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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의 기본, 정치의 기본 … 로마군대는 곡괭이로 승리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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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3월03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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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대는 곡괭이로 싸운다.” 

고대 로마제국의 명장 코르불로가 한 말이다. 병참이라는 ‘기본’을 강조하는 의미다.

대제국을 건설했던 로마. 그 로마의 군대는 멋진 기병이나 중무장보병의 총검이 아니라 '곡괭이'라는 병참으로 싸워 대제국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벤허 같은 영화 속의 화려해 보이는 로마군은 '기본'에 충실한 군대였다. 그들은 하룻밤 사용할 숙영지도 우직하게 교본대로 건설했다고 한다. 병사들은 매뉴얼에 따라 성화대를 짓고, 천막을 설치하고, 숙영지를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했다. 기본에 충실한 것, 그것이 전성기 로마군의 힘의 원천이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단기간에 확진자가 급증을 하며 중국에 이어 세계 2위가 되었고, 대구에서는 확진을 받고도 병상이 부족해 집에서 대기하던 환자들이 잇따라 숨지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대구의 현실을 보며 “이게 우한과 뭐가 다르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는 멈춰 섰고, 그 결과 경제는 마비되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다. 

 

며칠 새 급속히 악화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며, 곡괭이로 싸워서 대제국을 건설했던 로마가 떠올랐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에게 곡괭이는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어떤 ‘기본’을 간과해 지금 같은 대위기 상황에 빠졌나.

 

사실 기본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상식’으로 판단하면 답이 나오는 것이다. 중국 우한이 봉쇄되고 ‘지옥’으로 변했을 때 우리 국민들은 “중국인의 입국을 단기적으로 차단하자“는 주장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수많은 국민이 참여했다. ‘의학적 상식‘으로도 같았다. 대한의사협회는 한국에 확진자가 발생했던 초기부터 무려 6차례가 넘게 ’입국 차단‘을 건의했다. 

 

한국이 최악의 상황으로 들어서기 전에 정부 내부의 실무 책임자도 그 기본에 맞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방역 입장에서는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중국 방문객) 입국 금지가 당연히 좋다. 그런데 다른 부분을 고려해서 정부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2월 19일 한 말이다. 방역 실무 책임자의 생각은, ’방역의 기본‘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시되었고, 중국인들은 하루에 수 천 명~수 만 명씩 한국으로 계속 들어왔다. 한국이 바이러스로 초토화된 지금 돌아보면 뼈아픈 순간이다.

 

한국이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든 이후, 중국 측이 한 말은 더 아프다. 

"외교보다 더 중요한 건 방역이다.“

중국이 한국인 입국자에 대해 강제 격리 조치를 취하자 강경화 외교장관이 중국에 “과도하다”고 말한데 대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2월 27일 반응이다.

맞는 말이어서 더 아프다. 맞는 말인데, 우리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그 기본을 무시해서 더 그렇다.

중국 측은 이런 말도 했다.

“만일 이 시기에 중국이 대문을 열어 한·일에서 오는 사람을 초국민대우 하다가 중국의 방역망이 뚫린다면 이게 오히려 한·일의 존중을 받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다른 나라가 국경 폐쇄나 제한 조치를 취했다고 상대방을 증오하지는 않는다.”

 

그때 한국이 중국에 대해 국경 폐쇄 조치를 취했었어도 중국은 한국을 증오하지 않았을 것이며, 중국에 대문을 열었다가 지금 한국의 방역망이 뚫렸으니 중국은 한국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 아닌가.

대문을 열고 중국인을 그대로 입국시켰다가 지금의 대재앙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절박한 위기에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다. 외교도, 경제도, 정치적 이익도 그보다 앞설 수 없다. 그게 기본이고 그게 상식이다. 단기적으로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 외교나 경제나 정권의 이익에 해(害)가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조금만 길게 보면 그게 더 도움이 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외교 상황이나 경제 현실을 돌아보면 무엇이 더 도움이 됐을지 바로 알 수 있다.

 

결국, 3월 1일에 우리가 추측했고 걱정했던 일이 터졌다. 강릉에서 무증상 중국인 유학생이 입국 이틀 뒤 감염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2월 28일 중국 선양을 출발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 중국인 유학생은 발열 등 의심 증상이 없었다. 공항의 열감지기를 무사통과 했고 가톨릭관동대가 준비한 버스로 강릉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지자체의 전수검사로 이틀 뒤인 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결정적 시기’였던 지난 1~2월, 얼마나 많은 무증상이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중국인 관광객들이 입국을 했고 한국 전역을 돌아다니다 중국으로 돌아갔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도 많은 현장의 의사들은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미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기 때문에 감염 자체를 막기는 늦었다는 정부의 말은 맞다. 의사들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익은 크다. 한시적 입국 금지 조치로 대확산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환자가 속출하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야 중국의 우한처럼 병상이 부족해서, 에크모나 인공호흡기가 부족해서 위급한 환자들이 손도 못쓰고 사망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현장 의사들의 말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어떤 ‘기본’을 지키지 못했는지 ‘복기’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실기한 상황에서라도 대책을, 차선책이라도 찾을 수 있다.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을 했던 국민들이,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입국 금지가 당연히 좋다고 했던 질본 본부장이, 외교보다 더 중요한 건 방역이라고 했던 중국이, ‘기본’에 충실한 것이었다. 

대제국을 건설했던 로마는 창검이 아닌 곡괭이(병참)로 싸워 승리했다. 방역도, 외교도, 경제도, 그리고 정치도 그렇다.‘기본’에 충실해야 승리할 수 있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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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3월03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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