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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영국 간 무역협력협정의 특징과 시사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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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2월06일 15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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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1-2월호-제5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EU·영국 무역협력협정 체결

 

 브렉시트 이행기(transition period) 종료를 불과 1주일 앞둔 2020년 성탄절 전날,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과 영국은 「무역협력협정(TCA: Trade and Cooperation Agreement)」에 극적으로 합의하고 올 해 1월 1일부터 이를 잠정 발효시켰다. 영국이 2017년 3월, EU에 탈퇴의사를 공식적으로 전달한 후, 양측은 영국의 EU 탈퇴 조건에 대한 협정인 「탈퇴협정(Withdrawal Agreement)」을 체결하였다. 이미 탈퇴협정부터 협상, 승인, 비준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영국의 존슨(Johonson) 총리가 취임한 것도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 취임한 메이(May) 총리가 탈퇴협정의 난항으로 인하여 사임하였기 때문이다. 탈퇴협정에 따라 영국이 이미 2020년 2월 1일 자로 EU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하였으나, 양측은 양자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2020년 12월 31일까지를 이행기로 설정하였다. 이행기 동안은 영국이 EU 회원국으로서 기존에 가졌던 권리와 의무가 대부분 지속되도록 하고, 이 기간 내에 향후 양자관계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고자 하였다. 

 

양측은 미래관계에 관한 협상을 2020년 3월에 개시하였으나, 영국 해역 내 EU 회원국의 어획량, 공정한 경쟁 환경(level playing field), 분쟁조절 절차 등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였다. 당초에는 양측의 비준 절차 등을 고려하여 협상 시한을 2020년 10월로 설정하였으나, 이 시한을 훌쩍 넘긴 2020년 12월 24일에야 극적으로 협정안에 합의하였다. 합의가 없었을 경우 EU와 영국 간 양자무역은 WTO 규정을 따라야 하는데, 양자무역의 활발함과 상호의존도를 고려할 때 이에 따르는 기회비용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었다. TCA 덕분에 EU와 영국은 브렉시트의 경제적 악영향에 관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것이다.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무역협정으로서 TCA는 무역협정으로서 상품 및 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경제 분야를 다룬다. 반면에 외교, 안보, 방위 분야는 영국의 거부로 인해 협상 대상에조차 포함되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올 해 1월 1일부터는 EU와 영국 사이에 상기한 분야의 양자 협력을 위한 공식적인 틀이 없다. 또한 영국은 EU의 학생 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Erasmus)에도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로 하였다. 한편 영국의 일부인 북아일랜드와 EU 사이의 교역은 상기한 탈퇴협정에 관련 규정인 ‘Protocol on Ireland and Northern Ireland’가 이미 포함되어 있고, TCA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무역협력협정의 주요 특징

 

상품무역과 관련하여, 우선 TCA는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모든 상품에 대하여 무관세 및 무쿼터를 적용한다. EU가 체결한 무역협정 중 적용 대상 품목 전체에 무관세와 무쿼터를 적용하는 경우는 TCA가 최초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TCA가 없을 경우 EU와 영국 간 양자무역은 WTO 규정을 따라야 하는데, 영국의 WTO 협정관세인 ‘UKGT’는 평균 세율이 5.7%(영세율 품목 비중 47%)이고, EU의 WTO 협정관세인 ‘CET’는 평균 세율이 7.2%(영세율 품목 비중 27%)에 달한다. 물론 EU 회원국 간 양자무역과는 달리 원산지 규정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WTO 협정관세를 적용하는 상황만큼은 방지하였다는 점에서 EU와 영국이 상품무역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였다고 볼 수 있다.

 

원산지 규정과 관련하여, TCA의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역내산 인정 기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강화되는데, 이는 역내 생산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의 경우 2023까지는 역내 기여 비율이 40%만 되어도 역내산으로 인정되지만, 2024~2026년에는 역내 기여 비율이 45%가 넘어야 한다. 또한 배터리의 경우 2023년까지는 역외산 배터리셀 및 모듈 제조까지 역내산으로 인정하지만, 2024년부터는 HS4단위 변경(단, 역외산 양극활물질 활용은 제외) 또는 역내 기여분 60% 이상인 경우이어야만 한다. 전기자동차에서 배터리 부품이 차지하는 부가가치가 약 30~50%임을 고려할 때, 상기한 역내산 인정 기준은 EU와 영국이 친환경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비스무역의 경우, TCA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대EU 수출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TCA는 서비스무역과 관련하여 상호 시장접근, 내국인 대우 등 역내 서비스시장 개방을 위한 기본 원칙을 포함하고 있지만, EU 회원국별로 자국의 서비스수입에 관한 제약들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에 영국이 EU 단일시장의 일원으로서 누리던 서비스수출의 자유는 사라졌다. 

 

특히 영국 금융기관의 자유로운 EU 시장 접근을 허용하던 패스포팅(passporting) 권한이 종료되었다. 이제 영국 금융기관이 EU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면 EU로부터 영국의 금융서비스 규제가 EU와 동등하다는 것(equivalence)을 인정받아야 한다. 게다가 EU는 한 달 전에만 통보하면 이 동등성 인정을 종료시킬 수 있다. 또한 영국 금융기관이 EU의 금융정보를 처리하려면 EU로부터 데이터 관련 규제의 적합성(adequacy) 평가도 받아야 한다. 이처럼 TCA는 영국이 기존에 누리던 대EU 서비스수출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므로, TCA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대EU 서비스수출은 안정성과 비용 면에서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쟁점에 대한 합의 내용 

 

앞서 언급하였듯이, TCA 협상의 최대 쟁점은 영국 해역 내 EU 회원국의 어획량, 공정한 경쟁 환경, 분쟁조절 절차였는데, 이중 양측의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분야는 영국 해역 내 EU 회원국의 어획량이었다. 현재 영국 해역 내 EU 어획량의 가치는 약 6억 3,700만 유로로, EU 해역 내 영국 어획량의 가치(약 1억 1,000만 유로)를 크게 상회한다. 이에 대한 영국 수산업계의 불만을 바탕으로, 영국 측은 영국 해역 내 EU의 어획량을 현재의 20% 수준으로 줄이고, 어획량 쿼터를 매년 협상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맞서, EU는 영국이 무리하게 EU의 어획량 쿼터를 줄일 경우 영국산 수산물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대응하였다. 협상의 막바지에 영국이 상당 부분 양보를 하여, 향후 5.5년의 조정기간 동안은 EU의 어획량을 현재의 75% 수준으로 유지하고, 조정기간 후에는 양측이 어획량 쿼터를 매년 협상하기로 하였다. 비록 당초의 주장에서 상당히 양보하기는 하였으나, 영국 정부는 이 합의로 영국의 어획량이 현재의 2/3가량 늘어나고, 그에 따른 추가 이익이 연간 1억 4,500만 파운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EU와 영국 사이에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래 4년 넘게 이어진 불확실한 상황이 TCA 발효로 마침내 일단락되었고, 양측은 노딜(no-deal)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였다. 폰 데어 라이엔(von der Leyen) EU 집행위원장은 TCA가 양측에 공정하고 균형 잡힌 협정이고, 향후 5.5년간의 어업권을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예측가능성을 높였으며, 마침내 브렉시트 문제를 매듭지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존슨 총리도 영국이 마침내 EU의 법과 제도에서 자유로워지고, 어업권은 회복하면서도 대EU 무역에서 무관세와 무쿼터는 유지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TCA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브렉시트에 반대해온 스터전(Sturgeon)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스코틀랜드 국민당 SNP 대표)은 어떠한 협정도 브렉시트를 상쇄할 수는 없다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재추진 의사를 시사하였다. 영국 입장에서 EU와의 대외문제는 일단락 지었지만, 그것이 잠재해있던 국내문제를 표면화시키기도 한 셈이다.

 

TCA로 EU와 영국 간 상품무역에 무관세와 무쿼터가 적용되기는 하지만, 브렉시트 이전과 달리 원산지 규정, 식품위생(SPS), 기술규제, 통관 절차 등이 적용되므로 양자 간 상품무역에 부정적인 영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국이 EU의 단일시장에 포함되어 있었던 때에는 현재의 EU 27개국과 영국 간 교역에 이러한 절차가 없었다. 새로운 절차 도입에 따른 양자무역 위축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TCA가 통관 협력, 수출입 안전관리 우수 공인업체 제도 등을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통관 절차를 없애지는 않았다. 수출입 안전관리 우수 공인업체의 경우에도 간소화된 통관 절차를 이용할 수 있을 뿐, 통관 절차 자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영국 기업이 EU에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브렉시트 이전과 달리 대상 국가 및 업종에 따른 제약이 적용되고, 특히 영국 경제에 중요한 금융서비스의 패스포팅 권한도 종료된다. 따라서 영국의 서비스산업에 부정적인 영향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TCA는 데이터, 전문직 상호 인증 등에서 불완전한 면도 많다. 예를 들어, EU의 역외국으로서 영국은 EU의 개인정보보호(GDPR) 적정성 평가(adequacy decision)를 받아야 한다. 

 

이를 받기 전까지는 영국 기업의 데이터 교역에 제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양측은 이행기 종료 시점에 상대측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직의 자격은 계속 인정하기로 하였지만, 전문직 상호 인증에 대한 결론은 TCA에서 내리지 못 하였다. TCA로 당장의 급한 불은 껐으나, 이러한 불완전성은 여전히 EU와 영국 간 교역에 걸림돌이 될 것이고, 이와 관련한 양측의 협상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한국은 브렉시트에 대비하여 영국과 2019년 8월에 양자 FTA를 체결하였고, TCA와 마찬가지로 한·영 FTA도 올해 1월 1일에 발효되었다. 그 덕분인지 브렉시트 이행기 종료로 한국에 급작스러운 영향이 발생하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TCA는 EU 및 영국이 각각 제3국과 체결한 FTA와 연계된 원산지 누적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따라서 정부와 이러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은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비롯한 TCA의 특징들로 인해 영국 및 EU가 관련되어 있는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변할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특히 앞서 설명하였듯이 TCA는 친환경 자동차와 배터리 분야의 역내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친환경 자동차와 배터리가 한국 경제에 점점 더 중요해지는 만큼, TCA로 인한 이 분야 글로벌 가치사슬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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