며 어디에서인가 불쑥불쑥 등장하는 스타트업들로부터 경제가 가지는 새로운 활력을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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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잘 전지된 산철쭉들 속에서 뻗어나온 가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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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원광대학교 향나무 울타리 위로 솟아오르는 새순들도 자연의 활력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 생태계에 가하는 ‘전지’라는 사람의 손길과 경제 생태계에 가하는 ‘규제’라는 정부의 손길은 가능한 한 절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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