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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대출과 정부 시장개입의 금도(襟度)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4월21일 21시4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18분

작성자

  • 홍은주
  •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메타정보

  • 36

본문

안심대출과 정부 시장개입의 금도(襟度)

  

 정부와 시장의 길항관계는 경제학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시장은 정부가 억지스럽고 서툰 운전사라고 생각하고 있고 정부는 시장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비도덕적인 갑을 관계와 구성의 오류가 작용하여 시장실패가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오랜 토론과 경험을 통해서 대체로 정부와 시장의 적정한 관계에 대해 두 가지의 암묵지(暗黙知)가 형성되고 있다. 첫번째 암묵지는 시장이라는 운동장에서 기업들은 경기를 하고 정부는 심판역할에 주력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공정거래법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하고, 관련 하위규제를 만들어 기업과 기업, 기업과 소비자 간의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인 힘의 우위나 정보의 우위를 앞세운 부당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은 이 같은 암묵지에 근거하고 있다. 두 번째 암묵지는 심판역할 만으로는 타이밍이 맞지 않을 경우 정부가 시장 플레이어의 하나로 개입하여 ‘smoothing operation’을 한다는 것이다.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수단과 관련하여 이 같은 두 가지 암묵지가 형성된 것은 정부가 직접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과거의 여러 경험이 결국 풍선효과 때문에 실패로 끝난 적이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제로 1980년 이전까지는 정부가 모든 물가를 노골적으로 통제했다. 시멘트 가격이 오르자 주요 건물신축을 금지시켰고 음식 값과 커피 값이 오르자 식품위생법을 핑계 삼아 억지로 다시 내리게 했으며 가격고시제를 통해 특정 물품의 가격이 어느 이상 오르지 못하게 규제했다. 금융시장에도 개입하여 화폐의 가격인 금리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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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같은 직접적인 가격개입은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소고기가격을 못 올리게 하자 설렁탕에 비계만 늘어났고 하나를 누르면 다른 가격들이 올라서 두더지 잡기 식 물가관리의 한계를 드러냈다. 금융시장에 대한 직접개입의 폐해는 더 심각하여 금융시장의 비효율을 가중시켰다. 이런저런 실패의 경험을 통해 정부가 간접적, 시장친화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암묵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또다시 노골적으로 금융시장의 가격통제에 개입한 사건이 이른바 ‘안심 대출’이다. 안심대출은 9억 원 이하의 주택을 담보로 5억 원 이하의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원리금을 함께 상환할 경우 연2.5~2.6%대의 고정금리를 장기간 보장해 주는 40조 규모의 상품이다. 가계부채규모가 1,000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금융시장이나 소비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가계에 낮은 고정금리 혜택을 주어 장기적 원리금 상환을 유도한다는 목적이다. 

 

안심대출에 대해 “불가피한 선택이다.”는 긍정론에서 “기존에 성실히 원리금을 갚아온 사람, 훨씬 높은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정부가 자기주택을 가진 중산층만 선별지원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주목할 점은 안심전환대출을 선언한 것은 정부인데 이에 따른 손해와 위험은 금융시장의 몫이라는 것이다. 2월말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기준 금리가 3.56%였고 신규기준 금리는 3.24%인데 안심전환대출 평균금리는 2.6%대이니 0.64% 만큼은 은행의 손실이 예상된다. 약 4천억-5천억 원의 손해를 은행이 나눠서 부담하는 것이고 향후 시장금리가 오를 경우 그 변동위험도 은행이 부담하게 된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모아서 풀링(pooling)하여 MBS를 발행한다고 하는데 그 MBS를 인수하는 주체도 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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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부담하는 손해액이 크지 않고 정부가 생색 좀 냈기로 뭐가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정부가 시장의 가격기구에 직접 개입하여 지시하는 것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해 버리는 상황 그 자체가 문제다. 정부가 노골적인 시장개입을 해 버리고 나면 그 다음에 반복적으로 선을 넘는 것이 당연해지고 상습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가 오랜 실패의 경험을 통해 쌓아온 암묵지, 즉 정부의 시장개입에 대한 자제심을 한 번 잃어버리면 과거의 비효율적 상황이 재연될 것이 우려된다. 정부의 금융시장 직접개입은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의 금융시장을 보는 시각을 부정적으로 만들어 이미 한국의 금융주를 매각하는 해외 투자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시장의 가격기구에 직접 개입하는 것에 대해 금도를 가지고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번 경우처럼 선제적으로 시스템 위험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은행권을 설득하여 자발적으로 실시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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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4월21일 21시4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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