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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 걱정이 앞선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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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10월25일 20시3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8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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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조조정, 걱정이 앞선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10월 22일 금감원은 국내 은행 17곳의 기업여신 담당 부장들을 여의도로 불러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재차 다그쳤다고 한다.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은행들이 구조조정 대상을 선정하는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이를 질타한 것이다. 금감원은 또한 이 자리에서 11~12월 예정인 대기업 수시 신용위험평가 역시 엄격한 기준으로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당국이 전례가 없었던 강도로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요구함에 따라 구조조정 대상 기업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2015년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 및 대응방안’을 발표하면서 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원 이상 대기업 중 572개 세부평가대상 업체에 대한 신용위험평가 결과, 이중 35개사가 구조조정대상 업체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이들 중 16개 기업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19개 기업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통해 회생 절차를 밟게 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기업 구조조정

박근혜 정부 들어 국가채무, 공공기관 부채, 가계부채 규모가 18% 증가했고, 국가채무는 GDP의 40% 선까지 상승했다. 가계부채 또한 세계경제포럼(WEFA)이 위험수위로 보는 GDP 대비 75% 선에 바짝 근접한 73.1%에 이른다. 그리고 기업부채는 2,2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한계기업 비중이 2009년 12.8%(2,698개)에서 2014년 15.2%(3,295개)를 넘었다고 밝혔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1,684개사의 개별 재무제표를 전수 조사한 결과,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회사 빚의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장사가 무려 234개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장사 7개 중 1개사가 이른바 좀비기업인 셈이다. 30대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 중에서도 17개사가 여기에 속해 있다. 게다가 국내 기업 차입금 중 만기 1년 이하 단기성 비중이 50%에 이르는 상황에서 긴급 유동성 위험이나 금리 인상 국면에 처하면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될지 매우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미국이 올해부터 2017년 사이 금리를 2~3%P 이상 올리면 신흥국은 물론 세계 경제가 요동칠 것이고, 여기에 중국마저 부동산 거품 등 자산가치가 꺼지면서 금융위기를 맞게 되면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금융위기를 넘어 경제 대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시각도 있다. 더 이상 기업 구조 조정 문제를 미룰 수 없는 이유이다.

 

구조조정의 주역을 맡게 된 연합자산관리주식회사(유암코)

금융위원회는 당초 민간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신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출자를 담당해야 하는 은행들의 반대에 부딪쳐, 매각 절차를 밟고 있던 유암코를 확대•개편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기존 유암코의 개별 부실채권(NPL) 정리 업무에 기업 구조조정 기능까지 맡기기로 한 것이다.

 

금융위는 유암코가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주주은행들을 설득해 1조2500억 원을 출자케 하고, 2조원의 대출 약정을 확보시켜 줄 계획이다. 유암코의 기존 자본과 보유 회사채 등을 감안하면 4조2000억 원의 '실탄'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더불어 유암코가 사모펀드(PEF)를 세워 이 PEF가 채권은행으로부터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채권과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유암코가PEF 전체 지분의 30~50%를 투자할 경우, PEF의 자본규모는 8조4000억~14조 원선이 된다. PEF가 구조조정 채권•주식을 액면가의 50~70%로 매입할 경우 12조~28조 원어치를 사들일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계산이다. 여기에 인수금융을 얹는 경우 총량은 훨씬 더 늘어 날 수 있다는 기대도 하고 있다.

 

유암코가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수행 하려면

그런데 유암코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 하려면 몇 가지 선행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충분한 자금의 확보가 관건이다. 정부의 당초 안인 구조조정회사의 설립이 무산 된 주된 이유는 설립 자본금을 낼 곳이 마땅치 않아서였다. 그것이 유암코가 앞장선다고 얼마나 달라질지 먼저 의문이다. 은행들의 입장에서 보면 두 가지의 걱정을 하지 않을까? 

 

첫째, 그들의 출자금이 매우 큰 리스크를 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유암코가 대출을 받고 또 회사채 등을 발행해 총 투자 여력을 늘리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PEF를 만들어 공동 투자를 이끌어 낸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 PEF의 주요 출자자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이다. 이 기관들의 속성상 후순위 모험자본 출자 보다는 안정적인 선순위 인수금융이나 중순위 투자를 선호한다. 보험회사나 은행들 또한 지급여력이나 BIS 비율의 제약으로 후순위 자본 투자는 매우 제한 적이다. 따라서 PEF 참여 투자자는 유암코의 투자에 대해 선순위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유암코에 출자한 자금은 투자자산의 가치가 조금만 떨어져도 전액 손실을 감수해야 할지 모르는 엄청난 후순위 리스크를 지게 된다. 구조조정 자금 총액을 더 키우고자 정부의 기대처럼 PEF가 차입까지 하게 되면 그 리스크는 더욱 커지게 된다. 출자 은행들이 이런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도 자발적으로 출자에 선뜻 나서 줄 수 있을까?  

 

둘째는 유암코의 투자 실력이다. 순수 국내자본으로 모험자본 성격의 소위 Blind PEF(투자 결정은 운용사에 모두 맡기고 미리 투자약정을 하는 펀드)로서 조(兆)단위 규모에 이르는 약정은 현재 펀딩이 진행 중인 딱 한 개의 펀드를 제외하고 전무하다. 그 펀드의 운용사는 CRC와 PEF 운용 경험을 20여년 가까이 나름 성공적으로 쌓은 곳이다. 우리나라PEF 운용사 중에 회사를 직접 사서 경영해 되팔아 꾸준한 수익을 만들어 준 곳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NPL을 주로 취급하던 회사에 까다롭고 복잡한 구조조정 펀드의 운용을 그것도 대규모로 맡기는 것이 쉬운 일일까? 기업 구조조정에는 다양한 기법과 경험, 그리고 의사결정 능력이 요구된다. 재무구조 개선 외에도 관련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 기업 경영 노하우, 노사관계를 포함한 인사 관리, 정답이 없는 선택적 의사 결정, 외압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 등이 필수적이다. 물론 꼭 Buy-out 형태가 아닌 수동적 지분투자나 채권 투자도 있겠지만, 근자에 회자되는 복합적이고 난이도가 높은 구조조정을 맡기려면 검증된 경험, 즉 운용사의 트랙레코드를 보고 싶을 것이다.

 

또한, 금융위 관계자는 구조조정 PEF가 성과를 보이려면 적어도 4~5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은행 경영진은 대개 3년을 주기로 바뀐다. 실무자의 보직 순환은 더욱 단기이다. 그리고 유암코 플랜이 정부주도로 설계돼 정부가 바뀌어 정부의 관심이 줄어들면 유암코의 기능이 확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전 정권의 산업 은행 민영화 계획이 백지화되고, 유암코가 불과 몇 주전 까지도 매각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볼 때 이런 우려가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말하기 어렵다. 은행들이 출자와 대출 확약 등 유암코와의 협력에 선뜻 나서지 않을 또 하나의 이유이다.

 

산업은행(KDB)이 구조조정에 더 적격이다

유암코의 주력사업은 NPL 처리 업무이다. NPL은 이미 부실화되어 매각된 자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관련이 주종을 이룬다. 유암코 보다는 구조조정에 관한 한  KDB가 월등한 노하우와 축적된 경험을 갖고 있다. 토종 PEF 의 조성과 운용 경험, 워크아웃 기업 등 부실 회사 관리 경험, 그리고 긴 역사와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산업분석부 등을 들 수 있다. 무엇 보다 정부의 자금과 신용을 바탕으로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다. 거의 신 사업에 진출 하는 것과 같은 유암코 보다는 경험과 조직을 구비하고 신뢰도가 있는 KDB가 자금을 조성하면서 후순위를 담당하면 펀딩도 훨씬 더 상업적으로 용이할 것이다. 물론 KDB가 가지고 있는 여러 제약은 풀어야 할 숙제이다. 

 

과거 기획경제 시절 산업은행이 기간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금융을 담당 했지만, 이제는 국가 경제에 가장 중요한 창조경제 관련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모험자본 조성 및 운용을 맡아 수행 하는 것이 어떨까? 국책은행의 우위를 가지고 시장에서 괜스레 상업적 금융기관들과 경쟁하는 일 보다는 이 일이 제격이라고 믿는다. 우리 나라 정부는 이미 있는 제도나 기관이 제 기능을 하면 되는데 꼭 새로운 제도나 기관을 만들어야만 일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정부 주도 구조조정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현 경제 상황을 볼 때 기업구조조정을 그냥 시장에만 맡겨 둘 수 없다는데 공감한다. 하지만 국책은행 외에 상업은행들을 동원해서 자금을 조성하고 그 은행들이 주주로 있는 회사가 또 같은 은행들이 관련된 한계기업들을 구조조정 한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그리고 원금과 이자를 보장 해 줘야 하는 예금자원으로 리스크•리턴 성격이 상이한 기술금융 같은 것을 독려하고, 나아가 기업 구조조정 자금의 최후순위 모험 자본을 감당하라고 하는 것이 시장 논리에 맞는 방향인지 의아하다.

 설사 꼭 필요하다는 정책적 판단으로 이를 추진 한다 해도 가능한 국책은행 중심으로 해야 하고, 기술금융처럼 실적 위주로 흐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권 개입으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과거 정권들의 산업 합리화 같은 방식을 쓰거나, 부실기업을 우량기업에 떠 넘기거나 해서 우량기업 마저 어렵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하려고 하는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은 선진 시장에도 전례가 그리 없다. 선진국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우리경제는 이미 따라쟁이를 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창조경제가 유일한 우리의 살길 이라고 하는 것처럼 구조조정도 창조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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