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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2월25일 20시1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43분

작성자

  • 김낙회
  • 서강대 초빙교수, 前제일기획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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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 Carefully !

 

 요즘 콘텐츠나 디지털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벤트로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가 있다. 미국의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매년 3월에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의 콘텐츠 축제다. 세계 50여개 국가에서 영화,음악,게임 관련 2,000여명의 뮤지션이 참여하여 서로의 재능을 선보이는 자리다. 축제 기간에는 지평선 끝까지 구름처럼 메운 15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새롭게 펼쳐지는 음악을 즐기며 열광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왜 유명해졌을까? 바로 그 곳에는 새로운 트렌드가 있고 변화의 아이콘을 만날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경쟁은 치열하고 앞이 잘 안 보이는 불확실성의 시대. 거기에 기술이나 트렌드는 속도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 일수록 그 변화를 빨리 감지하고 신속하게 대처해가기 위해 이런 축제에 참여하여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야 말로 생존 비법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기업이나 정부도 새해를 맞으며 새 각오로 힘차게 출발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산적한 난제를 풀어가며 목적한 바를 이루어 낼 것인가?

 

문제가 잘 안 풀리면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관성의 탄력으로 말미암아 한창 정신 없이 굴러가고 있을 때 - 바로 그럴 때, 

출발한 곳을 뒤돌아 보고 바른 방향으로 굴러 오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돌아봄 없이 그저 되는 대로 하염없이 굴러만 가다가는 원하지 않은 엉뚱한 곳에 다다를 수도, 그전에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뒤돌아 보는 것, 행마(行馬)를 복기(復碁)해 보는 것, 자문자답 하는 것, 삼가 반성해 보는 것,이것을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이라고 부르자.

 

그렇다면 광고회사의 '베이직'은 무엇일까

광고는 '고객과 기업 간의 의사소통, 즉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일'이니 그 베이직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고, 나아가 커뮤니케이션의 베이직은 '쓰기(Writing)', '읽기(Reading)', '말하기(Speaking)', '듣기(Listening)'로 단순화할 수 있겠는데...

그렇다면 이 네 가지 능력 중에 어느 것이 'Basic of Basics'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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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태어나서, 제대로 쓸 수 있기까지는 12년 정도, 읽을 수 있기까지는 6~8년 정도, 말할 수 있기까지는 1~2년 정도의 교육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태아는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는다고 하니 듣는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가능한 셈이다

그런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의사소통과정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시간은 쓰기 9%, 읽기 16%, 말하기 30%, 듣기 45%라고 한다. 그러므로 투자도 필요없고 수익성도 제일 큰 '듣기'야 말로" Basic of Basics"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듣기'를 'Hearing'이 아니고 'Listening'이라고 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Hearing은 물리적이고 수동적이지만, Listening은 정신적이고 능동적이며, 학습이 필요한 과정이다. Listening이란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깊은 주의력을 동원하여야 한다는 뜻이며, 상대방이 말로 표현한 메시지는 물론 말로 표현해 내지 않은 메시지조차도 그 저의를 혼자의 힘으로 마음 속에서 재구성해내는 고도의 지적 통찰력, 즉 'Insight'를 말한다.

 

 Listening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뜻에서 '경청(傾聽)'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듯 하다. 그러나 남의 말을 공경하는 태도로 듣는다는 의미로 나는 ‘경청(敬聽)’이라 쓰는 걸 더 좋아한다.경청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머리로 듣는 것이며, 정성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으니 아무나, 아무렇게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듯 싶다. 원래 '베이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쉬워 보여도 결코 쉽지가 않은 법인가 보다. 

 

 요즘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분노하고 갈등지수가 높은 적도 없다. 이청득심(以聽得心) 이라 하지 않았던가. 경청하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인간관계의 신뢰를 형성하고 민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묵자에 이르기를 “임금에게는 반드시 뜻을 거슬러 바른말 하는 신하가 있어야 하고 윗사람에게는 꼭 직언을 하는 부하를 두어야 한다(君必有弗弗之臣上必有諾諾之下)”고 했다. 신하가 자리 보전에 연연하여 간언하지 않고 입만 다물고 있으면 백성들 마음 속에 원한이 맺힐 것이고 또한 아첨하는 자들이 곁에 있어 바람직한 논의가 막혀 버리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을 경계한 말일 것이다. 선진기업들이 조직 내에 레드팀(Red team)을 두는 것도 이런 것을 시스템적으로 해결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불편한 말에 극단적인 거부감을 나타내는 윗사람이 새겨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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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에 담긴 아픔까지도 받아 들이는 넓은 마음, 경청이야 말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시작이며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고객을 경청하고, 시장을 경청하고, 민심을 경청하고, 모두가 경청을 해 보자. '나'의 경청으로 인하여 '그이'는 맥박이 평온해지고 혈압이 안정되며 엔도르핀 마저 분비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이는 내가 자신의 진가를 인정한다고, 깊이 이해하고 높이 존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경청은 그이를 향한 '사랑의 고백'에 다름 아니며, 그이를 행복하게 고양시켜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그이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될 터이고 그게 바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수있지 않겠는가.

 

소통(疏通)의 기본은 바로 경청(敬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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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2월25일 20시1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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