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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시리즈와 사회주의로 가는 길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11월16일 14시00분

작성자

  • 조장옥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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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기본 시리즈를 내뱉고 있다. 기본소득, 기본대출을 주장하더니 이제는 기본주택이란다. 일반 대중에게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하겠다는 기세다. 포퓰리즘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부터 제시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무조건 찌르고 본다는 식인데 그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20세기 그와 같은 무조건적 인기영합주의의 끝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었다. 여기서 그 불쾌하고 불행한 끝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드릴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과 기본대출에 관하여는 이미 국가미래연구원 칼럼으로 게재한 바 있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핵심을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기본주택에 관하여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기본소득

 

국민경제의 성장 못지않게 소득분배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이다. 선진국 가운데 소득재분배를 추구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가만 다를 뿐이다. 기본소득도 그런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일정한 기본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생계를 안정시키고 소득에 존재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여 보겠다는 개념이다. 실제로 197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서 작지 않은 관심을 모은 바 있고 몇몇 지역에서는 실험적으로 실행해 본 바도 있다.  

 

최근에 핀란드에서도 기본소득을 실험하였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2017, 2018 2개년에 걸쳐 무작위로 추출한 25세에서 58세 사이의 장기 실업노동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선정된 사람들에게는 각각 월 560유로가 조건 없이 지급되었으며 실업 급여도 역시 중단 없이 지급되었다. 기본소득은 세금납부를 위한 과세표준에서도 제외되었다.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이 새로이 직업을 구해 취업하는 경우에도 기본소득은 변함없이 지급되었다. 비교를 위해 실업급여를 받는 178,000명을 비교대상으로 선정하였으나 기본소득을 지급하지는 않았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이미 끝났으며 지금은 데이터의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실험의 목적은 사회안전망이 사람들의 ① 직업선택, ② 노동의 인센티브, ③ 건강 등에 미치는 효과 등 객관적,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전반적인 영향을 측정하고 ④ 관료행정을 어마나 축소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데이터의 분석이 완전히 완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표된 자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분석 결과를 보면 기본소득이 노동시간에 미치는 효과는 없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결과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지급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 벌어들이는 소득에는 차이가 없음이 발견되었다. 물론 핀란드의 실험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진행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기본소득이 갖는 함의를 모두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실험의 디자인에서도 몇 가지 결함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기본소득은 겉으로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 앞에 깊은 함정이 있다. 선진국에서 기본소득을 채택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그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득재분배의 효과가 불분명하다. 그리고 경기에 미치는 효과는 더욱 알려진 바가 없다. 무엇보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이다. 모든 국민께 월 1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우리의 인구를 5,000만이라 할 때 연 6억 원이 소요된다. 월 100원씩 지급하면 600억 원, 10,000이면 6조 원이 소요된다. 월 50,000원이면 30조 원이 필요하다. 나아가 월 50만 원 또는 100만 원이면 각각 300조원, 600조 원이 필요하다. 참고로 2019년 우리의 GDP는 약 1919조 원이고 정부가 제출한 2021년 예산은 555.8조 원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려면 얼마로 할 것인지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부터 분명히 하여야만 하는 이유이다. 

 

이재명 지사는 기존의 복지지출은 유지한 가운데 기본소득을 시행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탄소세, 데이터세, 토지세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먼저 이 조세들로 재원이 마련될 수 있을까? 공기와 데이터는 공유자산이므로 그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은 나눠 가져야 한다고 한다. 토지는 공유자산이 아니지만 유한하여 가격이 오르는 것이니 불로소득이고 그에 대하여 세금을 걷자는 발상이다. 그렇다면 기업을 상속받은 재벌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은 어떤가? 재벌 2세, 3세들도 불로소득과 재산을 획득한 것이다. 나아가 상속받은 모든 재산과 소득은 불로소득이니 국유화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불로소득이라면 자본가의 소득 곧 주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 또한 불로소득이 아닐까? 한 마디로 불로소득을 징벌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로 귀결된다.      

 

기본대출권        

 

이 나라에는 아직도 이자와 금융을 불로소득이고 수탈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와 같은 견해는 파퓰리즘이고 중세의 이데올로기이다. 시장에 유통되는 자금은 누군가의 저축이다. 이자를 수탈이고 불로소득이라고 보는 것은 저축하는 가계에 대한 모독이다. 한편, 금융은 저축된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기능을 한다. 이때 이자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격기능을 갖는다. 다시 말해 자금은 이자율보다 효율성이 높거나 같은 용도에 배분된다. 어떤 이유에서이든 이자율이 왜곡되면 자본은 엉뚱한 곳에 쓰이게 된다. 그때 경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 망가진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가 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마디로 자원배분을 효율적으로 하는 기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자율에 개입함으로써 자원배분의 기능을 왜곡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망국을 초래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재명 경기지사, 그가 파퓰리즘에 편승하는 정치인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누가 가장 득을 보게 되는지도 모르는 듯 기본소득을 끈질기게 주장하더니 최고이자율을 10%로 제한하자고 한다. 최고이자율 24%를 위반한 채권은 전면 무효화하여야 한다고 한다. 물론 위법은 초법적 조치가 아니라 법으로 다스려야만 한다. 결정판은 ‘기본대출권’이다. 높은 이자율을 부담하는 사람들이 낮은 이자율의 대출에 대하여 보조하고 있다는 주장은 도대체 그가 이자율이 무엇이고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대한 인식은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더욱이 금융을 족징, 인징, 황구첨정, 백골징포라고 주장함에 이르러서는 넋을 잃을 수밖에 없다. 족징, 인징, 황구첨정, 백골징포가 옳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조선시대 조세징수의 부조리이다. 금융이 아니라 재정의 일탈이었던 것이다. 재정과 금융조차 구분이 안 된다는 말인가? 

 

정치가 금융을 흔들 때 보이지 않게 나라는 더 크게 흔들린다. ‘기본대출권’은 경제 원리에도 맞지 않고 금융의 원리에는 더욱 맞지 않는다. 금융시장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등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하는 곳이다. 아직 구체적이라고 볼 수 없지만 ‘기본대출권’을 도입하자마자 이 나라의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어려움에 빠진 서민을 도우려거든 파산과 복지제도 등의 법령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어떻게 하면 재기의 기회와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여야 한다고 본다. 정제되지 않은 허황된 아이디어로 나라와 시장을 어지럽히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사가 내뱉는 언사마다 원리와 사리에 어긋나는 것은 나라의 불행을 잉태한다는 사실을 왜 인식하지 못하는가? 

 

기본주택

 

기본소득, 기본대출과 더불어 가장 최근에 등장한 것이 기본주택이다.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서민들에게 장기임대주택을 보급하는 것은 당연한 정책방향이다 그러나 중산층에게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은 불필요한 시장개입이라고 본다. 차라리 모든 국민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하지 그러는가? 기본소득처럼 그편이 더 간단하지 않은가? 능력이 있는 계층은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거나 도움을 주는 정도에서 그쳐야지 정부가 모든 문제를 나서서 대행하겠다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고 복지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다른 정책제안과 마찬가지로 재원은 또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도 규제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데 무슨 다른 규제를 통해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외국인·법인에 대한 토지거래허가제를 확대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는 것은 이재명 지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도록 한다. 무엇이든 허가제를 도입하면 그에 따른 지대가 발생하는 법이다. 외국인이건 법인이건 토지거래허가제가 없어서 부동산시장이 불안하다고 보는 것인가? 다주택자들 때문에 그렇다는 것인가? 지금의 시장불안은 정책실패 때문이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 더 큰 정책실패와 시장불안을 야기하는 단초가 되리라고 본다.       

 

사회주의로 가는 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을 발표한 것은 1848년 2월이다. 당시의 노동환경은 그와 같은 선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으로 열악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역사의 행로는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달랐다. 공산주의가 구체화되고 볼셰비키혁명이 성공하면서 과격한 국유화와 전체주의가 등장하였다. 모든 것을 정부가 소유하고 공동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졌다.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이상은 처음에도 끝에도 가능하지 않았다. 소련에서 집단농장이 시행되기 시작한 1930년대 초반 오히려 식량생산의 감소와 엄청난 기근이 닥쳤다. 나라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정보와 시스템이 정부가 인지하거나 행사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는 것은 소련이 해체됨으로써 비로소 분명해졌다.

 

경제 시스템 나아가 시장을 이기겠다는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위정자들이 지금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단언하건데 결국 실패할 것이다. 그것도 크게. 시장을 이용하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공산당선언의 핵심이다. 그것도 혁명을 통해서. 그러나 세계사에서 지금까지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 혁명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그 어떤 이념이나 제도도 개인의 창의적인 시장참여를 제한할 때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 이념과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그와 같음에도 지금 이 나라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같은 인사들의 허황된 구호에 현혹되고 있다. 기본소득, 기본대출, 기본주택, 다음에 등장할 ‘기본’은 무엇인가? 참으로 염려스럽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더 나은 무엇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등장한 ‘기본’들은 국민들의 의식주를 건드려서 관심과 인기를 끌겠다는 것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라고 본다. 이 무한경쟁시대에 우리의 미래를 위해 어떤 제도를 도입하고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모든 ‘기본’의 기본을 제시하라는 말이다. 정부가 개입하면 만사형통이라는 거짓 말고, 실패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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