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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재개정, 비례대표제 존립여부와 의원 정수 감축부터 재검토해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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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5월20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20년05월20일 16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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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선거는 한 달여 전에 끝났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남긴 ‘유산’과 ‘교훈’은 진행형이다. 
‘선거과정’에서의 혼란스러운 모습, 그에 더해 ‘선거결과’로 국민 앞에 등장한 몇몇 비례대표 의원 당선자들에 대한 ‘의원자격 논란’은 국민들에게 정치불신과 비례대표제도 자체에 대한 냉소를 더해주고 있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중심에 섰던 이번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험’은 희극과 비극이 뒤섞이며 끝이 났다. 범여 정당 '4+1 협의체'의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 강행처리, 제1 야당과의 물리적 대충돌, ‘꼼수’ 비례 위성정당들의 잇따른 등장, ‘4+1’ 연합의 핵심이었던 정의당의 ‘방황과 수모’, 범여권이 연동형 비례제 도입의 명분으로 내세운 ‘소수당 국회진입 확대’와는 정반대인 거대 여당의 등장과 ‘양당제 강화-군소정당 몰락’이라는 선거 결과…. 이 과정에서 참여 정당들은 겸연쩍은 꼼수를 뒀고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목도했다. 그래서인가, 21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선거법 재개정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이번 연동형 비례대표제 대혼란은 국민이 비례대표제도라는 것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국민들 사이에 정치 불신과 냉소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 system)는 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해 의석수를 분배하고 당선자를 확정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한 선거구에서 1명의 당선자를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처럼, 사표(死票)가 많이 발생하는 다수대표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법이란 얘기다. 실제로 다수대표제 하에서 소수 의견은 상대적으로 의회정치의 장에 반영되기가 힘든 단점이 있다.

그러나 비례대표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만능은 아니다. 다수대표제에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비례대표제에도 단점이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함정은 한국의 현 제도에서는 국민이 정작 국회의원이 될 ‘사람’에 대해 투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의(民意), 즉 유권자의 의사가 의회정치에 반영되는가의 문제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율이 비슷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을 직접 고를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요건이다. 

그런데 비례대표제는 명부의 순위가 정당 지도부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결국 아무리 득표율과 의석비율이 비슷해진다 해도, 정작 국회에 들어가 일을 할 ‘사람’을 국민이 아닌 각 정당의 지도부가 뽑는 현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비례대표제가 무조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없다.

지난 총선 선거 날 아침이 떠오른다. 필자는 선관위가 보낸 선거 홍보물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지역구 후보들은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비례대표 후보 명단은 그 때까지도 누가 나왔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 정당들이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서 일할 사람들을 누구로 ‘결정’해 의원명부에 올려놓았는지는 보고나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부를 보고나서는 투표소에 가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비슷한 경험을 한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구체적인 재산, 경력, 학력을 ‘고지거부’한 후보도 있었고, 어떻게 의원명부에 올랐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후보들도 있었다. ‘사람’, 즉 후보자 개개인에 투표하는 것이 불가능한, 그래서 어쩔 수없이 정당이 ‘뽑아준’ 후보에 그대로 투표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화가 났지만, 그래도 투표소에 가기는 갔다. 이런 절망감이 국민들의 정치 불신과 정치 냉소를 키우는 토양일 게다.

그래서인가, 21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이번 선거의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대거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대리게임’ 논란으로 선거과정 내내 청년층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던 정의당의 비례대표 1번 당선자를 시작으로, 부동산 등 재산 논란으로 자신의 당으로부터 제명되고 검찰에 고발당한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당선자, 그리고 최근 시민단체의 회계처리 문제 등으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 출신의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당선자 등등.

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험이 남긴 ‘유산’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참으로 헷갈리고 복잡하다)의 원유철 대표는 지난주 두 당의 합당을 선언한 후 “범여권은 비례정당이 수두룩한데 우리 제1야당만 사라졌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그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합당하지만, 3석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준 비례위성정당 열린민주당(역시 헷갈리고 복잡하다)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적을 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그 열린민주당과의 통합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다.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지난해와 올해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험은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합당,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합당에 이어 한바탕 소동 끝에 완벽히 원상복귀하는 셈이 된다. 그 와중에 명분도 잃고 실리도 챙기지 못한 정의당만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남긴 ‘교훈’은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21대 국회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3가지이다. 1)현 연동형 비례대표제 조항 개정(연동형 비례제 유지 및 비례위성정당 창당 금지 조항 등 추가) 2)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이전 비례대표제로의 복귀) 3)비례대표제 자체를 재검토(비례제 축소 또는 폐지).

겸연쩍은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었고 자신이 예상치 못했던 선거결과를 목도했던 각 정당들은 이번 대혼돈의 교훈에 대해서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인 정의당은 의원수 확대에 유리한 완전한 연동형 도입과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막는 장치 도입을 내용으로 현 연동형 비례제를 일부 개정하고 싶어할 것이다. 통합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폐지 입장을 내놓았고, 거대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험으로 국민들의 정치 불신과 냉소는 더 커졌지만, 어쩌면 다행일런지도 모른다. 비례대표제 자체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 정치의 현실에서 비례대표제가 과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달성할 수 있는지, 원점에서 비례제 축소나 폐지까지 포함해 재검토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제도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현명한 선택이 중요한 문제다. 여건은 나라와 사회마다 다르다. 그 여건과 현실에 비추어 무엇이 민의 반영에 적합한지, 무엇이 부작용이 가장 적은지 꼼꼼히 따져보고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편법과 꼼수가 난무했던 정치 현실을 목격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험은 시기상조였음이 드러났다. 이를 인정하고, 최소한 연동형 비례대표 실험은 중단하는 것이 맞겠다. 일단 이전 비례대표 제도로 돌아가는 거다.

한걸음 더 나아가, 비례대표제 자체의 존립 여부 또는 축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볼 필요가 있다. 몇몇 비례대표 당선인들에 대한 논란으로, 요즘 “비례대표제는 폐지가 답이다”라는 여론이 높아진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당 민주화, 사회 성숙 등 여건이 갖춰질 때까지는 비례대표 의원은 없애고 미국처럼 국회의원을 모두 주민 직접 선거로 뽑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줄어드는 비례대표 의원 47명은 지역구 의원 수를 그만큼 늘리거나, 이참에 정치 불신에 대한 정치권의 반성 차원에서 현재 300명인 의원 정원 자체를 47명 감축해 253명으로 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험이 남긴 ‘유산’과 ‘교훈’을 직시하고, 비례대표제도의 존립이나 축소 여부와 전체 의원 정원 감축을 포함한 선거제도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할 시점이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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